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威儀寂靜分第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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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威儀中에 性靜無染이니라 雲菴曰 威儀者는 行住坐臥也며 寂靜者는 去來不動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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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의(四威儀) 중에 자성이 적정(寂靜)하여 물듦이 없다. 운암(雲菴. 了性禪師)이 가로되 위의란 것은 행주좌와며 적정(寂靜)이란 것은 거래하면서 움직이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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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四斷化身出現受福疑니라 論云 若諸菩薩不受福德이라하면 云何諸菩薩福德을 衆生受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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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사(二十四)는 화신이 출현하여 복덕을 받는가 하는 의심을 끊음이다. 논에 이르되 만약 제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 하면 어떻게 제보살의 복덕을 중생이 수용(受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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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여 若有人言호대 如來若來 若去 若坐 若臥라하면 是人不解我所說義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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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하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알지 못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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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鈔云 佛言호대 若有人言 如來有來有去 有坐有臥라하면 卽不解佛意也니 何故오 只如衆生妙性이 還有來去坐臥否아 衆生亦如是하고 如來亦如是하야 行住坐臥四威儀中에 常住寂滅이니 若有動者면 卽云不解所說義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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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에 이르되 부처가 말하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옴이 있다, 감이 있다, 앉음이 있다, 누움이 있다 하면 곧 부처의 뜻을 알지 못했음이니 무슨 연고냐. 지여(只如) 중생의 묘성(妙性)이 도리어 오거나 가거나 앉거나 누움이 있는가. 중생도 또한 이와 같고 여래도 또한 이와 같아서 행주좌와의 사위의 중에 적멸에 상주(常住)하나니 만약 움직임이 있다 하면 곧 이르되 설한 바 뜻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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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오 如來者는 無所從來며 亦無所去니 故名如來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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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고냐, 여래란 것은 좇아오는 곳도 없으며 또한 가는 곳도 없나니 고로 이름이 여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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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鈔云 如來者는 來而無來며 去而不去며 住而不住며 非動非靜이니 上合諸佛하고 下等羣生하야 一性平等한지라 故號如來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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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에 이르되 여래란 것은 오더라도 옴이 없으며 가더라도 가지 않으며 머물더라도 머물지 않으며 움직임도 아니고 고요함도 아니니 위로는 제불에 합하고 아래론 군생과 제등(齊等)하여 일성(一性)이 평등한지라 고로 호가 여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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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者禪師頌曰 如來非動靜이라 言說未形容이니 斷除人我見하야사 方得達眞宗이니라 見相不求相하고 身空法亦空이니 往來無所著하고 去住盡皆通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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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선사가 송왈 여래는 동정(動靜)이 아닌지라/ 언설로 형용하지 못하나니/ 인아견(人我見)을 단제(斷除)해야/ 비로소 진종(眞宗)을 통달함을 얻는다./ 모양을 보매 모양을 구하지 않고/ 몸이 공하고 법도 또한 공했으니/ 왕래에 집착하는 바가 없고/ 거주에 모두 다 통달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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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禪師曰 山門頭合掌하고 佛殿裏燒香이로다 頌曰 衲捲秋雲去復來하니 幾迴南嶽與天台아 寒山拾得相逢笑하니 且道笑箇什麼오 笑道同行步不擡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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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사가 가로되 산문 앞에서 합장하고 불전 속에서 소향한다. 송왈 납의(衲衣)로 추운(秋雲)을 걷으며 갔다가 다시 오나니/ 몇 번이나 남악과 천태를 돌았던가/ 한산(寒山)1과 습득(拾得)2이 상봉하여 웃나니/ 그래 말하라 무엇을 웃는가/ 웃으며 말하기를 동행하면서 걸음을 들지 못하도다.
- 한산(寒山); 당대(唐代)의 은사(隱士)니 또한 호칭이 한산자(寒山子)임. 천태산(天台山)의 한암(寒巖)의 어두운 굴 속에 거주했으며 그 성씨가 상세치 못함으로 인하여 한산으로 일컬음.
- 습득(拾得); 당대(唐代) 천태산 국청사(國淸寺) 부엌 속에 두 고행(苦行)이 있었으니 가로되 한산자(寒山子)와 습득(拾得)임. 처음에 풍간선사(豐干禪師)가 산중을 경행(經行)하다가 적성(赤城)의 길 가에 이르러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드디어 이를 찾았는데 몇 살쯤 되는 한 아이를 보았음. 처음엔 목우(牧牛)하는 사람인가 했는데 및 물어보매 이르기를 여기에 고독하게 버려졌다 했음. 풍간이 이에 습득으로 이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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