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

나호야록상(羅湖野錄上) 적음존자(寂音尊者)

태화당 2025. 11. 12. 07:08

寂音尊者洪公 初於歸宗參侍眞淨和尙 而至寶峰 一日 有客問眞淨曰 洪上人參禪如何 眞淨曰 也有到處 也有不到處 客旣退 洪殊不自安 卽詣眞淨求決所疑 眞淨擧風穴頌曰 五白貓兒爪距獰 養來堂上絶蟲行 分明上樹安身法 切忌遺言許外甥 且作麽生是安身法 洪便喝 眞淨曰 這一喝也有到處 也有不到處 洪忽於言下有省 翌日 因違禪規 遭刪去 時年二十有九 及遊東吳 寓杭之淨慈 以頌發明風穴意 寄呈眞淨 曰 五白貓兒無縫罅 等閑拋出令人怕 翻身趒擲百千般 冷地看佗成話覇 如今也解弄些些 從渠歡喜從渠罵 却笑樹頭老舅翁 只能上樹不能下 自後復閱汾陽語錄 至三玄頌 荐有所證 妙喜老師蓋甞語此 而叢林鮮有知者 夫以文華才辯而掩其道 微妙喜 亦何由取信於後耶

寂音尊者; 德洪(1071-1128) 宋代黃龍派僧 瑞州(江西高安)人 俗姓喩(或謂彭 兪) 字覺範 號寂音尊者 年十九 試經於東京天王寺而得度 初名慧洪 參眞淨克文而得法 崇寧(1102- 1106)年中 住持臨川北禪院 後遷金陵淸涼寺 未久 爲狂僧誣以度牒冒名旁連訕謗事 誣陷入獄 張無盡特奏得度改今名 太尉郭天民奏賜椹服 號寶覺圜明 自稱寂音尊者 政和元年(1111)頃 坐交張郭厚善 張罷政事 有嫉之者 誣指師與二人交通 詔奪袈裟 發配然州 三年始得歸 同年冬 復拘之於幷州獄 踰年獲釋 遂棄僧服入九峰洞山 以文章自娛 其後將赴湘西 途經南昌 復爲道士誣陷下獄 幸遇赦得免 遂入居南臺明白庵 靖康元年(1126) 蒙賜再度剃髮 恢復慧洪舊名 建炎二年寂於同安 壽五十八 著林間錄二卷 僧寶傳三十卷 高僧傳十二卷 智證傳十卷 志林十卷 冷齋夜話十卷 天厨禁臠一卷 石門文字禪三十卷 語錄偈頌一編 法華合論七卷 楞嚴尊頂義十卷 圓覺皆證義二卷 金剛法源論一卷 起信論解義二卷 並行于世 [佛祖歷代通載十九 普燈錄七 續傳燈錄二十二] 尊者; 梵語阿梨耶 譯作聖者 尊者 謂智德具尊者 蓋羅漢之尊稱 或有禪師亦稱尊者之例 如趙州法嗣嚴陽尊者 覺範號寂音尊者 紫柏稱紫柏尊者等

外甥; 呼他親密之詞

發明; 明悟 發現 廣雅 發 明也 開也 圓覺經普覺章 心花發明 照十方刹

等閑; 同等閒 字海曰 等閑 疏略義 又尋常也

冷地; 暗處 暗中 地 後綴

話覇; 話霸 話柄 多指禪家公案 亦作話靶 話把

汾陽語錄; 汾陽無德禪師語錄 三卷 宋代楚圓編 又作汾陽善昭禪師語錄 無德和尙語錄 汾陽錄 收於大正藏第四十七冊 宋代汾陽善昭(947-1024)禪師之上堂小參 拈頌代別 歌頌等 而其門人石霜山慈明大師楚圓(986-1039)所編集者 本錄卷中先賢一百則 爲雪竇重顯頌古百則之先例 卷上洞山五位頌之問答及別頌 爲禪宗頌古中之年代最古者 宋代晦室師明禪師 於續古尊宿語要一書天集中 收有汾陽善昭禪師語要 是由本錄抄出上堂小參歌頌之部分者

