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서장주역(書狀註譯) 종직각(宗直閣)에게 답하다-증종승(曾宗丞)〈天隱〉에게 답하다 13

태화당 2025. 10. 5. 09:16

答宗直閣

示諭 應緣日涉差別境界 未甞不在佛法中 又於日用動容之間 以狗子無佛性話 破除情塵 若作如是工夫 恐卒未得悟入 請於脚跟下照顧 差別境界從甚麽處起 動容周旋之間 如何以狗子無佛性話 破除情塵 能知破除情塵者 又是阿誰 佛不云乎 衆生顚倒迷己逐物 物本無自性 迷己者自逐之耳 境界本無差別 迷己者自差別耳 旣日涉差別境界 又在佛法中 旣在佛法中 則非差別境界 旣在差別境界中 則非佛法矣 拈一放一 有甚了期 廣額屠兒在涅槃會上 放下屠刀立地便成佛 豈有許多忉忉怛怛來 日用應緣處 纔覺涉差別境界時 但只就差別處 擧狗子無佛性話 不用作破除想 不用作情塵想 不用作差別想 不用作佛法想 但只看狗子無佛性話 但只擧箇無字 亦不用存心等悟 若存心等悟 則境界也差別 佛法也差別 情塵也差別 狗子無佛性話也差別 間斷處也差別 無間斷處也差別 遭情塵惑亂身心不安樂處也差別 能知許多差別底亦差別 若要除此病 但只看箇無字 但只看 廣額屠兒放下屠刀云 我是千佛一數 是實是虛 若作虛實商量 又打入差別境界上去也 不如一刀兩段 不得念後思前 念後思前則又差別矣 玄沙云 此事限約不得 心思路絕 不因莊嚴本來眞靜 動用語笑隨處明了 更無欠少 今時人不悟箇中道理 妄自涉事涉塵 處處染著 頭頭繫絆 縱悟則塵境紛紜 名相不實 便擬凝心歛念 攝事歸空 閉目藏睛 隨有念起 旋旋破除 細想纔生 卽便遏捺 如此見解 卽是落空亡底外道 魂不散底死人 溟溟漠漠無覺無知 塞耳偸鈴徒自欺誑 左右來書云云 盡是玄沙所訶底病 默照邪師埋人底坑子 不可不知也 擧話時都不用作許多伎倆 但行住坐臥處勿令間斷 喜怒哀樂處莫生分別 擧來擧去 看來看去 覺得沒理路沒滋味心頭熱悶時 便是當人放身命處也 記取記取 莫見如此境界便退心 如此境界正是成佛作祖底消息也 而今默照邪師輩 只以無言無說爲極則 喚作威音那畔事 亦喚作空劫已前事 不信有悟門 以悟爲誑 以悟爲第二頭 以悟爲方便語 以悟爲接引之辭 如此之徒 謾人自謾 誤人自誤 亦不可不知 日用四威儀中 涉差別境界 覺得省力時 便是得力處也 得力處極省力 若用一毫毛氣力支撐 定是邪法 非佛法也 但辦取長遠心 與狗子無佛性話廝崖 崖來崖去 心無所之忽然如睡夢覺 如蓮華開 如披雲見日 到恁麽時自然成一片矣 但日用七顚八倒處 只看箇無字 莫管悟不悟徹不徹 三世諸佛只是箇無事人 諸代祖師亦只是箇無事人 古德云 但於事上通無事 見色聞聲不用聾 又古德云 愚人除境不忘心 智者忘心不除境 於一切處無心 則種種差別境界自無矣 而今士大夫 多是急性便要會禪 於經敎上及祖師言句中 摶量要說得分曉 殊不知 分曉處 却是不分曉底事 若透得箇無字 分曉不分曉 不著問人矣 老漢敎士大夫放敎鈍 便是這箇道理也 作鈍牓狀元亦不惡 只怕拕白耳 一笑

動容; 動作容儀

情塵; 一俗情妄念之塵垢 二六根與六塵也 舊譯六根云六情 此指一

周旋; 一回旋 二交際應酬 三較量

迷己逐物; 迷失自心佛性 却向外尋覓佛法 楞嚴經二 一切衆生 從無始來 迷己爲物 失於本心 爲物所轉 故於是中觀大觀小 若能轉物則同如來 禪門拈頌集第一一一九則 鏡淸問僧 問外是什麽聲 僧云 雨滴聲 師云 衆生顚倒 迷己逐物 僧云 和尙作麽生 師云 洎不迷己 僧云 洎不迷己 意旨如何 師云 出身猶可易 脫體道應難

立地; 一卽刻 卽時 立 卽刻 地 助詞 二站著 又存立之地 建立之地 此指一

玄沙; 師備(835-908) 唐末五代僧 福州(今屬福建)閩縣人 俗姓謝 幼好垂釣 汎小艇於南臺江 狎諸漁者 唐咸通(86 0-873)初 年屆三十 始脫塵志 投芙蓉山靈訓禪師落髮 受具足戒後 行頭陀法 終日宴坐 人稱備頭陀 與法兄雪峰義存 親近若師徒(嗣法雪峰) 同力締構 參學者衆 偶閱楞嚴經 發明心地 諸方請益者如水歸海 初住梅谿普應院 遷福州玄沙山 應機接物凡三十餘載 學侶八百餘人 時有閩帥王審知 事以師禮 曲盡殷勤 竝奏賜紫衣 號宗一大師 梁開平二年示寂 壽七十四(一說七十或七十五) 有語錄三卷傳世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八]

限約; 限制約束

莊嚴; 嚴飾布列之意

塵境; 指心的對象 卽色聲香味觸法等六境

凝心; 專心 一心一意

遏捺; 阻止 按捺 多指識情深重者企圖以識情制止識情

空亡; 意同空無

溟溟漠漠; 廣漠無際 形容廣闊無邊 沒有界限

塞耳偸鈴; 同掩耳偸鈴 淮南子十六說山訓 范氏之敗 有竊其鐘 負而走者 鎗然有聲 懼人聞之遽掩其耳 憎人聞之 可也 自掩其耳 悖矣

熱悶; 焦灼煩悶 常形容參學者處于悟道關口時的特殊心境

威音那畔; 威音王佛乃是過去莊嚴劫最初之佛 此佛出世以前爲絶待無限之境界 故禪家多以威音王佛出世以前 稱爲威音那畔 其意與父母未生以前 天地未開以前等語相同

空劫已前; 又作空劫以前 指此世界成立以前 天地未開以前 與父母未生以前 空王以前 空王那畔 朕兆未萌以前 本來面目等 皆爲同類同語 空劫; 四劫之第四 世界自成立至破壞之間 分爲成劫 住劫 壞劫 空劫等四階段 稱爲四劫 空劫 卽謂此時期之世界已壞滅 於欲界與色界之有情有色身者之中 唯存色界第四禪天 其他則全然虛空 又世界形成以前而萬物未生之時期 亦稱爲空劫 [俱舍論十二 瑜伽師地論二 立世阿毘曇論九]

第二頭; 指玄妙禪法以外的義理

鈍牓狀元; 科擧有龍虎牓 金牓 黃牓等目 因以鈍牓戱之也 鈍中第一也 非及第實有鈍牓狀元者 [大慧書栲栳珠]

拕白; 事物紀原三曰 唐天寶元年(742)冬選 六十四人判入等 時御史中丞張倚男奭 判入高等 有下第者當爲 薊令以其事白安祿山 祿山奏之 來年正月 玄宗御勤政樓親重試 有十二人比類稍優 張奭不措一辭 時人謂之曳白 卽拕白是也 [大慧書栲栳珠]

 

종직각(宗直閣)에게 답하다

시유(示諭; 告知. 曉示)하되 응연(應緣)하며 날마다 차별경계(差別境界)에 건너 일찍이 불법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다 하셨고 또 일용(日用)하는 동용지간(動容之間)에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로써 정진(情塵)을 파제(破除)한다 하셨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공부를 짓는다면 마침내() 오입(悟入)을 얻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청컨대 각근하(脚跟下)를 조고(照顧)하되 차별경계가 어느 곳으로 좇아 일어나는가 하십시오, 동용(動容)의 주선(周旋)하는 사이에 어떻게 구자무불성화로써 정진(情塵)을 파제(破除)하겠습니까. 정진을 파제함을 능히 아는 자는 또 이 누구(阿誰)입니까. 불타가 이르지 않았습니까, 중생이 전도(顚倒)되어 자기를 미해 사물(事物; )을 쫓는다(迷己逐物). ()은 본래 자성(自性)이 없건만 자기를 미한 자(迷己者)가 스스로 그것()을 쫓을 따름이며 경계는 본래 차별이 없건만 자기를 미한 자가 스스로 차별할 따름입니다. 이미 날마다 차별경계로 건너고 또 불법 중에 있다 하셨거니와 이미 불법 중에 있다면 곧 차별경계가 아니며 이미 차별경계 가운데 있다면 곧 불법이 아닙니다. 염일방일(拈一放一)한다면 무슨 요기(了期)가 있겠습니까. 광액도아(廣額屠兒)가 열반회상(涅槃會上)에 있으면서 도도(屠刀)를 방하(放下)하고 입지(立地)에 바로 성불했거늘 어찌 허다한 도도달달(忉忉怛怛)이 있어 왔겠습니까. 일용하는 응연처(應緣處)에 차별경계에 건넘을 겨우 깨달을 때 단지(但只) 차별처(差別處)로 나아가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거()하되 파제(破除)한다는 상념(想念; )을 지음을 쓰지 말고 정진(情塵)이란 상념을 지음을 쓰지 말고 차별이란 상념을 지음을 쓰지 말고 불법이란 상념을 지음을 쓰지 말고 단지(但只) 구자무불성화를 간()하십시오. 단지 이() 무자(無字)를 거()하면서 또한 깨침을 기다림(等悟)에 마음을 둠을 쓰지 말지니 만약 깨침을 기다림에 마음을 두면 곧 경계도 또한 차별이며 불법도 또한 차별(差別)이며 정진(情塵)도 또한 차별이며 구자무불성화도 또한 차별이며 간단처(間斷處)도 또한 차별이며 무간단처(無間斷處)도 또한 차별이며 정진(情塵)의 혹란(惑亂)을 만나() 신심(身心)이 안락하지 못한 곳도 또한 차별이며 허다한 차별을 능지(能知)하는 것()도 또한 차별입니다. 만약 이 병()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단지 이() 무자(無字)를 간()하십시오. 단지 간하되 광액도아(廣額屠兒)가 도도(屠刀)를 방하(放下)하고 이르되 나도 이 천불(千佛)의 일수(一數)다 한 것은 이 실()인가 이 허()인가. 만약 허실(虛實)이란 상량(商量)을 지으면 또 차별경계상(差別境界上)으로 타입(打入; 前綴)하여 가므로 일도양단(一刀兩段)하여 염후사전(念後思前)을 얻지 않음만 같지 못하나니 염후사전은 곧 또 차별입니다. 현사(玄沙)가 이르되 차사(此事)는 한약(限約)을 얻지 못하고 심사로(心思路)가 끊겼다. 장엄(莊嚴)을 인하지 않아도 본래 진정(眞靜)인지라 동용(動用)하고 어소(語笑)하면서 곳 따라 명료(明了)하여 다시 흠소(欠少)가 없다(이상 玄沙語). 금시(今時)의 사람이 개중(箇中)의 도리를 깨닫지() 못해 허망하게 스스로 섭사섭진(涉事涉塵)하여 처처(處處)에 염착(染著)하고 두두(頭頭)에 계반(繫絆; 묶여 얽힘)하며 비록 깨치더라도 곧 진경(塵境)이 분운(紛紜)하고 명상(名相)이 실답지 않습니다. 바로 응심(凝心)하고 염념(歛念; 생각을 거둠)하여 사()를 거두어() ()으로 돌아가려고 하면서 눈을 감아 눈동자를 감추어도(閉目藏睛) ()를 따라 생각이 일어나며 선선(旋旋; 緩緩)히 파제(破除)하려고 세상(細想)이 겨우 생겨나매 곧바로 알날(遏捺)합니다. 이와 같은 견해는 바로 이 공망(空亡)에 떨어진 외도(外道)며 혼()이 흩어지지 아니한 사인(死人)입니다. 명명막막(溟溟漠漠)하고 무각무지(無覺無知)하나니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듯이(塞耳偸鈴) 도연(徒然)히 스스로 기광(欺誑)합니다. 좌우(左右)의 내서(來書)에서 운운(云云)한 것은 모두 이 현사(玄沙)가 꾸짖은() 바의 병이며 묵조(默照)하는 사사(邪師)가 사람을 매몰(埋沒; )하는 갱자(坑子; 구덩이. 는 조사)니 알지 못함은 옳지 못합니다. 거화(擧話)할 때 모두() 허다한 기량(伎倆)을 지음을 쓰지 말고 단지 행주좌와하는 곳에 간단(間斷)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희로애락(喜怒哀樂)하는 곳에 분별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거래거거(擧來擧去)하고 간래간거(看來看去)하다가 이로(理路)가 없고() 자미(滋味)가 없고 심두(心頭)가 열민(熱悶)함을 각득(覺得)할 때 바로 이 당인(當人)이 신명을 놓을 곳(放身命處)이니 기취(記取)하고 기취하십시오. 이와 같은 경계를 보고 바로 퇴심(退心)하지 말아야 하나니 이와 같은 경계는 바로() 이 성불작조(成佛作祖)하는 소식입니다. 이금(而今)의 묵조(默照)하는 사사배(邪師輩)는 다만 무언무설(無言無說)로써 극칙(極則)으로 삼으며 위음나반사(威音那畔)라고 불러 지으며 또한 공겁이전사(空劫已前)라고 불러 지으면서 오문(悟門)이 있음을 불신(不信)하고 오()를 광(; 속임)이라 하고 오()를 제2(第二頭)라 하고 오()를 방편어(方便語)라 하고 오()를 접인지사(接引之辭)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무리()는 남을 속이고 자기를 속이고(謾人自謾) 남을 그르치고 자기를 그르치나니(誤人自誤) 또한 알지 못함은 옳지 못합니다. 일용(日用)하는 사위의중(四威儀中)에 차별경계에 건너 생력(省力)을 각득(覺得)할 때가 바로 이 득력처(得力處)며 득력처는 극히 생력(省力)하나니 만약 일호모(一毫毛)의 기력(氣力)을 써서 지탱(支撐)하면 결정코 이 사법(邪法)이며 불법이 아닙니다. 단지 장원심(長遠心)을 판취(辦取; 辦備하다)하여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와 더불어 시애(廝崖)하되 애래애거(崖來崖去)하다가 마음이 가는() 바가 없어 홀연히 수몽(睡夢)이 깸(; 음이 교)과 같고 연화(蓮華)가 열림과 같고 구름을 헤치고 해를 봄과 같나니 이러한 때에 이르면 자연히 일편(一片)을 이룹니다. 단지 일용(日用)하면서 칠전팔도(七顚八倒)하는 곳에 다만 이() 무자(無字)를 간()하되 오불오(悟不悟)와 철불철(徹不徹)에 상관(相管)하지 말아야 하나니 삼세제불도 다만 시개(是箇) 무사인(無事人)이며 제대조사(諸代祖師)도 또 다만 시개 무사인입니다. 고덕(古德)이 이르되 단지 사상(事上)에 무사(無事)를 통하면 견색문성(見色聞聲)하면서 귀 먹음()을 쓰지 않는다. 또 고덕이 이르되 우인(愚人)은 제경(除境)하고 망심(忘心)하지 않으며 지자(智者)는 망심(忘心)하고 제경(除境)하지 않는다.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갖가지 차별경계가 저절로 없어집니다. 이금(而今)의 사대부가 많이 이 급성(急性)으로 바로 선()을 이회(理會)하려고 경교상(經敎上) 및 조사의 언구 중에서 요설(要說)을 단량(摶量)하여 분효(分曉; 分明)를 얻지만 너무 알지 못하나니 분효처(分曉處)가 도리어 이 분효하지 아니한 일입니다. 만약 이() 무자(無字)를 투득(透得)하면 분효(分曉)인지 분효가 아닌지 사람에게 물음을 붙이지 않을 것입니다. 노한(老漢; 대혜)이 사대부로 하여금 놓아 둔()하게 함이 바로 이, 저개(這箇) 도리입니다. 둔방장원(鈍牓狀元)을 지음을 또한 싫어하지() 않아야 하지만 다만 타백(拕白)을 두려워할 따름입니다. 일소(一笑)합니다.

