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광혜련(廣慧璉; 元璉)

태화당 2025. 11. 22. 07:56

汝陽廣慧璉禪師 泉州晉江人也 世姓陳 年志于學 占報劬院之僧籍 繼依招慶眞覺禪師 日事炊㸑 有間誦經 眞覺見而問曰 汝念甚麽經 對曰 維摩經 眞覺曰 經在這裏 維摩在甚麽處 璉茫然無以醻 泣涕曰 大丈夫漢被人一問 無詞可措 豈不媿哉 於是謁閩中尊宿 僅五十餘員 不能契旨 卽趨河南首山念禪師 因致問曰 學人到寶山空手回時如何 念曰 家家門前火把子 璉豁然大悟 尋擢居堂中第一座 於景德甲辰歲 開法廣慧 是時王參政署由給事中出知汝陽 璉入州治 見其判事次 便問 作麽生是郡主一管筆 王曰 來者便判 璉曰 忽然總不恁麽來時如何 王作擲筆勢 又許郞中式漕西蜀 經由謁璉 適接見於佛前 許曰 先拜佛 先拜長老 璉曰 蝦䗫吞大蟲 許曰 恁麽則總不拜去也 璉曰 運使話墮 許曰 許長老具一隻眼 璉以衣袖便拂 許曰 今日看破 便禮拜 丁晉公以詩送宣賜進奉紅綃封龍字茶與璉 密緘龍焙火前春 翠字紅綃慰眼新 品字至高誰合得 隻林樹下上乘人 其爲名公尊崇若此 景祐三年歲在丙子正月二十六日 示四圓相 自書虎 狗 鼠 牛字於中 揭方丈門 遂至九月二十六日而逝 景德間 宗師爲高明士大夫歆艶者 廣慧而已 蹟其風尙旣拔乎類 況享壽八十有六 而預知報謝 因紀次大槩 以補僧寶傳之闕 庶不殞其美也

廣慧璉; 元璉(?-1036) 宋代臨濟宗僧 泉州(今屬福建)陳氏 嗣法首山省念(臨濟下四世) 出世汝州廣慧院 宋仁宗景祐丙子九月二十六日示寂 享有高壽 [五燈會元十一 指月錄二十三 續傳燈錄一]

泉州; 今福建省泉州 景雲(710-711)初置泉州

志于學; 立志向學 論語爲政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僧籍; 又稱僧帳 供帳 卽記僧尼名稱及出家得度等事之簿冊 僧史略中置僧籍弛張二科 論曰 周隋之世無得知 (中略)文宗大和四年(830)正月 祠部請天下僧尼冒名而非正度者 具名申省 各省給牒 以憑入籍 時入申名者七十萬 造帳入籍自大和五年始 仁王經囑累品 國王大臣太子王子 自恃高貴滅破吾法 明作制法 (中略)立統官制衆 安籍記僧 (中略)當知爾時正法將滅不久

有間; 對於無間而言 間者間雜 又間隔之義 卽餘心互相間雜 或有時間及空間之間隔也 二疾病稍稍減輕 此指一

維摩經; 維摩經有三譯 一吳支謙譯 題爲維摩詰經 二卷 二秦羅什譯 題爲維摩詰所說經 三卷 三唐玄奘譯 題爲說無垢稱經 六卷 三譯中流行盛者羅什譯維摩經 皆收於大正藏第十四冊

火把子; 火把 供夜行照明用的火炬 子 後綴

州治; 一州最高行政長官的官署 也指它的所在地

恁麽; 這 這樣 如此 其類似用語有與麽 什麽 漝麽 甚麽 怎麽 作麽等 祖庭事苑一 恁麽 上當作與 麽 正从幺 作麽 與麽 指辭也 或作恁麽 恁音稔 思也 恁麽 審辭也 或作什麽 當作甚麽 甚麽 問辭也 什 雜也 非義 或作漝麽 漝 音十 水貌 又音習 滀漝 水貌 皆非義 然果言外之士 無不可者

