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양공대년(楊公大年)

태화당 2025. 11. 25. 07:41

翰林學士楊公大年 秘書監出牧汝州 時廣慧有璉禪師在焉 公至 首謁之 問曰 布鼓當軒擊 誰是知音者 璉曰 來風深辨 公曰 恁麽則禪客相逢只彈指 璉曰 君子可入 公應喏喏 及相與夜話 璉曰 秘監曾與誰語及此事來 公曰 曾問雲門諒監院 兩箇大蟲相咬時如何 諒對以一合相 亦甞自著語曰 我只管看 未審恁麽道 還得也無 璉曰 老僧卽不然 公曰 請別道看 璉以手作拽鼻孔勢曰 這畜生 更㪍趒 公於言下知有 遂醻酢達旦 自是咨詢經于半載 礙膺之物嚗然而釋 乃與尊宿激揚機語裒而號汝陽禪會集 因自著敘曰 粤以達磨西來 少林壁觀 心燈續照 信衣密傳 逮六世而花果乃成 流諸方而葦麻斯衆 隨機有得 證道同歸 雖性地恒明 而言樞差別 師承異稟 體用致殊 河獸深淺 非觀慧而孰分 城乳醇醨 亦法味之隨變 差毫髮而彌隔 滯筌罘而易分 自南嶽懷讓爲曹谿嫡子 讓傳馬祖道一 一傳百丈懷海 海傳黃檗希運 運傳臨濟義玄 玄傳興化存獎 獎傳汝州南院顒 顒傳風穴延沼 沼傳首山念 念傳廣慧元璉 璉於曹谿爲十世 爰有俗士 潛心空諦 勤求知識 多歷年所 滯於言句 迷乎物我 覊官之故 宿緣是契 咨詢釆索 渺瀰時序 恍然啓悟 洞見眞常 有法昭者 傳法於葉縣歸省 省亦嗣於念 居多集會 形於問答 扣侍座隅 隨時疏錄 屬有好事 傳布襄陽 南雍名區 招提竝列 大士間出 一音迭吼 互爲主伴 更有醻對 其谷隱紹遠 玉泉守珍 同嗣石門徹 白馬令岳嗣先白馬倫 普寧歸道嗣德山密 正慶惠英 鹿門山主惠昭同嗣雲居齊 凡六大士洎廣敎省 竝存言唱 用咨提振 仍復討歷遺集 詳求昔範 或盡其善 或虛其對 有別語焉 有代語焉 往哲深意 初心勤請 或敎擧其要 或顯其旨 有拈語焉 有垂語焉 躡前以申問者 列爲進語 因時而興論者 備諸辨語 後有同參之淨侶 經途之禪客 公齋胥會 精廬環坐 隨方扣擊 尋常應報者 或用掇集以布於同志 凡十有三卷云爾 嗚呼 六一居士謂公以文章擅天下 然性剛勁寡合 觀夫公齋務簡與宗師激揚萃集機語 布於同志 以其所存 實聖賢高致也

楊公大年; 楊億(974-1020) 北宋臨濟宗居士 浦城(福建建甌)人 字大年 少時以文章名世 太宗嘗召入面試 歎爲神童 眞宗時 歷任翰林學士 侍郞 修撰等官 初不知佛 學士李維勉 以宗門事 相策發 遂生深信 後參汝州廣慧元璉得法 每翼護法門 多著洪力 一時學佛士夫推爲領袖 又屢奉詔命編製大藏目錄 校刊景德傳燈錄 於譯經院任潤文一職 天禧四年有疾 書偈遺李遵勗而逝 享年四十七 諡號文 有文集行世 [五燈會元十二 居士傳二十 宋史三]

秘書; 祕書 職務名 古代稱掌管圖書之官 如漢以來之祕書監祕書郞皆是 [百度百科]

汝州; 今河南省汝州

布鼓; 以布製成的鼓 祖庭事苑三 布鼓 漢 王尊爲東平相 謂王之太傅曰 毋持布鼓向雷門 說者曰 雷門 越之會稽城門也 有大鼓 越擊之 聲聞洛陽 布鼓 以布爲鼓 無聲也 毋 音無

來風; 禪語問答中對方所示機鋒

禪客相逢只彈指; 禪月詩云 禪客相逢只彈指 此心能有幾人知

君子可入; 疑君子可八 八 有分辨知曉義 是一個閩方言詞 禪錄君子可八 意爲君子可辨 君子可知

監院; 監寺也 古稱監院 院主 主首 寺主 後爲特尊住持而改稱監寺 卽總領衆僧之職稱 爲一寺之監督 是禪宗六知事之一 位置次於都寺 禪林中 在唐代設監院一職 掌理全寺之事務 至宋代 因寺廣衆多 將其職權分與都寺及監寺 未久 監院之名亦改爲監寺 按祖庭事苑八 東晉以後 寺主之職方盛 後世禪門中有內外知事 以監寺爲首者 卽沿襲於此 [百丈淸規下兩序章 象器箋職位類]

一合相; 指由衆緣和合而成之一件事物 以佛敎之觀點言之 世間之一切法 皆爲一合相 三藏法數一 一合相[出金剛經] 一合相者 蓋言衆塵和合而爲一世界也 世界本空 微塵不有 但衆生不了 妄執爲實 若是實有 卽應世界不可分爲微塵 若是實無 不應微塵合爲世界 是知執有執無 皆不當理 經云 如來說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是也

