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종용록 행수가 담연거사에게 기탁한 글(한글)

태화당 2022. 4. 16. 22:45

오종(吾宗; 曹洞宗)에 설두(*雪竇)와 천동(天童)이 있음은 공문(*孔門)에 유하(*游夏)가 있음과 같고 두 스님의 송고(頌古)는 시단(詩壇)의 이두(*李杜)와 같다. 세간에서 이르되 설두는 한림(*翰林)의 재능이 있다고 하지만 대개(大蓋) (; 조동종)의 화()를 뜯고() ()의 실()을 줍지() 못했다. 또 이르되 만 리의 땅을 다니지 않고 만 권의 서책을 읽지 않았다면 공부(*工部)의 시를 열독(閱讀)하지 못한다 했으니 그 박섬(*博贍)을 말함이다. 천동 노사(老師)의 송고(頌古)를 헤아리자면() 편언척자(片言隻字)가 모두 불조(佛祖)의 연원(*淵源)으로부터 유출(流出)한지라 학자가 헤아리지 못한다(罔測). 백산대은집(*柏山大隱集)에 그 사적(事迹)을 거출(擧出)했으나 간혹 소활(疎闊)하여 유사(類似)하지 않는 게 있다. 염제(*拈提)에 이르러선 구간(*苟簡)하여 단지 거관(*據款)했을 따름이다. 만송(萬松)이 지난날 일찍이 평창(評唱)했으나 병혁(*兵革) 이래로 그 조고(*祖藁)를 폐(; 버리다. 못 쓰게 되다)했다. 이래(邇來; 근래) 연경(燕京; 북경)의 보은(報恩; 報恩寺)에 퇴거(退居)하면서 바로() 와사(*蝸舍)를 축조(築造)하고 방()해 가로되 종용암(從容庵)이라 했으며 구서(舊緒; 舊日端緖)를 완성함을 도모하였는데 마침 담연거사(湛然居士)의 권청(勸請)을 만나() 이를 성취했다. 노안이 혼화(*老眼昏華)하여 다분히 구점(*口占)에서 나왔으며 문인(門人)이 필수(*筆受)했다. 그 사이에 기연(機緣)의 사적(事迹)을 번재(繁載)하자면 1, 곧 천동의 학해의 파란(*學海波瀾)과 부회(*附會)의 교편(*巧便)을 밝힘이다(). 2. 곧 학인의 검토지공(檢討之功)을 줄임이다(). 3. 곧 만송이 술이부작(*述而不作)하고 억단(臆斷; 臆測으로 판단)이 아님을 드러냄이다. 가만히() 불과(*佛果)의 벽암집(*碧巖集)과 비교하자면 곧 편마다(篇篇) 모두 시중(示衆)이 있어 구비(具備)했으며 가만히 원통의 각해록(圓通覺海錄; 未詳)과 비교하자면 곧 구마다(句句) 일찍이 지리(*支離)하지 않고 완전하다. 착어(著語)하고 출안(出眼)하면서 필삭(*筆削)하는 즈음에 이르러선 또한 임기(*臨機)하여 사양(辭讓)하지 않았다. 임오(壬午; 1222) 세초(歲杪; 歲末)에 담연거사의 서신이 이르러 염출(拈出)을 견요(堅要; 견고하게 요청)하는지라 가추(家醜)를 밖으로 드날림을 면하지 못하니 나에게 누를 끼치고 너에게도 누를 끼친다. 계미년(癸未年; 1223) 상사일(*)에 만송 야로(野老)가 바람을 인해 부기(附寄; 부치다)한다. 불선(*不宣).

