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黃門子由 元豐三年 以睢陽從事左遷筠陽榷筦之任 是時洪州景德順禪師與其父文安先生有契分 因往訪焉 相從甚樂 咨以心法 順示古德搐鼻因緣 久之有省 作偈呈順曰 中年聞道覺前非 邂逅相逢老順師 搐鼻俓參眞面目 掉頭不受別鉗鎚 枯藤破衲公何事 白酒靑鹽我是誰 慚愧東軒殘月上 一盃甘露滑如飴 暨紹聖元年 復至筠 順化逾年矣 公禮其繪像 述讚于左曰 與訥偕行 與璉同處 於南得法 爲南長子 成就緇白 可名爲老 慈憫黑暗 可名爲姥 我初不識 以先子故 訪我高安 示搐鼻語 再來不見 作禮縑素 向也無來 今亦奚去 蓋順訥偕行出蜀 而順嗣黃龍 訥住圓通 而大覺璉掌記室 則與順同處 唯以仁慈祐物 叢林目之曰順婆婆 公爲表而出之 良有以也 雖嗣法無聞 然有公 則所謂一麟足矣
●黃門; 一宦官的異稱 後漢時代 署宦者於黃門令中黃門等諸官職 故名焉 二黃門侍郞或給事黃門侍郞的簡稱 秦漢時 宮門多油漆成黃色 故稱黃門 是皇帝近侍之臣 可傳達詔令 漢代以降沿用此官職 隋唐時 黃門侍郞隸屬門下省 成爲門下省的副官 [百度百科] 此指二
●子由; 蘇轍(1039-1112) 宋代居士 字子由 號潁濱(或作穎濵)遺老 眉山(今屬四川)人 歷官右司諫 中書舍人 戶部侍郞 翰林學士知制誥 御史中丞 元祐六年(1091) 拜尙書右丞 次年進門下侍郞 哲宗親政 落職知汝州 徽宗時 提擧宮觀 在筠州(今江西高安)監鹽酒稅時 與黃檗道全交遊 道全勸他參禪 後謁上藍順禪師省悟 從此喜與僧人交遊 常居寺中數月不返 爲蜀學派重要人物 主張三敎合一 著有栾城集 老子解 [宋史三三九 五燈會元十八]
●從事; 官職名 中央或地方長官自己任用的僚屬 又稱從事員 ▲祖庭事苑四 從事 幕官
●榷筦; 一般指搉筦 是主管專賣
●景德順; 宋代黃龍慧南之法嗣 以其具有慈愛心 故叢林中皆稱之順婆婆 [禪林口實混名集下]
●先生; 一一般在一個男子姓氏後所用的一個習慣性的表示禮貌的稱呼 二舊時稱以說書 相面 算卦 看風水等爲職業的人 三對長者的尊稱 [百度漢語] 此指三
●契分; 一交誼 情分 二猶緣分
●搐鼻因緣; 聯燈會要四百丈懷海 師侍馬大師 游山次 忽見野鴨飛過 祖問 是甚麽 師云 野鴨子 祖云 甚麽處去也 師云 飛過去也 祖搊師鼻頭 師負痛失聲云 阿耶耶 阿耶耶 祖云 又道飛過去也 師於此契悟 浹背汗流
●鉗鎚; 鉗 鐵鋏 鎚 鐵鎚 兩者皆爲鍛鍊金屬所必使用之器具 禪宗用以比喩師家敎導弟子之嚴格
●白酒; 中國産酒類 大別有二種 卽黃酒白酒 白酒 又稱燒酒 酒質無色(或微黃)透明
●靑鹽; 鹽的一種 多産於中國西南西北各地的鹽井鹽池之中 大而靑白 故稱 也稱戎鹽
●緇白; 亦作黑白 指出家者和在俗者 緇 淺黑色 僧披緇色衣 故以緇指僧人 白 指在俗者
●記室; 書記 禪林六頭首之一 掌文疏翰墨之職稱 書記原爲古淸規之書狀 職掌文翰 凡山門之榜疏書問 祈禱之詞語 悉屬之 然古無書記之名 書記乃取元戎之幕府署記室參軍之名 於禪林特請書記以職之 非百丈禪師所設者 [百丈淸規下兩序章西序頭首書記條 象器箋職位類]
●一麟足矣; 一麟 禪家對契機悟道者的肯定語 謂衆多學人中的拔群者 傳燈錄五靑原行思 遷(希遷)又問曰 曹谿大師還識和尙否 師曰 汝今識吾否 曰 識又爭能識得 師曰 衆角雖多一麟足矣
소황문(蘇黃門) 자유(子由)가 원풍(元豐) 3년(1079) 휴양종사(睢陽從事)로서 균양(筠陽) 각관(榷筦)의 직임(職任; 任)으로 좌천(左遷)되었다. 이때(是時) 홍주(洪州) 경덕순(景德順) 선사와 그의 부친 문안(文安) 선생(先生)이 계분(契分; 交誼)이 있었다. 인하여 가서 방문했으며 상종(相從)하며 심히 즐거웠다. 심법(心法)을 묻자(咨) 순(順)이 고덕(古德)의 축비인연(搐鼻因緣; 코를 잡아당긴 인연)을 보였는데 오래되자 성찰이 있었다. 