著語; 對他人的機緣語句 加以簡短評議 稱爲著語

畜生; <> tiryag-yoni 梵語底栗車 又作傍生 橫生 畜生道 傍生趣 五道之一 六道之一 三惡道之一 指鳥獸蟲魚等一切動物 畜生之名 乃由人畜養之意而得 新譯爲傍生 乃取其形不如人之直 傍橫且傍行之義

醻酢; 酬酢 應對 答對 酬 應對 答對 爾雅 酬 報也 酢 在各切 應對 爾雅 酢 報也 易 繫辭上 是故可與酬酢 韓康伯注 酬酢 猶應對也 禪林寶訓音義 酬酢 下音昨 客報主曰酢 主答客曰酬

達旦; 直到天明

礙膺; 禾山錄 十二時中 隱隱地常有一物礙膺 [禪關策進註]

嚗然; 嚗 放杖聲 莊子知北遊 神農隱几擁杖而起 嚗然放杖而笑 又怒聲 集韻 嚗 怒聲

少林壁觀; 少林面壁; 指菩提達磨在嵩山少林寺面壁坐禪的故事

信衣; 佛家傳授之衣也 五燈會元一 二十五祖曰 師子尊者難未起時 密授我信衣法偈 以顯師承 又六祖壇經 祖復曰 昔達磨大師初來此土 人未信之 故傳此衣以爲信體 代代相承

師承; 謂弟子承受師匠之法敎

河獸; 指渡河之三獸 以兔馬象三獸之渡河 比喩三乘斷惑修行之深淺 聲聞緣覺菩薩 以所證有深淺 猶如兔馬象三獸之渡河 兔渡則浮 馬渡及半 象乃澈底截流 祖庭事苑五 三獸 一兔 二馬 三象 兔之渡水 趣自渡耳 馬雖善猛 猶不知水之深淺 白象之渡 盡其源底 聲聞緣覺其猶兔馬雖渡生死 不達法本 菩薩大乘譬如白象 解暢三界十二緣起 了之本無 一切救護莫不蒙濟 見智論(上文出普曜經一)

懷讓; (677-744) 唐代僧 金州安康(陝西漢陰)人 俗姓杜 十五歲出家 一度習律 後參曹溪 爲六祖慧能之高足 留侍十五年 六祖示寂 始於唐玄宗先天二年(713) 住於湖南南嶽般若寺觀音臺 大闡禪宗 開南嶽一系 世稱南嶽懷讓 其法系相對於靑原行思之法系(靑原下) 而稱南嶽下 同爲南宗禪之二大法流 弟子馬祖道一繼其法流 其後成五家七宗之系派 於天寶三年八月十一日 圓寂於衡嶽(南嶽) 壽六十八 敬宗時 追諡大慧禪師 [宋高僧傳九 傳燈錄五 五燈會元三]

嫡子; 嫡 指正宗正統 如嫡系嫡傳

懷海; (720-814) 唐代僧 俗姓王 福州長樂(今屬福建)人 從慧照禪師落髮 依衡山法朝律師受具足 戒 至浮槎寺閱藏 大曆(766-779)初 聞馬祖道一于南康(今屬江西)竪南禪法幢 前往參謁 言下開悟 得其大機大用之禪 遂嗣其法 馬祖寂後 受衆之請 住新吳(今江西奉新)百丈山傳播禪法 世稱百丈禪師 其禪名百丈禪 制定禪門規式 後稱百丈淸規 平生苦節高行 凡日常作務 必先于衆 叢林中有一日不作 一日不食的佳話 至晩年猶勤勞不息 元和九年入寂 世壽九十五(陳詡塔銘記其年壽爲六十六) 卒諡大智禪師 塔名大勝寶輪 宋大觀元年(1107) 追諡覺照禪師 元元統三年(1335) 加諡弘宗妙行禪師 有百丈懷海禪師語錄 百丈懷海禪師廣錄各一卷行世 嗣法弟子有靈祐希運等人 [宋高僧傳十 傳燈錄六]

希運; (?-850) 唐代僧 福州閩縣人 姓氏不詳 幼出家於洪州黃檗山 聰慧利達 學通內外 人稱黃檗希運 相貌殊異 額肉隆起如珠 號爲肉珠 後遊京師 遇一姥指示 遂還洪州謁百丈懷海 得百丈所傳心印 後於黃檗山鼓吹直指單傳之心要 四方學子雲集而來 時河東節度使裴休鎭宛陵 建寺 迎請說法 以師酷愛舊山 故凡所住山 皆以黃檗稱之 大中四年示寂(入寂年度諸書不同 宗統編年十三作大中二年 佛祖統紀四十二作大中九年 佛祖歷代通載十六作大中三年等) 年壽不詳 諡號斷際禪師 門下有臨濟義玄 睦州道縱等十數人 裴休輯師之語錄二卷 黃檗斷際禪師宛陵錄 與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 廣行於世 [傳燈錄九 傳法正宗記七 佛祖歷代通載二十三 釋氏稽古略三十]

存獎; (830-888) 五代後唐臨濟宗僧 孔子後裔 流寓甘泉縣 初硏敎旨 聞臨濟義玄盛化滹沱 乃往親依 有省得法 未幾轉謁三聖慧然 魏府大覺 後住大明府興化院 學子甚衆 大闡祖道 寂謚廣濟禪師 [傳燈錄十二 廣燈錄十二]

