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嚴性海納香水之百川 法界義天森寶光之萬像 極佛陀之眞智 盡含識之靈源 故世主妙嚴 文殊結集 龍宮誦出 雞嶺傳來 繼踵流通 普聞華夏 李長者合論四十軸 觀國師疏鈔一百卷 龍樹尊者二十萬偈 佛國禪師五十四讚 四家之說學者所宗 若乃撮大經之要樞 擧法界之綱目 標知識之儀相 述善財之悟門 人境交參事理俱顯 則意詳文簡 其圖讚乎 信受奉行爲之序引
화엄성해(華嚴性海)가 향수(香水)의 백천(百川)을 수납(受納)하고 법계(法界)의 의천(義天)이 보광(寶光)의 만상(萬像)을 삼라(森羅; 숲의 나무처럼 무척 많이 벌려 서 있음)하였나니 불타(佛陀)의 진지(眞智)를 다하고(極) 함식(含識)의 영원(靈源)을 다했다(盡). 고로 세주(世主)가 묘엄(妙嚴)하고 문수(文殊)가 결집(結集)하고 용궁에서 송출(誦出)하고 계령(雞嶺)에서 전래(傳來)하고 자취를 이어 유통(流通)하며 화하(華夏)에 널리 알려졌다(聞). 이장자(李長者)의 합론(合論) 40축(軸)ㆍ관국사(觀國師)의 소초(疏鈔) 1백 권ㆍ용수존자(龍樹尊者)의 20만 게ㆍ불국선사(佛國禪師)의 54찬(讚) 4가(家)의 설(說)은 학자가 종앙(宗仰)하는 바이다. 약내(若乃; 至于) 대경(大經; 화엄경)의 요추(要樞)를 촬초(撮抄; 摘抄)하여 법계(法界)의 강목(綱目)을 들고 지식(知識)의 의상(儀相)을 표(標)하고 선재(善財)의 오문(悟門)을 서술하니 인경(人境)이 교참(交參; 交錯이니 서로 뒤섞임)하고 사리(事理)가 모두 나타나서 곧 뜻이 상세하고 글이 간략하거늘 그것을 도찬(圖讚; 그림으로 讚頌)함이겠는가. 신수봉행(信受奉行)하며 서인(序引)한다.
●화엄성해(華嚴性海); 화엄은 본래 경명(經名)이 됨. 또 이 경문의 이름으로 소의(所依)의 종파(宗派) 및 그 법문(法門)으로 삼음. 화엄의 이성(理性)이 깊고 넓어 바다와 같으므로 고로 이르되 성해(性海)라 했음. ○화엄(華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니 또 명칭이 잡화경(雜華經)임. 3종이 있음. (1). 육십화엄(六十華嚴) 무릇 60권이며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구화엄(舊華嚴)ㆍ진경(晉經)이니 총(總) 7처8회(七處八會) 34품(品)으로 이루어졌음. 출삼장기집9(出三藏記集九)ㆍ화엄경탐현기1(華嚴經探玄記一) 등에서 든 바에 의거하면 화엄경의 범본(梵本)은 원래 10만 게가 있고 동진(東晉) 지법령(支法領)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3만6천 게를 휴입(攜入)함으로 말미암아 안제(安帝) 의희(義熙) 14년(418) 3월로부터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60권을 역성(譯成)했기 때문에 일컬어 60화엄(華嚴)이라 했으니 이것이 곧 제1역(譯)임. 그러나 60화엄 중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오히려 결문(缺文)이 있었고 바로 당 영륭(永隆) 원년(680)에 이르러 비로소 보역(補譯)했음. (2). 팔십화엄(八十華嚴) 무릇 80권이며 당대(唐代)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신화엄(新華嚴)ㆍ당경(唐經)이며 총(總) 7처9회(七處九會) 39품(品)으로 이루어졌으니 60화엄의 이역(異譯)이 됨. 80화엄의 범본(梵本)은 곧 실타난타가 무측천(武則天)의 요청에 응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중화로 휴입(攜入)했음. 당 무측천 증성(證聖) 원년(695) 3월로부터 편공사(遍空寺) 안에서 처음 번역했고 무후(武后)가 역장(譯場)에 친림해 수제(首題)의 품명(品名)을 휘호(揮毫)했음. 