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陵華藏民禪師 初講楞嚴經於成都 聽徒獨盛 于時圜悟禪師住昭覺 民率其友勝公 扣以敎外別傳之旨 偶僧請益十玄談 方擧問 君心印作何顔 圓悟厲聲曰 文彩已彰 民聞而恍然 自謂至到矣 圜悟知其以意領解 遂示本色鉗鎚 民則罔措 數日 復陳己見曰 拈椎竪拂 豈不是一切世界諸所有物 皆卽玅明眞心 圜悟曰 汝元來在這裏作活計 民又曰 下喝敲牀 豈不是反聞聞自性 性成無上道 圜悟曰 敎中道 妙性圓明 離諸名相 本來無有世界衆生 是如何 民悚然無以醻 逮圜悟出蜀 住湖北夾山 民亦罷講而至 因晩參擧 僧問巖頭 古帆未挂時如何 巖頭云 後園驢喫草 民莫涯其意 乃詰於圜悟 及使理前話而問 乃答以庭前柏樹子 民遽大徹 尋命爲堂中第一座 圜悟陞堂 有偈美之曰 休淹四分罷楞嚴 按下雲頭徹底參 莫學亮公親馬祖 須知德嶠訪龍潭 七年往返遊昭覺 萬里翱翔上碧巖 今日煩充第一座 百花叢裏現優曇 勝亦爲圜悟之嗣 住泗州普照 號法濟禪師也
●華藏民; 安民 宋代楊岐派僧 字密印 嘉定(今屬上海)朱氏 初講楞嚴於成都 爲義學所歸 時圓悟居昭覺 往參 一日 悟擧古帆未挂因緣 師聞領悟 受法 尋開法金陵保寧 遷常州華藏 後寂於中峰 [五燈會元十九 明高僧傳四]
●十玄談; 一卷 唐代同安常察撰 收於傳燈錄二十九 聯燈會要三十 凡分十玄 心印 祖意 玄機 塵異 佛敎 還鄕曲 破還鄕曲 回機 轉位 正位前 各付以七言律之頌 自心印至佛敎五首 乃敘述宗門之要旨 自還鄕曲至正位前五首 指示學人履踐之要路 然十玄之名稱諸書有不同 本書之注釋 有朝鮮雪岑之十玄談註 指月慧印之十玄談假名註等
●領解; 理解他人所敎 如所敎而開悟 稱爲領解 又作領悟
●本色; 眞面目 本來面目 本性
●拈椎竪拂; 拈起椎棒 竪起拂子 是禪家示機應機的常用動作 泛指禪機作略 椎 亦作槌
●世界; 梵語曰路迦 世爲遷流之義 謂過現未時之遷行也 界謂具東西南北之界畔 卽有情依止之國土也 又曰世間 間爲間隔之義 故與界之義同 此二者雖通用於有情與國土 而常言者爲國土也 [楞嚴經四 名義集三]
●相; 漢語大字典 相 佛敎名詞 對性而言 佛敎把一切事物外現的形象狀態 稱之爲相 ▲金剛經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夾山; ①地名 有二 一位於湖南省岳州府澧州石門縣東南約十七公里 唐懿宗咸通十一年(870) 船子德誠之法嗣善會 在此山建立禪宇 振擧禪風 名噪一時 二位於江蘇省鎭江府丹徒縣南方約二公里 山中有竹林寺 善會亦曾在此說法 [讀史方輿紀要七十七 大淸一統志六十二] ②指唐代善會禪師 師曾先後住於江蘇之夾山 湖南澧州之夾山 擧揚禪風 故世稱夾山善會禪師 或僅以夾山代稱之
●晩參; 朝參之對稱 指晩間之住持開示法要 參禪或念誦
●陞堂; 禪師上法堂爲大衆說法稱爲陞堂 又作昇堂 升堂
●四分; 四分律 四律之一 六十卷 五部中曇無德部之律藏也 姚秦佛陀耶舍 竺佛念共譯 收於大正藏第二十二冊 佛滅後百年 法正尊者(又曰法護尊者 梵名曇無德)於上座部之律藏中契同己見者 采集成文 隨說所止 而爲一分 四度完結 故稱爲四分律 蓋四分之名 非依義而判段章之名 乃四度結集之 分之爲四夾 故名四分也 初分二十卷 二分十五卷 三分十四卷 四分十一卷