南院顒; 慧顒(860-930) 五代臨濟宗僧 河北人 興化存獎法嗣 住汝州(河南)寶應禪院南院 後傳法於風穴延沼 按宗統編年十八 師示寂於後唐明宗長興元年(930) 釋氏通鑑十二 則師示寂於後周太祖廣順二年(952) 其餘事蹟不詳 [傳燈錄十二 釋氏稽古略三 聯燈會要十一 增訂佛祖道影二]

空諦; 天台所立三諦(空諦假諦中諦)之一 一切世間之法 不論有情非情 總爲因緣生者 因緣生之法 自體不實 故曰空 此理爲眞 故曰諦 依中論偈之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二句而立之

渺瀰; 水流曠遠貌

歸省; 宋代臨濟宗僧 冀州賈氏子 年弱冠 易州保壽院出家受具 嗣首山省念 南嶽下九世 住汝州葉縣廣敎院 其住持枯淡嚴密 衲子畏之 [廣燈錄十六 五燈會元十一]

招提; <> catur-diśa 具名柘鬪提奢 譯曰四方 謂四方之僧爲招提僧 四方僧之施物爲招提僧物 四方僧之住處爲招提僧坊 北魏太武帝 於始光元年(424) 造立伽藍 以招提名之 招提二字 遂爲寺院之異名 增一阿含經十四 毘沙鬼白世尊曰 我今以此山谷施招提僧 唯願世尊爲之受之 [玄應音義十六 慧琳音義二十六 釋氏要覽上 名義集七 大宋僧史略上]

大士; 菩薩之通稱也 或以名聲聞及佛 士者凡夫之通稱 簡別於凡夫而稱爲大 又士者事也 爲自利利他之大事者 謂之大士 韓詩外傳 孔子與子路子貢顔淵言志 謂子路曰 勇士哉 謂子貢曰 辨士哉 謂顔淵曰 大士哉 法華文句記二 大士者 大論稱菩薩爲大士 亦曰開士 士謂士夫 凡人之通稱 以大開簡別故曰大等

守珍; 宋代曹洞宗僧 石門慧徹法嗣 住鄂州靈竹 [五燈會元十四 傳燈錄二十四]

石門徹; 慧徹 五代曹洞宗僧 至襄州(今湖北襄樊)師事石門獻蘊 而嗣其法 獻蘊寂 繼其丈席 [傳燈錄二十三 五燈會元十四]

德山密; 緣密 五代楚僧 號圓明 雲門文偃法嗣 住鼎州德山 [五燈會元十五 傳燈錄二十二 聯燈會要二十六]

雲居齊; 道齊(929-997) 宋初法眼宗僧 洪州(江西)人 俗姓金 從百丈山明照出家 後遇淸涼泰欽 機緣頓契 得嗣其法 初住筠州東禪院 次住洪州雙林院 後住雲居山 著有拈古代別等 廣爲叢林所用 宋太宗至道三年九月示寂 壽六十九 臘四十八 有搜玄 拈古代別等集 盛行叢林 [傳燈錄二十六 五燈嚴統十]

別語; 猶別曰別云 卽指禪僧於他人對話問答中 就他人旣已回答者 另加自己之見識來回答之言語 又通常與代語 竝稱爲代別

拈語; 禪門宗匠 拈起示人之語也 如古則 公案 機緣等是也

垂語; 垂示之語也 禪門宗匠上堂提撕學人曰垂示

 