 

적음존자(寂音尊者) 홍공(洪公; 德洪)이 처음 귀종(歸宗)에서 진정화상(眞淨和尙; 克文)을 참시(參侍)했고 보봉(寶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어떤 객이 진정에게 물어 가로되 홍상인(洪上人)의 참선은 어떻습니까(如何). 진정이 가로되 또한 도처(到處)도 있고 또한 부도처(不到處)도 있다. 객이 이미 물러나자 홍()이 특수히 스스로 평안(平安; )하지 못했다. 곧 진정에게 나아가() 소의(所疑)를 결단(決斷; )하기를 구했다. 진정이 풍혈(風穴; 延沼)의 송을 들어 가로되 다섯의 흰 고양이(貓兒; 는 조사)의 손발톱(爪距)이 사나운데()/ 길러 오매 당상(堂上)에 충행(蟲行)이 끊겼다/ 분명히 나무에 오르는 안신법(安身法)이나/ 말을 남겨(遺言) 외생(外甥)을 허락함을 절기(切忌)한다. 다만() 무엇이(作麽生)이 이 안신법(安身法)인가. 홍이 바로 할()했다. 진정이 가로되 저() 일할(一喝)도 또한 도처(到處)가 있고 또한 부도처(不到處)가 있다. 홍이 홀연히 언하(言下)에 살핌이 있었다. 익일(翌日) 선규(禪規; 선원의 규율)를 위배함으로 인해 산거(刪去)를 만났으니() 당시의 나이가 29였다. 및 동오(東吳)에 유행(遊行)하다가 항()의 정자(淨慈)에 우거(寓居; )했다. ()으로써 풍혈의 뜻을 발명(發明)해 진정에게 기정(寄呈)했으니 가로되 다섯 흰 묘아(貓兒)가 봉하(縫罅; 꿰맨 틈)가 없나니/ 등한(等閑)히 포출(拋出)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두렵게() 한다/ 번신(翻身)하여 도척(趒擲)함이 백천 가지(百千般)지만/ 냉지(冷地)에서 그()를 보매() 화패(話覇)를 이룬다/ 여금에 또한 조금(些些) 희롱할 줄 아나니()/ (; )로 좇아 환희하고 거()로 좇아 욕한다()/ 도리어 수두(樹頭; 樹上)의 노구옹(老舅翁)을 웃나니/ 다만 능히 나무에 오르고 능히 내려오지 못한다. 자후(自後; 此後. 後來)에 다시 분양어록(汾陽語錄)을 열람하다가 삼현송(三玄頌)에 이르러 거듭(荐有) 소증(所證)이 있었다. 묘희(妙喜) 노사(老師)가 대개 일찍이 이것을 말씀했는데 총림에서 아는 자가 드물게() 있다. (; 발어사) 문화재변(文華才辯)으로써 그 도를 가렸으니() 정미(精微; )한 묘희가 또한 무슨 까닭으로() 뒤에 취신(取信)했을까.