動容; 동작의 용의(容儀; 儀容).

情塵; 1. 속정(俗情)과 망념의 진구(塵垢). 2. 6()6(). 구역에 6근을 번역해 이르되 6()이라 했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周旋; 1. 회선(回旋). 2. 교제(交際)하며 응수(應酬). 3. 교량(較量).

迷己逐物; 자심의 불성을 미실(迷失)하고 도리어 밖을 향해 불성을 심멱(尋覓). 릉엄경2. 일체중생이 무시로부터 오면서 미기(迷己)하여 사물로 삼아 본심을 잃고 사물에 굴리는 바가 되므로 고로 이 가운데 대()도 보고 소()도 보거니와 만약 능히 전물(轉物)한다면 곧 여래와 동등하다. 선문염송집 제1119. 경청(鏡淸)이 중에게 묻되 문밖에 무슨 소리냐. 중이 이르되 빗방울 소리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중생이 전도하여 자기를 미혹하여 사물을 쫓는구나(迷己逐物). 중이 이르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자기를 미혹하지 않음에 이르렀다(洎不迷己). 중이 이르되 자기를 미혹하지 않음에 이르렀다는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몸에서 내기는 오히려 가히 쉽지만 탈체(脫體; 전체)를 말하기는 응당 어렵다.

立地; 1. 즉각. 즉시. ()은 즉각이며 지는 조사. 2. 참착(站著; 서다). 또 존립의 땅. 건립의 땅.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玄沙; 사비(師備; 835-908)니 당말 오대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민현(閩縣) 사람이며 속성은 사(). 어릴 적에 낚시질을 좋아해 작은 배를 남대강(南臺江)에 띄우고 여러 어자(漁者; 어부)를 친압(親狎)하던 자였음. 당 함통(860-873) () 나이가 30에 이르자 비로소 탈진(脫塵)의 뜻을 세우고 부용산(芙蓉山) 영훈선사(靈訓禪師)에게 투신해 낙발(落髮)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 두타법(頭陀法)을 행해 종일 연좌(宴坐)한지라 사람들이 비두타(備頭陀)로 일컬었음. 법형(法兄)인 설봉의존(雪峰義存)과 친근하기가 마치 사도(師徒; 스승과 제자) 같았으며(설봉의 법을 이었음) 힘을 합쳐 체구(締構)하여 참학자(參學者)가 많았음. 우연히 릉엄경을 열람하다가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했으며 제방에서 청익하는 자가 마치 물이 바다로 돌아감과 같았음. 처음엔 매계(梅谿) 보응원(普應院)에 거주하다가 복주(福州)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겼음. 응기접물(應機接物)하기 무릇 30여 재(; )며 학려(學侶)8백여 인이었음. 때에 민수(閩帥) 왕심지(王審知)가 스승의 예()로 모시면서 은근(殷勤)을 곡진(曲盡)함이 있었으며 아울러 주청(奏請)하여 자의(紫衣)와 종일대사(宗一大師)란 호를 주었음. () 개평 2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4(일설엔 70 혹은 75). 어록 3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송고승전13. 전등록18].

限約; 한제(限制)와 약속(約束).

莊嚴; 엄식(嚴飾)하여 포열(布列)함의 뜻.

塵境; 마음의 대상을 가리킴. 곧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등 6().

凝心; 전심(專心). 일심일의(一心一意).

遏捺; 조지(阻止; 막아서 저지함). 안날(按捺; 억제). 다분히 식정(識情)이 심중(深重)한 자가 식정으로 식정을 제지(制止)하려고 기도함을 가리킴.

空亡; 뜻이 공무(空無)와 같음.

溟溟漠漠; 광막(廣漠)하여 지경이 없음. 광활무변하여 계한(界限)이 있지 않음을 형용.

塞耳偸鈴; 엄이투령(掩耳偸鈴)과 같음. 회남자16 설산훈. 범씨(范氏)의 패배에 그 종을 훔쳐 지고서 도주하는 자가 있었다. 쟁연(鎗然; 종소리)하며 소리가 있었다. 사람이 그것을 들을까 두려워하며 급히 그 귀를 막았다. 사람이 그것을 들음을 미워함은 가하지만 스스로 그 귀를 막음은 어긋난다().

熱悶; 초작(焦灼; 초조하게 우려함)의 번뇌. 늘 참학자가 오도의 관구(關口)에 처했을 때의 특수한 심경을 형용함.

威音那畔; 위음왕불(威音王佛)은 곧 이 과거장엄겁 최초의 불타임. 이 불타가 출세하기 이전은 절대(絶待) 무한의 경계가 되는지라 고로 선가에서 다분히 위음왕불 출세 이전을 일컬어 위음나반이라 함. 그 뜻은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以前), 천지미개이전(天地未開以前) 등의 말과 서로 같음.

空劫已前; 또 공겁이전(空劫以前)으로 지음. 이 세계가 성립되기 이전이며 천지가 열리지 아니한 이전임. 부모미생이전ㆍ공왕이전ㆍ공왕나반ㆍ짐조가 싹트지 아니한 이전ㆍ본래면목 등과 모두 동류며 동어(同語). 空劫; 4겁의 제4. 세계가 성립함으로부터 파괴에 이르는 사이를 나누어 성겁ㆍ주겁ㆍ괴겁ㆍ공겁 등의 4계단으로 삼는데 일컬어 4겁이라 함. 공겁은 곧 이르자면 이 시기의 세계는 이미 괴멸하여 욕계와 색계의 유정에 색신이 있는 자 중에 오직 색계의 제사선천(第四禪天)만 생존하고 기타는 곧 전연(全然; 완전히) 허공임. 또 세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만물이 나지 아니한 시기를 또한 일컬어 공겁이라 함 [구사론12. 유가사지론2. 입세아비담론9].

第二頭; 현묘한 선법 이외의 의리를 가리킴.

鈍牓狀元; 과거에 용호방ㆍ금방(金牓)ㆍ황방(黃牓) 등의 명목이 있음. 인하여 둔방은 그것을 희롱함이니 둔중(鈍中)에 첫째라 함임. 급제에 실로 둔방장원이 있는 게 아님 [대혜서고로주].

拕白; 사물기원3에 가로되 당 천보 원년(742) 동선(冬選)64인이 판입등(判入等)했다. 때에 어사중승 장의(張倚)의 아들 석()도 고등(高等)에 판입(判入)했다. 하제자(下第者; 낙제자)가 있어 마땅히 되어야 했다. 계령(薊令)이 그 일을 안녹산에게 알렸고 녹산이 그것을 상주했다. 내년 정월 현종이 근정루(勤政樓)에 거둥하여 친히 중시(重試)했다. 12인이 있어 비류(比類)하매 조금 우수했고 장석(張奭)은 일사(一辭)도 두지 못했다. 시인(時人)이 이를 일러 예백(曳白)이라 했으니 곧 타백(拕白)이 이것이다 [대혜서고로주].

 

答李參政泰發

示諭 華嚴重重法界 斷非虛語 旣非虛語 必有分付處 必有自肯處 讀至此嗟歎久之 士大夫平昔所學 臨死生禍福之際 手足俱露者 十常八九 考其行事 不如三家村裏省事漢 富貴貧賤不能汩其心 以是較之 智不如愚 貴不如賤者多矣 何以故 生死禍福現前 那時不容僞故也 大參相公平昔所學 已見於行事 臨禍福之際 如精金入火愈見明耀 又決定知華嚴重重法界斷非虛語 則定不作他物想矣 其餘七顚八倒 或逆或順 或正或邪 亦非他物 願公常作此觀 妙喜亦在其中 異日相從於寂寞之濱 結當當來世香火因緣 成就重重法界 以實其事 豈小補哉 更須下箇註脚 卽今這一絡索 切忌作寓言指物會 一笑

華嚴; 本爲經名 又以名此經文爲所依之宗派及其法門 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又稱雜華經 有三種 ()六十華嚴 凡六十卷 東晉佛馱跋陀羅譯 又稱舊華嚴 晉經 總成七處八會三十四品 據出三藏記集九 華嚴經探玄記一等所擧 華嚴經之梵本 原有十萬偈 由東晉支法領從于闐國攜入三萬六千偈 自安帝義熙十四年(418)三月 由佛馱跋陀羅譯成六十卷 稱爲六十華嚴 此卽第一譯 然六十華嚴中之入法界品尙有缺文 直至唐永隆元年(680) 始補譯之 ()八十華嚴 凡八十卷 唐代實叉難陀譯 又稱新華嚴 唐經 總成七處九會三十九品 爲六十華嚴之異譯 八十華嚴之梵本 乃實叉難陀應武則天之請 從于闐國攜入中華 自唐武則天證聖元年(695)三月 於遍空寺內始譯 武后親臨譯場 揮毫首題品名 至聖曆二年(699)十月功畢 此卽第二譯 本經之西藏譯本 總成四十五品 其中 前四十四品相當於本經之前三十八品 第四十五品相當於本經第三十九入法界品 ()四十華嚴 凡四十卷 唐代般若譯 全稱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略稱普賢行願品 又稱貞元經 爲新舊兩譯華嚴經入法界品之別譯 唐德宗貞元十一年(7 95)十一月 由南天竺烏荼國師子王派使者進貢其所親寫華嚴經之梵本 翌年六月 於長安崇福寺 由罽賓般若三藏譯之 澄觀及圓照鑑虛等諸師詳定 至貞元十四年二月譯畢 共四十卷 此卽四十華嚴 宗統編年五 祖(十四祖龍樹) 入龍宮看藏見華嚴經有三本 上本 十三世界微塵數偈 一四天下微塵數品 中本四十九萬八千八百偈 一千二百品 下本十萬偈 四十八品 上本非佛不能知 中本惟住地菩薩乃能知之 遂記下本回歸西土 傳至東震 僅八十卷三十九品 乃前分三萬六千偈 尙有六萬四千偈九品在西土

法界; 一意識(六識之一)所認知的一切對象的統稱 二全部世界 一切事物 三萬事萬物的本源和本性 此指二

大參相公; 大參 指參知政事 相當於宰相的職位 相公 對宰相的稱呼

香火因緣; 古人盟誓 多設香火告神 故佛家謂彼此契合曰香火因緣

 

이참정(李參政)泰發에게 답하다

시유(示諭; 告知. 曉示)하되 화엄(華嚴)의 중중법계(重重法界)는 단연(斷然; )히 허어(虛語)가 아니며 이미 허어가 아니니 반드시 분부(分付)하는 곳이 있고 반드시 자긍(自肯)할 곳이 있다 하셨습니다. 읽다가 여기에 이르러 차탄(嗟歎; 歎息)한 지 오래입니다. 사대부가 평석(平昔)에 배운 바를 사생(死生)과 화복(禍福)의 즈음()에 수족(手足)을 모두 드러낸 자의 십()에 늘 팔구(八九)는 그 행사(行事)를 고찰(考察; )하건대 삼가촌리(三家村裏)의 생사한(省事漢)만 같지 못하나니 부귀와 빈천(貧賤)이 능히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여서입니다. 이로써 비교하자면 지()가 우()만 같지 못하고 귀()가 천()만 같지 못한 자가 많습니다. 무슨 연고냐, 생사와 화복이 현전하면 나시(那時; 그때)엔 허위(虛位; )를 용납하지 않는 연고입니다. 대참상공(大參相公)이 평석(平昔)에 배운 바는 이미 행사(行事)에 나타났으며() 화복지제(禍福之際)에 임()해 정금(精金)이 입화(入火)하매 더욱() 명요(明耀)를 보임()과 같습니다. 또 결정코 화엄의 중중법계가 단연(斷然; )히 허어(虛語)가 아님을 아셨다 하니 곧 결정코 타물(他物)이란 상념을 짓지 않음입니다. 그 나머지 칠전팔도(七顚八倒)와 혹역혹순(或逆或順)과 혹정혹사(或正或邪)도 또한 타물(他物)이 아닙니다. 바라건대 공()은 늘 이 관()을 지으십시오. 묘희(妙喜)도 또한 그 가운데 있겠습니다. 다른 날(異日) 적막(寂寞)의 변경(邊境; )에서 상종(相從)하면 당당래세(當當來世; 當來世의 강조어)의 향화인연(香火因緣)을 맺고 중중법계를 성취하여 그 일을 실답게 하리니 어찌 소보(小補)라 하겠습니까. 다시 이() 주각(註脚)을 내림을 썼거니와 즉금(卽今)의 이 일낙삭(一絡索)을 우언(寓言)으로 지물(指物)한다는 이회를 지음을 절기(切忌)합니다. 일소(一笑)합니다.