한림학사(翰林學士) 양공대년(楊公大年)이 비서감(秘書)으로 말미암아 나가서 여주(汝州)를 다스렸다(). 때에 광혜(廣慧; 광혜원)에 련선사(; 元璉)가 있었다. ()이 이르러 먼저() ()를 예알하여 문왈(問曰) 포고(布鼓)를 당헌(當軒)하여 치면 누가 이 지음자(知音者)입니까. 련왈(璉曰) 내풍(來風)을 깊이 분변했습니다. 공왈(公曰) 이러하다면(恁麽) 곧 선객이 상봉하여 다만 손가락 퉁김입니다(禪客相逢只彈指). 련왈 군자가입(君子可入)입니다. 공이 응하여 낙낙(喏喏; , )했다. 및 서로 더불어 야화(夜話)하는데 련왈 비서(秘監)는 일찍이 누구와 차사(此事; 宗門의 일대사)를 어급(語及; 言及)하여 왔습니까. 공왈 일찍이 운문량(雲門諒) 감원(監院)에게 묻되 두 개의 대충(大蟲)이 서로 물 때 어떻습니까. ()이 일합상(一合相)으로써 대답했고 또한 일찍이 스스로 착어(著語)하여 가로되 나는 다만 관간(管看; 管帶하여 보다)한다. 미심(未審)하나니 이렇게 말함(恁麽道)은 도리어 얻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련왈(璉曰) 노승(老僧; 自稱之詞)은 곧 그렇지 않습니다. 공왈 청컨대 달리 말해 보십시오. 련이 손으로써 비공(鼻孔)을 당기는 자세를 지으며 가로되 이 축생(畜生)이 다시 발조(㪍趒; 펄쩍 뛰다)하는구나. 공이 언하(言下)에 지유(知有; 깨닫다)했다. 드디어 수작(醻酢)하며 달단(達旦)했다. 이로부터(自是) 자순(咨詢; 請敎)하며 반재(半載)를 경과했고 애응지물(礙膺之物)이 박연(嚗然)하며 풀렸다(). 이에 존숙과 더불어 기어(機語)를 격양(激揚)했고 모아서(; 모을 부) ()하기를 여양선회집(汝陽禪會集)이라 했다. 인하여 스스로 착서(著敘; 序文을 붙이다)하여 가로되 월(; 조사) 달마가 서래(西來)하여 소림에서 벽관했고(少林壁觀) 심등(心燈)을 속조(續照)했고 신의(信衣)를 밀전(密傳)했다. 6()에 이르러() 화과(花果)를 이에 이루었고(乃成) 제방(諸方)에 유행(流行; )하여 위마(葦麻; 갈대와 삼)의 사중(斯衆)이다. 수기(隨機)하여 얻음이 있었고 증도(證道)하여 동귀(同歸)했다. 비록 성지(性地)가 항명(恒明)하나 언추(言樞; 언어의 樞機)는 차별(差別)이며 사승(師承)이 이품(異稟; 다르게 稟受)이며 체용(體用)이 치수(致殊; 다름을 이룸). 하수(河獸)가 심천(深淺)이거늘 관혜(觀慧)가 아니면 누가() 분별할 것이며 성유(城乳)가 순리(醇醨; 진한 술과 묽은 술)라서 또한 법미(法味)가 수변(隨變)한다. 호발(毫髮) 만큼 어긋나면 두루 막히거늘(彌隔) 전부(筌罘; 통발과 그물)에 체재(滯在; )한다면 쉽게 분별하겠는가(易分).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조계(曹谿; 6조 혜능)의 적자(嫡子)가 됨으로부터 회양이 마조도일(馬祖道一)에게 전했고 도일이 백장회해(百丈懷海)에게 전했고 회해가 황벽희운(黃檗希運)에게 전했고 희운이 임제의현(臨濟義玄)에게 전했고 의현이 흥화존장(興化存獎)에게 전했고 존장이 여주(汝州) 남원옹(南院顒; 慧顒)에게 전했고 옹이 풍혈연소(風穴延沼)에게 전했고 연소가 수산념(首山念; 省念)에게 전했고 념이 광혜원련(廣慧元璉)에게 전했으니 련은 조계에게 10()가 된다. 이에() 속사(俗士; 大年)가 있어 공종(空諦)에 잠심(潛心)하고 지식(知識)을 근구(勤求)하며 연소(年所; 해와 처소)를 많이 겪었으나 언구에 체()하고 물아(物我)에 미()했음은 관사(官事)에 기반(覊絆; 束縛)된 연고였다(覊官之故). 숙연(宿緣)이 이 계합하여 자순(咨詢; 請敎)하고 변색(釆索; 分辨하고 摸索)하느라 묘미(渺瀰)한 시서(時序; 시간의 선후 순서)였고 황연(恍然)히 계오(啓悟; 開悟)하여 진상(眞常)을 통견(洞見; 환히 보다)했다. 법소(法昭)란 자가 있으니 섭현귀성(葉縣歸省)에게서 전법(傳法)했으며 성()도 또한 념(; 省念)을 이었다. 많은 집회(集會)에 거처하면서 문답에 형용(形容; )했고 좌우(座隅)에 구시(扣侍; 扣問하고 시봉)하면서 수시(隨時)하여 소록(疏錄; 記錄)했으니 호사(好事)가 있음에 속한다. 양양(襄陽)에 전포(傳布)되어 남옹(南雍)의 명구(名區)에 초제(招提)가 병렬(竝列)하고 대사(大士)가 간출(間出)했다. 일음(一音)을 질후(迭吼)하매 서로() 주반(主伴)이 되었고 다시 수대(醻對; 應對)가 있었다. 그 곡은소원(谷隱紹遠)과 옥천수진(玉泉守珍)은 석문철(石門徹; 慧徹)을 동사(同嗣)했다. 백마영악(白馬令岳)은 선백마륜(先白馬倫)을 이었고() 보녕귀도(普寧歸道)는 덕산밀(德山密; 緣密)을 이었다. 정경혜영(正慶惠英)과 녹문산주(鹿門山主) 혜소(惠昭)는 운거제(雲居齊; 道齊)를 동사(同嗣)했다. 무릇() 6대사(大士) () 광교성(廣敎省; 歸省)은 모두() 언창(言唱)이 존재하나니 물음()을 써서 제진(提振; 提唱하고 振作)했다. 인하여() 다시() 유집(遺集)을 토력(討歷)하고 석범(昔範)을 상구(詳求)했으니 혹은 그 상(; 으로 의심됨)을 다하고 혹은 그 대()를 비웠다(). 별어가 있고(別語) 대어가 있나니(有代語焉) 왕철(往哲)의 심의(深意)를 초심(初心)에게 근청(勤請)한다. 혹 그 요(; 要領)를 들게 하고 혹 그 지(; 지취)를 나타내니 염어가 있고(拈語) 수어가 있다(垂語). 섭전(躡前; 전어를 밟다)하여 신문(申問)한 것은 나열해 진어(進語)로 삼고 인시(因時)하여 흥론(興論)한 것은 여러 변어(辨語)에 구비(具備; )했다. 후에 동참(同參)의 정려(淨侶)와 경도(經途)의 선객이 있어 공재(公齋)에 서회(胥會; 모두 모이다)했고 정려(精廬)에 환좌(環坐)하여 수방(隨方)하여 구격(扣擊; 叩問, 詰問)했다. 심상(尋常)의 응보(應報; 報應)하는 자가 혹 철집(掇集)을 써서() 동지(同志)에게 유포(流布; )했으니 무릇 십유삼권(十有三卷) 운이(云爾; 語氣助詞). 오호(嗚呼), 육일거사(六一居士; 歐陽修)가 이르되 공()은 문장으로써 천하에 천장(擅長; )했으나 그러나 성품이 강경(剛勁)하여 과합(寡合; 쉽게 投合하지 못함)했다. 관부(觀夫; 는 조사) 공재(公齋)는 무간(務簡; 업무가 簡素)했고 종사와 격양(激揚)하고는 기어(機語)를 췌집(萃集)하고 동지(同志)에게 유포하여 그 소존(所存)을 썼으니() 실로 성현의 고치(高致)라 하겠다.