성력(聖曆) 2년(699) 10월에 이르러 공(功)을 마쳤으니 이것이 곧 제2역(譯)임. 본경의 서장역본(西藏譯本)은 총(總) 45품으로 이루어졌고 그 중 전(前) 44품은 본경의 전 38품에 상당하고 제45품은 본경의 제39 입법계품에 상당함. (3). 사십화엄(四十華嚴) 무릇 40권이며 당대(唐代) 반야(般若)가 번역했음. 전칭(全稱)이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며 약칭이 보현행원품이며 또 명칭이 정원경(貞元經)임. 신구(新舊) 양역(兩譯) 화엄경의 입법계품의 별역(別譯)임. 당 덕종(德宗) 정원(貞元) 11년(795) 11월 남천축 오다국(烏荼國; 荼는 茶와 통함) 사자왕(師子王)이 사자를 파견해 그가 친사(親寫)한 바 화엄경의 범본을 진공(進貢)했기 때문에 다음해 6월 장안 숭복사(崇福寺)에서 계빈(罽賓; 계빈국) 반야삼장(般若三藏)이 그것을 번역함으로 말미암아 징관(澄觀) 및 원조감허(圓照鑑虛) 등 여러 스님이 상정(詳定)했고 정원(貞元) 14년 2월에 번역을 마쳤음. 공히 40권이며 이것이 곧 40화엄임. △종통편년5(宗統編年五). 조(14조 龍樹)가 용궁에 들어가 장경을 보는데 화엄경(華嚴經)이 3본(本)이 있음을 보았다. 상본(上本)은 십삼세계(十三世界; 10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게(微塵數偈)며 1사천하(四天下)의 미진수품(微塵數品)이었고 중본(中本)은 49만8천8백 게며 1천2백 품(品)이었고 하본(下本)은 10만 게며 48품이었다. 상본은 부처가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고 중본은 오직 주지보살(住地菩薩; 10地의 位에 住하는 보살)이라야 이에 능히 그것을 알겠는지라 드디어 하본을 기(記)하여 서토(西土)로 회귀했다. 전(傳)하여 동진(東震)에 이른 것은 겨우 80권 39품이니 곧 전분(前分)의 3만6천 게라, 오히려 6만4천 게 9품이 있어 서토에 있다.
●향수(香水); 수미산을 위요(圍繞)하는 내해(內海)가 다 향수(香水)임. 이 향수해(香水海)는 약칭(略稱)이 향해(香海)며 이에 둘이 있음. 1.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향수해니 화엄경8에 가로되 그 수미산의 미진수(微塵數)의 풍륜(風輪)에 가장 위에 있는 것의 이름이 수승위광장능지보광마니장엄향수해(殊勝威光藏能持普光摩尼莊嚴香水海)며 이 향수해에 대연화(大蓮華)가 있다. 2. 사바세계의 향수해니 구사론11(俱舍論十一)에 가로되 묘고(妙高; 須彌山)가 처음이 되고 윤위(輪圍; 輪圍山)가 가장 뒤며 중간에 8해(海)니 앞의 일곱은 이름이 내(內)며 일곱 중에 다 팔공덕수(八功德水)를 갖췄다 [俱舍論十一 華嚴經探玄記三 佛祖統紀卷三十一].
●법계(法界); 이 글에선 아래 ②를 가리킴. ①의식(意識; 6식의 하나)으로 인지(認知)하는 바의 일체의 대상의 통칭. △임제어록(臨濟語錄). 색계에 들면 색의 혹란(惑亂)을 입지 않고 성계(聲界)에 들면 소리의 혹란을 입지 않고 향계(香界)에 들면 향기의 혹란을 입지 않고 미계(味界)에 들면 맛의 혹란을 입지 않고 촉계(觸界)에 들면 감촉의 혹란을 입지 않고 법계(法界)에 들면 법의 혹란을 입지 않는다. ②전부의 세계. 일체의 사물. △육조단경(六祖壇經). 스님이 다시 가로되 즉금 대범사(大梵寺)에서 이 돈교(頓敎)를 설하나니 법계(法界)의 중생이 언하에 견성성불하기를 보원(普願)한다. ③만사와 만물의 본원과 본성. △임제어록. 이 사람은 곳곳에 막히지 않아 시방을 통관(通貫)하고 3계(界)에 자재하다. 일체 경계의 차별에 들어가매 능히 회환(回換)하지 못한다. 1찰나 사이에 법계(法界)에 투입한다.