●按下雲頭; 指假借名言而設立之方便法門
●亮公; 亮座主 唐代僧 西蜀人 頗講經論 因參馬祖 發明大事 隱於洪州西山 更無消息 [五燈會元三]
●馬祖; 道一(709-788) 唐代僧 南嶽懷讓之法嗣 漢州(四川廣漢)人 俗姓馬 世稱馬大師 馬祖 名道一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紋 依資州唐和尙(卽處寂)剃染 就渝州圓律師受具足戒 開元(713-741)年間 就懷讓習曹溪禪法 言下領旨 密受心法 初止於建陽之佛跡嶺 未久 遷至臨川之南康龔公二山 大曆四年(769) 駐錫鍾陵(江西進賢)開元寺 是時學者雲集 化緣大盛 馬祖以平常心是道 卽心是佛大弘禪風 貞元四年二月四日示寂 壽八十 唐憲宗諡大寂禪師 其派稱爲洪州宗 道一之於懷讓 恰如希遷之於行思 於禪法之弘揚二者竝稱 馬祖因於江西闡揚南嶽系禪風 亦稱江西禪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龍潭; 指崇信 唐代僧 出身生卒年皆不詳 古來疑其嗣法師馬祖法嗣天王道悟矣 後結庵於澧州(湖南澧縣)龍潭禪院 宗風大振 世稱龍潭崇信 龍潭和尙 傳法於德山宣鑑 [傳燈錄十四 聯燈會要九]
●優曇; 優曇花 玄應音義二十一 烏曇跋羅花 舊言優曇波羅花 或作何雲婆羅花 此葉似梨 果大如捲 其味甛 無花而結子 亦有花而難値 故經中以喩希有者也 ▲合部金光明經壽量品 於無量時 諸佛世尊 乃出於世 譬如優曇婆羅華 於無量時乃出於世 ▲佛本行集經三十一 有一大樹 名優曇婆羅(隋言求願) 時彼樹有一大獼猴 在於樹頭 取果子食 ▲大寶積經一百九 譬如尼拘陀樹子 或優曇婆羅等諸樹子 雖復細小 而能生極大樹枝
금릉(金陵) 화장민(華藏民; 安民) 선사가 처음에 성도(成都)에서 릉엄경을 강설했는데 청도(聽徒)가 독성(獨盛)했다. 우시(于時; 그때, 당시) 원오선사(圜悟禪師)가 소각(昭覺; 소각사)에 주(住)했다. 민(民)이 그 벗 승공(勝公)을 거느리고 교외별전의 의지(意旨)를 물었다(扣; 叩問, 詢問). 우연히 중이 십현담(十玄談)을 청익(請益)했는데 바야흐로 거문(擧問)하되 그대(君)의 심인(心印)이 어떤 얼굴을 지었습니까. 원오가 여성(厲聲; 嚴厲의 聲音)으로 가로되 문채가 이미 드러났다(文彩已彰). 민(民)이 듣고서 황연(恍然)했고 스스로 이르되 지도(至到)했다. 원오가, 그가 뜻으로써 영해(領解; 理解)했음을 알았고 드디어 본색겸추(本色鉗鎚)를 보였다. 민이 곧 망조(罔措; 罔知所措)했다. 며칠 만에(數日) 다시 자기의 견해를 진술(陳述; 陳)해 가로되 염추수불(拈椎竪拂)이 어찌 이 일체 세계(世界)의 모든 소유물(所有物)이 모두 곧 묘명진심(玅明眞心)임이 아니겠습니까. 원오가 가로되 네가 원래 저리(這裏)에 있으면서 활계(活計)를 지었구나. 민이 우왈(又曰) 하할고상(下喝敲牀)이 어찌 이, 자성을 들음(聞自性)을 반문(反聞)하여 자성(性)이 무상도(無上道)를 이룸이 아니겠습니까. 