許郞中式; 許式 宋代雲門宗居士 字叔矜 蘇州(今屬江蘇)人 擧進士 官尙書祠部郞中 出知洪州 參洞山曉聰得法 嘗贈曉聰詩云 夜坐連雲石 春栽帶雨松 [居士傳二十五 五燈會元十五 名公法喜志上] 郞中; 秦代以後的官名 補佐尙書之政務 事物紀原五曰 漢置尙書郞 初止稱守郞中 晉武帝始置諸曹郞中 唐以來號正郞 武德三年(620)尙書郞改爲郞中 按秦有郞中 令臣瓚以爲主郞內諸官 則郞中秦官也

大蟲; 虎也 蟲 對一切動物的通稱 如大蟲長蟲

運使; 古代官名 水陸運使 轉運使 鹽運使等的簡稱 宋朝會要曰 唐江淮處置轉運使 後置諸道鹽鐵轉運使 (中略)國初但曰 勾當其路 水陸計度轉運事 官高卽曰使也

話墮; 自吐語而自分墮負也 卽失言 失策 又泛指禪家機用不合禪法

一隻眼; 一指於佛法上 具有眞實正見之慧眼 非凡夫之肉眼 義同頂門眼 正眼 活眼 明眼 二與兩隻眼相對 只見一邊的深刻的眼光 此指一

丁晉公; 丁謂(962-1037) 字謂之 北宋官員 封晉國公 官至宰相 [百度百科]

火前; 特指寒食節禁火之前的特定時段 火前亦指火前茶 [百度百科]

上乘; 又云上衍 大乘之異名 世親攝論一 如是三藏下乘上乘有差別故則成二藏 一聲聞藏 二菩薩藏

報謝; 一報恩謝德 二一期之果報謝去也 此指二

僧寶傳; 禪林僧寶傳 三十卷 略稱僧寶傳 宋代慧洪覺範(1071-1128)撰 收於卍續藏第一三七冊 爲唐宋兩代禪僧八十一人之傳記 按石門文字禪二十三僧寶傳序 此書就達觀曇穎禪師所著之五家傳增補者 復收嘉祐以後 至政和年間雲門臨濟二宗之傑出者而成 卷末附錄有舟峰庵慶老所撰之補禪林僧寶傳一卷 記法演 悟新 懷志三師 又續補本書之作 另有祖琇撰著之僧寶正續傳七卷 淸代自融所撰之南宋元明禪林僧寶傳十五卷 皆收於卍續藏第一三七冊 [佛祖統紀四十六 佛祖歷代通載二十九 釋氏稽古略四 禪籍志上]

 