●의천(義天); 전칭(全稱)이 제일의천(第一義天)ㆍ제일의정천(第一義淨天)이니 곧 대열반에 머무는 제불보살 혹 10주(住) 등의 보살을 모두 일컬어 의천이라 함. 대개 제법의 뜻을 잘 해석하는지라 고로 제일의공(第一義空)의 묘리를 비유하여 천(天)이라 함. △열반경22. 의천(義天)이란 것은 십주보살마하살(十住菩薩摩訶薩) 등이니 무슨 뜻을 쓰는 고로 십주보살을 이름해 의천이라 하는가. 모든 법의(法義)를 능히 잘 이해하는 연고다. 무엇을 의(義)라 하는가, 일체법이 이 공의(空義)임을 보는 연고다. △오등회원2(五燈會元二) 규봉종밀(圭峰宗密). 일언지하에 심지(心地)가 개통하고 1축(軸)의 안에 의천(義天)이 낭요(朗耀)하다.
●불타(佛陀); <梵> buddha. 또 불타(佛馱)ㆍ부타(浮陀)ㆍ몰타(沒馱)ㆍ부도(浮屠)ㆍ부도(浮圖)로 지음. 뜻이 각자(覺者)가 됨. 불타는 본래 석가모니를 가리키지만 후에 널리 진리를 각오(覺悟)한 자의 총칭이 되었음.
●함식(含識); 또 함령(含靈), 함생(含生)으로 지음. 곧 심식(心識)을 함유한 유정(有情)의 중생을 가리킴
.●세주(世主)가 묘엄(妙嚴)하고; 신화엄경론9(新華嚴經論九) 세주묘엄(世主妙嚴)이란 것은 이 초품(初品)에 여러 신(神)ㆍ천(天)ㆍ8부(部)의 무리가 있고 모두 세간주(世間主)가 되며 각기 십불세계(十佛世界)의 미진수(微塵數)의 수신(隨身)하는 부중(部從)을 가졌기 때문이다. 혹은 다만 이르되 무량으로 와서 도량을 장엄했다 했으니 이것은 무리에 의해 이름을 이루었기 때문에 고로 이르되 세주묘엄이다. 또 불타 및 보살이 다 세간지주(世間之主)가 되는 연고니 능히 중생을 주도(主導)하기 때문이며 모두(總) 세간주(世間主)가 되는 연고이다. 또한 이 초품(初品)에 1부(部)를 총표(總標)했거니와 모두 들면(擧) 총 2백2십8중(衆)이 있으며 형상(形狀)이 부동(不同)하고 각각의 부류(部類)이다. 혹은 1불세계의 미진을 말하고 혹은 10불세계의 미진을 말하고 혹은 무량을 말하며 해회(海會)를 장엄하기 때문의 연고이다. 말한 세주묘엄이란 혹은 불타의 복보(福報)의 경계로 의정(依正; 依報와 正報)을 묘엄(妙嚴)하는 까닭으로 또한 일컬어 세주묘엄이라 함을 얻는다. 여래도 또한 세간주가 되어 중생을 주도(主導)하기 때문의 연고니 이것은 의주(依主)하여 이름을 얻음이 된다(世主妙嚴者 以此初品有諸神天八部之衆 皆爲世間主 各將十佛世界微塵數隨身部從 或但云無量來嚴道場 此爲依衆成名 故云世主妙嚴 又佛及菩薩 皆爲世間之主故 以能主導衆生 總爲世間主故 亦此初品總標一部 都擧 總有二百二十八衆 形狀不同各各部類 或言一佛世界微塵 或言十佛世界微塵 或言無量 以嚴海會故 言世主妙嚴 或以佛福報境界妙嚴依正 亦得稱爲世主妙嚴 爲如來亦爲世間主主導衆生故 此爲依主得名).
