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47칙 송 평창

태화당 2021. 8. 26. 10:12

一二三四五六周而復始 *滴水滴凍 費許多工夫作什麽 碧眼胡僧數不足三生六十劫 達磨何曾夢見 闍黎爲什麽知而故犯 少林謾道付神光一人傳虗萬人傳實 從頭來已錯了也 卷衣又說歸*天竺賺殺一船人 懡㦬不少 天竺茫茫無處尋在什麽處 始是太平 如今在什麽處 夜來却對乳峰宿刺破爾眼睛 也是無風起浪 且道是法身是佛身 放爾三十棒

 

滴水冰生; 滴下一滴水 立刻凍成冰 形容天氣十分寒冷

天竺; 印度之古稱 又作天篤 天毒 身毒 按後漢書西域傳 天竺國 一名身毒 在月氏之東南數千里 俗與月氏同 西域記二 天竺之稱 異議糺紛 舊云身毒 或曰賢豆 今從正音 宜云印度 …… 印度者 唐言月 月有多名 斯其一稱 …… 良以其土聖賢繼軌 導凡御物 如月照臨 由是義故 謂之印度 括地志云 天竺國有東西南北中央五國 卽今五印度也

 

일이삼 사오륙이지만 (; 의 뜻이 있음)하고는 다시 시작한다. 적수적동(*滴水滴凍)이다. 허다한 공부를 허비해서 무엇하려는가. 벽안호승(碧眼胡僧; 달마)일지라도 셈을 족히 못하리라. 삼생육십겁(三生六十劫)엔들 달마를 어찌 일찍이 꿈엔들 보겠는가. 사리(闍黎)가 무엇 때문에 알면서도 짐짓 범하는가. 소림에서 도연히 말하되 신광(神光)에게 부촉했다 하고 1인이 허()를 젆파매 만 인이 실()로 전하는지라 꼭대기()로 좇아오면서 이미 틀렸다. 옷을 거두어 또 설하되 천축(*天竺)으로 돌아간다 하였다. 한 배()의 사람을 너무 속이더니 마라(懡㦬)가 적지 않다. 천축이 망망(茫茫)하여 찾을 곳이 없더니 어느 곳에 있느냐. 비로소 이 태평이로다만(찾을 곳이 없을 때) 여금에 어느 곳에 있느냐. 야래(夜來; 는 조사)에 도리어 유봉(乳峰)을 마주하여 숙박한다. 너희의 눈동자를 자파(刺破)하는구나. 또한 이 무풍기랑이다. 그래 말하라 이것(유봉을 마주하는 것)이 법신인가 이것이 불신(佛身; 一作化身)인가. 너희에게 30방 놓으리라.

 

滴水冰生; 한 방울의 물이 아래로 방울져 떨어지면 입각(立刻; 즉각) 얼어서 얼음을 이룸이니 천기(天氣; 날씨)가 십분 한랭함을 형용함.

天竺; 인도의 고칭(古稱). 또 천독(天篤)ㆍ천독(天毒)ㆍ신독(身毒)으로 지음. 후한서 서역전(西域傳)을 안험(按驗)컨대 천축국은 일명(一名)이 신독(身毒)이며 월지(月氏)의 동남 수천 리에 있으며 속칭으론 월지(月氏)와 같다 했음. 서역기2. 천축의 명칭은 이의(異議)가 규분(糺紛; 곧 얽히어 어지러움. )하다. 예전엔 이르기를 신독(身毒) 혹은 가로되 현두(賢豆)라 했거니와 이제 정음(正音)을 좇자면 마땅히 이르되 인도(印度)…… 인도란 것은 당나라 말로 달()이다. 달에 여러 이름이 있나니 이는 그 일칭(一稱)이다 …… 진실로 그 국토엔 성현(聖賢)이 계궤(繼軌)하여 범부를 인도(引導)하고 인간을 다스리나니 마치 달이 조림(照臨)함과 같다. 이 뜻을 말미암는 연고로 인도라고 말한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되 천축국은 동ㆍ서ㆍ남ㆍ북ㆍ중앙의 다섯 나라가 있으니 즉금의 5인도(印度)이다.

