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추밀(樞密) 장공영숙(蔣公頴叔)

태화당 2025. 12. 6. 08:28

樞密蔣公頴叔 與圓通秀禪師爲方外友 公平日雖究心宗 亦泥于敎乘 因撰華嚴經解三十篇 頗負其知見 元豐間 漕淮上 至長蘆訪秀 而題方丈壁曰 余凡三日遂成華嚴解 我於佛法有大因緣 異日當以此地比覺城東際 唯具佛眼者當知之 于時 秀辨之曰 公何言之易耶 夫華嚴者 圓頓上乘 乃現量所證 今言比覺城東際 則是比量 非圓頓宗 又云異日 且一眞法界無有古今 故云十世古今始終不離於當念 若言異日今日 豈可非是乎 又云具佛眼者方知 然經云 平等眞法界 無佛無衆生 凡聖情盡 彼我皆忘 豈有愚智之異 若待佛眼天眼人眼豈可不知哉 公於是悔謝 及秀示寂 公以文祭之曰 方外之友 唯余與師 念昔相見 一語投機 師來長蘆 我漕淮沂 亦復交臂 笑言熙怡 我論華嚴 師爲品題 陷虎機緣 脫略徑畦 曷爲捨我 先其往而 蔬奠致誠 庶其歆之 嗚呼 公於華嚴非素業矣 而欲追蹤棗柏大士 遊普賢行願海 未免背馳 秀不敢孤方外契 爲之辨明 然一字之師 似可羞張迴浪稱於齊己

樞密; 舊指國家發號施令的機構(樞密院) 或朝廷重臣(樞密使)

敎乘; 卽敎門也 宗乘(宗門)之對語

覺城; 指印度摩揭陀國伽耶城 乃佛陀成正覺之都城 故稱覺城 六十華嚴經四十五 爾時 文殊師利菩薩 建立彼諸比丘菩提心已 與其眷屬 漸遊南方 至覺城東 住莊嚴幢娑羅林中 大塔廟處 過去諸佛所遊止處 亦是過去諸佛爲菩薩時 修苦行處

比量; 因明三量之一 又心識上三量之一 比者比類也 以分別之心 比類已知之事 量知未知之事也 如見煙比知於彼有火是也 因而因明法者 以因與喩比知主義之軌式也 總稱爲比量者 是八識中唯意識之用也

一眞法界; 一卽無二 眞卽不妄 交徹融攝 故稱法界 卽是諸佛平等法身 從本以來 不生不滅 非空非有 離名離相 無內無外 惟一眞實 不可思議 故稱一眞法界 [華嚴經疏鈔六十 華嚴經疏鈔玄談一]

十世; 華嚴經隨疏演義鈔二 謂過去說過去 過去說現在 過去說未來 現在說過去 現在說平等 現在說未來 未來說過去 未來說現在 未來說無盡 三世說一念 前九爲別 一念爲總 故名十世

佛眼; 五眼之一 佛名覺者 覺者之眼云佛眼 照了諸法實相之眼也 又別於前之四眼 四眼至佛則總名爲佛眼 毘尼止持會集十四 佛眼 謂具肉天慧法四眼之用 無不見知 如人見極遠處 佛見則爲至近 人見幽暗處 佛見則爲明顯 乃至無事不見 無事不知 無事不聞 聞見互用 無所思惟 一切皆見也

天眼; 色界天人所有之眼 人中修禪定可得之 不問遠近內外晝夜 皆能得見

交臂; 本義指手臂交叉或接觸的動作 引申爲拱手示敬

脫略; 無障礙束縛之義 略 簡略

棗栢大士; 李長者通玄在則天朝 會華嚴經新譯八十卷成 持至太原 寓高仙奴家 日食十棗 柏葉餠一枚 後人號爲棗栢大士

背馳; 背道而馳 指彼此方向或行動相反

一字之師; 指改正一個字的老師

齊己; 唐末五代詩僧 湖南益陽人 俗姓胡 自號衡嶽沙門 幼於潙山同慶寺出家習學律儀 性喜吟詠 不求名利 後赴潭州石霜山慶諸會下 請知僧務 龍德元年(921) 後唐莊宗請師任僧正 師作渚宮莫問詩十五首(收於白蓮集五)表己志 愛樂山水 不近王侯  師之頸有瘤 時人戱稱爲詩囊 其所作詩 氣調淸淡 與同時先輩詩僧貫休爲唐代詩僧之首 遺詩有光憲所編白蓮集十卷 按釋氏疑年錄五 師示寂於後唐長興(930 -933)末年 世壽七十餘 [宋高僧傳三十 釋氏稽古略三 通志略二十二 大淸一統志三六九]

 