華嚴; 본래 경명(經名)이 됨. 또 이 경문의 이름으로 소의(所依)의 종파 및 그 법문으로 삼음. 華嚴經; 대방광불화엄경이니 또 명칭이 잡화경(雜華經). 3종이 있음. (1). 육십화엄(六十華嚴) 무릇 60권이며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구화엄(舊華嚴)ㆍ진경(晉經)이니 총() 78(七處八會) 34()으로 이루어졌음. 출삼장기집9ㆍ화엄경탐현기1 등에서 든 바에 의거하면 화엄경의 범본(梵本)은 원래 10만 게가 있고 동진 지법령(支法領)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36천 게를 휴입(攜入)함으로 말미암아 안제(安帝) 의희(義熙) 14(418) 3월로부터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60권을 역성(譯成)했기 때문에 일컬어 60화엄(華嚴)이라 했으니 이것이 곧 제1(). 그러나 60화엄 중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오히려 결문(缺文)이 있었고 바로 당 영륭(永隆) 원년(680)에 이르러 비로소 보역(補譯)했음. (2). 팔십화엄(八十華嚴) 무릇 80권이며 당대(唐代)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신화엄(新華嚴)ㆍ당경(唐經)이며 총() 79(七處九會) 39()으로 이루어졌으니 60화엄의 이역(異譯)이 됨. 80화엄의 범본은 곧 실타난타가 무측천(武則天)의 요청에 응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중화로 휴입(攜入)했음. 당 무측천 증성(證聖) 원년(695) 3월로부터 편공사(遍空寺) 안에서 처음 번역했고 무후(武后)가 역장(譯場)에 친림해 수제(首題)의 품명(品名)을 휘호(揮毫)했음. 성력 2(699) 10월에 이르러 공()을 마쳤으니 이것이 곧 제2(). 본경의 서장역본(西藏譯本)은 총() 45품으로 이루어졌고 그 중 전() 44품은 본경의 전 38품에 상당하고 제45품은 본경의 제39 입법계품에 상당함. (3). 사십화엄(四十華嚴) 무릇 40권이며 당대(唐代) 반야(般若)가 번역했음. 전칭(全稱)이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며 약칭이 보현행원품이며 또 명칭이 정원경(貞元經). 신구(新舊) 양역(兩譯) 화엄경의 입법계품의 별역(別譯). 당 덕종(德宗) 정원(貞元) 11(795) 11월 남천축 오다국(烏荼國) 사자왕(師子王)이 사자를 파견해 그가 친사(親寫)한 바 화엄경의 범본을 진공(進貢)했기 때문에 다음해 6월 장안 숭복사(崇福寺)에서 계빈(罽賓; 계빈국) 반야삼장(般若三藏)이 그것을 번역함으로 말미암아 징관(澄觀) 및 원조감허(圓照鑑虛) 등 여러 스님이 상정(詳定)했고 정원(貞元) 142월에 번역을 마쳤음. 공히 40권이며 이것이 곧 40화엄임. 종통편년5. (14龍樹)가 용궁에 들어가 장경을 보는데 화엄경(華嚴經)3()이 있음을 보았다. 상본(上本)은 십삼세계(十三世界; 10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게(微塵數偈)1사천하(四天下)의 미진수품(微塵數品)이었고 중본(中本)4988백 게며 12백 품()이었고 하본(下本)10만 게며 48품이었다. 상본은 부처가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고 중본은 오직 주지보살(住地菩薩; 10하는 보살)이라야 이에 능히 그것을 알겠는지라 드디어 하본을 기()하여 서토(西土)로 회귀했다. ()하여 동진(東震)에 이른 것은 겨우 8039품이니 곧 전분(前分)36천 게라, 오히려 64천 게 9품이 있어 서토에 있다.

法界; 1. 의식(6식의 하나)으로 인지하는 바의 일체의 대상의 통칭. 2. 전부의 세계. 일체의 사물. 3. 만사와 만물의 본원과 본성.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大參相公; 대참(大參)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가리킴. 재상(宰相)의 직위에 상당함. 상공(相公)은 재상에 대한 칭호.

香火因緣; 고인은 맹서하면서 많이 향화를 시설하고 신에 고한지라 고로 불가에서 이르기를 피차 계합함을 가로되 향화인연이라 함.

 

答曾宗丞天隱

左右天資近道 身心淸淨 無他緣作障 只這一段 誰人能及 又能行住坐臥 以老僧所示省要處 時時提撕 休說一念相應千了百當 便是此生打未徹 只恁麽崖到臘月三十日 閻家老子也須倒退三千里始得 何以故 爲念念在般若中 無異念無間斷故 只如道家流 以妄心存想 日久月深 尙能成功 不爲地水火風所使 況全念住在般若中 臘月三十日 豈不能轉業耶 而今人多是將有所得心學道 此是無妄想中眞妄想也 但放敎自在 然不得太緊 不得太緩 只恁麽做工夫 省無限心力 左右生處已熟 熟處已生 十二時中自然不著枯心忘懷 將心管帶矣 雖未透脫諸魔外道 已不能伺其便 亦自能與諸魔外道 共一手同一眼 成就彼事 而不墮其數矣 除公一人可以語此 餘人非但不能如公行履 亦未必信得及也 但於話頭上看 看來看去 覺得沒巴鼻沒滋味心頭悶時 正好著力 切忌隨他去 只這悶處 便是成佛作祖 坐斷天下人舌頭處也 不可忽 不可忽

宗丞; 宗正寺丞也 周代以來的官職 事物紀原五曰 宗正周官也 在周禮實小宗伯之職

省要處; 領悟禪法的關鍵之處

 

증종승(宗丞)天隱에게 답하다

좌우(左右)는 천자(天資)가 도를 가까이하고 신심(身心)이 청정하고 타연(他緣)이 장애를 지음이 없으니 다만 이 일단(一段)을 어떤 사람이 능히 미치겠습니까. 또 능히 행주좌와에 노승(老僧; 대혜)이 보인 바 성요처(省要處)를 시시로 제시(提撕)한다 하시니 일념에 상응하면 천료백당(千了百當)이라고 설하지 말아라, 바로 이 차생(此生)에 지어 투철하지 못하더라도(打未徹) 다만 이렇게 애(; 硏窮)하여 납월 30일에 이르면 염가노자(閻家老子)도 또한 꼭 3천 리를 거꾸로 물러나야 비로소 옳습니다. 무슨 연고냐, 염념(念念)이 반야 중에 있으며 이념(異念)이 없고 간단(間斷)이 없기 때문의 연고입니다. 지여(只如) 도가류(道家流)도 망심(妄心)을 상념(想念; )에 두고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오히려() 능히 성공하여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부리는 바가 되지 않거늘 하물며 전념(全念)이 반야 가운데 주재(住在)하거늘 납월 30일에 어찌 능히 전업(轉業)하지 않겠습니까. 이금(而今)의 사람이 다분히 이, 소득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학도(學道)하거니와 이것은 이 망상(妄想)이 없는 가운데 진망상(眞妄想)이니 단지 놓아 자재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태긴(太緊; 너무 급함)을 얻지 말고 태완(太緩)을 얻지 말고 다만 이렇게 공부를 지으면 무한한 심력(心力)을 줄입니다. 좌우는 생소한 곳이 이미 익숙해졌고 익숙한 곳은 이미 생소해졌으니 12시 중에 자연히 고심망회(枯心忘懷)하거나 마음을 가지고 관대(管帶)함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제마(諸魔)와 외도를 투탈(透脫)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능히 그 편의를 노리지() 못하며 또한 스스로 능히 제마ㆍ외도와, 함께 일수며(共一手) 함께 일안(同一眼)이라, 피사(彼事)를 성취하고는 그 수()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 한 사람만 가이(可以) 이것을 말하나니 나머지 사람은 단지 능히 공()과 같이 행리(行履)하지 못함만이 아니라 또한 꼭() 믿어 미침을 얻지 못한다 할 것입니다. 단지 화두상(話頭上)에 간()하여 간래간거(看來看去)하다가 파비가 없고(沒巴鼻) 자미가 없고(沒滋味) 심두(心頭)가 미민(迷悶; )함을 각득(覺得)할 때 정호(正好) 착력(著力)하되 그를 따라 감(隨他去)을 절기(切忌)합니다. 다만 이 미민한 곳(悶處)이 바로 이 성불작조(成佛作祖)하고 천하인의 설두(舌頭; 는 조사)를 좌단(坐斷)하는 곳이니 가히 소홀하지 말고 가히 소홀하지 마십시오.

宗丞; 종정시승(宗正寺丞)이니 주대(周代) 이래의 관직임. 사물기원5에 가로되 종정(宗正)은 주나라의 관직이다. 주례(周禮)에 있어선 실로 소종백(小宗伯)의 직이다.

省要處; 선법을 영오(領悟)하는 관건의 곳.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八

 

大慧普覺禪師書卷第二十九

宋徑山能仁禪院住持嗣法慧日禪師臣蘊聞 上進

答王敎授大受

不識 左右別後 日用如何做工夫 若是曾於理性上得滋味 經敎中得滋味 祖師言句上得滋味 眼見耳聞處得滋味 擧足動步處得滋味 心思意想處得滋味 都不濟事 若要直下休歇 應是從前得滋味處都莫管他 却去沒撈摸處沒滋味處 試著意看 若著意不得 撈摸不得 轉覺得沒𣠽柄捉把 理路義路心意識都不行 如土木瓦石相似時 莫怕落空 此是當人放身命處 不可忽不可忽 聰明靈利人 多被聰明所障 以故道眼不開 觸途成滯 衆生無始時來 爲心意識所使 流浪生死不得自在 果欲出生死作快活漢 須是一刀兩段 絕却心意識路頭 方有少分相應 故永嘉云 損法財滅功德 莫不由茲心意識 豈欺人哉 頃蒙惠敎 其中種種趣向 皆某平昔所訶底病 知是般事 颺在腦後 且向沒巴鼻處沒撈摸處沒滋味處 試做工夫看 如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尋常聰明人 纔聞擧起 便以心意識領會摶量引證 要說得有分付處 殊不知 不容引證 不容摶量 不容以心意識領會 縱引證得摶量得領會得 盡是髑髏前情識邊事 生死岸頭定不得力 而今普天之下 喚作禪師長老者 會得分曉底 不出左右書中寫來底消息耳 其餘種種邪解 不在言也 密首座宗杲與渠同在平普融會中相聚 盡得普融要領 渠自以爲安樂 然所造者 亦不出左右書中消息 今始知非 別得箇安樂處 方知某無秋毫相欺 今特令去相見 無事時試令渠吐露看 還契得左右意否 八十翁翁入場屋 眞誠不是小兒戲 若生死到來不得力 縱說得分曉 和會得有下落 引證得無差別 盡是鬼家活計 都不干我一星事 禪門種種差別異解 唯識法者懼 大法不明者 往往多以病爲藥 不可不知

敎授; 事物紀原六曰 隋有州博士 潘徽嘗爲之 唐武德(618 -626)初 府郡亦置經學博士 掌以五經敎授 德宗卽位改爲文學 元和(806-820)中廢 宋朝神宗元豐(1078-1085)中 興大學三舍 以經術養天下之才 又於諸大郡府 始各置敎授一人 掌敎導諸生 如大學博士 亦隋州博士之職也 [大慧書栲栳珠]

理性; 不生不滅之無爲曰理性 生滅之有爲法曰事相

不濟事; 不成就事 濟 及也

法財; 法能利潤如財 謂之法財

普融; 宋代楊岐派僧 福州(今屬福建)人 參五祖法演得法 出世九江東林 凡人至 則以閩語誦俚言 人因謂之混融 甞掌藏鑰 諸方稱普融知藏 [禪林寶訓筆說下 五燈會元十九 補續高僧傳九]

場屋; 指科擧考試場

一星事; 星 形容細小 猶言一點

 