 

雪竇善能於無縫罅處 出眼目頌出敎人見 雲門道六不收 雪竇爲什麽却道 一二三四五六 直是碧眼胡僧也數不足 所以道 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須是還他屋裏兒孫始得 適來道 一言一句 應時應節 若透得去 方知道不在言句中 其或未然 不免作情解 五祖老師道 釋迦牟尼佛 下賤*客作兒 庭前柏樹子 一二三四五 若向雲門言句下 *諦當見得 相次到這境界 少林謾道付神光 二祖始名神光 及至後來 又道歸天竺 達磨葬於熊耳山之下 時宋雲奉使西歸 在西嶺見達磨手携隻履歸西天去 使回奏聖 開墳惟見遺下一隻履 雪竇道 其實此事 作麽生分付 旣無分付 卷衣又說歸天竺 且道爲什麽 此土却有*二三 遞相恁麽傳來 這裏不妨誵訛 也須是搆得始可入作 天竺茫茫無處尋 夜來却對乳峰宿 且道卽今在什麽處 師便打云 瞎

 

客作兒; 兒 後綴 本義爲傭夫 禪家常用作斥責之語 含有不見自心佛性 盲目隨逐外物之義 亦作客作漢

諦當; 穩當 適合

二三; 指東土二三六代祖師 初祖達磨圓覺 二祖慧可大祖 三祖僧璨鑑智 四祖道信大醫 五祖弘忍大滿 六祖慧能大鑒

 

설두가 잘() 능히 꿰맨 틈이 없은 곳에서 안목을 내어 송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했다. 운문이 말하되 육불수(六不收)라 하였거늘 설두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되 일이삼 사오륙이라고 말했는가. 바로 이 벽안호승일지라도 또한 셈을 족히 못하리라. 소이로 말하되 다만 노호가 안다고는() 허락하겠으나 노호가 안다고는() 허락하지 않는다 하니 모름지기 이는 도리어 그(운문) 집안의 아손이라야 비로소 옳다. 적래(適來; 조금 전)에 말하되 11구가 응시응절(應時應節)한다 하였으나 만약 투득(透得)하여 가면 바야흐로 언구 중에 있지 않다고 말할 줄 알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정해(情解)를 지음을 면치 못하리라. 오조(五祖) 노사(老師)가 말하되 석가모니불도 하천(下賤)한 객작아(*客作兒)며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는 일이삼사오니라 했으니 만약 운문의 언구 아래를 향해 체당(*諦當)히 보아 얻는다면 잠깐만(相次)에 이 경계에 이르리라. 소림에서 도연히 말하되 신광(神光)에게 부촉했다 함은 2조의 처음 이름이 신광이다. 후래에 이르러(及至) 또 말하되 천축으로 돌아간다 하였다 함은 달마를 웅이산(熊耳山) 아래에 장사 지냈는데 때(조사 멸후 3)에 송운(宋雲)이 서역에 봉사(奉使; 사신의 일을 봉행함)하고 돌아오다가 서령(西嶺; 葱嶺)에 있으면서 달마를 보았으니 손에 한 짝 신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거늘 봉사(奉使)하고 돌아와 주성(奏聖; 聖上에게 아룀)하여 분묘(墳墓; )를 여니 오직 남겨진(遺下) 한 짝 신만 보였다. 설두가 말하되 기실(其實)은 이 일을 어떻게 분부하리오, 이미 분부가 없다 할진대 옷을 거두어 또 설하되 천축으로 돌아간다 하였으니 그래 말하라 무엇 때문에 차토(此土)에 도리어 이삼(*二三)이 있어 체상(遞相; 갈마들며 서로) 이러히 전하여 왔는가. 이 속이 효와(誵訛)임에 방애되지 않나니 또한 모름지기 이는 구득(搆得; 領悟)해야 비로소 가히 입작(入作; 入進作用)하리라 함이다. 천축이 망망(茫茫)하여 찾을 곳이 없더니 야래(夜來; 는 조사)에 도리어 유봉(乳峰)을 마주하여 숙박한다 하니 그래 말하라 즉금 어느 곳에 있느냐. 스님이 문득 때리고 이르되 눈 멀었는가.

 

客作兒; ()는 후철. 본래 뜻은 용부(傭夫; 고용살이 하는 남자)가 되지만 선가에선 척책(斥責; 責罵)하는 말로 상용함. 자심의 불성을 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외물을 따라 쫓아감의 뜻을 함유했음. 또 객작한(客作漢)으로 지음

諦當; 온당(穩當), 적합.

二三; 동토의 이삼 육대조사(六代祖師)를 가리킴. 초조 달마원각(達磨圓覺), 2조 혜가대조(慧可大祖), 3조 승찬감지(僧璨鑑智), 4조 도신대의(道信大醫), 5조 홍인대감(弘忍大滿), 6조 혜능대감(慧能大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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