추밀(樞密) 장공영숙(蔣公頴叔)이 원통수(圓通秀; 法秀) 선사와 방외우(方外友)가 되었다. ()이 평일에 비록 심종(心宗)을 연구(硏究; )했지만 또한 교승(敎乘)에 구니(拘泥; )되었다. 화엄경해(華嚴經解) 30()을 지음()으로 인해 자못 그 지견(知見)을 자부(自負; )했다. 원풍(元豐; 1078-1085) 간 회상(淮上)에서 조운(漕運)했는데 장로(長蘆; 寺名)에 이르러 수()를 예방했다. 방장 벽()에 제()해 가로되 내()가 무릇() 3일 만에 드디어 화엄해(華嚴解)를 완성(完成; )했다. 나는 불법에 대인연(大因緣)이 있으며 이일(異日; 다른 날) 마땅히 차지(此地)로써 각성동제(覺城東際)에 비교()하리니 오직 불안(佛眼)을 갖춘 자라야 마땅히 이()를 알지라. 우시(于時; 당시)에 수()가 이()를 분변()해 가로되 공()은 어찌하여() ()를 말함이 쉽습니까. 무릇 화엄이란 것은 원돈(圓頓)의 상승(上乘; 大乘)이며 곧() 현량(現量)의 소증(所證)입니다. 지금 말한 각성동제(覺城東際)에 비교()한다는 것은 곧 이 비량(比量)이며 원돈종(圓頓宗)이 아닙니다. 우운(又云) 이일(異日)이라 했지만 또() 일진법계(一眞法界)는 고금이 있지 않습니다. 고운(故云) 십세(十世)의 고금이 시종(始終) 당념(當念)을 여의지 않는다. 만약 이일(異日)과 금일(今日)을 말한다면 어찌 가히 이것이 아니겠습니까(非是乎). 우운(又云) 불안(佛眼)을 갖춘 자라야 비로소 안다 하셨지만 그러나 경에 이르되 평등한 진법계(眞法界)엔 불()도 없고 중생도 없고 범성(凡聖)이란 정()이 다하고 피아(彼我)가 모두 없다() 했거늘 어찌 우지(愚智)의 다름()이 있겠습니까. 만약 불안(佛眼)을 기다린다면 곧 천안(天眼)과 인안(人眼)인들 어찌 가히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 이에 회사(悔謝; 뉘우치고 사과)했다. 및 수()가 시적(示寂)하자 공이 글로써 그에 제사해(祭之) 가로되 방외지우(方外之友)는 오직 나()와 스님이다. 옛적()의 상견을 생각하건대 일어(一語)에 투기(投機)했다. 스님은 장로(長蘆)에 오셨고 나는 회기(淮沂)에서 조운(漕運; )했다. 또한 다시 교비(交臂)했고 소언(笑言)하고 희이(熙怡; 和樂. 喜悅)했다. 나는 화엄을 논했고 스님은 품제(品題)했다. 함호(陷虎)의 기연(機緣)이며 탈략(脫略)한 경휴(徑畦; 논두렁 길)였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먼저 그 가셨는가. 소전(蔬奠)으로 치성(致誠)하니 그, 이를 흠향(歆饗; )하시길 바라나이다(). 오호(嗚呼), 공은 화엄에 소업(素業; 본디의 업)이 아니었는데 조백대사(棗柏大士)를 추종(追蹤)하여 보현행원해(普賢行願海)에 노닐고 싶었으나 배치(背馳)를 면하지 못했다. ()가 감히 방외계(方外契)를 저버리지() 못해 그()를 위해 변명(辨明)했다. 그러나 일자지사(一字之師)니 가히 제기(齊己)를 일컬은 장회랑(張迴浪; 未詳)을 수치스럽게() 한 것과 흡사하다 하리라.

樞密; 옛날에 국가의 발호시령(發號施令)의 기구(추밀원)나 혹 조정의 중신(추밀사)을 가리킴.

敎乘; 즉 교문(敎門)이니 종승(宗乘; 종문)의 대어(對語).

覺城; 인도 마갈타국 가야성을 가리킴. 곧 불타가 정각을 이룬 도성인지라 고로 명칭이 각성임. 60화엄경45. 이때 문수사리보살이 저 모든 비구의 보리심을 건립하고는 그의 권속과 함께 점차 남방을 유람하다가 각성(覺城)의 동쪽에 이르러 장엄당사라림 중의 대탑묘처에 거주했는데 과거제불이 노닐고 머문 바의 처소였으며 역시 과거제불이 보살이 되었을 때 고행을 닦던 곳이었다.

