【支遁放鶴】 祖庭事苑四 釋支遁(314-366) 字道林 幼有神理 聦明秀徹 年二十五出家 受業講通之外 猶善莊老 爲時賢所重 晩年入會稽剡山沃洲小嶺 買山爲嘉遁之鄕 又嘗入山陰講維摩 許詢爲都講 人嘗有遺遁馬者 遁愛而養之 時或有譏之者 遁曰 愛其神駿 聊復畜耳 後有餉鶴者 遁曰 爾冲天之物 寧爲耳目之翫乎 遂放之 世說新書云 支公因人就深公買隱山 深公曰 未聞巢由買山而隱 ▲禪門拈頌集第五○五則 介庵朋頌 走却甘贄 打破粥鍋 支遁放鶴 羲之養鵝
지둔방학(支遁放鶴) 조정사원4. 석지둔(釋支遁; 314-366)은 자가 도림이며 어릴 적에 신리(神理)가 있었으며 총명하고 수철(秀徹; 빼어나고 철저)했다. 나이 25에 출가했으며 수업(受業)하고 강통(講通; 강설하여 유통시킴)하는 외에 오히려 장로(莊老; 장자ㆍ노자)를 잘해 당시 현자(賢者)의 존중하는 바가 되었다. 만년에 회계(會稽) 섬산(剡山)의 옥주(沃洲)의 작은 고개에 들어가 산을 사서 가둔(嘉遁; 아름다운 은둔)의 고향으로 삼았다. 또 일찍이 산음(山陰)에 들어가 유마경을 강설했는데 허순(許詢)이 도강(都講; 講會를 主宰하는 首長으로 問端을 일으켜 講者로 하여금 강설케 하는 소임)이 되었다. 사람이 일찍이 지둔에게 말을 주는(遺) 자가 있었다. 지둔이 아끼며 그것을 키웠다. 때에 혹은 그것을 나무라는 자가 있자 지둔이 가로되 그 신준(神駿)을 애호하는지라 애오라지 다시 축양(畜養)할 뿐이다. 뒤에 학을 증송(贈送; 餉은 贈送)하는 자가 있었다. 지둔이 가로되 너는 충천(冲天; 冲은 위로 날 충. 곧 하늘에 날아오르는 것)의 물건이거늘 어찌 이목(耳目)의 노리개가 되리오. 드디어 그것을 놓아주었다 세설신서(世說新書; 世說新語)에 이르되 지공(支公)이 사람에게 부탁하여(因은 부탁할 인) 심공(深公)에게 나아가 은산(隱山; 세설신어에 印山으로 지어졌음)을 사려고 했다. 심공이 가로되 소유(巢由)가 산을 사서 은거했다 함을 듣지 못했다. ▲선문염송집 제505칙. 개암붕이 송하되 감지(甘贄)를 달아나게 했고/ 죽솥을 타파했다/ 지둔은 학을 놓아주었고(支遁放鶴)/ 희지(羲之)는 거위를 길렀다.
) -->
【支遁投書北闕】 緇門警訓註上 晉哀帝時 竺潛 辭闕歸剡 詔支遁繼講於禁中 遁乃抗表還山 北闕 卽玄武門也 未央殿前雖南向 而上書奏事 謁見之徒 皆詣北闕 然則北闕爲正門 ▲緇門警訓一 支遁投書北闕 道林方逸東山
지둔투서북궐(支遁投書北闕) 치문경훈주상. 진(晉) 애제(哀帝) 때 축잠(竺潛)이 대궐에서 사퇴하여 섬(剡)으로 회귀하자 지둔(支遁)을 불러 금중(禁中)에서 계강(繼講)하게 했는데 지둔이 이에 항표(抗表; 황제를 향해 奏章을 올림)하고 환산(還山)했음. 북궐(北闕)은 곧 현무문이니 미앙전(未央殿) 앞이 비록 남향이나 상서(上書)하여 주사(奏事)하거나 알현하는 무리는 모두 북궐로 나아갔으니 그러한 즉 북궐이 정문이 됨. ▲치문경훈1. 지둔은 북궐에 투서했으며(支遁投書北闕) 도림(道林)은 동산에 방일(方逸; 方 當作放)했다.
) -->
【支遁鶴】 見支遁放鶴 ▲大川普濟語錄 莫將 喚作右軍鵝
지둔학(支遁鶴) 지둔방학을 보라. ▲대천보제어록. 지둔학(支遁鶴)을 가지고 우군아(右軍鵝)로 불러 짓지 말아라.
'국역태화선학대사전 8책(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036쪽 (0) | 2019.12.12 |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035쪽 (0) | 2019.12.12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033쪽 (0) | 2019.12.12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032쪽 (0) | 2019.12.12 |
|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8책(ㅈ) 1031쪽 (0) | 2019.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