왕교수(敎授)大受에게 답하다

알지 못하나니 좌우(左右)가 헤어진 후 일용(日用)에 어떻게 공부를 짓습니까. 만약 이 일찍이 이성상(理性)에서 자미(滋味)를 얻었거나 경교(經敎) 중에서 자미를 얻었거나 조사의 언구상(言句上)에서 자미를 얻었거나 안견이문(眼見耳聞)하는 곳에서 자미를 얻었거나 거족동족(擧足動步)하는 곳에서 자미를 얻었거나 심사의상(心思意想)하는 곳에서 자미를 얻었다면 모두 미치지 못할 일입니다(不濟事). 만약 직하(直下)에 휴헐(休歇)하고자 한다면 응당 이 종전(從前)에 자미를 얻은 곳에 모두() 그에 상관(相管)하지 말고 도리어 노모(撈摸; 摸索. 尋取)하지 못하는 곳(沒撈摸處)과 자미가 없는 곳(沒滋味處)으로 가서 시험 삼아 착의(著意)하여 보십시오. 만약 착의를 얻지 못하고 노모(撈摸)를 얻지 못하고 더욱() 착파(捉把; 잡다)할 패병(𣠽柄)이 없고() 이로(理路)ㆍ의로(義路)ㆍ심의식(心意識)이 모두() 행하지 않아 마치 토목와석(土木瓦石)과 상사(相似)함을 각득(覺得)할 때 낙공(落空)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나니 여기()는 이 당인(當人)이 신명(身命)을 놓을 곳입니다. 가히 소홀하지 마십시오. 가히 소홀하지 마십시오. 총명하고 영리(靈利)한 사람은 다분히 총명이 장애하는 바를 입나니 연고로써 도안(道眼)이 열리지 못하고 촉도(觸途)하여 막힘()을 이룹니다. 중생이 시작 없는 때로 오면서 심의식(心意識)이 부리는 바가 되어 생사에 유랑(流浪)하며 자재를 얻지 못하나니 과연 생사를 벗어나 쾌활한(快活漢)이 되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이 일도양단(一刀兩段)하여 심의식의 노두(路頭)를 끊어버려야 비로소 소분(少分) 상응함이 있습니다. 고로 영가(永嘉)가 이르되 법재(法財)를 손해(損害; )하고 공덕을 없앰()은 이() 심의식을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했으니 어찌 사람을 속이겠습니까. 지난날() 혜교(惠敎)를 입었거니와() 그 중에 갖가지 취향(趣向)이 모두 모()가 평석(平昔)에 꾸짖은() 바의 병()입니다. 이러한 일(是般事)을 알았다면 뇌후(腦後)에 날려 두고(颺在) 다만() 파비가 없는 곳(沒巴鼻處)ㆍ노모하지 못하는 곳(沒撈摸處)ㆍ자미가 없는 곳(沒滋味處)을 향해 시험 삼아 공부를 지어 보십시오. 예컨대() 중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구자(狗子)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주운(州云) 없다(). 심상(尋常)에 총명한 사람은 거기(擧起)함을 겨우 들으면 바로 심의식(心意識)으로써 영회(領會)하고 단량(摶量; 搏量으로 의심됨. 헤아림임)하여 인증(引證)하며 분부처(分付處)가 있음을 설득(說得; 은 조사)하려고 하지만 너무 알지 못하나니 인증을 용납하지 않고 단량(摶量)을 용납하지 않고 심의식으로써 영회(領會)함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비록() 인증함을 얻고 단량(摶量)함을 얻고 영회(領會)함을 얻더라도 모두() 이는 촉루(髑髏) 앞의 정식변사(情識邊事)며 생사안두(生死岸頭)에서 결정코 득력(得力)하지 못합니다. 이금(而今)의 보천지하(普天之下)에 선사ㆍ장로라고 불러 짓는 자에 회득(會得)하여 분효(分曉; 분명)한 이()가 좌우의 서중(書中)에서 서사(書寫; )해 온 소식을 벗어나지 못할 따름이거늘 그 나머지 갖가지 사해(邪解)는 말함에 있지 않습니다. 밀수좌(密首座)와 종고(宗杲)가 거()와 더불어 평보융(普融)의 회중(會中)에 함께 있으면서 상취(相聚)했는데 보융(普融)의 요령(要領)을 모두() 얻었습니다. ()는 스스로 안락으로 삼았지만 그러나 소조(所造; 造詣; 成就)한 것은 또한 좌우의 서중(書中)의 소식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지금에야 비로소 그름을 알아 달리 저() 안락처(安樂處)를 얻었다 하니 모()가 추호(秋毫)도 상기(相欺)하지 않았음을 바야흐로 알 것입니다. 이제 특별히 가서 상견케 하나니 일이 없을 때 시험 삼아 거()로 하여금 토로(吐露)하게 하여 보십시오. 도리어 좌우의 뜻에 계득(契得)할까요. 팔십 옹옹(翁翁; 老翁)이 장옥(場屋)에 들어감은 진성(眞誠)인지라 이 소아(小兒)의 희롱이 아닙니다. 만약 생사가 도래하매 득력하지 못했다면 비록() 설해 분효(分曉)를 얻고 화회(和會)하여 하락(下落; 하락처)이 있음을 얻고 인증하여 무차별을 얻더라도 모두 이 귀가(鬼家)의 활계(活計)라서 모두() 나의 일성사(一星事)에도 상간(相干)되지 않습니다. 선문(禪門)의 갖가지 차별의 이해(異解)는 오직 식법자(識法者)가 두렵습니다. 대법(大法; 불법. 禪法)을 밝히지 못한 자가 왕왕(往往) 다분히 병을 약으로 삼나니 알지 못함은 불가(不可)합니다.

敎授; 사물기원6에 가로되 수()의 유주박사(有州博士)는 반휘(潘徽)가 일찍이 이것이 되었고 당 무덕(618-626) 초 부군(府郡)에 또한 경학박사를 두어 5()으로써 교수(敎授)함을 관장했다. 덕종이 즉위하자 고쳐 문학이라 했으며 원화(806-820) 중에 폐했다. 송조는 신종 원풍(1078-1085) 중에 대학 3()를 일으켜 경술(經術)로써 천하의 인재를 양성했으며 또 여러 큰 군부(郡府)에 비로소 각기 교수 1인을 두어 제생(諸生)의 교도를 장악했으니 대학박사 또 수주박사 같은 직()이다 [대혜서고로주].

理性; 불생불멸의 무위를 가로되 이성(理性)이며 생멸의 유위법을 가로되 사상(事相).

不濟事;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니 제()는 급().

法財; 법이 능히 이윤(利潤)함이 재물과 같으므로 이를 일러 법재라 함.

普融; 송대 양기파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오조법연(五祖法演)을 참해 득법했고 구강 동림에서 출세했음. 무릇 사람이 이르면 곧 민어(閩語)로 이언(俚言; 상말)을 외운지라 사람들이 인하여 이를 일러 혼융(混融)이라 했음. 일찍이 장약(藏鑰)을 관장했으므로 제방에서 일컫기를 보융지장(普融知藏)이라 했음 [선림보훈필설하. 오등회원19. 보속고승전9].

場屋; 과거고시장(科擧考試場)을 가리킴.

一星事; ()은 세소(細小)를 형용함. 1점이라고 말함과 같음.

 

答劉侍郞季高

示諭 臘月三十日已到 要之日用 當如是觀察 則世間塵勞之心 自然銷殞矣 塵勞之心旣銷殞 則來日依前孟春猶寒矣 古德云 欲識佛性義 當觀時節因緣 此箇時節 乃是黃面老子出世成佛 坐金剛座降伏魔軍 轉法輪度衆生入涅槃底時節 與解空所謂臘月三十日時節 無異無別 到這裏只如是觀 以此觀者名爲正觀 異此觀者名爲邪觀 邪正未分 未免隨他時節遷變 要得不隨時節 但一時放下著 放到無可放處 此語亦不受 依前只是解空居士 更不是別人

金剛座; 指佛陀成道時所坐之座 位於中印度摩揭陀國伽耶城南之菩提樹下 以其猶如金剛一般堅固不壞 故稱金剛座 按西域記八 菩提樹垣正中有金剛座 昔賢劫初成時 與大地俱起 據三千大千世界中 下極金輪 上侵地際 金剛所成 周百餘步 賢劫千佛坐之而入金剛定 故稱金剛座 又南海寄歸內法傳三曰 經云觀樹經行 親在金剛座側 但見眞迹 未覩圓基耳 可見當時已衰廢 現今之金剛座 是後代模造 眞正之聖蹟早已埋沒於大塔下 [大智度論三十四 大毘婆沙論三十 同八十三 祖庭事苑五]

 

유시랑(劉侍郞)季高에게 답하다

시유(示諭)하되 납월 30일이 이미 이르렀다 하시니 요컨대 일용(日用)에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곧 세간의 진로지심(塵勞之心)이 자연히 소운(銷殞; 消亡)할 것입니다. 진로지심이 이미 소운하면 곧 내일은 의전(依前)히 맹춘(孟春)이라 아직 춥습니다. 고덕(古德)이 이르되 불성의 뜻을 알고 싶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관()하라. 차개(此箇) 시절은 곧() 이 황면노자(黃面老子)가 출세하여 성불하고 금강좌(金剛座)에 앉아 마군(魔軍)을 항복(降伏)시키고 법륜을 굴리고 중생을 제도(濟度; )하고 열반에 든 시절이니 해공(解空)이 이른 바 납월 30일의 시절과 무이무별(無異無別)합니다. 이 속에 이르러 다만 이와 같이 관()할지니 이로써 관하는 자는 이름하여 정관(正觀)이며 이와 다르게 관하는 자는 이름하여 사관(邪觀)입니다. 사정(邪正)을 나누지 못하면 저() 시절 따라 천변(遷變)함을 면하지 못하나니 시절을 따르지 않음을 얻고자 한다면 단지 일시에 방하착(放下著)하고 놓아() 가히 놓을 곳이 없음에 이르러야 하거니와 이 말도 또한 불수(不受)해야 의전(依前)이 다만 이 해공거사(解空居士)며 다시 이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金剛座; 불타가 성도할 때 앉았던 곳의 자리를 가리킴. 중인도 마갈타국 가야성 남쪽의 보리수 아래에 위치함. 그것이 마치 금강과 같이 일반으로 견고하여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고로 명칭이 금강좌임. 서역기8을 안험컨대 보리수 담의 정중앙에 금강좌가 있으며 옛날 현겁이 처음 이루어질 때 대지와 더불어 함께 일어났음.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의거하며 아래론 금륜에 이르고 위로는 지제(地際)를 침범하며 금강으로 이루어진 바며 둘레가 백여 보며 현겁천불이 여기에 앉아 금강정에 든지라 고로 명칭이 금강좌임. 또 남해기귀내법전3에 가로되 경에 이르기를 나무를 보며 경행했다 했는데 친히 금강좌 곁에 있으면서 단지 참 자취를 보려 했으나 원기(圓基)를 보지 못했다 했음. 가히 당시에 이미 쇠폐했음을 보았음임. 현금의 금강좌는 이 후대의 모조(模造)니 진정한 성적(聖蹟)은 일찍 이미 대탑 아래 매몰되었음 [대지도론34. 대비바사론30, 83. 조정사원5].

 

吾佛大聖人 能空一切相 成萬法智 而不能卽滅定業 博地凡夫耶 居士旣是箇中人 想亦常入是三昧 昔有僧問一老宿 世界恁麽熱 未審向甚麽處回避 老宿曰 向鑊湯鑪炭裏回避 曰只如鑊湯鑪炭裏 作麽生回避 曰衆苦不能到 願居士日用四威儀中 只如此做工夫 老宿之言不可忽 此是妙喜得効底藥方 非與居士此道相契此心相知 亦不肯容易傳授 只用一念相應草湯下 更不用別湯使 若用別湯使 令人發狂 不可不知也 一念相應草 不用他求 亦只在居士四威儀中 明處明如日 黑處黑如漆 若信手拈來 以本地風光一照 無有錯者 亦能殺人 亦能活人 故佛祖常以此藥 向鑊湯鑪炭裏 醫苦惱衆生生死大病 號大醫王 不識居士還信得及否 若言我自有父子不傳之祕方 不用向鑊湯鑪炭裏回避底妙術 却望居士布施也

定業; 定受生死苦果之定業因也 此有善惡之二 善之定業 定受樂果 惡之定業 定受苦果 又善惡之定業 各有三種 於造善惡業之生 直感苦樂之果 爲順現受業 隔一世而感其果 爲順生受業 隔二世以上而感其果 爲順後受業 已上皆爲定業中之差別 此外善惡皆有不定業之一種 業力微弱 不必感果也 因而通爲四業

博地凡夫; 普通的人 一般的人 博地 廣闊的土地大地 天台三大部補注十一 博地 博 廣多也 下凡之地廣多故耳

()

오불(吾佛)은 대성인(大聖人)이며 능히 일체상(一切相)을 비워() 만법지(萬法智)를 이루었지만 능히 곧 정업(定業)을 없애지() 못하거늘 하물며 박지범부(博地凡夫)이겠습니까. 거사도 이미 이 개중(箇中)의 사람이니 상념컨대 또한 늘 이 삼매(三昧)에 들 것입니다. 옛적에 어떤 중이 한 노숙(老宿; 曹山慧霞)에게 묻되 세계가 이렇게 더운데() 미심(未審)하나니 어느 곳을 향해 회피합니까. 노숙이 가로되 확탕노탄(鑊湯鑪炭) 속을 향해 회피한다. 가로되 지여(只如) 확탕노탄 속으로 어떻게 회피합니까. 가로되 중고(衆苦)가 능히 이르지 못한다. 바라건대 거사도 일용(日用)의 사위의중(四威儀中)에 다만 이와 같이 공부를 짓고 노숙(老宿)의 말을 가히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이것은 이 묘희(妙喜)가 효험(効驗; )을 얻은 약방(藥方)이니 거사와 차도(此道)가 상계(相契)하거나 차심(此心)을 상지(相知)함이 아니며 또한 용이(容易)하게 전수(傳授)함을 수긍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념에 상응하는 초(一念相應草)의 탕()을 써서 내리고() 다시 별탕(別湯)을 써서 부리지(使) 마십시오. 만약 별탕을 써서 부리면 사람으로 하여금 발광(發狂)하게 하나니 알지 못함은 불가(不可)합니다. 일념상응초(一念相應草)는 딴 데서 구함을 쓰지 않나니 또한 다만 거사의 사위의중(四威儀中)에 있으며 명처(明處)는 밝기가 해와 같고 흑처(黑處)는 검기가 칠()과 같습니다. 만약 손 닿는 대로 집어 와서(信手拈來) 본지풍광(本地風光)으로써 일조(一照)한다면 어긋날 자(錯者)가 있지 않고 또한 능히 살인(殺人)하고 또한 능히 활인(活人)합니다. 고로 불조가 늘 이 약으로써 확탕노탄 속을 향해 고뇌(苦惱) 중생의 생사대병(生死大病)을 치료하나니() ()가 대의왕(大醫王)입니다. 알지 못하나니 거사는 도리어 믿어 미침을 얻습니까. 만약 말하되 나는 스스로 부자(父子)라도 전하지 못하는 비방(祕方)이 있어 확탕노탄 속을 향해 회피하는 묘술(妙術)을 쓰지 않는다 하면 도리어 거사의 보시(布施)를 바랍니다().