여양(汝陽) 광혜련(廣慧璉; 元璉) 선사는 천주(泉州) 진강(晉江) 사람이니 세성(世姓)이 진()이다. 나이 지우학(志于學; 15)에 보구원(報劬院)의 승적(僧籍)을 취득했다(; 强力을 써서 취득함). 이어서() 초경(招慶) 진각선사(眞覺禪師)에게 의지하며 날마다 취찬(炊㸑; 불을 때고 밥을 지음)에 종사(從事; )했고 유간(有間)에 송경(誦經)했다. 진각(眞覺)이 보고서 문왈(問曰) 너는 무슨 경을 외우느냐(). 대왈(對曰) 유마경(維摩經)입니다. 진각이 가로되 경은 저리(這裏; 이 속)에 있거니와 유마는 어느 곳에 있느냐. ()이 망연(茫然)하여 수대(酬對; )하지 못했다(無以醻). 읍체(泣涕)하며 가로되 대장부한(大丈夫漢)이 사람의 일문(一問)을 입어 말()을 가히 둠이 없으면 어찌 부끄럽지(媿) 않겠는가. 이에 민중(閩中)의 존숙을 참알(參謁)했는데 거의() 50여 원()이었으나 능히 계지(契旨)하지 못했다. 곧 하남(河南) 수산념(首山念; 省念) 선사에게 달려갔고 인하여 치문(致問; 詢問)해 가로되 학인이 보산(寶山)에 이르렀다가 공수(空手; 빈손)로 돌아왔을 때 어떻습니까. 념왈(念曰) 가가문전(家家門前)의 화파자(火把子; 횃불). ()이 활연(豁然)히 대오했다. 이윽고 발탁(拔擢; )되어 당중(堂中)의 제일좌(第一座; 首座)에 거처했다. 경덕(景德) 갑진세(甲辰歲; 1004) 광혜(廣慧; 광혜원)에서 개법했다. 이때(是時) 왕참정서(王參政署)가 급사중(給事中)으로 말미암아 나가서 여양(汝陽)을 지(; 다스리다)했다. 련이 주치(州治)에 들어가 그를 보매(見其) 판사(判事; 審理)하던 차였다. 바로 묻되 무엇이(作麽生) 이 군주(郡主)의 일관필(一管筆)입니까. 왕왈(王曰) 내자(來者)가 바로 판단()하시오. 련왈 홀연히 모두() 이렇게(恁麽) 오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이 붓을 던지는 자세를 지었다. 또 허낭중식(許郞中式)이 서촉(西蜀)에서 조운(漕運; )하는데 경유(經由)하여 알련(謁璉)했다, 마침() 불전(佛前)에서 접견(接見)했다. 허왈(許曰) 먼저 부처에게 예배해야 합니까, 먼저 장로(長老)에게 예배해야 합니까. 련왈(璉曰) 하마(蝦䗫; 두꺼비. 개구리)가 대충(大蟲; )을 삼켰습니다. 허왈(許曰) 이러하다면 곧 모두 예배하지 않겠습니다. 련왈 운사(運使)는 화타(話墮)했습니다. 허왈 장로가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음을 허락합니다. 련이 옷소매로써 바로 털었다(). 허왈 금일 간파(看破)했습니다. 바로 예배했다. 정진공(丁晉公)이 시()로써 보내며() 홍초(紅綃; 는 얇은 비단)로 용자다(龍字茶)를 봉()한 것을 련()에게 선사(宣賜; 帝王賞賜)하여 진봉(進奉)했다. 용배(龍焙; 茶名)를 밀함(密緘; 꼼꼼이 봉하다)하니 화전(火前)의 봄이며/ 취자홍초(翠字紅綃)로 눈을 위로(慰勞; )하니 새롭다/ 품자(品字)가 지고(至高)하니 누가 합당히 얻는가/ 척림수하(隻林樹下)의 상승인(上乘)이다. ()를 명공(名公)이 존숭(尊崇)함이 이와 같았다(若此). 경우(景祐) 3년 세재병자(歲在丙子; 1036) 정월 264원상(圓相)을 보였는데 가운데에 호()ㆍ구()ㆍ서()ㆍ우자(牛字)를 자서(自書)하여 방장문(方丈門)에 높이 걸었다(). 드디어 926일에 이르러 서거(逝去; )했다. 경덕(景德; 1004- 1007) 간 종사(宗師)로서 고명(高明)한 사대부(士大夫)가 흠염(歆豔; 羨慕)한 자는 광혜일 따름이다. 그 풍상(風尙;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일)을 상고(詳考; )하건대 이미 무리에서 뛰어나거늘(拔乎類) 하물며 향수(享壽)86이며 보사(報謝)를 예지(預知)했다. 인하여 차례()의 대개(大槩)를 기록해() 승보전(僧寶傳)의 궐()에 보충()하나니 그 아름다움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

廣慧璉; 원련(元璉; ?-1036)이니 송대 임제종승. 천주(지금 복건에 속함) 진씨. 수산성념(首山省念; 임제하 4)의 법을 이었고 여주 광혜원에서 출세했음. 송 인종 경우 병자 926일 시적했으며 고수(高壽)를 향유했음 [오등회원11. 지월록23. 속전등록1].

泉州; 지금의 복건성 천주니 경운(710-711) 초 천주를 설치했음.

志于學; 입지(立志)하여 향학(向學). 논어 위정(爲政) 자왈(子曰) 나는 열 다섯에 지우학(志于學)했다.