●문수가 결집(結集)하고; 화엄경소3(華嚴經疏三) 여금에 협(陜; 夾으로 의심됨. 夾板)의 관략(寬略)을 좇아 10류(類)로 삼는다. 1. 약본경(略本經) 즉금에 전하는 바의 80권본 및 구역(舊譯)의 60권이니 모두 이는 10만 게 가운데에서 약역(略譯)하여 미진(未盡)한 연고이다. 2. 하본경(下本經) 이르자면 마하연장(摩訶衍藏)이니 이는 문수사리와 아난해(阿難海)가 철위산 사이에서 이 경을 결집하여 용궁에 수입(收入)했는데 용수보살이 용궁으로 가서 이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을 보매 그 3본이 있었다. 하본(下本)은 10만 게 48품이 있었고 용수가 송득(誦得)하여 세상에 유전(流傳)한 연고다. 지도론에선 이를 이름해 부사의경이라 했고 10만 게가 있다 했으며 양(梁) 섭론(攝論) 중에는 이름해 백천경(百千經)이라 했고 서역기에선 설하기를 이 구반국(拘槃國)에 이 구본(具本)이 있다 했다(今自陜之寬略爲十類 一略本經 卽今所傳八十卷本 及舊譯六十卷 皆是十萬偈中之略譯未盡故 二下本經 謂摩訶衍藏 是文殊師利與阿難海 於鐵圍山間結集此經 收入龍宮 龍樹菩薩往龍宮 見此大不思議經 有其三本 下本有十萬偈四十八品 龍樹誦得流傳於世故 智度論名此爲不思議經 有十萬偈 梁攝論中名百千經 西域記 說遮拘槃國有此具本) 운운. △치문경훈주중(緇門警訓註中). 여래가 멸도한 후 필발라굴(畢鉢羅窟)에서 3좌(座)의 부주(部主)를 세워 각기 집결하여 3장을 만들었다. 아난은 경장(經藏)을 송촐(誦出)하고 가섭은 논장(論藏)을 송출하고 우바리는 율장(律藏)을 송출했다. 이것이 곧 상좌부(上座部)다. 다시 1천의 현성(賢聖)이 있어 파시가(波尸迦)에게 명해 굴외(窟外)에서 결집했으니 이름이 대중부(大衆部)다. 이 2부를 통칭 하여 승기율(僧祗律)이라 하며 이것이 근본이 된다. 3장을 분류하여 3부로 삼았으니 이것이 소승(小乘)이다. 또 아난해(阿難海)와 문수가 철위산에서 보살장(菩薩藏)을 결집했으니 이것이 이 대승(大乘)이며 경률을 나누지 않았다. 그 후에 여러 보살이 대승의 여러 논을 지었으니 또한 논장이 된다.
●용궁(龍宮); 용왕의 궁전. 대해의 바닥에 있으며 용왕의 신력으로 화작(化作)한 것이 됨. 해룡왕경3(海龍王經三) 청불품(請佛品)을 안험(按驗)컨대 해룡왕이 영취산(靈鷲山)에 이르러 불타의 설법을 듣고 신심(信心)으로 환희를 얻었으며 불타를 초청해 해중의 용궁에 이르러 공양하려고 했음. 드디어 신력으로 궁전을 화작(化作)했음. 또 연화면경하(按蓮華面經下)를 안험하니 염부제(閻浮提) 및 시방에 있는 바 불발(佛鉢) 및 불사리가 모두 바가라용왕(婆伽羅龍王)의 궁중에 있다 함. 또 보살처태경7(菩薩處胎經七)ㆍ마하마야경하ㆍ용수보살전ㆍ현수(賢首)의 화엄전1(華嚴傳一) 등을 안험컨대 용궁 중에 승묘(勝妙)한 경전이 저장되어 있다 함.
●송출(誦出); 용수보살이 화엄경을 용궁에서 송출했으니 위 각주 문수가 결집(文殊)하고를 보라.