定業; 생사의 고과(苦果)를 정수(定受)하는 정업인(定業因). 이에 선악의 둘이 있음. ()의 정업(定業)은 낙과(樂果)를 정수(定受)하고 악의 정업은 고과(苦果)를 정수함. 또 선악의 정업에 각기 3종이 있음. 선악업을 지은 생()에 바로 고락의 과를 감득(感得)함은 순현수업(順現受業)이 되고 1()을 격()해 그 과()를 감득함은 순생수업(順生受業)이 되고 2() 이상 격해서 그 과를 감득함은 순후수업(順後受業)이 됨. 이상은 모두 정업(定業) 중의 차별이 됨. 이 밖에 선악에 모두 부정업(不定業)1종이 있는데 업력이 미약하여 반드시 감과(感果)함은 아님. 이로 인해 모두 4업이 됨.

博地凡夫; 보통의 사람. 일반적 사람. 박지(博地)는 광활한 토지와 대지. 천태삼대부보주11. 박지(博地) ()은 넓고 많음이다. 하범지지(下凡之地)가 넓고 많은 연고일 뿐이다.

 

答李郞中似表

士大夫學此道 不患不聰明 患太聰明耳 不患無知見 患知見太多耳 故常行識前一步 昧却脚跟下快活自在底消息 邪見之上者 和會見聞覺知爲自己 以現量境界 爲心地法門 下者弄業識 認門頭戶口 簸兩片皮 談玄說妙 甚者至於發狂不勒字數 胡言漢語 指東畫西 下下者以默照無言空空寂寂 在鬼窟裏著到 求究竟安樂 其餘種種邪解 不在言而可知也 冲密等歸 領所賜敎 讀之喜慰不可言 更不復敘世諦酬酢 只以左右向道勇猛之志 便入葛藤 禪無德山臨濟之殊 法眼曹洞之異 但學者無廣大決定志 而師家亦無廣大融通法門 故所入差別 究竟歸宿處 並無如許差別也 示諭 欲妙喜因書指示徑要處 只這求指示徑要底一念 早是刺頭入膠盆了也 不可更向雪上加霜 雖然有問不可無答 請左右 都將平昔或自看經敎話頭 或因人擧覺指示得滋味歡喜處 一時放下 依前百不知百不會 如三歲孩兒相似 有性識而未行 却向未起求徑要底一念子前頭看 看來看去 覺得轉沒巴鼻 方寸轉不寧怗時 不得放緩 這裏是坐斷千聖頂𩕳處 往往學道人 多向這裏打退了 左右若信得及 只向未起求徑要指示一念前看 看來看去 忽然睡夢覺 不是差事 此是妙喜平昔做底得力工夫 知公有決定志 故拕泥帶水 納這一場敗闕 此外別無可指示 若有可指示 則不徑要

簸兩片皮; 張嘴說話 多指說禪論道 兩片皮; 有牙齒一具骨耳朶兩片皮之句 兩片皮 禪錄多指口吻也

談玄說妙; 形容不惜口業議論佛法

胡言漢語; 指胡亂之語 胡亦亂意

指東畫西; 又作指東劃西 謂禪人拘泥于言辭知解的種種作略 語含貶義

空空寂寂; 空洞枯寂貌 言宇宙有形無形一切之實體 空無而無可思慮分別者

著到; 黏著執著于虛妄之事物 不能脫離和超越 稱爲著到

世諦; 對眞諦之稱 世者世間世俗 諦者事實又道理 世間之事實 又世俗人所知之道理 謂之世諦 又曰俗諦 世俗諦 覆俗諦等

酬酢; 應對 答對 酬 應對 答對 爾雅 酬 報也 酢 在各切 應對 爾雅 酢 報也 禪林寶訓音義 酬酢 下音昨 客報主曰酢 主答客曰酬

法眼; 指法眼宗 禪宗五家七宗之一 以法眼文益(885-958)爲宗祖 師參羅漢桂琛 於後唐淸泰二年(935)得心印 其後歷住崇壽院 報恩禪院 淸涼大道場 盛倡禪道 吳越王錢氏亦歸依之 嘗擧華嚴初地中六相義 幷說三界唯心萬法唯識 世謂之法眼宗 嗣法弟子有六十三人

曹洞; 曹洞宗第一祖洞山 第二祖曹山 合稱爲曹洞 卽指曹洞宗

徑要; 一必經之要道 二猶要領

性識; 衆生之根性心識

拕泥帶水; 拖泥帶水 亦作帶水拖泥 喩指陷入言辭義理的糾纏 又指修行悟道之後 爲濟度衆生 能投塵中 不顧自己之汚穢也

 

이낭중(李郞中)似表에게 답하다

사대부가 차도(此道)를 배우면서 총명하지 못함을 우환으로 여기지 말고 너무 총명함을 우환으로 여겨야 할 따름이며 지견(知見)이 없음을 우환으로 여기지 말고 지견이 너무 많음을 우환으로 여겨야 할 따름입니다. 고로 늘 식()이 앞으로 한 걸음 행하는지라 각근하(脚跟下)의 쾌활하고 자재한 소식을 매각(昧却)합니다. 사견(邪見)의 상자(上者; 上等者)는 견문각지(見聞覺知)를 화회(和會)해 자기로 삼고 현량경계(現量境界)를 심지법문(心地法門)으로 삼습니다. 하자(下者; 下等者)는 업식을 희롱하며 문두호구(門頭戶口)를 인정해 양편피를 까부르며(簸兩片皮) 담현설묘(談玄說妙)하거니와 심한 자는 발광(發狂)함에 이르러 자수(字數)를 다스리지() 않고 호언한어(胡言漢語)로 지동획서(指東畫西)합니다. 하하자(下下者)는 묵조무언(默照無言)과 공공적적(空空寂寂)으로써 귀굴(鬼窟) 속에 있으면서 착도(著到)하여 구경(究竟)의 안락을 구합니다. 그 나머지 갖가지 사해(邪解)는 말함에 있지 않으니 가히 알 것입니다. 충밀(冲密) 등이 돌아오매 주신 바 가르침을 영수(領受; )했고 이()를 읽은 희위(喜慰)를 가히 말하지 못합니다. 다시() 거듭() 세제(世諦)를 서술(敍述; )해 서로 수작(酬酢)하지 않고 다만 좌우의, 도를 향한 용맹지지(勇猛之志)를 써서() 바로 갈등(葛藤)에 들어가겠습니다. ()은 임제와 덕산의 다름()이나 법안(法眼)과 조동(曹洞)의 다름()이 없습니다. 단지 학자가 광대한 결정지(決定志)가 없고 사가(師家)도 또한 광대한 융통(融通)의 법문(法門)이 없는지라 고로 소입(所入)이 차별이지만 구경(究竟)의 귀숙처(歸宿處)는 모두() 여허(如許; 許多)의 차별이 없습니다. 시유(示諭)하되 묘희(妙喜)에게 바라기를() 글로 인해 경요처(徑要)를 지시하라 하셨거니와 다만 이 경요(徑要)를 지시하기를 구하는 일념이 벌써 이, 자두(刺頭; 埋頭)하여 교분(膠盆)에 들어갔으니 가히 다시 설상(雪上)을 향해 가상(加霜)하지 마십시오. 비록 그러하나 물음이 있었으니 무답(無答)은 불가합니다. 청컨대 좌우가 평석(平昔)에 혹 스스로 간()하는 경교(經敎)와 화두ㆍ혹 사람이 거각(擧覺)하고 지시함으로 인해 얻은 자미(滋味)와 환희처(歡喜處)를 모두() 가져다() 일시에 방하(放下)하고 의전(依前)히 백부지백불회(百不知百不會)함이 마치 3() 해아(孩兒)와 상사(相似)하며 성식(性識)이 있으나 행하지 않음이 있는 것을, 도리어 경요(徑要)를 구하는 일념자(一念子; 는 조사)를 일으키지 아니한 전두(前頭; 前面)를 향해 간()하십시오. 간래간거(看來看去)하다가 더욱() 파비가 없고(沒巴鼻) 방촌(方寸)이 더욱() 영첩(寧怗; 편안하고 고요함)하지 않음을 각득(覺得)할 때 방완(放緩; 놓아 느슨함)함을 얻지 않아야 하나니 저리(這裏)는 이, 천성(千聖)의 정녕(頂𩕳)을 좌단(坐斷)하는 곳입니다. 왕왕(往往) 학도(學道)하는 사람이 다분히 저리(這裏)를 향해 타퇴(打退; 退轉하다. 動詞前綴)합니다. 좌우가 만약 믿어 미침을 얻는다면 다만 경요(徑要)로 지시하기를 구하는 일념을 일으키지 아니한 앞을 향해 간()하십시오. 간래간거(看來看去)하다가 홀연히 수몽(睡夢)을 깨면() 이 차사(差事)가 아니라 이것은 이 묘희(妙喜)가 평석(平昔)에 지은 득력(得力)의 공부입니다. ()이 결정지(決定志)가 있음을 아는지라 고로 타니대수(拕泥帶水)하여 이 일장패궐(一場敗闕)을 용납(容納; )했습니다. 차외(此外)에 달리 가히 지시할 게 없나니 만약 가히 지시할 게 있다면 곧 경요(徑要)가 아닙니다.

簸兩片皮; 주둥이를 벌려 설화함. 설선논도(說禪論道)함을 다분히 가리킴. 兩片皮; 아치(牙齒; 이빨)는 일구(一具)의 뼈며 이타(耳朶; 귓불)는 양편피란 구가 있음. 양편피는 선록에서 다분히 입술을 가리킴.

談玄說妙; 구업을 아끼지 않고 불법을 의논함을 형용.

胡言漢語; 호란(胡亂)한 말을 가리킴. ()도 또한 란()의 뜻.

指東畫西; 또 지동획서(指東劃西)로 지음. 이르자면 선인(禪人)이 언사와 지해에 구니(拘泥; 구애)되는 갖가지 작략이니 말에 폄의(貶義)를 함유했음.

空空寂寂; 공동(空洞; 물체 속에 아무것도 없이 빈 것)하여 고적(枯寂)한 모양. 말하자면 우주의 유형무형의 일체의 실체니 공무(空無)하여 가히 사려하여 분별하지 못하는 것.

著到; 허망한 사물에 점착(黏著)하고 집착하여 능히 탈리(脫離)함과 초월하지 못함을 일컬어 착도(著到)라 함.

世諦; 진제(眞諦)를 상대한 일컬음임. ()란 것은 세간ㆍ세속이며 제()란 것은 사실이며 또 도리임. 세간의 사실, 또 세속인이 아는 바의 도리를 세제라고 이르며 또 가로되 속제ㆍ세속제ㆍ부속제(覆俗諦) 등임.

酬酢; 응대(應對)ㆍ답대(答對). ()는 응대ㆍ답대. 이아 수() (). ()은 재각절(在各切; )이니 응대임. 이아 작() (). 선림보훈음의. 수작(酬酢) 아래는 음이 작이다. 객이 주인에게 알림을 가로되 작()이며 주인이 객에게 답함을 가로되 수().

法眼; 법안종(法眼宗)을 가리킴. 선종 57(五家七宗)의 하나. 법안문익(法眼文益; 88 5-958)을 종조로 삼음. 스님은 라한계침(羅漢桂琛)을 참알(參謁)해 후당 청태 2(935)에 심인을 얻었음. 그 후 숭수원(崇壽院)ㆍ보은선원(報恩禪院)ㆍ청량대도량(淸涼大道場)을 역주(歷住)하면서 선도(禪道)를 성창(盛倡)했으며 오월왕 전씨(錢氏)도 또한 그에게 귀의했음. 일찍이 화엄초지(華嚴初地) 중의 육상의(六相義)를 들고() 아울러 삼계유심ㆍ만법유식을 설했으며 세상에서 그것을 일러 법안종이라 함. 법을 이은 제자가 63인이 있음.

曹洞; 조동종 제1조 동산과 제2조 조산을 합칭하여 조동이라 함. 곧 조동종을 가리킴.

徑要; 1. 반드시 지나는 요도(要道). 2. 요령(要領)과 같음.

性識; 중생의 근성과 심식.

拕泥帶水; 타니대수(拖泥帶水)와 같음. 또 대수타니(帶水拖泥)로 지음. 언사의리(言辭義理)의 규전(糾纏. 꼬이고 얽힘)에 함입(陷入)함을 비유로 가리킴. 또 수행하여 오도(悟道)한 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능히 티끌 중에 들어가 자기의 오예(汚穢)를 돌아보지 않음을 가리킴.

