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호구륭(虎丘隆; 紹隆)

태화당 2025. 11. 28. 08:28

虎丘隆禪師 道貌如甚愞者 與圜悟禪師潭之道林法席 一日 圜悟開曰 見見之時 見非是見 見猶離見 見不能及 遂竪起拳云 見麽 隆曰 見 圜悟曰 頭上安頭 隆於言下領旨 尋俾掌藏敎 有問圜悟曰 隆藏主柔易如此 何能爲哉 圜悟曰 瞌睡虎耳 及住虎丘 道大顯著 因追繹白雲端和尙立祖堂故事 乃曰 爲人之後不能躬行遺訓 於義安乎 遂圖像奉安 題讚于上 達磨 曰 闔國人難挽 西𢹂隻履歸 只應熊耳月 千古冷光輝 百丈 曰 迅雷吼破澄潭月 當下曾經三日聾 去却膏肓必死疾 叢林從此有家風 開山明敎大師 曰 春至百花觸處開 幽香旖旎襲人來 臨風無限深深意 聲色堆中絶點埃 嗚呼 百丈創立禪規以來 叢林卒不至於阤廢 實本于此 白雲以百丈配享達磨 有識靡不韙其議 可謂知本矣 隆旣能遵行奉先之禮 又從而爲讚發明其道 有足多也

虎丘隆; 紹隆(1077?-1136) 宋代楊岐派僧 和州(安徽)含山人 九歲入佛慧院 精硏律藏 曾參長蘆之淨照崇信 歷訪寶峰之湛堂文準 黃龍山之死心悟新 後赴夾山(湖南) 隨侍圜悟克勤 凡二十年 竝嗣其法 建炎四年(1130) 居平江之虎丘山雲巖禪寺 大振圜悟之禪風 世稱虎丘紹隆 久之遂成一派 卽虎丘派 圜悟示寂後 與若平共編圜悟之語錄 紹興六年示寂 壽六十(一說六十五) 門人嗣端編纂虎丘隆和尙語錄一卷 徐林撰塔銘 於日本 其法系亦頗隆盛 [釋氏稽古略四 大明高僧傳五 續傳燈錄二十七 普燈錄十四]

道貌; 指修道者的容貌

頭上安頭; 頭上再加一箇頭 比喩重複累贅 安 安放

虎丘; 虎丘山 位於江蘇吳縣閶門外 又稱武丘山 虎邱山 海湧峰 春秋晩期吳王夫差葬父闔閭於此 相傳葬後三日 有白虎踞於墓上 故稱虎丘 一說是丘形如蹲虎 遂以外形而得名 至宋代 禪風大盛 遂成爲禪僧之修行道場 及至紹隆(1077-1136)來住 僧衆雲集 道聲顯揚 遂形成虎丘派

白雲端和尙立祖堂故事; 百丈淸規證義記四尊祖章 故海會端公謂 叢林祖堂 宜祀達磨於中 百丈陪於左 而本寺之開山祖配焉 今並載智者諸師忌辰禮儀者 以演敎扶律 原原本本之恩 亦不可忘也 祖堂; 禪院中安放供奉祖師(菩提達摩等)像的殿堂

熊耳; 熊耳山 位於河南盧氏縣南方 與永寧(今洛寧縣)爲界 山之兩峰竝峙如熊耳 故稱熊耳山 乃禪宗初祖菩提達磨之塔所 [大明一統志二十九 大淸一統志一六二]

膏肓; 禪林疏語考證二 膏肓 左(左典)(成公)十年(581) 晉公疾病 求醫於秦 秦伯使醫緩爲之 未至 公夢疾爲二竪子曰 彼良醫也 懼傷我 我焉逃之 其一曰 居肓之上膏之下 若我何 醫至曰 疾不可爲也

開山; 本指開山建寺而言 因古代寺院多建於山谷幽靜處 故稱開山 且取其開闢寺基之意 又稱開基 而寺院第一代住持亦以開山尊稱之 又宗派之創始者亦稱爲開山 開祖 開山祖 開山祖師 [佛祖統紀十四 象器箋靈像類]

旖旎; 本義指旌旗隨風飄揚 引申爲形容景物柔美 女子秀麗或氣象雄偉

阤廢; 頹敗廢棄 喩衰敗

 