●계령(雞嶺); 계족산(鷄足山; 梵 Kukkuṭapāda-giri)을 가리키며 계족산(雞足山)과 같음. 또 존족산(尊足山)ㆍ낭족산(狼足山)ㆍ낭적산(狼跡山)으로 지음. 중인도(中印度) 마갈타국(摩揭陀國)에 위치함. 곧 마하가섭(摩訶迦葉)이 입적한 땅. △서역기9(西域記九). 높은 산등성이는 험하며 다함이 없고 산기슭의 개울엔 높은 숲이 계곡에 나열했고 산봉우리와 재는 가파르고 번성한 풀이 바위를 입혔다. 높이 융기한 세 봉우리 곁에 험한 낭떠러지가 빼어나다. …… 그 후 존자 대가섭파(大迦葉波)가 가운데에 거처하며 적멸했다. 감히 가리켜 말하지 못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존족(尊足)이다(高巒陗無極 深壑洞無涯 山麓谿澗 喬林羅谷 岡岑嶺嶂 繁草被巖 峻起三峰 傍挺絶崿 …… 其後尊者 居中寂滅 不敢指言 故云尊足).
●화하(華夏); 중국의 고칭(古稱)이 화하(華夏)임. 처음엔 중원지구(中原地區)를 가리켰으나 후에 전부 영토를 포거(包擧)했음. 간칭(簡稱)이 화(華)임. △좌전(左傳) 정공(定公) 10년(前 500) 예(裔; 오랑캐)가 화(華)를 도모하지 못하고 이(夷; 오랑캐)가 화(華)를 어지럽히지 못한다. 공영달(孔穎達) 소(疏) 중국은 예의의 거대함이 있어 고로 일컬어 하(夏)라 하고 복장(服章)의 아름다움이 있어 고로 일러 화(華)라 한다. 화(華)와 하(夏)는 하나이다(左傳 定公十年(前500) 裔不謀華 夷不亂華 孔穎達疏 中國有禮儀之大 故稱夏 有服章之美 故謂之華 華夏一也).
●이장자(李長者); 이통현(李通玄; 635-730)을 가리킴. 당대 화엄학자. 왕족 출신. 혹 이르기를 창주(滄州; 河北 滄縣) 사람이라 함. 개원(開元) 7년(719) 태원부(太原府) 수양(壽陽) 방산(方山)의 토감(土龕)에 은거하며 신화엄경을 참구했으며 산중에 거주하기 몇 해에 매일 겨우 대추와 잣잎의 떡으로써 식사를 삼았으며 세칭이 조백대사(棗柏大士)임. 개원 18년 3월 감실에서 좌화(坐化)했음. 향년은 96. 송휘종(宋徽宗)이 현교묘엄장자(顯敎妙嚴長者)란 호를 주었음. 소저(所著)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40권ㆍ화엄경회석론(華嚴經會釋論) 14권ㆍ십현육상(十玄六相)ㆍ백문의해(百門義海) 등이 있음 [華嚴經決疑論序及後記 華嚴經合論卷首李長者事迹 唐李長者通玄行蹟記 昭化寺帖].
●합론(合論);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을 가리킴. 석씨계고략3(釋氏稽古略三)에 이르되 개원(開元) 22년(734) 태원(太原)의 이장자(李長者)는 이름이 통현(通玄)이다. 하루에 하나의, 잣잎과 대추의 작은 떡을 먹었으므로 인하여 조백대사(棗柏大士)라 부른다. 처음에 개원 7년(719) 태원 맹현(孟縣) 고선노(高仙奴)의 별관(別舘)의 집 속에서 논을 지었다. 3년을 넘기자 마씨(馬氏)의 고불당 곁으로 옮겼는데 10년을 지내고는 경서를 지고 떠났다. 20리를 산행하다가 한 호랑이를 만났다(偶는 遇임). 장자가 어루만지며 가로되 내가 화엄론을 지으려 하는데 능히 살며 머물 곳을 간택하겠는가. 곧 경낭(經囊)을 그 등에 실었다. 가다가 신복산(神福山) 언덕 아래의 토감(土龕) 앞에 이르자 멈추었다. 장자가 이에 토감에서 논을 짓는데 매일 밤마다 입에서 백광을 내어 등촉(燈燭)에 대체했다. 날마다 두 여자가 있어 물을 긷고 향을 사루었으며 매번 식사 때는 음식을 갖추었고 재식(齋食)을 마치면 거두어 갔다. 이와 같이 하기를 다섯 해에 장자가 저론(著論)을 마쳤고 드디어 종적을 없애고 보이지 않았다. 논은 40권을 이루었다. 개원 28년(740) 3월에 장자가 죽었는데 나이는 95세다. 또 결의론(決疑論)ㆍ회석(會釋)ㆍ십문현의(十門玄義)ㆍ연생해(緣生解)ㆍ미십명(迷十明) 등의 논을 지었다. 십현육상(十玄六相)ㆍ백문의해(百門義海)ㆍ게찬어(偈讚語) 등이 모두 세상에 전해졌다.