僧籍; 또 명칭이 승장(僧帳)ㆍ공장(供帳)이니 곧 승니의 명칭 및 출가 득도 등의 일을 기록한 부책(簿冊). 승사략중(僧史略中)에 승적(僧籍)ㆍ이장(弛張) 2()를 두었음. 논해 가로되 주수(周隋)의 시대엔 득지(得知)함이 없다 (중략) 문종 대화 4(830) 정월 사부(祠部)에서 청하여 천하 승니가 모명(冒名; 남의 이름을 詐稱)하여 정도(正度)가 아닌 자는 이름을 갖추어 성()에 신청했고 각 성에서 급첩(給牒)하고 입적(入籍)의 증빙으로 삼았다. 때에 이름을 입신(入申)한 자가 70만이다. 조장(造帳)하여 입적함은 대화 5년으로부터 시작했다. 인왕경 촉루품. 국왕ㆍ대신ㆍ태자ㆍ왕자가 스스로 고귀(高貴)를 믿고 나의 법을 멸파(滅破; 파멸)하여 밝게 제법(制法)을 짓는다 (중략) 통관(統官)을 세워 승중을 억제(抑制)하여 안적(安籍; 승적을 둠)하여 기승(記僧)한다 (중략) 마땅히 알지니 이때가 정법이 장차 멸함이 오래지 않다.

有間; 1. 무간(無間)에 상대해 말함임. ()이란 것은 간잡(間雜)이며 또 간격의 뜻. 곧 여심(餘心)과 호상 간잡함. 혹은 시간 및 공간의 간격이 있음. 2. 질병이 조금씩 감경(減輕).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維摩經; 유마경은 3()이 있음. 1. () 지겸(支謙)이 번역했으니 경제(經題)가 유마힐경(維摩詰經)이 되며 2. 2. () 라집(羅什)이 번역했으니 경제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 되며 3. 3. () 현장(玄奘)이 번역했으니 경제가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이 되며 6. 3역 중 유행이 왕성한 것은 라집이 번역한 유마경이며 모두 대정장 제14책에 수록되었음.

火把子; 화파(火把; 횃불)니 야행의 조명용에 이바지하는 화거(火炬; 횃불). 자는 후철.

州治; 일주(一州)의 최고 행정장관의 관서(官署), 또 그의 소재지를 가리킴.

恁麽; ()ㆍ저양(這樣; 이 모양)ㆍ여차(如此)니 그와 유사한 용어에 여마ㆍ십마ㆍ습마ㆍ심마ㆍ즘마ㆍ작마 등이 있음. 조정사원1. 임마(恁麽) 상은 마땅히 여()로 지어야 하며 마()는 바로 요()를 좇음. 작마(作麽)와 여마(與麽)는 지사(指辭). 혹은 임마(恁麽)로 짓나니 임()은 음이 임()이며 사()니 임마(恁麽)는 심사(審辭). 혹은 십마(什麽)로 짓거니와 마땅히 심마(甚麽)로 지어야 하나니 심마(甚麽)는 문사(問辭)며 십()은 잡()이니 뜻이 아님. 혹은 습마(漝麽)로 짓나니 습()은 음이 십()이며 수모(水貌). 또 음이 습()이니 축습(滀漝; 은 물 모일 축. 은 그림자 습)이며 물의 모양이니 다 뜻이 아님. 그러나 과연 언외(言外)의 사나이는 옳지 않는 게 없는 것이다.

許郞中式; 허식(許式)이니 송대 운문종거사. 자는 숙긍이며 소주(지금 강소에 속함) 사람. 진사에 선발되었고 벼슬이 상서사부낭중(尙書祠部郞中)이었고 나가서 홍주를 지()했음. 동산효총(洞山曉聰)을 참해 득법했고 일찍이 효총에게 준 시에 이르되 밤에 연운석(連雲石)에 앉았고 봄에 대우송(帶雨松)을 심는다 [거사전25. 오등회원15. 명공법희지상]. 郞中; 진대(秦代) 이후의 벼슬 이름. 상서의 정무를 보좌했음. 사물기원5에 가로되 한()에서 상서랑을 설치했는데 처음엔 다만 수랑중(守郞中)으로 호칭했다. 진무제(晉武帝)가 비로소 제조낭중(諸曹郞中)을 설치했다. 당 이래로는 호가 정랑(正郞)이었는데 무덕 3(620) 상서랑을 고쳐 낭중(郞中)으로 삼았다. 안험컨대 진()에 낭중이 있었으며 신찬(臣瓚)으로 하여금 주랑(主郞)을 삼고 제관(諸官)을 받아들였으니 곧 낭중은 진관(秦官)이었음.