작게(作偈)하여 순(順)에게 보여(呈) 가로되 중년(中年; 마흔 살 안팎의 나이)에 도를 듣고 전비(前非)를 깨달으니/ 해후(邂逅)하여 노순사(老順師)를 상봉했다/ 축비(搐鼻)로 진면목을 질러 참하니(俓參)/ 도두(掉頭; 머리를 흔들다)하며 다른(別) 겸추(鉗鎚)를 받지 않는다/ 고등(枯藤; 마른 등나무 지팡이)과 파납(破衲)의 공(公; 順을 가리킴)은 무슨 일이며/ 백주(白酒)와 청염(靑鹽)의 나는 이 누구인가/ 부끄럽게도(慚愧) 동헌(東軒)엔 잔월(殘月)이 떠오르고(上)/ 일배(一盃)의 감로(甘露)는 미끄럽기가 엿(飴; 엿 이)과 같다. 소성(紹聖) 원년(元年; 1094)에 이르러(暨) 다시 균(筠; 筠陽)에 이르렀는데 순(順)은 화(化; 逝世)한 지 해를 넘겼다(逾年). 공(公)이 그 회상(繪像)에 예배하고 왼쪽에 술찬(述讚)하여 가로되 눌(訥; 居訥)과 더불어 함께(偕) 행하고 련(璉; 懷璉)과 더불어 함께(同) 거처했다. 남(南; 慧南)에게서 득법(得法)했고 남(南)의 장자(長子)가 된다. 치백(緇白; 僧俗)을 성취시켰으니 가히 이름하여 노(老)며 흑암(黑暗)을 자민(慈憫)했으니 가히 이름하여 모(姥; 할머니. 늙은 여자)다. 내가 처음엔 알지 못했으나 선자(先子; 亡父. 祖先)의 연고로써 나를 고안(高安)으로 방문(訪問; 訪)했고 축비어(搐鼻語)를 보였으나 다시 오매 보이지 않네. 겸소(縑素; 細絹이니 繪像을 가리킴)에 작례(作禮)하나니 접때(向)에도 옴이 없었거늘 지금인들 또한 어찌(奚) 감이리오. 대개 순(順)과 눌(訥)이 함께 행하며 출촉(出蜀)했고 순은 황룡을 이었고 눌은 원통(圓通)에 주(住)했고 대각련(大覺璉; 懷璉)은 기실(記室)을 관장(管掌; 掌)했으니 곧 순과 더불어 함께 거처했다. 오직 인자(仁慈)로써 우물(祐物; 衆人을 도움)했으니 총림에서 그(之)를 명목(名目; 目)해 가로되 순파파(順婆婆)라 했다. 공(公)이 표현해(爲表) 내었음은 참으로(良) 까닭(以)이 있다 하겠다. 비록 사법(嗣法; 法嗣를 가리킴)을 들은 적 없으나 그러나 공(公)이 있음은 곧 이른 바 일린으로 족하다(一麟足矣) 하겠다.
●黃門; 1. 환관(宦官)의 이칭(異稱). 후한시대 환자(宦者)를 황문령중(黃門令中)ㆍ황문 등 여러 관직에 임명(署)한지라 고로 이름했음. 2. 황문시랑(黃門侍郞) 혹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의 간칭(簡稱). 진한(秦漢) 때 궁문에 다분히 기름칠을 하여 황색을 이룬지라 고로 명칭이 황문이니 이는 황제의 근시(近侍)의 신(臣)이며 가히 조령(詔令)을 전달했음. 한대(漢代) 이강(以降; 이후) 이 관직을 연용(沿用)했으며 수ㆍ당 시 황문시랑은 문하성에 예속되었고 문하성의 부관(副官)이 되었음 [백도백과].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子由; 소철(蘇轍; 1039-1112)이니 송대 거사. 자는 자유(子由)며 호는 영빈(潁濱; 혹 穎濵으로 지음)ㆍ유로(遺老)니 미산(지금 사천에 속함) 사람. 우사간ㆍ중서사인ㆍ호부시랑ㆍ한림학사지제고ㆍ어사중승을 역관(歷官; 벼슬을 경력함)했음. 원우 6년(1091) 상서우승에 제배(除拜)되었고 다음해 문하시랑으로 승진했음. 철종이 친정(親政)하자 낙직(落職; 벼슬자리에서 떨어짐)하여 여주를 지(知; 主管)했음. 휘종 때 제거궁관(提擧宮觀)이 되었음. 균주(지금의 강서 고안)에 있으면서 염주세(鹽酒稅)를 감독할 때 황벽도전(黃檗道全)과 교유(交遊)했고 도전이 그에게 참선을 권했음. 후에 상람순선사(上藍順禪師)를 참알해 성오(省悟)했음. 이로부터 승인과 교유하기를 좋아했음. 일찍이(常) 사중(寺中)에 거주하며 몇 달 동안 돌아가지 않았음. 촉학파(蜀學派)의 중요한 인물이며 3교(敎) 합일(合一)을 주장했음. 저서에 난성집ㆍ노자해가 있음 [송사339. 오등회원18].