●축(軸); 권축(卷軸)이니 꾸미어 권축형(卷軸形)을 이룬 서(書)ㆍ화(畫)를 가리킴. 대개 여금에 이르는 바 1권은 곧 옛날의 1축(軸)임.
●관국사(觀國師); 징관(澄觀; 738-839)을 가리킴. 당대승. 화엄종 제4조. 속성은 하후(夏侯)며 자는 대휴(大休)니 월주(越州) 산음(山陰; 浙江 紹興) 사람이며 호가 청량국사(淸涼國師)ㆍ화엄보살ㆍ화엄소주(華嚴疏主). 11세에 보림사(寶林寺) 패선사(霈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14세에 득도(得度)했음. 신장이 9척4촌이었고 손을 내리면 무릎에 이르렀음. 입이 40치(齒)였고 목광(目光)이 밤에 발했고 낮에는 곧 눈을 깜작이지 않았음. 하루에 만언(萬言)을 기억했고 7행(行)을 구하(俱下; 한꺼번에 읽어 내림)했음. 재능이 2필(筆)로 이바지했고 일찍이 10사(事)로 자려(自勵)했음. 일찍이 경산흠(徑山欽; 道欽이니 牛頭法融下六世)에게 서래종지(西來宗旨)를 물어 묵묵히 인기(印記)를 받았음. 오대산에 거주하며 화엄경을 소(疏)했고 후에 경사(京師)에 거주했음. 덕종(德宗)이 내전으로 영입하여 청량국사(淸涼國師)란 호를 주었음. 출생해 9조(朝)를 경력하면서 7제(帝)의 문사(門師)가 되었음. 개성(開成) 4년 시적했고 세수는 102(一說에 元和年 중에 시적했고 나이는 70여). 종남산에 탑을 세웠고 이름해 가로되 묘각(妙覺). 저작이 파다하였음. 대방광불화엄경소 60권ㆍ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 90권ㆍ화엄경강요(華嚴經綱要) 3권ㆍ오온관(五蘊觀)ㆍ삼성원융관문(三聖圓融觀門) 등 30다종(多種)이 있음 [宋高僧傳五 佛祖統紀二十九 指月錄二 禪苑蒙求中].
●소초(疏鈔); 전칭이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니 90권. 당대(唐代) 징관(澄觀)이 찬(撰)했고 약칭이 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ㆍ연의초며 대정장(大正臟; 大正新修大藏經) 제26책에 수록되었음. 징관이 일찍이 80화엄의 주석서를 찬(撰)해 있었으니 곧 화엄경소(華嚴經疏) 60권임(또 명칭이 大疏며 대정장 제35책에 수록되었음). 그 서책은 법장(法藏)의 탐현기(探玄記)와 함께 피칭(被稱)하여 화엄경 주석의 쌍벽임. 그 후 다시 화엄경소를 가지고 상세히 해설하고 부연(敷衍)하여 본서를 이루었음 [大明三藏聖敎北藏目錄四 閱藏知津三十五 華嚴宗章疏錄 佛典疏鈔目錄上 華嚴宗經論章疏目錄]. ○소(疏)는 경론의 주석서의 통칭. 대개 불경은 의리(義理)가 유심(幽深)하여 만약 소결(疏決; 막힌 것을 통하게 터놓음)하여 개통하지 않으면 곧 쉽게 계오(啓悟)하지 못하는지라 고로 모름지기 글에 의해 뜻을 해석하여 문의(文義)를 소통함을 일컬어 가로되 소(疏)라 함. 또 소문(疏文)을 주해한 것을 일컬어 초(鈔)라 함. 초(鈔)는 초략(抄略)의 뜻이니 본소(本疏)를 수순(隨順)하여 간략히 해석을 가하여 경소(經疏)의 묘한 뜻을 요연(了然)히 쉽게 알게 함임. △연등회요29(聯燈會要二十九). 옛적에 어떤 노숙(老宿)이 한 좌주(座主)에게 묻되 소초(疏鈔)를 해의(解義; 뜻을 해석)하면 광략(廣略)이 어떠한가. 좌주가 이르되 초(鈔)는 소(疏)를 해석하고 소(疏)는 경을 해석합니다. 노숙이 이르되 경은 무엇을 해석하는가. 좌주가 대답이 없었다(昔有老宿 問一座主 疏鈔解義 廣略如何 主云 鈔解疏 疏解經 宿云 經解甚麽 主無對).