楊公大年; 양억(楊億; 974-1020)이니 북송의 임제종 거사며 포성(복건 건구) 사람이며 자가 대년(大年). 젊은 시절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났으며 태종이 일찍이 불러들여 면시(面試)하고 감탄하며 신동(神童)이라 했음. 진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ㆍ시랑(侍郞)ㆍ수찬(修撰) 등의 관직을 역임(歷任)했음. 처음엔 불법을 알지 못했는데 학사(學士) 이유면(李維勉)이 종문사(宗門事)로써 서로 책발(策發)하는지라 드디어 심신(深信)이 났으며 후에 여주(汝州)의 광혜원련(廣慧元璉)을 참알(參謁)해 득법했음. 매양(每樣) 법문(法門)을 익호(翼護)하여 많이 홍력(洪力)을 붙였으며 일시에 불법을 배우는 사부(士夫)들이 영수(領袖)로 추대했음. 또 누차 조명(詔命)을 받들어 대장목록(大藏目錄)을 편제(編製)하고 경덕전등록을 교간(校刊)하였고 역경원에서 윤문(潤文)의 일직(一職)을 맡았음. 천희 4년 질병이 있더니 게를 써서 이준욱(李遵勗)에게 남기고 서거했으니 향년은 47이며 시호는 문(). 문집이 있어 행세(行世)[오등회원12. 거사전20. 송사305].

秘書; 비서(祕書)와 같음. 직무의 이름. 고대에 도서를 장관하는 관리의 호칭이니 한() 이래의 비서감(祕書監)ㆍ비서랑 같은 게 다 이것임 [백도백과].

汝州; 지금의 하남성 여주.

布鼓; 베로 만들어 이룬 북. 조정사원3. 포고(布鼓) ()의 왕존(王尊)이 동평(東平)의 재상이 되었다. 왕의 태부에게 가로되 포고(布鼓)를 가지고 뇌문(雷門)을 향하지 말라. 설자(說者)가 가로되 뇌문은 월()의 회계성문(會稽城門)이다. 대고(大鼓)가 있는데 월()이 그것을 치면 소리가 낙양에 들렸다. 포고는 포()로써 북을 만든 것이니 소리가 없음. ()는 음이 무임.

來風; 선어의 문답 중에 상대방이 보이는 바의 기봉(機鋒).

禪客相逢只彈指; 선월(禪月)의 시에 이르되 선객이 상봉하면 다만 손가락 퉁기나니 이 마음을 능히 몇 사람이나 아는가.

君子可入; 군자가팔(君子可八)로 의심됨. ()은 분변(分辨) 지효(知曉; 깨닫다. 알다)의 뜻이 있음. 이는 일개의 민방(閩方) 언사니 선록에서 군자가팔은 뜻이 군자라야 가히 분변한다, 군자라야 가히 안다가 됨.

監院; 감사(監寺). 고칭은 감원ㆍ원주ㆍ주수(主首)ㆍ사주(寺主)인데 후에 특별히 주지를 존중하여 감사로 개칭했음. 곧 중승을 총령(總領)하는 직칭이니 한 절의 감독이 됨. 이는 선종 6지사의 하나며 지위가 도사(都寺)의 다음에 위치함. 선림 중에서 당대에 있어선 감원의 1직을 설치해 온 절의 사무를 맡아서 처리했으나 송대에 이르자 절이 광대하고 대중이 많음으로 인해 그 직권을 가지고 도사 및 감사에게 나누어 주었음. 오래지 않아 감원의 이름을 또 고쳐 감사라 했음. 조정사원8을 안험컨대 동진 이후에 사주의 직이 비로소 성했으며 후세에 선문 중에 내외의 지사가 있어 감사의 수령으로 삼은 것은 곧 여기에서 본받아 좇음이라 했음 [백장청규하양서장. 상기전직위류].

一合相; 중연(衆緣)의 화합으로 인하여 1()의 사물을 형성함을 가리킴. 불교의 관점으로써 이를 말하자면 세간의 일체법이 다 일합상이 됨. 삼장법수1 일합상[출금강경] 일합상(一合相)이란 것은 대개 말하자면 중진(衆塵)이 화합하여 일세계가 됨이다. 세계가 본공(本空)이며 미진(微塵)이 불유(不有)지만 단지 중생이 깨치지 못해 망령되이 집착하여 실()로 삼는다. 만약 이것이 실유(實有)라면 곧 응당 가히 세계를 나누어 미진(微塵)으로 만들지 못하며 만약 이것이 실무(實無)라면 응당 미진을 합해 세계로 만들지 못한다. 이로 알지니 집유집무(執有執無)는 다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경에 이르되 여래가 설한 일합상은 곧 일합상이 아닌 이 이름이 일합상이라 한 게 이것이다.