寂音尊者; 덕홍(德洪; 1071-1128)이니 송대 황룡파승. 서주(강서 고안) 사람이며 속성은 유(. 혹은 이르되 )며 자는 각범(覺範)이며 호는 적음존자(寂音尊者). 나이 19에 동경 천왕사에서 시경(試經)하여 득도했음. 처음의 이름은 혜홍(慧洪)이었으며 진정극문(眞淨克文)을 참알해 법을 얻었음. 숭녕(1102-1106)년 중에 임천 북선원에 주지했으며 후에 금릉 청량사로 옮겼음. 오래지 않아 광승(狂僧), 도첩(度牒)의 모명(冒名)과 두루 산방(訕謗)의 일을 연결해 무고(誣告)하는 통에 무함(誣陷)으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장무진이 특주(特奏)하여 득도(得度)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음. 태위 곽천민이 주청하여 침복(椹服. 僧服)과 보각원명이란 호를 주었음. 자칭이 적음존자(寂音尊者). 정화 원년(1111) 무렵() 장곽과 교유(交遊)하며 후선(厚善)함에 연좌되었으니 장곽은 정사(政事)를 그만두었으며 질투하는 자가 있어 스님이 두 사람과 교통(交通)했다고 무고(誣告)로 가리키는 통에 조칙으로 가사를 뺏고 연주로 유배를 떠났음. 3년 만에 비로소 돌아옴을 얻었으나 같은 해 겨울에 다시 병주옥에 구속되었다가 해를 넘기자 석방됨을 얻었음. 드디어 승복을 버리고 구봉의 동산(洞山)에 들어가 문장으로 자오(自娛)했음. 그 후 장차 상서(湘西)에 이르려는데 길이 남창을 경유했으며 다시 도사(道士)의 무함(誣陷)으로 하옥되었음. 다행히 사면을 만나 면함을 얻었음. 드디어 남대 명백암으로 들어가 거주했는데 정강 원년(1126) 재도(再度. 再次) 체발(剃髮)을 몽사(蒙賜)하여 구명(舊名) 혜홍(慧洪)을 회복했음. 건염 2년 동안(同安)에서 입적했으니 나이는 58. 저서에 임간록 2권ㆍ승보전 30권ㆍ고승전 12권ㆍ지증전 10권ㆍ지림 10권ㆍ냉재야화 10권ㆍ천주금련 1권ㆍ석문문자선 30권ㆍ어록게송 1()ㆍ법화합론 7권ㆍ릉엄존정의 10권ㆍ원각개증의 2권ㆍ금강법원론 1권ㆍ기신론해의 2권이 있어 모두 세상에 행함 [불조역대통재19. 보등록7. 속전등록22]. 尊者; 범어 아리야(阿梨耶; ārya)는 번역해 성자ㆍ존자로 지음. 이르자면 지덕(智德)이 존엄(尊嚴)을 갖춘 자니 대개 라한(羅漢)의 존칭임. 혹은 선사(禪師)도 또한 존자로 일컫는 예()가 있음. 예컨대() 조주(趙州)의 법사(法嗣)인 엄양존자(嚴陽尊者)며 각범(覺範)의 호가 적음존자(寂音尊者)며 자백(紫柏)을 자백존자(紫柏尊者)라고 일컫는 등임.

外甥; 그를 친밀하게 부르는 사().

發明; 명오(明悟; 환히 깨침). 발현(發現; 숨겨져 있던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 보임. 또는 드러나게 함). 광아 발() ()이다. (). 원각경 보각장. 심화(心花)가 발명(發明)하여 시방찰을 비추다.

等閑; 등한(等閒)과 같음. 자해(字海)에 가로되 등한(等閑)은 소략(疏略)의 뜻이다. 또 심상(尋常)이다.

冷地; 암처(暗處). 암중. 지는 후철.

話覇; 화패(話霸)와 같음. 화병(話柄; 이야깃거리)니 다분히 선가의 공안을 가리킴. 또 화파(話靶), 화파(話把)로 지음.

汾陽語錄; 분양무덕선사어록(汾陽無德禪師語錄)이니 3. 송대 초원이 편집했음. 또 분양선소선사어록ㆍ무덕화상어록ㆍ분양록으로 지음. 대정장 제47책에 수록되었음. 송대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선사의 상당ㆍ소참ㆍ염송ㆍ대별ㆍ가송 등을 그의 문인 석상산 자명대사(慈明大師) 초원(楚圓; 986-1039)이 편집한 것. 본록의 권중(卷中) 선현(先賢) 100칙은 설두중현의 송고 100칙의 선례가 됨. 권상(卷上) 동산오위송(洞山五位頌)의 문답 및 별송은 선종송고 중의 연대가 가장 오랜 것이 됨. 송대 회실사명선사(晦室師明禪師)의 속고존숙어요 1() 천집(天集) 중에 분양선소선사어요를 수록해 있는데 이것은 본록에서 상당ㆍ소참ㆍ가송의 부분을 초출(抄出)함을 말미암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