●1백 권; 마땅히 90권으로 지어야 함. 혹 대수(大數; 大計)를 들었는가 의심됨.
●용수(龍樹); 선종 제14조. 범어 나가알랄수나(那伽閼剌樹那. 梵 Nāgārjuna)는 화언(華言)으로 용맹(龍猛; 舊譯에 가로되 龍樹)임. 남인도 바라문종성(婆羅門種姓) 출신. 어릴 적부터 영오(穎悟)해 4폐타(吠陀)ㆍ천문지리ㆍ도위비장(圖緯祕藏) 및 여러 도술(道術) 등을 배워 통효(通曉)하지 않은 게 없었음. 일찍이 계우(契友; 의기투합하는 친구) 세 사람과 은신(隱身)의 비술(祕術)을 수득(修得)해 드디어 은신하여 왕궁에 이르러 여권(女眷; 궁녀를 가리킴)을 침릉(侵凌)했는데 그 일이 실패해 노출된지라 세 벗은 왕에게 베이는 바가 되었고 겨우 스님 한 사람의 몸만 면(免)했음. 스님이 애욕은 곧 뭇 고(苦)의 근본임을 감오(感悟)하고 곧 입산하여 불탑(佛塔)으로 나아갔으며 아울러 출가하여 수계(受戒)했으며 삼장(三藏)을 널리 학습했음. 그러나 능히 염족(厭足; 滿足)하지 못했고 다시 설산에 이르러 한 늙은 비구(比丘)를 만났는데 대승경전(大乘經典)을 주었음. 사유(思惟)하여 비록 실의(實義)를 알았으나 능히 통리(通利)하지 못했음. 또 일찍이 외도논사(外道論師)의 뜻을 최파(摧破)한지라 고로 사만(邪慢)의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새로운 계(戒)를 세우고 새로운 옷을 입고 한 수정방(水晶房) 속에 고요히 거처했음. 그때 대룡보살(大龍菩薩)이 있어 이를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 드디어 인도(引導)해 용궁(龍宮)에 들어가 무량한 대승경전을 주었고 스님이 드디어 교리를 체득(體得)했음. 그때 남천축왕(南天竺王)이 바라문교를 신봉(信奉)하여 불법을 공격하는지라 스님이 드디어 앞으로 가서 교화해 바라문교를 방기(放棄)케 했음. 차후에 대력(大力)으로 홍법(弘法)했고 또 대승경전의 주석서를 광조(廣造)했음. 만년에 남인도의 흑봉산(黑峰山)에 거주했음 [入楞伽經九 大乘玄論五 華嚴經傳記五 付法藏傳五 傳法正宗記三 佛祖統紀五].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남천축의 여러 나라에서 그를 위해 묘(廟)를 세웠는데 부처와 같이 경봉(敬奉)했다. 그의 어머니가 나무 아래에서 그를 낳은지라 인하여 아주타나(阿周陀那; 梵 arjuna)로 자(字)했다. 아주타나는 나무 이름이다. 용(龍)으로써 그 도를 이룬지라 고로 용으로써 배자(配字)하여 호칭해 가로되 용수(龍樹)라 했다.