答李寶文茂嘉

向承示諭 性根昏鈍 而黽勉持 終未得超悟之方 宗杲頃在雙徑 答富季申所問 正與此問同 能知昏鈍者 決定不昏鈍 更欲向甚處求超悟 士大夫學此道 却須借昏鈍而入 若執昏鈍 自謂我無分 則爲昏鈍魔所攝矣 蓋平昔知見 多以求證悟之心 在前作障故 自己正知見不能現前 此障亦非外來 亦非別事 只是箇能知昏鈍底主人公耳 故瑞巖和尙居常在丈室中自喚云 主人公 又自應云喏 惺惺著 又自應云喏 他時後日莫受人謾 又自應云 喏喏 古來幸有恁麽牓樣 謾向這裏提撕看 是箇甚麽 只這提撕底 亦不是別人 只是這能知昏鈍者耳 能知昏鈍者 亦不是別人 便是李寶文本命元辰也 此是妙喜應病與藥 不得已略爲居士指箇歸家穩坐底路頭而已 若便認定死語 眞箇喚作本命元辰 則是識神爲自己 轉沒交涉矣 故長沙和尙云 學道之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前所云借昏鈍而入是也 但只看能知得如是昏鈍底 畢竟是箇甚麽 只向這裏看 不用求超悟 看來看去 忽地大笑去矣 此外無可言者

寶文; 寶文閣學士 寶文閣 官署名 寶文閣原名壽昌閣 慶曆元年(1041)改名 閣內收藏了仁宗御書御制文集 和英宗御書 宋代治平四年(1067) 神宗卽位 設置學士 直學士 待制等職 負責管理寶文閣 待遇同龍圖閣 [百度百科]

黽勉; 勉勉 字彙 黽 勉也

瑞巖; 師彦 五代後梁僧 俗姓許 閩中人 幼年出家 巖頭全豁法嗣 出居台州(今浙江臨海)丹丘瑞巖院 坐磐石 終日如愚 每自喚主人公 復應諾 乃曰 惺惺著 他後莫受人謾 師統衆嚴整 江表稱之 卒諡空照禪師 [宋高僧傳十三 五燈全書十三]

丈室; 寺院住持僧的房間

識神; 分別妄識及虛幻神魂

長沙; 景岑(?-868) 唐代僧 幼年出家 參南泉普願 嗣其法 初住長沙(湖南)鹿苑寺 其後居無定所 但隨緣接物 隨宜說法 復住湖南長沙 大宣敎化 時人稱爲長沙和尙 師機鋒峻峭 與仰山對話中 曾踏倒仰山 仰山謂如大蟲()之暴亂 故諸方稱其爲岑大蟲 諡號招賢大師 [祖堂集十七 聯燈會要六 佛祖歷代通載十七]

 

이보문(寶文)茂嘉에게 답하다

접때() 시유(示諭)를 접수(接受; )했는데 성근(性根; 根性)이 혼둔(昏鈍)하여 민면(黽勉)하며 수지()해도 마침내 초오지방(超悟之方; 초월해 깨치는 방법)을 얻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종고(宗杲)가 지난날() 쌍경(雙徑)에 있으면서 부계신(富季申)이 물은 바에 답했는데 바로() 이 질문과 같았습니다. 혼둔(昏鈍)을 능히 아는 자는 결정코 혼둔하지 않거늘 다시 어느 곳을 향해 초오(超悟)를 구하겠습니까. 사대부가 차도(此道)를 배우면서 도리어 모름지기 혼둔을 빌려 들어가야 하거늘 만약 혼둔에 집착하여 스스로 이르되 나는 분한(分限; )이 없다고 하면 곧 혼둔마(昏鈍魔)가 거두는 바가 될 것입니다. 대개(大蓋; ) 평석(平昔)의 지견으로 다분히 증오(證悟)를 구하는 마음이 앞에 있어 장애(障礙; )가 되는 연고로써 자기의 정지견(正知見)이 능히 현전(現前)하지 못합니다. 이 장애도 또한 밖에서 옴이 아니며 또한 다른 일이 아니라 다만 시개(是箇) 혼둔을 능히 아는 주인공(主人公)일 따름입니다. 고로 서암(瑞巖) 화상은 거상(居常; 평상시. 日常)에 장실(丈室) 중에 있으면서 스스로 불러 이르되 주인공(主人公), 또 스스로 응낙해 이르되 낙(; ), 성성착(惺惺著)하라, 또 스스로 응낙해 이르되 낙(), 타시후일(他時後日)에 사람의 속임()을 받지 말아라, 또 스스로 응답해 이르되 낙낙(喏喏). 고래(古來)로 다행히 이러한 방양(牓樣)이 있었으니 느릿하게() 이 속을 향해 제시(提撕)해 보십시오. 이것이 무엇인가(是箇甚麽). 다만 이 제시하는 것()은 또한 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다만 이는 이() 혼둔을 능히 아는 자일 따름이며 혼둔을 능히 아는 자, 또한 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이보문(李寶文)의 본명원신(本命元辰)입니다. 이것은 이 묘희(妙喜)가 응병여약(應病與藥)함이니 부득이하여 간략히 거사를 위해 저() 귀가(歸家)하여 온좌(穩坐)할 노두(路頭)를 가리켰을 따름입니다. 만약 바로 사어(死語)를 인정(認定)해 진개(眞箇)로 본명원신이라고 불러 짓는다면 곧 이는 식신(識神)을 인정해 자기로 삼음인지라 더욱 교섭이 없습니다. 고로 장사(長沙) 화상이 이르되 학도(學道)하는 사람이 진()을 알지 못함은/ 다만 종전(從前) 대로 식신(識神)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무량겁래로 생사의 근본이거늘/ 치인(癡人)이 본래인(本來人)이라고 불러 짓는다. 앞에 이른 바 혼둔을 빌려 들어간다 한 게 이것입니다. 단지(但只) ()하되 능히 이와 같은 혼둔을 지득(知得)하는 것()은 필경 시개(是箇)가 무엇인가. 다만 이 속을 향해 간()하되 초오(超悟)를 구함을 쓰지 말고 간래간거(看來看去)하다가 홀지(忽地)에 대소(大笑)하여 가리니 이 밖에 가히 말할 게 없습니다.

寶文; 보문각(寶文閣) 학사(學士). 보문각은 관서(官署)의 이름. 보문각의 원래 이름은 수창각(壽昌閣)이었는데 경력 원년(1041) 개명했음. 각 안에 인종(仁宗)의 어서(御書)ㆍ어제문집(御制文集)과 영종(英宗)의 어서를 수장(收藏)했음. 송대 치평 4(1067) 신종이 즉위하자 학사ㆍ직학사ㆍ대제(待制) 등의 직책을 설치하여 보문각의 관리를 부책(負責; 책임을 짐)하게 했음. 대우는 용도각(龍圖閣)과 같았음 [백도백과].

黽勉; 면면(勉勉: 힘써 행하며 게으르지 아니한 모양). 자휘 민() ()이다.

瑞巖; 사언(師彦)이니 오대 후량승. 속성은 허며 민중(閩中) 사람.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암두전활(巖頭全豁)의 법사임. 출세해 대주(지금의 절강 임해) 단구(丹丘) 서암원(瑞巖院)에 거주하면서 반석에 앉아 종일 우둔한 것 같았고 매번 스스로 주인공을 부르고 다시 응낙하고는 곧 가로되 성성착(惺惺著)하라, 타후에 남의 속임을 받지 말아라 했음. 스님은 통중(統衆)하면서 엄정(嚴整)했고 강표(江表)에서 칭찬했음. 졸시(卒諡)는 공조선사 [송고승전13. 오등전서13].

丈室; 사원 주지승의 방간(房間).

識神; 별하는 망식(妄識) 및 허환(虛幻)의 신혼(神魂).

長沙; 경잠(景岑; ?-868)이니 당대승. 유년에 출가했고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해 그의 법을 이었음. 처음엔 장사(호남) 녹원사에 주()했고 그 후엔 거처에 정한 곳이 없었으며 다만 인연 따라 사람을 접화(接化)하고 마땅함을 따라 설법했음. 다시 호남의 장사(長沙)에 머물면서 교화를 대선(大宣)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칭명(稱名)하여 장사화상이라 했음. 스님의 기봉이 준초(峻峭)하여 앙산과 대화하던 중에 일찍이 앙산을 답도(踏倒)하자 앙산이 이르되 마치 대충(大蟲. )의 폭란(暴亂)과 같다 한지라 고로 제방에서 그를 일컬어 잠대충이라 했음. 시호는 초현대사 [조당집17. 연등회요6. 불조역대통재17].

 

答向侍郞伯恭

示諭 悟與未悟夢與覺一 一段因緣 黃面老子云 汝以緣心聽法 此法亦緣 謂至人無夢 非有無之無 謂夢與非夢一而已 以是觀之 則佛夢金鼓 高宗夢傅說 孔子夢奠兩楹 亦不可作夢與非夢解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敎中自有明文 唯夢乃全妄想也 而衆生顚倒 以日用目前境界爲實 殊不知全體是夢 而於其中復生虛妄分別 以想心繫念神識紛飛爲實夢 殊不知正是夢中說夢 顚倒中又顚倒 故佛大慈悲老婆心切 悉能遍入一切法界 諸安立海所有微塵 於一一塵中 以夢自在法門 開悟世界海微塵數衆生 住邪定者入正定聚 此亦普示顚倒衆生 以目前實有底境界 爲安立海 令悟夢與非夢悉皆是幻 則全夢是實 全實是夢 不可取不可捨 至人無夢之義 如是而已 來書見問 乃是宗杲三十六歲時所疑 讀之不覺抓著痒處 亦甞以此問圜悟先師 但以手指曰 住住休妄想休妄想 宗杲復曰 如宗杲未睡著時 佛所讚者依而行之 佛所訶者不敢違犯 從前依師 及自做工夫 零碎所得者 惺惺時都得受用 及乎上床半惺半覺時 已作主宰不得 夢見得金寶 則夢中歡喜無限 夢見被人以刀杖相逼 及諸惡境界 則夢中怕怖惶恐 自念 此身尙存 只是睡著已作主宰不得 況地水火風分散 衆苦熾然 如何得不被回換 到這裏方始著忙 先師又曰 待汝說底許多妄想絕時 汝自到寤寐恒一處也 初聞亦未之信 每日我自顧 寤與寐分明作兩段 如何敢開大口說禪 除非佛說寤寐恒一是妄悟 則我此病不須除 佛語果不欺人 乃是我自未了 後因聞先師擧諸佛出身處熏風自南來 忽然去却礙膺之物 方知黃面老子所說 是眞語實語如語不誑語不妄語不欺人 眞大慈悲 粉身沒命不可報 礙膺之物旣除 方知夢時便是寤時底 寤時便是夢時底 佛言寤寐恒一 方始自知這般道理 拈出呈似人不得 說與人不得 如夢中境界取不得捨不得 承問妙喜於未悟已前已悟之後有異無異 不覺依實供通 子細讀來敎字字至誠 不是問禪 亦非見詰 故不免以昔時所疑處吐露 願居士試將老龐語謾提撕 但願空諸所有 切勿實諸所無 先以目前日用境界 作夢會了 然後却將夢中底 移來目前 則佛金鼓 高宗傅說 孔子奠兩楹 決不是夢矣

緣心; 攀緣事物之心

至人; 至極之人 指無心道人 法華經玄贊要集七 言至人者 卽至極之人 名爲至人 四果及十地菩薩 但名聖人 唯我世尊 名至人也 禪林寶訓音義 至人 行到之人 又聖人也

佛夢金鼓; 金光明最勝王經二云 爾時妙幢菩薩 親於佛前 聞妙法已 歡喜踊躍 一心思惟還至本處 於夜夢中 見大金鼓(云云) 則其實妙幢菩薩夢矣 佛夢者 謂佛氏夢也

高宗夢傅說; 一作高宗夢得說 高宗 殷()第二十代國君武丁 小乙之子 廟號高宗 史記三殷本紀曰 帝小乙崩 子帝武丁立 帝武丁卽位 思復興殷 而未得其佐 三年不言 政事決定於塚宰 以觀國風 武丁夜夢得聖人 名曰說 以夢所見視群臣百吏 皆非也 於是乃使百工營求之野 得說於傅險中 是時說爲胥靡 築於傅險 見於武丁 武丁曰是也 得而與之語 果聖人 擧以爲相 殷國大治 故遂以傅險姓之 號曰傅說

孔子夢奠兩楹; 禪林疏語考證三 曳杖之歌 記檀弓曰 孔子蚤作 負手曳杖消搖於門 歌曰 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 旣歌而入當戶而坐 子貢聞之曰 泰山其頹則吾將安仰 梁木其壞哲人其萎則吾將安放 夫子殆將病也 遂趨而入 夫子曰 賜爾來何遲也 夏后氏殯於東階之上則猶在阼也 殷人殯於兩楹之間則與賓主夾之也 周人殯於西階之上則猶賓之也 而丘也殷人也 予疇昔之夜夢坐奠於兩楹之間 夫明王不興而天下其孰能宗予 予殆將死也 蓋寢疾七日而沒

安立海; 續華嚴略疏刊定記三 安立海 卽剎海之都名

世界海; 卽十佛攝化之諸種世界 爲國土海之對稱

正定聚; 三聚之一 又作正性定聚 正定 指衆生中必定證悟者 依俱舍論十載 見道以上之聖者斷盡等惑 獲得畢竟不退之離繫得 定於正性之涅槃擇滅中 故稱正定 又菩薩階位在十信以上者 亦稱正定

先師; 已故的老師

零碎; 零落破碎

除非; 除此而非 相當于只

供通; 供述 陳述

 