比量; 인명(因明) 3()의 하나. 또 심식상(心識上) 3량의 하나. ()란 것은 비류(比類; 比較). 분별하는 마음으로 이미 아는 일을 비류하여 미지(未知)의 일을 헤아려 앎임. 예컨대() 연기를 보매 그곳에 불이 있음을 비교하여 아는 것이 이것임. 이로 인해 인명(因明)의 법이란 것은 인()과 비유로 비교해서 아는 주의(主義)의 궤식(軌式)이니 모두 일컬어 비량(比量)이라 하는 것임. 이는 8식 중에 오직 의식의 씀임.

一眞法界; ()은 곧 무이(無二)며 진()은 곧 불망(不妄)이며 교철(交徹; 交通)하며 융섭(融攝)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법계임. 곧 이 제불의 평등한 법신이 종본이래로 불생불멸이며 비공비유며 이명절상(離名離相)이며 무내무외(無內無外)한 유일한 진실이며 불가사의인지라 고로 명칭이 일진법계임 [화엄경소초60. 화엄경소초현담1].

十世; 화엄경수소연의초2. 이르자면 과거에 과거를 설하고 과거에 현재를 설하고 과거에 미래를 설하고 현재에 과거를 설하고 현재에 평등을 설하고 현재에 미래를 설하고 미래에 과거를 설하고 미래에 현재를 설하고 미래에 무진을 설하고 3()1()을 설한다. 9는 별()이 되고 1념은 총()이 되나니 고로 이름이 10().

佛眼; 5()의 하나. 불타를 이름해 각자(覺者)며 각자의 눈을 일러 불안이라 함. 제법실상을 비추는 눈임. 또 앞의 4안과 구별하자면 4안이 불()에 이르면 곧 총명(總名)이 불안이 됨. 비니지지회집14. 불안(佛眼) 이르자면 육천혜법(肉天慧法) 4안의 용()을 갖추어 견지(見知)하지 못함이 없다. 예컨대() 사람이 보면 극히 먼 곳이지만 불타가 보면 곧 지극히 가까움이 되고 사람이 보면 유암(幽暗)한 곳이지만 불타가 보면 곧 명현(明顯)이 된다. 내지 보지 못하는 일이 없고 알지 못하는 일이 없고 듣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들음과 봄을 호용(互用)하여 사유하는 바가 없이 일체를 모두 본다.

天眼; 색계의 천인이 소유한 눈. 인중(人中)에서 선정(禪定)을 닦아 가히 그것을 얻으며 원근ㆍ내외ㆍ주야를 묻지 않고 모두 능히 득견(得見).

交臂;본의(本義)는 수비(手臂)를 교차()하거나 혹 접촉하는 동작을 가리킴. 인신(引申; 轉義)하여 공수(拱手)하며 공경을 보임이 됨.

脫略; 장애와 속박이 없음의 뜻. ()은 간략.

棗栢大士; 이장자(李長者) 통현(通玄)이 측천조(則天朝)에 마침 화엄경신역 80권이 이루어지자 가지고 태원(太原)에 이르러 고선노(高仙奴) 집에 우거(寓居)하면서 하루에 10(; 대추)와 백엽병(柏葉餠; 잣잎으로 만든 떡) 1()를 먹었는데 후인이 호해 조백대사라 했음.

背馳; 길을 등지고 달림. 피차 방향 혹 행동이 상반(相反)됨을 가리킴.

一字之師; 일개자(一個字)를 개정(改正)하는 노사(老師; 스승)를 가리킴.

齊己; 당말 오대 시승(詩僧). 호남 익양 사람이며 속성은 호며 자호(自號)는 형악사문. 어릴 적에 위산 동경사에서 출가하여 율의(律儀)를 습학(習學)했음. 성격이 음영(吟詠)을 좋아했고 명리를 구하지 않았음. 후에 담주 석상산 경제의 회하(會下)에 다다랐고 요청하여 승무(僧務)를 지(; 主宰)했음. 용덕 원년(9 21) 후당 장종이 스님을 초청해 승정(僧正)에 임명하자 스님이 저궁막문시(渚宮莫問詩) 15(白蓮集五에 수록되었음)를 지어 자기의 의지(意志)를 표했음. 산수를 애요(愛樂)했고 왕후를 가까이하지 않았음. 스님의 목에 혹이 있어 시인(時人)이 희롱으로 시낭(詩囊)이라 호칭했음. 그가 지은 바 시는 기조(氣調)가 청담(淸淡)했고 같은 시대의 선배 시승 관휴(貫休)와 더불어 당대(唐代) 시승의 으뜸이었음. 유시(遺詩)에 광헌(光憲)이 편()한 바 백련집(白蓮集) 10권이 있음. 석씨의년록5를 안험컨대 스님은 후당 장흥(930-933) 말년에 시적했고 세수는 70여임 [송고승전30. 석씨계고략3. 통지략22. 대청일통지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