호구륭(虎丘隆; 紹隆) 선사는 도모(道貌)가 심히 나약(懦弱; 와 같음)한 자와 같았다. 원오선사(圜悟禪師)의 담(; 潭州)의 도림법석(道林法席)에 참여()했다. 원오가 개왈(開曰) ()을 견할 때 견은 이 견이 아니며 견이 오히려 견을 여의어야 견이 능히 미치지 못한다(릉엄경2). 드디어 주먹을 세워 일으키고 이르되 보느냐(見麽). 륭왈(隆曰) 봅니다. 원오가 가로되 두상안두(頭上安頭). 륭이 언하에 영지(領旨)했다. 이윽고 장교(藏敎; 藏經을 가리킴)를 관장(管掌)하게 했다. 어떤 이()가 원오에게 물어 가로되 륭장주(隆藏主)는 유이(柔易; 和柔하고 平易)함이 이와 같거늘 어찌 능히 하겠습니까(爲哉). 원오가 가로되 갑수(瞌睡; 졸다)하는 범()일 따름이다. 및 호구(虎丘; 호구산)에 주()하자 도가 크게 현저(顯著)했다. 백운단 화상이 조당을 세운 고사(白雲端和尙立祖堂故事)를 추역(追繹; 쫓아서 찾다)함으로 인해 이에 가로되 사람의 후손()이 되어 능히 유훈(遺訓)을 몸소 행하지 못한다면 의()에 어찌하겠는가(安乎). 드디어 상을 그려(圖像) 봉안(奉安)했고 위에 찬()을 제()했다. 달마(達磨) 가로되 합국(闔國; 全國)의 사람이 만류(挽留; )하기 어려웠나니/ 서쪽으로 척리(隻履; 외짝 신)를 가지고 돌아갔다/ 다만 웅이(熊耳)의 달에 응하여/ 천고(千古)에 냉광(冷光)이 빛난다. 백장(百丈; 懷海) 가로되 신뢰(迅雷)의 부르짖음()이 징담(澄潭)의 달을 깨뜨렸나니/ 당하(當下)에 일찍이 3일 귀가 먹음을 겪었다/ 고황(膏肓)의 필사(必死)의 질병을 제거해버렸나니(去却)/ 총림에서 이로 좇아 가풍이 있다. 개산(開山) 명교대사(明敎大師) 가로되 봄이 이르자 백화가 촉처(觸處)에 피었나니/ 유향(幽香)이 의니(旖旎)하여 사람에게 엄습(掩襲; )해 오는구나/ 임풍(臨風)하여 무한한 깊고 깊은 뜻이여/ 성색(聲色)의 더미() 속에 점애(點埃)가 끊겼다. 오호(嗚呼), 백장(百丈)이 선규(禪規)를 창립(創立)한 이래로 총림이 갑자기() 타폐(阤廢)에 이르지 않은 것은 실로 여기에 근본()한다. 백운이 백장을 달마에 배향(配享)한 것을 유식(有識)한 이들이 그 의논(議論)을 옳게 여기지(; 음이 위) 않음이 없으니() 가히 본()을 안다고 이를 만하다. ()이 이미 능히 봉선지례(奉先之禮)를 준행(遵行)하고 또 따라서() ()을 해 그 도를 발명했으니 족다(足多; 족하게 稱美)가 있음이다.

虎丘隆; 소륭(紹隆; 1077?-1136)이니 송대 양기파승. 화주(안휘) 함산(含山) 사람. 9세에 불혜원(佛慧院)에 들어가 율장을 정연(精硏)했음. 일찍이 장로(長蘆)의 정조숭신(淨照崇信)을 참알(參謁)했으며 보봉(寶峰)의 담당문준(湛堂文準)ㆍ황룡산의 사심오신(死心悟新)을 역방(歷訪)하였음. 후에 협산(夾山; 湖南)에 다다라 원오극근(圜悟克勤)을 따르며 모시기가 무릇 20년이었으며 아울러 그 법을 이었음. 건염 4(1130) 평강(平江)의 호구산(虎丘山) 운암선사(雲巖禪寺)에 거주하며 원오의 선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며 세칭이 호구소륭(虎丘紹隆). 오래되어 드디어 1()를 이루었으니 곧 호구파(虎丘派). 원오가 시적(示寂)한 후 약평(若平)과 함께 원오의 어록을 함께 편집했음. 소흥 6년 시적했으니 나이는 60(일설엔 65). 문인(門人) 사단(嗣端)이 호구륭화상어록 1권을 편찬(編纂)했으며 서림(徐林)이 탑명(塔銘)을 지었음. 일본에서도 그 법계(法系)가 또한 자못 융성함 [석씨계고략4. 대명고승전5. 속전등록27. 보등록14].