 

雪竇;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니 송대 운문종승. 수녕(遂寧; 사천 봉계현의 서)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이()며 자()는 은지(隱之). 묘령(妙齡; 20 안팎의 젊은 나이)에 세속을 떠나 입도(入道)하여 익주(益州) 보안원(普安院)의 인선(仁詵)에게 투신하여 출가했음. 복주(復州) 북탑(北塔)의 지문광조(智門光祚)에게서 법을 얻었으니 5년 동안 의지(依止)하며 그 도를 다 얻었음. 후에 전당(錢塘) 영은사(靈隱寺)에 은거하기 3년 만에 곧 출세해 소주(蘇州) 취봉사(翠峰寺)에 주()했음. 다음해에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로 옮겼으며 해중(海衆)이 운집하여 종풍을 크게 날렸으니 곧 운문종을 중흥했음. 또 스님이 설두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후세에 많이 설두선사(雪竇禪師)로 그를 일컬음. 황우(皇祐) 4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73. 시호가 명각대사(明覺大師)며 유작(遺作)에 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 6권과 벽암집백칙송(碧巖集百則頌) 및 시집인 폭천집(瀑泉集)이 있어 세상에 행함 [정자사지. 오등회원15. 속전등록2].

孔門; 공자의 문하. 가차(假借)하여 유가(儒家)를 가리킴.

游夏;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를 가리킴. 자유는 오나라 사람이며 성이 언()이며 이름이 언(). 자하와 더불어 문학을 잘했음. 자하는 성이 복()이며 이름이 상()이며 자가 자하임. 공자보다 44년 아래며 공자의 시학(詩學)을 전했음. 논어 선진(先進). 덕행(德行)은 안연(顔淵)ㆍ민자건(閔子騫)ㆍ염백우(冉伯牛)ㆍ중궁(仲弓)이다. 언어(言語)는 재아(宰我)ㆍ자공(子貢)이다. 정사(政事)는 염유(冉有)ㆍ계로(季路). 문학(文學)은 자유(子游)와 자하(子夏).

李杜;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합칭(合稱). 이백(李白; 701-762) () 거사.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며 성기(감숙 진안 서북) 사람. 박학하고 광람(廣覽)했으며 임성(任性;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하고 호협(好俠; 豪俠을 좋아함)했음. 천보(742-755) 초에 장안에 거주하며 하지장(賀知章)을 뵈었는데 지장이 그의 문장을 보고 현종에게 아뢰자 매우 애중(愛重)을 보였고 공봉한림(供奉翰林)으로써 불렀음. 서방정토찬이 있음 [명공법희지2. 불법금탕편8. 서방휘징하. 구당서190]. 杜甫; (712-770) 당대 시인. 자는 자미(子美)며 공현(하남 공의) 사람. 조적(祖籍)은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 두릉에 거주한지라 자칭이 두릉포의(杜陵布衣)며 또 호칭이 소릉야로(少陵野老). 숙종 지덕 2(757) 우습유(右拾遺)에 제배(除拜)되었고 후에 공부시랑(工部侍郞)이 되었음. 시가(詩歌)를 잘했는데 웅혼(雄渾; 웅장하여 막힘이 없음)하고 분방(奔放)했으며 이백(李白)과 더불어 명성이 가지런했음. 방외(方外)와 놀기를 좋아했음. 그 시에 막막(漠漠)한 세계는 어둡고/ 구구(區區)히 번화를 쟁탈한다/ 오직 마니주가 있어/ 탁한 수원(水源)을 밝게 비춘다/ 등을 전하매(傳燈) 백일(白日)이 없고/ 땅에 깔린 황금이 있다/ 원컨대 제1()를 듣고/ 초지(初地)의 마음으로 회향하리라 한 게 있음.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음 [불법금탕편8].

翰林; (1)한림원(翰林院)이니 당대 이래 역대 왕조에서 설치한 바의 관청의 하나. 당회요(唐會要) 57을 안험컨대 한림원은 개원(713-741)초에 설치했으며 본래 은대문(銀臺門) , 인덕전(麟德殿) 서상중랑(西廂重廊; 은 곁채)의 뒤에 있었음. 대개 천하에서 예능과 기술로 현소(見召; 부름에 알현)하는 자의 소처(所處). 학사원(學士院)이란 것은 개원 26년에 설치한 곳이며 한림의 남쪽에 있고 별호(別戶)는 동향(東向). (2)황제의 문학시종관(文學侍從官)이니 당조(唐朝) 이후에 비로소 설치했음. 명ㆍ청에선 진사(進士) 가운데로부터 고쳐서 선발했음 [백도한어].

