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오순(吳恂)

태화당 2025. 11. 29. 08:04

興元府吳恂 字德夫 以元豐元年任豫章法曹 時郡帥王觀文韶迎晦堂和尙入城 於大梵院而咨心要 吳亦往參扣 晦堂曰 公平生學解記憶多聞卽不問 父母未生已前道將一句來 吳窘無以對 遂於行住坐臥提撕此語 忽自知有 而機莫能發 乃閱傳燈錄 至鄧隱峰倒卓而化 其衣順體不褪 深以爲疑 自是徧問尊宿 或答以神通妙用 或答以般若力資 疑終不釋 復趨晦堂而問之 晦堂笑曰 公今侍立 是順耶 是逆耶 吳曰 是順 晦堂曰 還疑否 吳曰 不疑 晦堂曰 自旣不疑 何疑於彼 吳於言下大徹 甞有二偈題于晦堂 中無門戶四無旁 學者徒勞捉影忙 珍重故園千古月 夜來依舊不曾藏 又廬峰居士舊門人 得師眞的的親 大地撮來成箇眼 翻騰別是一般新 晦堂有偈送之 海門山嶮絶行蹤 踏斷牢關信已通 自有太平基業在 不論南北與西東 噫 吳爲府椽 能自公餘暇質疑於尊宿 與一行作吏 此事便廢者 遠矣 是時叢林皆頎慕其風采 亦可謂特立之士 林間錄以德夫爲敦夫 無乃誤耶

興元府; 三國時期設置的梁州 治所在陝西漢中 隋大業三年(607)廢 乾元元年(758) 復爲梁州 唐德宗改其爲興元府 此後不再稱梁州 [百度百科]

吳恂; 宋代黃龍派居士 字德夫 元豐初任豫章法曹時 參晦堂祖心於大梵院 言下大悟 後官至祕書 [五燈會元十七 續傳燈錄二十二 居士傳二十五]

法曹; 古代司法官署 亦指掌司法的官吏

王觀文韶; 觀文 宋代觀文殿學士的簡稱 [百度百科] 王韶; (1030-1081) 宋代黃龍派居士 字子淳 德安(湖北安陸)人 北宋名將 曾爲觀文殿學士 故世稱王觀文 爲洪州刺史 樞密院使 嘗延黃龍山晦堂祖心問道 默有所契 [百度百科 續傳燈錄二十二 居士傳二十五 ]

; 指使居住 安置

父母未生已前; 父母未生以前也 與空劫已前 空王以前 空王那畔 朕兆未萌以前 本來面目等 皆爲同類同語

珍重; 勸自重自愛之詞也 大宋僧史略一 臨去辭曰珍重者何 此則相見旣畢 情意已通 囑曰珍重 猶言善加保重 請加自愛 好將息 宜保惜 同也

; 描繪 邈 同描 貌

的的; 確實 眞實 的 實也

 

