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역해 오종록

집주역해(集註譯解) 오종록(五宗錄; 五家語錄) 卷四 曹山錄 19

태화당 2019. 9. 16. 11:00

南州帥南平鍾王 *雅聞師有道 盡禮致之 不赴 但書偈付使者云 *摧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心 樵客見之猶不採 *郢人何事苦搜尋

雅聞 雅 素也 又助詞

摧殘枯木至苦搜尋 此四句本是大梅法常偈 傳燈錄七 明州大梅山法常禪師者 襄陽人也 姓鄭氏 幼歲從師於荊州玉泉寺 初參大寂 問 如何是佛 大寂云 卽心是佛 師卽大悟 唐貞元中居於天台山餘姚南七十里 梅子眞舊隱 時鹽官會下一僧入山拄杖 迷路至庵所 問曰 和尙在此山來多少時也 師曰 只見四山靑又黃 又問 出山路向什麽處去 師曰 隨流去 僧歸說似鹽官 鹽官曰 我在江西時曾見一僧 自後不知消息 莫是此僧否 遂令僧去請出師 師有偈曰 摧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心 樵客遇之猶不顧 郢人那得苦追尋 大寂聞師住山 乃令一僧到問云 和尙見馬師得箇什麽便住此山 師云 馬師向我道卽心是佛 我便向遮裏住 僧云 馬師近日佛法又別 師云 作麽生別 僧云 近日又道非心非佛 師云遮老漢惑亂人未有了日 任汝非心非佛 我只管卽心卽佛 其僧迴擧似馬祖 祖云 大衆 梅子熟也 緇門崇行錄 唐大梅常禪師 得馬大師卽心卽佛之旨 隱深山中 人無知者 鹽官以書招之 辭不赴 附以偈云 一池荷葉衣無盡 數樹松花食有餘 剛被世人知住處 又移茅舍入深居

郢人 莊子雜篇徐无鬼 郢人堊漫其鼻端若蠅翼 使匠石斲之 匠石運斤成風 聽而斲之 盡堊而鼻不傷 郢人立不失容 宋元君聞之 召匠石曰 嘗試爲寡人爲之 匠石曰 臣則嘗能斲之 雖然臣之質死久矣

南州帥南平鍾王이 본디 스님이 도가 있다 함을 들었고 예의를 다해 이르게 했지만 다다르지 않았다. 다만 게를 써서 사자에게 부촉했으니 이르되 최잔한 고목이 찬 숲에 의지하나니/ 몇 차례나 봄을 만났지만 변심하지 않았도다/ 나무꾼이 이를 보고도 채집하지 않거늘/ 영인이 무슨 일로 애써 찾는가.

雅聞 雅. 또 조사임.

摧殘枯木至苦搜尋 이 사구는 본래 이 대매법상의 게임. 傳燈錄七 明州 大梅山 法常禪師襄陽 사람이며 성이 鄭氏. 어린 나이에 荊州 玉泉寺에서 스승을 좇았다. 처음 大寂(마조의 시호)을 참알해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대적이 이르되 곧 마음이 이 부처다. 스님이 곧 대오했다. 唐 貞元中(785~805)에 천태산 여요 남쪽 칠십 리 梅子眞舊隱에 거주했다. 때에 鹽官 會下의 한 중이 입산하여 주장자를 채집했는데 길을 헤매다가 암자의 처소에 이르렀다. 물어 가로되 화상이 이 산에 있은 지가 얼마의 시절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다만 四山이 푸르고 또 누럼을 본다. 또 묻되 산을 벗어나는 길은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스님이 가로되 유수를 따라가라. 중이 돌아가 염관에게 설해 주었다. 염관이 가로되 내가 강서에 있을 때 일찍이 한 중을 보았는데 후로부터 소식을 알지 못했다. 이는 이 중이 아닐까. 드디어 중으로 하여금 가서 스님에게 나오기를 청했다.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최잔한 고목이 찬 숲에 의지하나니/ 몇 차례나 봄을 만났지만 변심하지 않았도다/ 나무꾼이 이를 만나고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영인이 어찌 애써 찾음을 얻는가. 대적이, 스님이 산에 머문다 함을 듣고 이에 한 중을 시켜 이르러 물어 이르되 화상이 마대사를 뵙고 무엇을 얻어 곧 이 산에 거주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마대사가 나를 향해 말씀하기를 곧 마음이 이 부처라 하셨다. 내가 곧 이 속을 향해 머문다. 중이 이르되 마대사의 근일의 불법은 또 다릅니다. 스님이 이르되 어떻게 다른가. 중이 이르되 근일엔 또 말씀하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 하십니다. 스님이 이르되 이 노한이 사람들을 혹란하매 마칠 날이 있지 않구나. 너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 함에 일임한다. 나는 다만 상관하기를 곧 마음이 곧 부처라 하겠다. 그 중이 돌아가 마조에게 들어 보였다. 마조가 이르되 대중이여, 매자가 익었다. 緇門崇行錄(一卷 明 袾宏輯) 大梅常禪師가 마대사의 즉심즉불의 지취를 얻고는 깊은 산중에 은거했는데 사람이 아는 자가 없었다. 염관이 서신으로 그를 초청했는데 회피하고 다다르지 않았다. 게를 붙여 이르되 한 못의 연잎은 옷으로 다함이 없고/ 몇 그루의 송화는 식량으로 나머지가 있도다/ 다만() 세인에게 주처를 앎을 입어/ 또 띳집을 옮겨 깊이 들어가 거처할까 하노라.

郢人 莊子雜篇徐无鬼 郢이 그의 코 끝에 白土를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匠石으로 하여금 이것을 깎아내게 했다. 장석이 도끼를 움직여 바람을 이루었으나 (영인은) 그것을 깎는 대로 듣기만 했다. 백토는 없어졌지만 코는 상하지 않았으며 영인은 선 채 모습을 잃지 않았다. 宋元君이 이를 듣고 장석을 불러 가로되 시험삼아() 과인을 위해 그렇게 하라. 장석이 가로되 신이 곧 일찍이 능히 이를 깎았지만 비록 그러하나 신의 바탕(영인을 가리킴)이 죽은 지 오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