著語; 타인의 기연어구(機緣語句)에 대해서 간단한 평의(評議)를 더함을 착어라고 호칭함.

畜生; <> tiryag-yoni 범어로 지률차(底栗車)니 또 방생(傍生)ㆍ횡생(橫生)ㆍ축생도(畜生道)ㆍ방생취(傍生趣)로 지음. 5()의 하나. 6도의 하나. 삼악도의 하나. 새ㆍ짐승ㆍ벌레ㆍ물고기 등 일체의 동물을 가리킴. 축생의 이름은 곧 사람이 축양(畜養)함의 뜻으로 말미암아 얻었음. 신역은 방생(傍生)이 되며 곧 그 형상이 사람의 직()과 같지 못하고 방횡(傍橫)하고 또 방행(傍行)함의 뜻을 취했음.

醻酢; 수작(酬酢)과 같음. 응대(應對)ㆍ답대(答對). ()는 응대ㆍ답대. 이아 수() (). ()은 재각절(在各切; )이니 응대임. 이아 작() (). () 계사상(繫辭上) 이런 고로 가히 더불어 수작(酬酢)한다. 한강백(韓康伯) () 수작(酬酢)은 응대와 같다. 선림보훈음의. 수작(酬酢) 아래는 음이 작이다. 객이 주인에게 알림을 가로되 작()이며 주인이 객에게 답함을 가로되 수().

達旦; 달단(達旦) 바로 천명(天明; 동이 트다)에 이름.

礙膺; 화산록 십이시(十二時) 중에 은은지(隱隱地)에서 늘 한 물건이 애응(礙膺)함이 있다 [선관책진주].

嚗然; ()은 지팡이를 놓는 소리. 장자 지북유 신농이 안석에 기대었다가 지팡이를 안고 일어나더니 박연(嚗然)하며 지팡이를 놓고 웃었다. 또 노한 소리니 집운 박() 노성(怒聲)이다.

少林壁觀; 곧 소림면벽(少林面壁)이니 보리달마가 숭산 소림사에 있으면서 면벽하며 좌선한 고사(故事)를 가리킴.

信衣; 불가에서 전수하는 옷임. 오등회원1 25조가 가로되 사자존자가 재난이 일어나지 아니한 전에 몰래 나에게 신의(信衣)와 법게(法偈)를 수여했다 하여 사승(師承)을 밝혔음. 또 육조단경 조사가 다시 가로되 옛적에 달마대사가 처음 이 국토에 도래하매 사람들이 그것를 믿지 않는지라 고로 이 옷을 전하여 신체(信體)로 삼아 대대로 상승(相承)했다.

師承; 이르자면 제자가 사장(師匠)의 법교를 승수(承受).

河獸; 도하(渡河)하는 삼수(三獸)를 가리킴. 토끼ㆍ말ㆍ코끼리 3()의 도하(渡河)로써 3()의 단혹(斷惑)과 수행의 심천(深淺)에 비유함. 성문ㆍ연각ㆍ보살이 소증(所證)에 심천이 있음이 비유컨대 토끼ㆍ말ㆍ코끼리 3수의 도하와 같나니 토끼의 도하는 곧 뜨고 말의 도하는 반에 미치고 코끼리는 곧 철저히 절류(截流). 조정사원5. 3() 1은 토끼며 2는 말이며 3은 코끼리임. 토끼가 물을 건넘엔 나아가 스스로 건너며 말은 비록 잘 용맹하나 오히려 물의 심천(深淺)을 알지 못하며 백상(白象)의 건넘은 그 근원의 바닥을 다한다.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은 그것이 토끼와 말과 같아서 비록 생사를 건너지만 법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보살의 대승(大乘)은 비유컨대 백상(白象)과 같아서 3()12연기(緣起)를 해창(解暢; 은 통할 창)하여 본무(本無)를 요득(了得)하며 일체를 구호하매 제도를 입지 않음이 없다(위의 글은 보요경1에 나옴). 지론(智論)을 보라.

懷讓; (677-744) 당대승. 금주(金州) 안강(安康; 섬서 한음)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두(). 15세에 출가하여 한 차례 율()을 익히고 뒤에 조계(曹溪)를 참알(參謁)하여 6조 혜능(慧能)의 고족(高足)이 되었음. 15년 동안 머물며 시봉했고 6조가 시적(示寂)하자 비로소 당현종(唐玄宗) 선천(先天) 2(713) 호남 남악(南嶽)의 반야사 관음대(觀音臺)에 머물면서 선종을 크게 천양(闡揚)해 남악의 한 법계(法系)를 열었으니 세칭 남악회양(南嶽懷讓). 그 법계가 청원행사(靑原行思)의 법계(靑原下)에 상대하므로 남악하(南嶽下)로 일컬으며 한가지로 남종선(南宗禪)2() 법류(法流)가 되며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이 그 법류(法流)를 계승하였음. 그 후 57(五家七宗)의 계파를 이루었음. 천보(天寶) 3811일에 형악(衡嶽; 남악)에서 원적(圓寂)했으니 나이는 68. 경종(敬宗) 때 추시(追諡)하여 대혜선사(大慧禪師)라 했음 [송고승전9. 전등록5. 오등회원3].