●從事; 관직의 이름. 중앙 혹 지방 장관이 자기가 임용한 요속(僚屬). 또 명칭이 종사원(從事員)임. ▲조정사원4. 종사(從事) 막관(幕官)이다.
●榷筦; 일반으로 각관(搉筦)을 가리킴. 이, 전매(專賣)를 주관(主管)함.
●景德順; 송대 황룡혜남의 법사며 그가 자애심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고로 총림 중에서 모두 그를 일컬어 순파파(順婆婆)라 했음 [선림구실혼명집하].
●先生; 1. 일반으로 일개 남자 성씨 뒤에 두고 쓰는 바의 일개의 습관성의 예모(禮貌)를 표시하는 칭호. 2. 구시에 설서(說書; 일종의 說唱形式의 곡예)ㆍ상면(相面; 관상을 보다)ㆍ산괘(算卦; 卦象으로 점을 치다)ㆍ간풍수(看風水) 등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호칭. 3. 장자(長者)에 대한 존칭 [백도한어]. 여기에선 3을 가리킴.
●契分; 1. 교의(交誼), 정분(情分). 2. 연분(緣分)과 같음.
●搐鼻因緣; 연등회요4 백장회해. 스님이 마대사를 모시고 유산(游山)하던 차에 홀연히 들오리가 날아감을 보았다. 마조가 묻되 이 무엇인가. 스님이 이르되 들오리입니다. 마조가 이르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스님이 이르되 날아 지나갔습니다. 마조가 스님의 코를 퉁겼다(搊). 스님이 아픔을 지고 실성(失聲)해 이르되 아야야(阿耶耶), 아야야. 마조가 이르되 또 날아 지나갔다고 말하라. 스님이 여기에서 계오(契悟)하고 등을 적시며 땀을 흘렸다.
●鉗鎚; 겸(鉗)은 쇠집게며 추(鎚)는 쇠망치. 양자는 다 금속을 단련하는 곳에서 반드시 사용하는 기구. 선종에서 사가가 제자를 교도하면서의 엄격함의 바유로 씀.
●白酒; 중국산 주류를 크게 나누면 2종이 있으니 곧 황주와 백주임. 백주는 또 명칭이 소주(燒酒)니 주질(酒質)이 무색(혹 微黃)이며 투명함.
●靑鹽; 소금의 일종이니 중국 서남과 서북 각지의 염정(鹽井)과 염지(鹽池) 가운데서 많이 산출됨. 크면서 청백(靑白)인지라 고로 일컬으며 또 명칭이 융염(戎鹽)임.
●緇白; 또한 흑백으로 지음. 출가자와 재속자(在俗者)를 가리킴. 치(緇)는 옅은 흑색이며 승인이 치색의 옷을 입으므로 고로 치(緇)로써 승인을 가리키며 백(白)은 재속자를 가리킴.
●記室; 서기(書記)니 선림 6두수(頭首)의 하나. 문소(文疏)의 한묵(翰墨; 필묵. 문장)을 관장하는 직칭(職稱)임. 서기는 원래 고청규의 서장(書狀)이며 문한(文翰; 문장)을 직장(職掌; 맡아서 관장)했음. 무릇 산문의 방소(榜疏)와 서문(書問; 書信), 기도의 사어(詞語)가 모두 그에 속했음. 그러나 옛적에 서기의 명칭이 없었음. 서기는 곧 원융(元戎; 主將)의 막부(幕府; 衙署) 서기실(署記室) 참군(參軍)의 명칭을 취했음. 선림에선 특별히 서기를 청해 이것을 맡겼음(職). 백장선사가 설립한 바의 것이 아님 [백장청규하양서장서서두수서기조. 상기전직위류].
●一麟足矣; 일린(一麟)은 선가에서 계기(契機)하여 오도한 자에 대한 긍정어(肯定語)니 이르자면 중다한 학인 중에 발군(拔群)인 자. 전등록5 청원행사. 천(希遷)이 또 물어 가로되 조계대사(曹溪大師; 6조 혜능)께서 도리어 화상을 아십니까. 스님이 가로되 네가 지금 나를 아느냐. 가로되 알지만 또 어찌 능히 알아 얻겠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중각(衆角)이 비록 많으나 1린(麟)으로 만족한다(一麟足矣).
'나호야록상 > 나호야록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대위지(大潙智) (0) | 2025.11.21 |
|---|---|
|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개선겸(開善謙; 道謙) (0) | 2025.11.21 |
|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유정선사(惟正禪師) (0) | 2025.11.20 |
|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담당준(湛堂準; 文準) (0) | 2025.11.19 |
|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불혜천(佛慧泉; 法泉) (0) | 2025.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