향시랑(向侍郞)伯恭에게 답하다

시유(示諭)하되 오()와 미오(未悟), ()과 교()가 하나라 하신 일단(一段)의 인연은, 황면노자(黃面老子)가 이르되 네가 연심(緣心)으로써 청법(聽法)하면 차법(此法)도 또한 연()이다(릉엄경2) 했습니다. 이르되 지인(至人)은 무몽(無夢)이라 함은 유무의 무가 아니라 이르자면 몽()과 비몽(非夢)이 하나일 따름입니다. 이로써 관()하건대 곧 불타가 금고를 꿈꾸고(佛夢金鼓) 고종이 부열을 꿈꾸고(高宗夢傅說) 공자가 두 기둥에서 제사 지냄을 꿈꾼 것(孔子夢奠兩楹)은 또한 몽과 비몽이란 이해를 지음은 불가합니다. 돌아와서(却來) 세간을 보매 마치 몽중의 일과 같다(릉엄경6) 하여 교중(敎中)에 스스로 명문(明文)이 있습니다만 오직 몽은 곧() 완전히 망상(妄想)입니다. 중생이 전도(顚倒)하여 일용(日用)하는 목전의 경계를 실()로 삼거니와 전체가 이 몽임을 너무 알지 못합니다. 기중(其中)에 다시 허망한 분별을 내어 상심(想心)을 계념(繫念; 생각에 묶음)하여 신식(神識)이 분비(紛飛)함을 실몽(實夢)으로 삼거니와 너무 알지 못하나니 바로 이 몽중에 설몽(說夢)함이며 전도(顚倒) 중에 또 전도입니다. 고로 불타가 대자비로 노파심이 간절하여 모두() 일체법계(一切法界)에 능히 편입(遍入)했으니 모든 안립해(安立海)가 소유한 미진(微塵)의 하나하나 진중(塵中)에 몽자재법문(夢自在法門)으로써 세계해(世界海)의 미진수(微塵數) 중생을 개오(開悟)하고 사정(邪定)에 머문 자를 정정취(正定聚)에 넣으니 이것 또한 전도(顚倒)된 중생에게 보시(普示)함입니다. 목전의 실유(實有)의 경계를 안립해(安立海)로 삼아 몽과 비몽이 모두 다 이 환()임을 깨닫게 함이니 곧 전몽(全夢)이 이 실()이며 전실(全實)이 이 몽()인지라 가히 취하지 못하고 가히 버리지 못합니다. 지인(至人)은 무몽(無夢)이란 뜻은 이와 같을 따름입니다. 내서(來書)에서 물음을 보인 것은 곧() 이 종고(宗杲)36세 때 의심한 바라 이를 읽고 불각에 가려운 곳을 긁었습니다(抓著). 또한 일찍이 이 질문을 원오선사(圜悟先師)에게 물었더니 단지 손으로써 가리키며 가로되 멈추어라() 멈추어라. 망상하지 말아라(休妄想) 망상하지 말아라. 종고(宗杲)가 다시 가로되 예컨대() 종고가 잠들지(睡著) 않았을 때 불타가 찬탄한 바의 것은 의지해 이를 행하고 불타가 꾸짖은() 바의 것은 감히 위범(違犯)하지 않아서 종전(從前) 대로 스승에게 의지하겠지만 및 스스로 공부를 지어 영쇄(零碎; 자질구레함)로 얻은 바의 것은 성성(惺惺)할 때는 모두() 수용(受用)함을 얻지만 상()에 올라 반성반각(半惺半覺)할 때에 이르러선(及乎) 이미 주재(主宰)를 지음을 얻지 못합니다. 꿈에 금보(金寶)를 견득(見得)하면 곧 몽중에 환희가 무한하지만 꿈에 사람이 도장(刀杖)으로써 상핍(相逼)함을 입거나 및 여러 악경계(惡境界)를 보면 곧 몽중에 파포(怕怖; 두려워함)하고 황공(惶恐; 두렵고 무서움)합니다. 스스로 사념(思念; )하되 이 몸이 오히려 존재해도 다만 이 잠들면(睡著) 이미 주재(主宰)를 지음을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지수화풍(地水火風; 四大)이 분산(分散)하면서 중고(衆苦)가 치연(熾然)하면 어떻게 회환(回換; 變換)을 입지 않음을 얻겠는가. 이 속에 이르자 비로소(方始) 착망(著忙; 바쁨을 이룸)했습니다. 선사(先師)가 또 가로되 네가 설한 허다한 망상이 끊어질 때를 기다리면 네가 스스로 오매(寤寐)가 항일(恒一)한 곳에 이르리라. 처음 듣고서 또한 믿지 못했습니다. 매일 내가 스스로 돌아보매 오(; 잠을 깨다)와 매(; 잠을 자다)가 분명히 양단(兩段)을 짓거늘 어떻게 감히 큰입을 열어 설선(說禪)하겠는가. 제비(除非) 불설(佛說)한 오매(寤寐)가 항일(恒一)하다 함이 이 망어(妄悟)라면 곧 내가 이 병을 제함을 쓰지() 않겠지만 불어(佛語)가 과연 사람을 속임()이 아니라면 이에 이 내가 스스로 깨닫지() 못했음이다. 후에 선사(先師)가 거()하되 제불의 출신처(出身處)여 훈풍(熏風)이 남쪽으로부터 온다 함을 들음으로 인해 홀연히 애응지물(礙膺之物)를 제거해버렸습니다. 바야흐로 황면노자가 설한 바를 알았으니 이는 진어(眞語)며 실어(實語)며 여어(如語)며 불광어(不誑語)며 불망어(不妄語)라서 사람을 속이지 않으며 참다운 대자비라서 분신(粉身)하고 몰명(沒命; 목숨을 없앰)해도 가히 갚지 못합니다. 애응지물(礙膺之物)이 이미 제거되자 바야흐로 알았나니 몽시(夢時)가 바로 이 오시의 것(寤時底)이며 오시(寤時)가 바로 이 몽시의 것(夢時底)인지라 불언(佛言)하되 오매(寤寐)가 항일(恒一)하다 했습니다. 비로소(方始) 스스로 알았나니 저반(這般; 이러한) 도리는 염출(拈出)하여 사람에게 보여 줌(呈似)을 얻지 못하며 사람에게 설해 줌을 얻지 못함이, 몽중의 경계는 취함을 얻지 못하고 버림을 얻지 못함과 같습니다. 묘희가 미오(未悟)한 이전(已前)이 이오(已悟)한 후와 다름이 있는가 다름이 없는가 하는 물음을 접수(接受; )한지라 불각에 사실(事實; )에 의해 공통(供通)했습니다. 자세히 내교(來敎; 보내온 가르침)를 읽으매 자자(字字)가 지성(至誠)이로되 또한 선()을 물음이 아니며 또한 힐난(詰難; )을 보임도 아닌지라 고로 석시(昔時)의 소의처(所疑處)를 토로함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거사는 시험 삼아 노방(老龐)의 말을 가지고 느릿하게() 제시(提撕)하십시오. 단지 모든 소유(所有)가 공()해지기를 원하고 간절히 모든 소무(所無)를 실답다 하지 말아라 했습니다. 먼저 목전의 일용(日用)의 경계를 꿈이란 이회(理會)를 짓고 나서 연후에 도리어 몽중의 것(夢中底)을 가져다 목전에 옮겨 오신다면 곧 불금고(佛金鼓)ㆍ고종부열(高宗傅說)ㆍ공자전양영(孔子奠兩楹)이 결코 이 몽()이 아닐 것입니다.

緣心; 사물을 반연(攀緣)하는 마음.

至人; 지극한 사람. 무심도인을 가리킴. 법화경현찬요집7. 말한 지인(至人)이란 것은 곧 지극한 사람을 이름해 지인이다. 4() 및 십지보살은 다만 이름이 성인이며 오직 우리의 세존이라야 이름이 지인이다. 선림보훈음의. 지인(至人) 행하여 이른 사람이다. 또 성인이다.

佛夢金鼓; 금광명최승왕경2에 이르되 이때 묘당보살(妙幢菩薩)이 불전(佛前)에 친근하여 묘법을 들은 다음 환희하며 용약했다. 일심으로 사유하며 귀환해 본래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야몽 중에 대금고(大金鼓)를 보았다 (운운). 곧 그 실은 묘당보살의 꿈임. 불몽이란 것은 이르자면 불씨(佛氏)의 꿈임.

高宗夢傅說; 한편으론 고종몽득열(高宗夢得說)로 지음. 고종은 은(; )의 제20대 국군 무정(武丁)이니 소을의 아들이며 묘호가 고종임. 사기3 은본기에 가로되 제소을(帝小乙)이 붕어하자 아들인 제무정(帝武丁)을 세웠다. 제무정이 즉위하자 은을 부흥함을 생각했으나 그 보좌를 얻지 못했다. 3년 동안 말하지 않았으며 정사는 총재(塚宰; 太宰니 지위가 三公의 다음)에게서 결정하여 국풍을 보게 했다. 무정이 밤의 꿈에 성인(聖人)을 얻었는데 이름해 가로되 열()이었다. 꿈에서 본 바로써 군신과 백리(百吏)를 보았으나 다 아니었다. 이에 곧 백공(百工)이 영구(營求)하는 들판으로 사신을 보내어 열을 부험(傅險; 땅 이름) 가운데서 얻었다. 이때 열은 서미(胥靡;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하고 미천한 자를 일컬음)가 되어 부험에서 건축하고 있었다. 무정에게 보였더니 무정이 가로되 이것이다. 얻어서 그와 더불어 말해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천거해 재상을 삼았더니 은국이 크게 다스려졌다. 고로 드디어 부험으로써 그의 성을 삼아 호해 가로되 부열이라 했다.

孔子夢奠兩楹; 선림소어고증3. 예장지가(曳杖之歌)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가로되 공자가 일찍 일어나 손을 뒤로 해 지팡이를 끌며 문에서 소요(消搖; 逍遙와 같은 뜻)하며 노래하여 가로되 태산이 그 무너지는가. 대들보가 그 쓰러지는가. 철인(哲人)이 그 시드는가. 이미 노래하고는 들어가서 문을 마주하고 앉았다. 자공(子貢)이 이를 듣고 가로되 태산이 그 무너지면 곧 내가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대들보가 그 쓰러지고 철인이 그 시든다면 곧 내가 장차 어디를 모방할 것인가. 부자(夫子)께서 장차 병드시겠구나. 드디어 달려 들어가니 부자가 가로되 사(; 자공의 이름), 네가 옴이 어찌 늦었느냐. 하후씨(夏后氏; 禪位를 받아 국호를 또는 夏后氏라 했음)는 동쪽 계단 위에 빈소를 안치했으니 곧 오히려 동편 섬돌에 있음이며 은()나라 사람은 두 기둥 사이에 빈소를 안치했으니(殯於兩楹之間) 곧 빈주가 마주 끼고 있게 한 것이다. ()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 위에 빈소를 안치했으니 곧 빈객과 같다. ()는 은나라 사람이다. 내가 어젯밤 두 기둥 사이에 앉아 제물을 받는 꿈을 꾸었다(予疇昔之夜夢坐奠於兩楹之間). 무릇 밝은 왕이 일어나지 않으니 천하에서 그 누가 능히 나를 종주(宗主)로 받들겠는가. 나는 아마 장차 죽을 것이다. 대개 7일 동안 병들어 누웠다가 몰()했다.

安立海; 속화엄약소간정기3 안립해(安立海)는 곧 찰해(剎海)의 도명(都名)이다.

世界海; 10불이 섭화(攝化)하는 모든 종류의 세계니 국토해(國土海)의 대칭이 됨.

正定聚; 3()의 하나. 또 정성정취(正性定聚)로 지음. 정정(正定)은 중생 중에 반드시 꼭() 증오(證悟)할 자를 가리킴. 구사론10의 기재에 의하면 견도(見道) 이상의 성자가 등혹(等惑)을 끊어 없애고 필경 불퇴의 이계득(離繫得)을 획득하여 정성(正性)의 열반택멸(涅槃擇滅) 중에 안정(安定)하므로 고로 명칭이 정정(正定). 또 보살 계위(階位)10() 이상에 있는 자는 또한 명칭이 정정임.

先師; 이미 고인이 된 노사(老師).

零碎; 떨어져서 파쇄됨.

除非; 이것을 제하면 아니다. ()에 상당함.

供通; 공술(供述; 陳述). 진술.

 

答陳敎授阜卿

此道寂寥 無出今日 邪師說法 如惡叉聚 各各自謂 得無上道 咸唱邪說 幻惑凡愚 故某每每切齒於此 不惜身命 欲扶持之 使光明種子知有吾家本分事 不墮邪見網中 萬一得衆生界中佛種不斷 亦不虛受黃面老子覆蔭 所謂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 然亦是不知時不量力之一事也 左右旣是箇中人 不得不說箇中事 因筆不覺及此耳

惡叉聚; 梵語惡叉 譯爲綖貫珠 金剛子 樹名 亦爲果實名 其果實皆三粒同一蒂 且落地後多聚集於一處 故稱惡叉聚 經論中多引之譬喩多數或衆多之意 印度人多取以染物或榨油 其果核可作念珠之用 [瑜伽論記十三 成唯識論述記二末 玄應音義二十二 翻譯名義集三]

塵刹; 謂多如微塵數之無量世界

 

진교수(陳敎授)阜卿; 부경에게 답하다

차도(此道)의 적료(寂寥)하기가 금일을 초출(超出; )함이 없습니다. 사사(邪師)의 설법이 악차취(惡叉聚)와 같아서 각각 스스로 이르되 무상도(無上道)를 얻었다 하며 모두() 사설(邪說)을 창()하면서 범우(凡愚; 平凡하고 어리석은 사람)를 환혹(幻惑; 眩惑)하는지라 고로 모()가 매매(每每) 여기에서 절치(切齒; 이를 갈다)합니다.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이()를 부지(扶持)하여 광명종자(光明種子)로 하여금 오가(吾家)의 본분사(本分事)가 있음을 알고 사견(邪見)의 망중(網中)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만일 중생계 중에 불종(佛種)이 끊어지지 않음을 얻는다면 또한 황면노자(黃面老子)의 부음(覆蔭)을 헛되이 받음이 아닐 것입니다. 이른 바 이 심신(深心)을 가지고 진찰(塵刹)을 받들어야 이를 곧 이름하여 불은(佛恩)을 갚음이다(릉엄경3). 그러나 역시 시()를 알지 못하고 힘을 헤아리지 못함의 일사(一事)입니다. 좌우가 이미 이 개중(箇中)의 사람인지라 개중의 일을 설하지 않음을 얻지 못하여 붓으로 인해 불각에 여기에 미쳤을 따름입니다.