工部; 두공부(杜工部)를 가리킴. 당대 시인 두보가 후에 공부시랑이 된지라 고로 두공부로 일컬음. 위 이두(李杜)를 보라.

博贍; 연박(淵博; 학식이 또 깊고 또 넓음). 풍부(豐富).

淵源; 원류(源流). 본원(本源).

柏山大隱集; 미상. 백산대은(柏山大隱)은 백산대은화상. 전기가 미상. 종용록에 3번 백산의 말을 인용했음.

拈提; 거설(擧說)이니 공안의 기어(機語)를 의논함.

苟簡; 구차(苟且)하고 간략(簡略)함을 가리킴. 초솔(草率)하고 간루(簡陋).

據款; ()은 정관(情款; 진실의 情況)ㆍ성관(誠款; 眞誠)ㆍ조목.

兵革; 1. 병기(兵器)와 갑주(甲胄)의 총칭이니 널리 무기와 군비(軍備)를 가리킴. 2. 전쟁을 가리킴 [백도백과].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祖藁; 조사어록의 초고(草稿). ()는 고(稿)와 같음.

蝸舍; 와우(蝸牛; 달팽이)의 껍질과 흡사한 형상(形象)을 한 방자(房子; )니 극히 간루(簡陋)하고 협소한 방옥(房屋)을 형용함. 와사형비(蝸舍荊扉)란 말이 있음.

老眼昏華; 노년인(老年人)의 안력(眼力)이 모호(模糊)하여 맑지 못함을 가리킴.

口占; 이르자면 입으로 그 언사(言辭)를 전수함.

筆受; 붓을 써서 다른 사람이 구수(口授)한 말을 기록함.

學海波瀾; 뜻으로 이르자면 학식이 연박(淵博; 깊고 넓음)한 사람이 문단(文壇)에 치빙(馳騁).

附會; 문장의 포치(布置)로 하여금 수미(首尾)가 일관(一貫)되고 문의(文意)가 엄밀하게 함 [백도지도].

巧便; 선교(善巧)한 방편.

述而不作; 사분율수현록(四分律搜玄錄) 1에 가로되 부자(夫子;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이란 것은 이르자면 고인의 일을 서술하면서 제자에게 말하기를 다시 신작(新作)하지 말아라 했음이니 고로 이르되 술이부작이다.

佛果; 불과극근(佛果克勤; 1063-1135)이니 또 극근(克懃)으로 지음. 송대 양기파승. 사천 숭녕(崇寧) 사람이며 속성은 낙이며 자는 무착. 어릴 적에 묘적원에서 자성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성도(成都)에서 원명에게 의지해 경론을 학습했음. 후에 오조산에 이르러 법연(法演)을 참알해 그의 인증을 받았음. 불감혜근(佛鑑慧懃)ㆍ불안청원(佛眼淸遠)과 더불어 이름이 가지런해 세상에 연문(演門; 法演門下)의 이근일원(二勤一遠)의 칭호가 있으며 총림의 삼걸(三傑)이란 명예를 입었음. 숭녕(1102-1106) 중 성도 소각사(昭覺寺)에서 개법했음. 정화 초년(1111) 형주에 이르러 당세(當世)의 명사(名士)인 장무진을 예알해 그와 더불어 화엄의 요지(要旨) 및 선문의 종취(宗趣)를 담론했음. 다시 예주자사의 청을 받아 협산의 영천선원에 주지하다가 다시 도림으로 이사했음. 때에 추밀(樞密) 등자상의 주청(奏請)으로 인해 자복(紫服)과 및 불과선사(佛果禪師)란 호를 칙령으로 주었음. 정화(1111-1117) 중에 조칙(詔勅)을 받들어 금릉의 장산(蔣山)으로 이주했고 다음에 천녕의 만수(萬壽)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음. 후에 금산에 거주했는데 고종이 양주에 거둥했을 때 그를 불러 입대(入對. 궁에 들어가 마주함)했으며 원오(圜悟)란 호를 주었으니 세칭이 원오극근(圜悟克勤). 후에 성도 소각사로 돌아갔으며 소흥 5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3이며 시호는 진각선사(眞覺禪師). 제자에 대혜종고ㆍ호구소륭 등의 선문의 용상(龍象)이 있음. 일찍이 협산의 벽암(碧巖)에서 설두중현의 송고(頌古) 100칙을 모아 벽암록 10권을 편성했는데 세칭이 선문제일서(禪門第一書). 이 밖에 원오불과선사어록 20권이 있음 [대혜보각선사년보. 승보정속전4. 가태보등록11. 불조역대통재30. 석씨계고략4].