●존자(尊者); 범어 아리야(阿梨耶; 梵 ārya)는 번역해 성자ㆍ존자로 지음. 이르자면 지덕(智德)이 존엄(尊嚴)을 갖춘 자니 대개 라한(羅漢)의 존칭임. 혹은 선사(禪師)도 또한 존자로 일컫는 예(例)가 있음. 예컨대(如) 조주(趙州)의 법사(法嗣)인 엄양존자(嚴陽尊者)며 각범(覺範)의 호가 적음존자(寂音尊者)며 자백(紫柏)을 자백존자(紫柏尊者)라고 일컫는 등임. △자지기하1(資持記下). 존자(尊者) 납고덕중(臘高德重)하여 사람들이 존경하는 바가 된다. △행사초하1(行事鈔下一). 하좌(下座)는 상좌(上座)를 존자(尊者)라고 일컫고 상좌는 하좌를 혜명(慧命)이라고 일컫는다.
●20만 게; 마땅히 10만 게로 지어야 함. 위 각주 화엄성해(華嚴性海)를 보라.
●약내(若乃; 至于); 다른 1건(件)의 일을 제기함을 표시함. 다른 화제(話題)를 제출함을 표시함.
●강목(綱目); 대강(大綱)과 세목(細目).
●지식(知識); 붕우(朋友)의 다른 이름이니 지인(知人)이라고 말함과 같음. 내가 그의 심식과 그의 형모(形貌)를 앎임. 또 내가 아는 바의 사람이니 다지박식(多知博識)의 뜻이 아님. 여러 경의 처음에 있는, 모두 이는 대아라한이며 대중이 지식(知識)하는 바이다 함은 곧 바로 사람들이 소지(所知)함을 말함임. 그 사람이 선하면 선우와 선지식이 되고 악하면 곧 악우와 악지식이 됨. 설법하여 나를 선처(善處)로 인도하는 자는 이 선우인지라 고로 가로되 선지식이며 또 단운(單云)하되 지식임.
●의상(儀相); 의표(儀表; 儀容)의 용모(容貌). △한어대자전(漢語大字典). 상(相) 불교의 명사(名詞)니 성(性)을 상대해 말함이다. 불교에선 일체의 사물과 밖으로 나타난 형상(形象)과 상태(狀態)를 잡아 이를 일컬어 상(相)이라 한다. △금강경 이 모든 중생이 다시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중생상(衆生相)ㆍ수자상(壽者相)이 없다.
●선재(善財); 화엄경62 입법계품(入法界品)을 안험컨대 문수사리가 복성(福城)의 동쪽에 있으면서 장엄당사라림(莊嚴幢娑羅林) 중에 머물렀다. 그때 복성의 장자(長者)가 아들이 5백 동자가 있었는데 선재도 그 한 사람이다. 선재가 태어났을 때 갖가지 진보(珍寶)가 자연히 용출(涌出)했다. 이 일을 쓴 고로 부모와 친속(親屬) 및 선상사(善相師)가 모두 이 아이를 호칭하며 이름해 가로되 선재라 했다. 선재가 문수사리의 처소에 나아가서 발심하여 여기로부터 점차 남행하여 53지식을 참알하여 법계에 증입(證入)했다.
●서인(序引); 서(序)와 인(引)이니 2자(者)는 모두 문체(文體)의 이름이 됨. 인(引)은 대치(大致; 대개) 서(序)와 같지만 조금 간단(簡短)함(序和引 二者皆爲文體名 引 大致如序而稍簡短) [百度百科]. △선림보훈음의(禪林寶訓音義) 서(序)는 편수(篇首)니 문(門)의 상서(庠序; 庠은 詳과 통함. 곧 安詳)와 같다. △원각소초수문요해1(圓覺疏鈔隨文要解一). 또 서(序)란 것은 상서(庠序)다. 이아(爾雅)에 이르되 동서(東西)의 담장을 가로되 서(序)라 했다. 택사(宅舍)의 천심(淺深)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상서(庠序)를 보고 그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이마와 눈(額目)을 보고 작자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서(序)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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