嫡子; ()은 정종정통(正宗正統)을 가리킴. 예컨대() 적계적전(嫡系嫡傳).

懷海; (720-814) 당대승. 속성(俗姓)은 왕()이며 복주(福州) 장락(長樂; 지금 福建에 속함) 사람. 혜조선사(慧照禪師)를 좇아 낙발(落髮)했고 형산(衡山)의 법조율사(法朝律師)에게 의지(依止)해 구족계를 받았으며 부사사(浮槎寺)에 이르러 장경(藏經)을 열람(閱覽)했음. 대력(大曆; 766-779) 초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남강(南康; 지금 江西에 속함)에서 남선(南禪; 南宗禪)의 법당(法幢)을 세웠다 함을 듣고 앞으로 가서 참알(參謁)했으며 언하(言下)에 개오(開悟)하여 그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선()을 얻었으며 드디어 그 법을 이었음. 마조가 입적(入寂)한 후 대중의 청을 받아 신오(新吳; 지금의 江西 奉新)의 백장산(百丈山)에 머물며 선법(禪法)을 전파(傳播)했음. 세칭이 백장선사(百丈禪師)며 그 선()의 이름이 백장선(百丈禪). 선문(禪門)의 규식(規式)을 제정(制定)하였으니 후에 백장청규(百丈淸規)라 일컬었음. 평생에 고절(苦節)로 고행(高行; 高尙한 행위)하여 무릇 일상(日常)의 작무(作務)에 반드시 대중에 앞선지라 총림에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말이 있으며 만년(晩年)에 이르도록 근로하며 쉬지 않았음. 원화(元和) 9년에 입적했으니 세수(世壽)95(진후의 塔銘記에 그 나이가 66이라 했음). 죽어서의 시호는 대지선사(大智禪師)며 탑명은 대보승륜(大勝寶輪). () 대관(大觀) 원년(11 07) 추시(追諡)하여 각조선사(覺照禪師)라 했고 원() 원통(元統) 3(1 335) 가시(加諡)하여 홍종묘행선사(弘宗妙行禪師)라 했음. 백장회해선사어록ㆍ백장회해선사광록 각 1권이 있어 행세(行世). 법을 이은 제자에 영우(靈祐)ㆍ희운(希運)등의 사람이 있음 [송고승전10. 전등록6].

希運; (?-850) 당대승.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며 성씨는 불상. 어릴 적에 홍주(洪州)의 황벽산(黃檗山)에서 출가했음. 총명한 지혜가 날카롭고 통달해 학문이 내외(內外. 內典外典)를 통했음. 사람들이 황벽희운(黃檗希運)이라 일컬음. 상모(相貌)가 특수히 다르고 이마의 근육이 융기(隆起)하여 구슬과 같았으며 호()하여 육주(肉珠)라 했음. 후에 경사(京師)에 노닐다가 한 할미의 지시를 만나 드디어 홍주(洪州)로 돌아가 백장회해(百丈懷海)를 알현(謁見)했고 백장이 전한 바의 심인(心印)을 얻었음. 뒤에 황벽산(黃檗山)에서 직지단전(直指單傳)의 심요(心要)를 고취(鼓吹)하자 사방의 학자가 운집하여 왔음. 때에 하동(河東)의 절도사(節度使) 배휴(裴休)가 완릉(宛陵)을 진수(鎭守)하면서 사원을 세워 영접해 설법을 청했음. 스님이 옛 산을 혹애(酷愛)한지라 고로 무릇 머무는 바의 산을 모두 황벽(黃檗)으로 일컬었으며 대중(大中) 4년에 시적했음(入寂年度가 여러 서책에 같지 못함. 종통편년13엔 대중 2년으로 지어졌고 불조통기42엔 대중 9년으로 지어졌고 불조역대통재16엔 대중 3년으로 지어지는 등). 나이는 상세치 못하고 시호는 단제선사(斷際禪師). 문하(門下)에 임제의현(臨濟義玄)ㆍ목주도종(睦州道縱) 등 열 몇 사람이 있음. 배휴가 스님의 어록 2권을 모았으니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과 황벽산단제선사전심법요(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며 널리 세상에 행해짐 [전등록9. 전법정종기7. 불조역대통재23. 석씨계고략30].

存獎; (830-888) 오대 후당(後唐)의 임제종승. 공자(孔子)의 후예(後裔)니 감천현(甘泉縣)에 유입(流入)하여 살았음. 처음엔 교지(敎旨)를 연구하다가 임제의현(臨濟義玄)이 호타(滹沱)에서 성화(盛化)한다 함을 듣고 이에 가서 친히 의지하다가 깨침이 있어 득법(得法)했음. 얼마 안되어 삼성혜연(三聖慧然)ㆍ위부대각(魏府大覺)을 옮겨가며 참알(參謁)했고 뒤에 대명부(大明府) 흥화원(興化院)에 거주했음. 배우는 제자가 매우 많았으며 조도(祖道)를 크게 열었음. 입적하자 광제선사(廣濟禪師)로 시호했음 [전등록12. 광등록12].