원오가 가로되 교중(敎中; 릉엄경7)에 말하되 묘성(妙性)이 원명(圓明)하여 모든 명상(名相; 이름과 形相)을 여의어 본래 세계와 중생이 있지 않다 했으니 이는 어떠한가. 민이 송연(悚然)하며 수대(酬對; 醻)하지 못했다. 원오가 출촉(出蜀)하여 호북(湖北) 협산(夾山)에 주(住)함에 이르자(逮) 민이 또한 파강(罷講)하고 이르렀다. 만참(晩參)으로 인해 거(擧)했다. 중이 암두(巖頭)에게 묻되 고범(古帆)을 걸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암두가 이르되 후원(後園)에 나귀가 풀을 먹는다. 민이 그 뜻을 헤아리지(涯) 못했다. 이에 원오에게 힐문했고 및 전화(前話)를 정리(整理; 理)해 묻게 했고 이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로써 답하매 민이 급히(遽) 대철(大徹)했다. 이윽고 명(命)하여 당중(堂中)의 제일좌(第一座)가 되었다. 원오가 승당(陞堂)하여 게가 있어 그(之)를 찬미(美)해 가로되 사분에 잠김을 그치고(休淹四分) 릉엄을 파(罷)하고/ 운두를 안하하여(按下雲頭) 철저히 참(參)했다/ 량공(亮公)이 마조(馬祖)를 친함을 배우지 말고/ 덕교(德嶠; 德山이니 宣鑑)가 용담(龍潭; 崇信)을 참방(參訪; 訪)한 것을 수지(須知)하라/ 7년 동안 왕반(往返)하며 소각(昭覺)에 노닐었고/ 만 리에 고상(翱翔; 선회하며 날다)하며 벽암(碧巖)에 올랐다/ 금일 번거롭게 제일좌에 충당하나니/ 백화총리(百花叢裏)에 우담(優曇)이 나타났다. 승(勝)도 또한 원오의 사(嗣)며 사주(泗州; 지금의 江蘇 盱眙東北) 보조(普照)에 주(住)했고 호(號)가 법제선사(法濟禪師)다.
●華藏民; 안민(安民)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밀인이며 가정(지금 상해에 속함) 주씨. 처음에 성도에서 릉엄을 강설하며 의학(義學)이 귀의하는 바가 되었음. 당시에 원오(圓悟)가 소각에 거주했고 가서 참했음. 어느 날 원오가 고범미괘(古帆未挂)의 인연을 들자 스님이 듣고 영오(領悟)했고 수법(受法)했음. 이윽고 금릉 보녕에서 개법했고 상주 화장(華藏)으로 옮겼음. 후에 중봉에서 적(寂)했음 [오등회원19. 명고승전4].
●十玄談; 1권. 당대 동안상찰(同安常察)이 지었고 전등록29ㆍ연등회요31에 수록되었음. 무릇 10현으로 분류했으니 심인ㆍ조의ㆍ현기ㆍ진이ㆍ불교ㆍ환향곡ㆍ파환향곡ㆍ회기ㆍ전위ㆍ정위전이며 각기 7언율의 송을 붙였음. 심인으로부터 불교에 이르기까지 5수는 곧 종문의 요지를 서술했고 환향곡으로부터 정위전에 이르기까지 5수는 학인이 이천(履踐)할 요로(要路)를 지시했음. 그러나 10현의 명칭이 여러 서책에 부동(不同)함이 있음. 본서의 주석으론 조선 설잠(雪岑)의 십현담주와 지월혜인(指月慧印)의 십현담가명주(十玄談假名註) 등이 있음.