흥원부(興元府) 오순(吳恂)은 자가 덕부(德夫). 원풍(元豐) 원년(元年; 1078) 예장(豫章) 법조(法曹)에 임명되었다. 때에 군수(郡帥; 郡守) 왕관문소(王觀文韶)가 회당화상(晦堂和尙; 祖心)을 맞이해 입성(入城)케 하고 대범원(大梵院)에 안치(安置; )하고는 심요(心要)를 물었는데() ()도 또한 가서 참구(參扣)했다. 회당(晦堂)이 가로되 공()의 평생의 학해(學解)ㆍ기억(記憶)ㆍ다문(多聞)은 곧 묻지 않습니다.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已前)을 일구(一句) 말해 가지고 오시오. ()가 막혀서() 응대(應對; )할 게 없었다. 드디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차어(此語)를 제시(提撕; 參究)하다가 홀연히 스스로 지유(知有; 알아서 깨달음)했으나 기()를 능히 발()하지 못했다. 이에 전등록을 열람하다가 등은봉(鄧隱峰)이 거꾸로 서서 화했는데(倒卓而化) 그 옷도 순체(順體)하여 벗어지지() 않았다에 이르러 깊이 의심으로 삼았다. 이로부터(自是) 존숙(尊宿)에게 두루 물었다. 혹 신통의 묘용(妙用)으로써 답했고 혹 반야력(般若力)의 도움()으로써 답했다. 의심이 마침내 풀리지() 않자 다시 회당(晦堂)에게 달려가() ()를 물었다. 회당이 웃으며 가로되 공()이 지금 시립(侍立)했거니와 이는 순()입니까, 이는 역()입니까. 오왈(吳曰) 이 순()입니다. 회당이 가로되 도리어 의심합니까. 오왈 의심하지 않습니다. 회당이 가로되 스스로 이미 의심하지 않거늘 어찌 그()를 의심합니까. 오가 언하에 대철(大徹)했다. 일찍이 2게가 있어 회당(晦堂)에 제()했다. 중간()에 문호(門戶)가 없고 사면()에 곁()이 없거늘/ 학자가 도로(徒勞; 헛수고) 그림자를 잡느라() 바쁘다/ 진중(珍重) 고원(故園)의 천고(千古)의 달이여/ 야래(夜來; 는 조사)에 의구(依舊)하여 일찍이 감추지 않았다. , 여봉거사(廬峰居士; 오순 자신을 가리킴)는 오랜() 문인(門人)인데/ 스님의 진(; 肖像)을 막득()하니 적적(的的; 확실히) 친하다/ 대지(大地)를 집어() 오매 저() 눈을 이루어/ 번등(翻騰)하니 별다른 이 일반의 새로움이다. 회당이 게가 있어 그()를 송별했다. 해문(海門)은 산이 험해 행종(行蹤)이 끊겼나니/ 뇌관(牢關)을 답단(踏斷)하여 소식(消息; )이 이미 통했다/ 저절로 태평의 기업(基業)이 있어/ 남북과 서동(西東)을 논하지 않는다. (), ()는 부연(府掾; 官吏. 저본에 府椽으로 지었음)이면서 능히 스스로 공무(公務; )의 여가(餘暇)에 존숙에게 질의(質疑)했으니 한결같이 행해(一行) 관리를 지어(作吏) 차사(此事)를 바로(便) ()하는 자와는 멀다(遠矣). 이때 총림에서 모두 그 풍채()를 기모(頎慕; 길이 흠모)했으니 또한 가히 특립지사(特立之士)라고 이를 만하다. 임간록에 덕부(德夫)를 돈부(敦夫)라 했는데 이에 오()가 없다 하겠는가.

興元府; 삼국시기 설치한 양주(梁州)니 치소(治所)는 섬서 한중에 있었음. 수 대업 3(607) 폐했고 건원 원년(758) 다시 양주라 했음. 당 덕종이 그것을 고쳐 흥원부라 했고 이 후에 다시 양주라고 일컫지 않았음 [백도백과].

吳恂; 송대 황룡파 거사. 자는 덕부(德夫)며 원풍 초 예장(豫章) 법조(法曹)를 맡았을 때 회당조심(晦堂祖心)을 대범원에서 참해 언하에 대오했고 후에 벼슬이 비서에 이르렀음 [오등회원17. 속전등록22. 거사전25].

法曹; 고대의 사법관서(司法官署). 또한 사법을 관장하는 관리를 가리킴.

王觀文韶; 관문(觀文)은 송대 관문전(觀文殿)학사의 간칭 [백도백과]. 王韶; (1030-1081) 송대 황룡파거사. 자는 자순이며 덕안(호북 안륙) 사람. 북송의 명장이며 일찍이 관문전 학사가 된지라 고로 세칭이 왕관문(王觀文). 홍주자사ㆍ추밀원사가 되었고 일찍이 황룡산 회당조심(晦堂祖心)을 맞이해 도를 물었고 묵묵히 계합하는 바가 있었음 [백도백과. 속전등록22. 거사전25].

; 거주하게 함을 가리킴. 안치(安置).

父母未生已前; 부모가 출생하지 아니한 이전임. 공겁이전ㆍ공왕이전ㆍ공왕나반(空王那畔)ㆍ짐조미맹이전(朕兆未萌以前)ㆍ본래면목 등과 모두 동류의 동어(同語)가 됨.

珍重; 자중자애(自重自愛)를 권하는 말임. 대송승사략1. 떠남에 임해서 말해 가로되 진중(珍重)이라고 하는 것은 왜인가 하면 이것은 곧 상견을 이미 마치고 정의(情意)가 이미 통했음이다. 부촉(付囑)해 가로되 진중이라 함은 오히려 말하되 잘 보중(保重)을 더하라, 청컨대 자애(自愛)를 더하라, 좋게 장차 쉬어라(好將息), 의당 보호하여 아껴라(宜保惜) 함과 같음이다.

; 묘회(描繪; 묘사하여 그림). ()은 묘()ㆍ막(; 묘사하다)과 같음.

的的; 확실. 진실. ()은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