碧巖集; 또 명칭이 벽암록이니 10. 전칭이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이니 송대의 승려인 원오극근(圜悟克勤)이 편집했으며 대정장 제48책에 수록되었음. 또 원오노인벽암록ㆍ벽암집ㆍ원오벽암집으로 일컬음. 본서는 처음에 설두중현(雪竇重顯; 980- 1052)이 경덕전등록의 17백칙 공안 중에 가장 중요한 100칙을 선택하여 그 뒤에 송문(頌文)을 붙인 것이 되는데 원오극근(10631135)이 다시 수시(垂示)ㆍ평창(評唱)ㆍ착어(著語)를 가하여 선화 7(1125)에 비로소 완성을 고했음. 각 칙()에 먼저는 이 수시(垂示)며 다음에 본칙(本則)과 송고(頌古)를 내고 매구(每句)의 아래에 착어(著語)를 붙였음. 그리고 공안을 염출(拈出)한 자의 약전(略傳)ㆍ평창기봉(評唱機鋒)ㆍ자작송(自作頌)ㆍ총평창(總評唱). 벽암(碧巖) 일사(一詞)의 유래에 이르러선 원오가 예주(澧州) 협산(夾山) 영천원(靈泉院)에서 평창을 지을 때 그 방장실의 편액상(匾額上)의 제자(題字). 2자는 협산의 개조(開祖)인 선회선사(善會禪師)의 시구(詩句)인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청장으로 돌아간 후 새는 꽃을 물고 벽암의 앞에 떨어뜨린다(猿抱兒歸靑嶂後 鳥啣花落碧巖前) 한 것에서 기원(起源). 건염(1127-1130)년 간에 극근의 문인인 대혜종고(大慧宗杲), 학인들이 이 책으로 구두(口頭)의 쾌편(快便)을 삼는 연고로 인해 대중을 대()하여 불태웠음. 고로 본서는 이루어진 후 200년 간 총림에서 보이지 않았는데 바로 원대(元代) 대덕(1297-1307)년 간에 이르러 장명원(張明遠)이 중간(重刊)함으로 말미암아 이를 존중해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가 되어 비로소 치소(緇素; 僧俗)의 사이에 성행했음.

支離; 서로 접속하지 않음의 뜻 [릉엄경정맥소6].

著語; 타인의 기연어구(機緣語句)에 대해서 간단한 평의(評議)를 더함을 착어라고 호칭함.

筆削; 화엄경소연의초9. 필삭(筆削)이란 것은 한서 위청전(衛靑傳)에 이르되 삭()은 곧 삭하고 필()은 곧 필한다. ()은 산거(刪去)함이며 필()은 증익(增益)함임. 어떤 이가 이르되 글을 다스려 삭()하고 주()함을 감수(勘受)함이다. 참으로 고인은 목죽간(木竹簡)에 서사하고 칼로 삭()한 연고임.

臨機; 사람의 근기. 황벽전심법요. 3()의 교망(敎綱)은 단지 이는 기()에 응하는 약이다. 사물이 변화하는 원유. 또 미묘하고 유현(幽玄)한 사리(事理). 장자 지락(至樂). 만물이 모두 기()에서 나와 모두 기로 들어간다. 벽암록 제1. 지공(志公)이 기()를 보고 지어 바로 이르되 이것은 이 관음대사니 부처의 심인을 전수했습니다.

上巳日; 33일임 [선림보훈음의].

不宣; 이르자면 일일(一一)이 자세하게 설하지 않음이니 서신의 말미에 늘 이 말을 씀.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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