●領解; 타인이 가르친 바를 이해하고 가르친 바와 같이 개오(開悟)함을 일컬어 영해(領解)라 함. 또 영오(領悟)로 지음.
●本色; 진면목. 본래면목. 본성.
●拈椎竪拂; 추방(椎棒; 몽둥이)를 집어 일으키고 불자를 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선가에서 시기응기(示機應機)하는 상용의 동작임. 널리 선기의 작략을 가리킴. 추(椎)는 또 추(槌)로 지음.
●世界; 범어(梵語)로 가로되 로가(路迦; 梵 loka)임. 세(世)는 천류(遷流)의 뜻이니 이르자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시간이 천행(遷行)함이며 계(界)는 이르자면 동서남북의 계반(界畔)을 갖췄으니 곧 유정(有情)이 의지하는 국토임. 또 가로되 세간(世間)이니 간(間)은 간격의 뜻이 되므로 고로 계(界)의 뜻과 한가지임. 이 2자가 비록 유정과 국토에 통용되지만 늘 말하는 것은 국토가 됨 [릉엄경4. 명의집3].
●相; 한어대자전. 상(相) 불교의 명사(名詞)니 성(性)을 상대해 말함이다. 불교에선 일체의 사물과 밖으로 나타난 형상(形象)과 상태(狀態)를 잡아 이를 일컬어 상(相)이라 한다. ▲금강경 이 모든 중생이 다시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衆生相)ㆍ수자상(壽者相)이 없다.
●夾山; ①땅 이름이니 둘이 있음. 1. 호남성 악주부(岳州府) 예주(澧州) 석문현(石門縣) 동남 약 17㎞에 위치하며 당 의종 함통 11년(870) 선자덕성(船子德誠)의 법사인 선회(善會)가 이 산에 있으면서 선우(禪宇)를 건립해 선풍을 떨쳐 일으켜 이름이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음. 2. 강소성 진강부(鎭江府) 단도현(丹徒縣) 남방 약 2㎞에 위치하며 산중에 죽림사가 있는데 선회가 또한 일찍이 여기에 있으면서 설법했음 [독사방여기요77. 대청일통지62]. ②당대 선회선사(善會禪師)를 가리킴. 스님이 일찍이 선후로 강소(江蘇)의 협산과 호남 예주의 협산에 거주하며 선풍을 거양한지라 고로 세칭이 협산선회선사며 혹 다만 협산으로 그를 대칭(代稱)함.
●晩參; 조참(朝參)의 대칭. 만간(晩間; 저녁 무렵)에 주지가 법요를 개시하거나 참선 혹 염송(念誦)함을 가리킴.
●陞堂; 선사가 법당에 올라 대중을 위해 설법함을 일컬어 승당이라 함. 또 승당(昇堂)ㆍ승당(升堂)으로 지음.
●四分; 사분률(四分律)이니 4율(律)의 하나. 60권. 5부(部) 중 담무덕부(曇無德部)의 율장임. 요진(姚秦)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념(竺佛念)이 공역(共譯)했으며 대정장 제22책에 수록되었음. 불멸후 백 년에 법정존자(法正尊者; 또 가로되 法護尊者니 梵名은 曇無德)가 상좌부의 율장 중에서 자기의 견해와 계합하여 같은 것을 채집하여 문서를 이루었는데 수설(隨說)하여 그치는 바로 1분(分)을 삼았고 4차례에 완결한지라 고로 명칭이 사분율이 됨. 대개 사분의 이름은 뜻에 의해 단장(段章)을 판단한 이름이 아니라 곧 4차례 그것을 결집해 그것을 나누어 4협(夾; 夾子)으로 삼은지라 고로 이름이 사분임. 초분은 20권이며 2분은 15권이며 3분은 14권이며 4분은 11권임.