大蟲; 범임. ()은 일체의 동물에 대한 통칭이니 대충(大蟲)ㆍ장충(長蟲) 같은 것.

運使; 고대의 벼슬 이름이니 수륙운사(水陸運使)ㆍ전운사(轉運使)ㆍ염운사(鹽運使) 등의 간칭임. 송조회요에 가로되 당()은 강회처(江淮處)에 전운사를 설치했다. 후에 제도(諸道)의 염철전운사(鹽鐵轉運使)를 설치했다 (중략) 국초(國初)에 다만 가로되 그 노()를 구당(勾當; 主管)하여 수륙에 전운(轉運)의 일을 계탁(計度)했다. 벼슬이 높은지라 가로되 사(使).

話墮; 스스로 말을 뱉고는 자분(自分)이 타부(墮負)함이니 곧 실언(失言), 실책(失策). 또 널리 선가(禪家)의 기용(機用)이 선법(禪法)에 합당하지 않음을 가리킴.

一隻眼; 1. 불법상(佛法上)에 진실정견(眞實正見)의 혜안을 갖추어 있음을 가리킴. 범부의 육안이 아니며 뜻이 정문안(頂門眼)ㆍ정안(正眼)ㆍ활안(活眼)ㆍ명안(明眼)과 같음. 2. 양척안(兩隻眼)과 상대됨. 단지 일변(一邊)만 보는 심각(深刻)한 안광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丁晉公; 정위(丁謂; 962-1037)이 자는 위지(謂之)며 북송의 관원.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고 벼슬이 재상에 이르렀음 [백도백과].

火前; 한식절(寒食節) 금화지전(禁火之前)의 특정(特定)의 시단(時段)을 특지(特指). 화전(火前)은 또한 화전다(火前茶; 茶名)를 가리킴 [백도백과].

上乘; 또 이르되 상연(上衍)이니 대승의 다른 이름. 세친 섭론1. 이와 같이 3()의 하승(下乘)과 상승(上乘)에 차별이 있는 고로 곧 2장을 이루나니 1은 성문장이며 2는 보살장이다.

報謝; 1. 은혜를 갚고 덕에 감사함. 2. 1()의 과보가 물러남임.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僧寶傳;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이니 30. 약칭이 승보전이며 송대 혜홍각범(慧洪覺範; 1071-1128)이 지었고 만속장 제13 7책에 수록되었음. 당ㆍ송 양대(兩代) 선승 81인의 전기가 됨. 석문문자선23의 승보전서(僧寶傳序)를 안험컨대 이 서적은 달관담영선사(達觀曇穎禪師)가 지은 바 오가전(五家傳)으로 나아가 증보한 것이며 다시 가우(嘉祐) 이후에서 정화년(政和年) 간에 이르기까지의 운문ㆍ임제 2종의 걸출한 자를 수집(收集)하여 이루었음. 권말 부록에 주봉암 경로(慶老)가 지은 바의 보선림승보전(補禪林僧寶傳) 1권이 있으며 법연(法演)ㆍ오신(悟新)ㆍ회지(懷志) 3()를 기록했음. 또 본서의 속보(續補)의 저작은 따로 조수(祖琇)가 지은 승보정속전(僧寶正續傳) 7권과 청대 자융(自融)이 지은 바의 남송원명선림승보전 15권이 있음. 모두 만속장 137책에 수록되었음 [불조통기46. 불조역대통재29. 석씨계고략4. 선적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