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德 山僧說向外無法 學人不會 便卽向裏作解 便卽倚壁坐 舌拄上齶 湛然不動 取此爲是祖門佛法也 大錯 是你若取不動淸淨境爲是 你卽認他無明爲*郞主 古人云 *湛湛침黑暗深坑 實可怖畏 此之是也 你若認他動者是 一切草木皆可解動 應可是道也 所以動者是風大 不動者是地大 動與不動 俱無自性 你若向動處捉他 他向不動處立 你若向不動處捉他 它向動處立 譬如潛泉魚 鼓波而自躍
●大德至大錯 壇經 薛簡曰 京城禪德皆云 欲得會道必須坐禪習定 若不因禪定而得解脫者 未之有也 未審師所說法如何 師曰 道由心悟 豈在坐也 經云若言如來若坐若臥 是行邪道 何故 無所從來 亦無所去 無生無滅 是如來淸淨禪 諸法空寂 是如來淸淨坐 究竟無證 豈況坐耶 ▲都序卷上之二 淨名云 不必坐不必不坐 坐與不坐 任逐機宜 凝心運心 各量習性
●郞主 善慧大士錄二 又多諸郞主 常待我來 使役於我身 何謂郞主 慳心是郞主 貪心是郞主 瞋心是郞主 殺害心是郞主 食噉衆生心是郞主 偸盜心是郞主(云云)
●湛湛 湛 直深切 深邃 沈沒
대덕이여, 산승이 설하기를 밖을 향하면 법이 없다 하매 학인이 알지 못해 바로 곧 속을 향해 앎을 짓고는 바로 곧 벽에 의지해 앉아 혀를 윗 잇몸에 버티고 담연히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것을 취해 이 祖門의 불법을 삼으니 크게 틀렸다. 이 너희가 만약 不動의 청정한 경계를 취하여 옳음을 삼는다면 너희가 저 무명을 인정해 郞主로 삼음이다. 고인이 이르되 깊디깊은 캄캄한 깊은 구덩이라 실로 가히 두렵다 했으니 이것이 이것이다. 너희가 만약 저 움직이는 것을 인정해 옳다 하면 일체의 초목도 다 가히 움직일 줄 아니 응당 가히 이 도라야 하리라. 소이로 움직이는 것은 이 風大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 地大니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모두 자성이 없다. 너희가 만약 움직이는 곳을 향해 그것을 잡으려 한다면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곳을 향해 서고 너희가 만약 움직이지 않는 곳을 향해 그것을 잡으려 한다면 그것은 움직이는 곳을 향해 서리니 비유컨대 샘물에 잠긴 물고기가 파도를 치며 스스로 뜀과 같다.
●大德至大錯 壇經 薛설簡이 가로되 경성의 禪德이 다 이르기를 도를 앎을 얻으려 한다면 좌선과 習定이 필수다. 만약 禪定을 인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 하면 있지 않는 것이다 하니 미심합니다 스님이 설하시는 바의 법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도는 마음을 말미암아 깨치거늘 어찌 앉음에 있으리오. 경에 이르되 만약 말하기를 여래가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하면 이는 삿된 도를 행함이다. 무슨 연고인가 하면 좇아오는 곳도 없고 또한 가는 곳도 없어서이다 했다. 남도 없고 멸도 없음이 이 여래의 청정한 禪이며 제법이 비어 고요함은 이 여래의 청정한 坐이다. 구경엔 증득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앉음이리오. ▲都序卷上之二 淨名(유마경)에 이르되 앉음도 필요치 않고 앉지 않음도 필요치 않다. 앉음과 앉지 않음은 근기의 마땅함을 쫓고 마음을 응고함과 마음을 운전함은 각자의 익힌 성품을 헤아려라.
●郞主 善慧大士錄二 또 여러 郞主가 많아서 늘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나의 몸을 부린다. 무엇을 낭주라 하는가, 아끼는 마음이 이 낭주며 탐내는 마음이 이 낭주며 성내는 마음이 이 낭주며 살해하는 마음이 이 낭주며 중생을 먹고 씹는 마음이 이 낭주며 훔치는 마음이 이 낭주며(운운).
●湛湛 湛침은 直深切(침)임. 深邃임. 침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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