惡叉聚; 범어 악차(惡叉; akṣa)는 번역하면 연관주(綖貫珠)ㆍ금강자(金剛子)니 나무 이름이며 또 과실의 이름이 됨. 그 과실은 모두 3()이 동일한 꼭지며 또 땅에 떨어진 후 한 곳에 많이 취집(聚集)하므로 고로 명칭이 악차취(惡叉聚). 경론 중에서 다분히 이를 인용해 다수 혹 중다(衆多)의 뜻에 비유함. 인도인은 다분히 취하여 물건을 염색하거나 혹은 기름을 짬. 그 과핵(果核)은 가히 염주를 만드는 데 씀 [유가론기13. 성유식론술기2. 현응음의22. 번역명의집3].

塵刹; 이르자면 많기가 미진수와 같은 무량한 세계.

 

答林判院少瞻

示諭 求一語與信道人做工夫 旣看圓覺經 經中豈止一語而已哉 諸大菩薩各隨自所疑處發問 世尊據所疑一一分明剖析 大段分曉 前所給話頭 亦在其中矣 經云 居一切時不起妄念 於諸妄心亦不息滅 住妄想境不加了知此語最親切於無了知不辯眞實 老漢昔居雲門菴時 甞頌之曰 荷葉團團團似鏡 菱角尖尖尖似錐 風吹柳絮毛毬走 雨打梨花蛺蝶飛 但將此頌放在上面 却將經文移來下面 頌却是經 經却是頌 試如此做工夫看 莫管悟不悟 心頭休熱忙 亦不可放緩 如調絃之法 緊緩得其所 則曲調自成矣 歸去但與沖輩相親 遞相琢磨 道業無有不辦者 祝祝

判院; 事物紀原四曰 知判職林曰 唐中宗神龍二年(706) 旣置員外官同正員 又有檢校試攝知判等官 知者云知某官 判者云判某官 宋朝皆循用之 府寺監省州縣城寨 各以官知判 蓋自唐中宗始也

道人; 指修行佛道者 或指得道之人 禪悟者

圓覺經;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全一卷 略稱圓覺修多羅了義經 圓覺經 唐代佛陀多羅譯 凡十二章 佛爲文殊師利等十二菩薩說大圓覺之妙理 開元釋敎錄九曰 沙門佛陀多羅 唐云覺救 北印度罽賓人也 於東都白馬寺譯圓覺了義經一部 此經近出不委何年 且弘道爲懷務甄詐妄 但眞詮不謬 豈假具知年月耶

世尊; 佛之尊號 以佛具萬德世所尊重故也 又於世獨尊也 阿含經及成實論 以之爲佛號中之第十 以具上之九號 故曰世尊 涅槃經及智度論置之於十號之外 金剛經解義上 慧能解云 世尊者 智慧超過三界 無有能及者 德高更無有上 一切咸恭敬 故曰世尊

 

임판원(判院)少瞻에게 답하다

시유(示諭)하되 일어(一語)를 구해 신도인(道人)과 더불어 공부를 짓겠다 하였고 이미 원각경(圓覺經)을 보았다 하셨거늘 경중(經中)에 어찌 일어(一語)에 그칠 따름이겠습니까. 제대보살(諸大菩薩)이 각자 스스로 의심하는 바의 곳을 따라 발문(發問)하자 세존(世尊)이 의심하는 바에 의거해 하나하나 분명히 부석(剖析)했으니 대단(大段)이 분효(分曉; 분명)합니다. 전에 공급(供給; )한 바의 화두도 또한 그 가운데 있습니다. 경운(經云) 일체에 거처할 때 망념을 일으키지 않으며 모든 망심(妄心)을 또한 식멸(息滅)하지 않으며 망상경(妄想境)에 머물면서 요지(了知)를 더하지 않으며此語가 가장 친절하다 요지 없음에서 진실을 분변(分辨; )치 않는다. 노한(老漢; 대혜)이 지난날 운문암(雲門菴)에 거주할 때 일찍이 이를 송()해 가로되 연잎은 둥글둥글(團團) 둥글기가 거울과 같고/ 능각(菱角; 마름)은 뾰족뾰족 뾰족하기가 송곳과 같다/ 바람이 버들개지를 부니 모구(毛毬)가 달아나고/ 비가 배꽃을 때리니 나비(蛺蝶)가 나는구나(본디 夾山善會의 말임). 단지 차송(此頌)을 가져다 상면(上面)에 놓아두고 도리어 경문(經文)을 가져다 하면(下面)에 옮겨 온다면 송이 도리어 이 경이고 경이 도리어 이 송이리니 시험 삼아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 보십시오. ()와 불오(不悟)에 상관(相管; )하지 말고 심두(心頭; 心上, 心間)가 열망(熱忙)을 쉬어도 또한 가히 방완(放緩)하지 않아야 하나니 조현지법(調絃之法)과 같아서 긴완(緊緩)에 그 소의(所宜; )를 얻어야 곧 곡조(曲調)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귀거(歸去)하여 충배(沖輩)와 서로 친근하며 체상(遞相; 互相) 탁마(琢磨)한다면 도업(道業)을 판별(判別; )하지 못할 것이 있지 않으리니 축도(祝禱; )하고 축도합니다.

判院; 사물기원4에 가로되 지판직림(知判職林)에 가로되 당 중종 신룡 2(706) 이미 원외관동정원(員外官同正員)을 설치했다. 또 검교시섭지판(檢校試攝知判) 등의 관직이 있었다. ()란 것은 이르자면 지모관(知某官)이며 판()이란 것은 이르자면 판모관(判某官)이다. 송조(宋朝)에서 모두 이를 따라 썼다. 부시감성주현성채(府寺監省州縣城寨)에 각기 관()으로 지판(知判)했는데 대개 당 중종으로부터 비롯했다.

道人; 불도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킴. 혹 도를 얻은 사람ㆍ선을 깨친 자를 가리킴.

圓覺經;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이니 모두 1권이며 약칭(略稱)이 원각수다라요의경(圓覺修多羅了義經)ㆍ원각경임. 당대(唐代) 불타다라(佛陀多羅)가 번역했고 무릇 12(). 부처가 문수사리(文殊師利) 12보살을 위해 대원각(大圓覺)의 묘리(妙理)를 설했음. 개원석교록9에 가로되 사문 불타다라는 당()에선 이르되 각구(覺救)니 북인도 계빈(罽賓) 사람이다. 동도(東都) 백마사(白馬寺)에서 원각요의경(圓覺了義經) 1부를 번역했다. 이 경은 최근에 나왔지만 어떤 해인지 알지 못한다. 또 홍도(弘道)를 품고 사망(詐妄)을 힘써 밝혔다. 단지 진전(眞詮)이라 그릇되지 않거늘 어찌 연월(年月)을 갖추어 앎을 빌리려 하는가.

世尊; 불타의 존호(尊號). 불타는 만덕(萬德)을 갖추어 세상에서 존중하는 바이기 때문임. 또 세상에서 홀로 존귀함. 아함경 및 성실론은 이를 불호(佛號) 중의 제10으로 삼나니 위의 9()를 갖춘지라 고로 가로되 세존이며 열반경 및 지도론은 10호의 밖에 둠. 금강경해의상. 혜능이 해석해 이르되 세존(世尊)이란 것은 지혜가 3계를 초과하여 능히 미칠 자가 있지 않고 덕이 높아 다시 위가 있지 않으며 일체가 다 공경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세존이다.

 

答黃知縣子餘

收書 知爲此一大事因緣甚力 大丈夫漢 所作所爲當如是耳 無常迅速生死事大 過了一日 則銷了一日好事 可畏可畏 左右春秋鼎盛 正是作業不識好惡時 能回此心學無上菩提 此是世界上第一等難容靈利漢 五濁界中有甚麽奇特事 過如此段因緣 趁色力彊健早回頭 以臨老回頭 其力量勝百千萬億倍 老漢私爲左右喜 前此寫去法語 曾時時覷看否 第一記取 不得起心動念肚裏熱忙急要悟 纔作此念 則被此念塞斷路頭 永不能得悟矣 祖師云 執之失度必入邪路 放之自然體無去住 此乃祖師吐心吐膽 爲人處也 但日用費力處莫要做 此箇門中不容費力 老漢常爲人說此話 得力處乃是省力處 省力處乃是得力處 若起一念希望心求悟入處 大似人在自家堂屋裏坐 却問他人覓住處無異 但把生死兩字 貼左鼻尖兒上 不要忘了 時時提撕話頭 提來提去 生處自熟 熟處自生矣 此語已寫在空相道人書中 請同此書 互換一看 便了得也

知縣; 官名 秦漢以來縣令爲一縣的主官 唐稱佐官代理縣令爲知縣事 宋常派遣朝官爲縣的長官 管理一縣行政 稱知縣事 簡稱知縣 [百度百科]

鼎盛; 正當興旺發達或强壯 鼎 相當于正 正當

鼻尖兒; 鼻尖 兒 後綴

 

황지현(知縣)子餘에게 답하다

수서(收書; 글을 接收)하고서,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심히 노력(努力; )하는 줄 알았습니다. 대장부한(大丈夫漢)의 소작소위(所作所爲)는 마땅히 이와 같을 따름입니다. 무상(無常)이 신속하고 생사사(生死事)가 커거늘 하루를 지나가버리면 곧 하루의 호사(好事)를 써버리니(銷了) 가히 두렵고(可畏) 가히 두렵습니다. 좌우(左右)는 춘추(春秋; 나이)가 정성(鼎盛)하여 바로() 이 작업(作業)하면서 호오(好惡)를 알지 못할 때니 능히 차심(此心)을 돌이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배운다면 이것이 이 세계상(世界上) 제일등(第一等) 용납하기 어려운 영리한(靈利漢)입니다. 오탁계중(五濁界中)에 무슨 기특사(奇特事)가 있어 차단(此段) 인연과 같은 것을 초과(超過; )하겠습니까. 색력(色力)의 강건(彊健; 强健)함을 쫓아() 일찍 회두(回頭)함은 임노(臨老)하여 회두(回頭)함보다 그 역량(力量)이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수승(殊勝; )하나니 노한(老漢)이 사적(私的; )으론 좌우를 위해 기뻐합니다. 이 앞에(前此) 법어(法語)를 서사(書寫; )해 갔는데 일찍이 시시로 처간(覷看; 보다)합니까. 첫째 기취(記取)해야 함은 기심동념(起心動念)하여 두리(肚裏)가 열망(熱忙)하매 급히 깨치려고 함을 얻지 말아야 하나니 겨우 차념(此念)을 지으면 곧 차념(此念)이 노두(路頭)를 색단(塞斷)함을 입어 길이() 깨침을 능히 얻지 못합니다. 조사(祖師; 3)가 이르되 집착하면 법도(法度; )를 잃어 반드시 삿된 길에 들고 놓으면 자연이라 체()가 거주가 없다(신심명). 이것은 곧 조사가 토심토담(吐心吐膽)하여 위인(爲人)한 곳입니다. 단지 일용의 비력처(費力處)에서 지으려고(要做) 하지 말지니 차개(此箇) 문중에선 비력(費力)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노한(老漢)이 늘 사람을 위해 차화(此話)를 설합니다. 득력처(得力處)가 곧 이 생력처(省力處)며 생력처가 곧 이 득력처입니다. 만약 일념 희망심(希望心)을 일으켜 오입처(悟入處)를 구하면 대사(大似) 사람이 자가(自家)의 당옥(堂屋) 속에 앉아서 도리어 타인에게 물어 주처(住處)를 찾음과 다름이 없습니다. 단지 생사(生死) 양자(兩字)를 잡아() 비첨아상(鼻尖兒)에 붙여 두고 잊어버림을 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시로 화두를 제시(提撕)하여 제래재거(提來提去)한다면 생소한 곳은 저절로 익숙해지고 익숙한 곳은 저절로 생소해집니다. 차어(此語)는 이미 공상도인(空相道人)의 서중(書中)에 서사(書寫)해 두었으니 청컨대 차서(此書)와 함께() 호환(互換)하여 한 번 본다면 바로 요득(了得)할 것입니다.

知縣; 벼슬 이름. 진한(秦漢) 이래로 현령(縣令)1현의 주관(主官)이 되었음. 당에선 현령을 대리(代理)하는 좌관(佐官)을 일컬어 지현사(知縣事)라 했고 송에선 늘 조관(朝官)을 파견하여 현의 장관으로 삼아 1현의 행정을 관리했는데 명칭이 지현사(知縣事)며 간칭이 지현임 [백도백과].

鼎盛; 바로() 흥왕(興旺)하여 발달하거나 혹 강장(强壯)함에 당(). ()은 정()ㆍ정당(正當; 어떤 시기나 계급에 처해 있음)에 상당함.

鼻尖兒; 비첨(鼻尖; 코끝)이니 아는 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