南院顒; 혜옹(慧顒; 860-930)이니 오대 임제종승. 하북(河北) 사람이며 흥화존장(興化存獎)의 법사(法嗣). 여주(汝州; 하남) 보응선원(寶應禪院)의 남원(南院)에 거주했으며 후에 풍혈연소(風穴延沼)에게 전법(傳法)했음. 종통편년18을 안험(按驗)컨대 스님은 후당(後唐) 명종(明宗) 장흥(長興) 원년(930)에 시적(示寂)했다 했고 석씨통감12에는 곧 스님이 후주(後周) 태조 광순(廣順) 2(952)에 시적(示寂)했다 했음. 그 나머지 사적(事蹟)은 불상(不詳)[전등록12. 석씨계고략3. 연등회요11. 증정불조도영2].

空諦; 천태가 세운 바 3(三諦; 空諦假諦中諦)의 하나. 일체 세간의 법은 유정과 비정을 논하지 않고 모두 인연으로 난 것이 되며 인연으로 난 법은 자체가 실답지 못한지라 고로 가로되 공()이며 이 도리가 진()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제(). 중론의 게인 인연으로 난 바의 법은 내가 즉시 공이라 한다는 2구에 의해 이것을 세웠음.

渺瀰; 물이 흐르면서 넓고 먼 모양.

歸省; 송대 임제종승. 기주 가씨의 아들이며 나이 약관에 역주 보수원으로 출가하여 수구(受具)했음. 수산성념(首山省念)을 이었으니 남악하 9. 여주 섭현(葉縣)의 광교원(廣敎院)에 주()했는데 그는 주지하면서 고담(枯淡)하고 엄밀하여 납자가 그를 경외했음 [광등록16. 오등회원11].

招提; <> catur-diśa. 갖춘 이름은 자투제사(柘鬪提奢)니 번역해 가로되 사방(四方). 이르자면 사방의 승()을 초제승(招提僧)이라 하고 사방승(四方僧)의 시물(施物)을 초제승물이라 하고 사방승의 머무는 곳을 초제승방(招提僧坊)이라 함. 북위 태무제(太武帝)가 시광 원년(42 4) 가람(伽藍)을 조립하고 초제(招提)로 이름했는데 초제 2()는 드디어 사원의 다른 이름이 되었음. 증일아함경14. 비사귀(毘沙鬼)가 세존에게 사뢰어 가로되 내가 여금에 이 산곡(山谷)을 초제승(招提僧)에게 보시하겠습니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은 이것을 받으십시오 [현응음의16. 혜림음의26. 석씨요람상. 명의집7. 대송승사략상].

大士; 보살의 통칭임. 혹 성문이나 및 불타를 이름함. ()란 것은 범부의 통칭이니 범부와 간별(簡別)하여 대()로 호칭함. 또 사()란 것은 사()니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대사(大事)를 하는 자를 일러 대사(大士)라 함. 한시외전. 공자가 자로ㆍ자공ㆍ안연과 더불어 지()를 말했다. 자로에게 일러 가로되 용사(勇士). 자공에게 일러 가로되 변사(辨士). 안연에게 일러 가로되 대사(大士). 법화문구기2. 대사(大士)란 것은 대론에 보살을 일컬어 대사라 했으며 또 가로되 개사(開士)라 했다. ()는 사부(士夫)를 일컬음이니 범인(凡人)의 통칭이다. ()로써 간별을 여는 고로 가로되 대() 등이다.

守珍; 송대 조동종승. 석문혜철(石門慧徹)의 법사며 악주 영죽에 거주했음 [오등회원14. 전등록24].

石門徹; 혜철(慧徹)이니 오대 조동종승. 양주(지금의 호북 양번)에 이르러 석문헌온(石門獻蘊)을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었음. 헌온이 적()하자 그 장석(丈席)을 이었음 [전등록23. 오등회원14].

德山密; 연밀(緣密)이니 오대 초승(楚僧). 호는 원명이며 운문문언의 법사며 정주 덕산에 거주했음 [오등회원15. 전등록22. 연등회요26].

雲居齊; 도제(道齊; 929-997)니 송초 법안종승. 홍주(강서) 사람. 속성은 금. 백장산 명조를 좇아 출가했고 후에 청량태흠(淸涼泰欽)을 만나 기연이 문득 계합했고 그의 법을 이음을 얻었음. 처음엔 균주 동선원에 주()했고 다음으론 홍주 쌍림원에 주()했고 뒤에 운거산(雲居山)에 거주했음. 저서에 염고ㆍ대별 등이 있어 널리 총림에서 쓰는 바가 됨. 송 태조 지도 39월에 시적했음. 나이 69, 48. 수현(搜玄)ㆍ염고ㆍ대별 등의 집()이 있어 총림에 성행함 [전등록26. 오등엄통10].

別語; 별왈ㆍ별운과 같음. 곧 선승이 타인의 대화 문답 중에 타인이 이미 회답한 것으로 나아가 따로 자기의 견식(見識)을 가하여 회답하는 언어를 가리킴. 또 통상 대어(代語)와 병칭하여 대별(代別)이라 함.

拈語; 선문의 종장이 들어 일으켜 사람에게 보이는 말임. 예컨대() 고칙ㆍ공안ㆍ기연 등이 이것임.

垂語; 수시(垂示)의 말임. 선문의 종장이 상당하여 학인에게 제시(提撕)함을 가로되 수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