●按下雲頭; 명언(名言)을 가차하여 설립한 방편법문을 가리킴.
●亮公; 량좌주(亮座主)니 당대승. 서촉 사람. 자못 경론을 강설했음. 마조를 참함으로 인해 대사를 발명하고 홍주 서산에 은거했는데 다시 소식이 없었음 [오등회원3].
●馬祖; 도일(道一; 709-788)이니 당대승. 남악회양의 법사. 한주(사천 광한) 사람이며 속성은 마(馬)니 세칭 마대사(馬大師)ㆍ마조(馬祖)며 이름은 도일(道一). 용모가 기이하여 우행호시(牛行虎視)에 혀를 빼면 코를 지났으며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채(二輪紋)가 있었음. 자주 당화상(唐和尙; 곧 처적)에게 의지해 체염(剃染)하고 유주의 원율사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개원(713-741)년 간 회양(懷讓)에게 나아가 조계의 선법을 익혔는데 언하에 지취를 영오(領悟)해 몰래 심법을 받았음. 처음엔 건양의 불적령에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임천의 남강과 공공 두 산에 이르렀음. 대력 4년(769) 종릉(강서 진현)의 개원사에 주석했는데 이때 학자가 운집하여 화연(化緣)이 대성(大盛)했음. 마조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써 선풍을 크게 홍양(弘揚)했음. 정원 4년 2월 4일에 시적했음. 나이 80. 당헌종이 대적선사(大寂禪師)로 시호했음. 그 파를 일컬어 홍주종(洪州宗)이라 함. 회양(懷讓)에 있어서의 도일(道一)은 마치 행사(行思)에 있어서의 희천(希遷)과 같아서 선법의 홍양(弘揚)에 2자(者)를 병칭함. 마조가 강서에서 남악계(南嶽系)의 선풍을 천양(闡揚)했으므로 인해 또한 강서선(江西禪)이라 일컬음 [송고승전10. 경덕전등록6. 전법정종기. 오등회원3].
●龍潭; 숭신(崇信)을 가리킴. 당대승. 출신과 생졸(卒年)한 해가 다 상세하지 못함. 고래로 그 사법사(嗣法師)가 마조의 법사인 천왕도오(天王道悟)로 의심했음. 후에 예주(호남 예현) 용담선원(龍潭禪院)에 암자를 엮어 종풍을 크게 떨쳤음. 세칭 용담숭신(龍潭崇信)ㆍ용담화상이며 덕산선감에게 법을 전했음 [전등록14. 연등회요9].
●優曇; 현응음의21 오담발라화(烏曇跋羅花; 梵 udumbara) 구역(舊譯)에 말하되 우담바라화(優曇波羅花)며 혹은 하운바라화(何雲婆羅花)로 지었다. 이것의 잎은 배나무와 같고 열매는 크기가 주먹과 같으며 그 맛은 달다. 꽃이 없으면서 열매를 맺는다. 또한 꽃이 있음을 만나기 어려우므로 고로 경중에서 희유한 것에 비유한다. ▲합부금광명경 수량품. 무량한 때 제불세존이 세상에 출현했으니 비유컨대 우담바라화(優曇婆羅華)가 무량한 때 세상에 출현함과 같다. ▲불본행집경31. 한 큰 나무가 있었으니 이름이 우담바라(優曇婆羅; 隋나라 말로 求願)다. 때에 그 나무에 한 마리의 큰 원숭이(獼猴)가 있어 나무 꼭대기에 있으면서 과자(果子; 열매)를 취해 먹었다. ▲대보적경109. 비유컨대 니구타수자(尼拘陀樹子; 子는 씨)나 혹 우담바라(優曇婆羅) 등 여러 수자(樹子)가 비록 다시 세소(細小)하지만 능히 극대(極大)의 수지(樹枝)를 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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