道貌; 수도자의 용모를 가리킴.

頭上安頭; 머리 위에 다시 한 개의 머리를 더함이니 중복과 누췌(累贅; 군더더기)에 비유. ()은 안방(安放; 안치).

虎丘; 호구산(虎丘山)이니 강소 오현 창문(閶門) 밖에 위치함. 또 명칭이 무구산(武丘山)ㆍ호구산(虎邱山)ㆍ해용봉(海湧峰). 춘추 만기(晩期) 오왕 부차가 부친 합려를 여기에 안장했는데 상전(相傳)하기를 안장한 후 3일 만에 백호가 묘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여 고로 명칭이 호구며 일설엔 이는 구형(丘形)이 웅크린 범과 같아서 드디어 외형으로써 득명(得名)했다 함. 송대에 이르러 선풍이 대성(大盛)했고 드디어 선승의 수행 도량이 되었고 소륭(1077-1136)이 내주(來住)함에 이르러 승중이 운집하고 도성(道聲)이 현양(顯揚)하여 드디어 호구파를 형성했음.

白雲端和尙立祖堂故事; 백장청규증의기4 존조장. 고로 해회단공(海會端公; 守端을 가리킴)이 이르기를 총림의 조당(祖堂)은 마땅히 달마를 가운데에 제사 지내고 백장은 왼쪽에 모시고 본사의 개산조(開山祖)를 배향(配享)해야 한다 했음. 이제 지자(智者)와 여러 스님들의 기신(忌辰; 기일)의 예의를 기재하는 것은 연교부율(演敎扶律)한 원원본본(原原本本; 원본의 첩어)의 은혜를 또한 가히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祖堂; 선원 중 조사(보리달마 등) ()을 안방(安放)하고 공봉(供奉)하는 전당(殿堂).

熊耳; 웅이산이니 하남 노씨현 남방과 영녕(永寧; 지금의 낙녕현)의 경계에 위치함. 산의 두 봉우리가 병치(竝峙)한 게 웅이와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웅이산임. 곧 선종 초조 보리달마의 탑소(塔所)[대명일통지29. 대청일통지162].

膏肓; 선림소어고증2. 고황(膏肓) (左典) (成公) 10(581) 진공(晋公)이 질병에 걸려 진()에 의원을 구하자 진백(秦伯)이 의원으로 하여금 그것을 완화하게 하였다. 이르지 아니해서 진공의 꿈에 질병이 두 수자(竪子. 더벅머리. 는 조사)가 되어 가로되 그는 양의(良醫)이므로 나를 다치게 할까 두렵나니 내가 어찌 그에게서 도망하리오. 그 하나가 가로되 황(; 명치 황)의 위와 고(; 명치 끝 고)의 아래에 거처한다면 나를 어찌 하겠는가. 의원이 이르러 가로되 질병을 가히 다스리지 못합니다 하였다.

開山; 본래 개산하여 사원을 건축함에 대해서 말함임. 고대의 사원이 다분히 산곡의 그윽하고 고요한 곳에 건립했기 때문에 고로 일컬어 개산이라 함. 또 그 사원의 기초를 개벽함의 뜻을 취해 또 일컬어 개기(開基)라 하며 사원의 제1대 주지를 또한 개산으로써 그를 존칭함. 또 종파의 창시자를 또한 일컬어 개산ㆍ개조ㆍ개산조ㆍ개산조사라 함 [불조통기14. 상기전영상류].

旖旎; 본래 뜻은 정기(旌旗)가 바람 따라 표양(飄揚)함을 가리킴. 인신(引申)하여 경물(景物)이 유미(柔美)하거나 여자가 수려(秀麗)하거나 혹 기상(氣象)의 웅위(雄偉)함을 형용함.

阤廢; 퇴패(頹敗)하여 폐기(廢棄). 쇠패(衰敗)에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