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財童子第十二詣三眼國 參善見比丘 頂文三道 圓光一尋 萬字胸標 金輪掌現 順機順法 無念無照 得隨順燈法門 證歡喜行
선재동자가 제12 삼안국(三眼國)으로 나아가 선견비구(善見比丘; 梵 Su-darśana)를 참했다. 경문(頸文)이 3도(道)며 원광(圓光)이 1심(尋)이며 만자(萬字)로 가슴에 표(標)했고 금륜(金輪)이 손바닥에 나타났다. 순기(順機)하고 순법(順法)하되 사념(思念)이 없고 조명(照明)이 없나니 수순등법문(隨順燈法門)을 얻고 환희행(歡喜行; 10行 중 제1)을 증득했다.
讚曰
찬왈
直入城中借問人 人人指點在雲林
便知求友到三眼 忽見吾師光一尋
三十八河崇佛事 百千萬劫聽潮音
出家何必云年少 一息蹉跎歲月深
성중에 직입하여 사람에게 차문(借問)하니
사람마다 지점(指點)하며 운림(雲林)에 있다 하네
바로 알고 벗을 구하러 삼안(三眼)에 이르러
홀연히 나의 스승의 광명이 1(尋)임을 보았다.
삼십팔하(三十八河)에서 불사(佛事)를 숭상하고
백천만겁(百千萬劫)에 조음(潮音)을 청문(聽聞)했더라
출가함에 하필이면 연소(年少)를 이르겠는가
1식(息)에 차타(蹉跎)하는 세월이 깊도다.
●선견비구(善見比丘)를 참했다; 화엄경65 입법계품 제39지6 점차 유행(遊行)하다가 삼안국(三眼國)에 이르러 성읍과 취락, 촌린(村隣)과 시사(市肆), 천원(川原)과 산곡, 일체의 여러 곳에서 두루두루(周遍) 선견비구(善見比丘)를 구멱(求覓)하다가, 숲 속에 있으면서 경행(經行)하며 왕반(往返)함을 보았다. 장년(壯年)에 아름다운 모습이며 단정(端正)하여 가히 기뻤다. 그 머리카락은 감청(紺靑)이며 우선(右旋)하되 불란(不亂)했으며 정수리에 육계(肉髻)가 있으며 피부는 금색이며 경문(頸文; 목의 문채)이 세 줄기며 이마는 넓고 평정(平正)했으며 안목은 길고 넓어 청련화와 같았으며 입술과 입은 붉고 깨끗함이 빈바과(頻婆果)와 같았으며 가슴엔 만자(卍字)로 표(標)했으며 7처(處)가 평만(平滿)하며 그 팔은 가늘고 길며 그 손가락은 망만(網縵: 縵은 무늬 없는 비단)이며 수족장(手足掌; 손바닥과 발바닥) 가운데엔 금강륜(金剛輪)이 있었다(漸次遊行 至三眼國 於城邑聚落 村隣市肆 川原山谷 一切諸處 周遍求覓善見比丘 見在林中 經行往返 壯年美貌 端正可喜 其髮紺靑右旋不亂 頂有肉髻 皮膚金色 頸文三道 額廣平正 眼目修廣如靑蓮華 脣口丹潔如頻婆果 胸標卍字 七處平滿 其臂纖長 其指網縵 手足掌中有金剛輪).
●경문(頸文); 저본에 정문(頂文)으로 지어졌으나 화엄경65에 경문(頸文)으로 지어졌으므로 고쳤음.
●3도(道); 도(道)는 양사(量詞)니 조형물(條形物)에 쓰임. 3도(道)는 세 줄기.
●1심(尋); 심(尋)은 여덟 자 심.
●만자(萬字); 경문에 만자(卍字)로 지어졌음. 만자(卍字)는 또 만자(萬字)로 지음. 범어로 이르되 실리매차락찰낭(室利跊蹉洛刹曩)은 여기에선 이르되 길상해운(吉祥海雲)ㆍ길상희선(吉祥喜旋)이니 불타 32상(相)의 하나며 80종호(種好)의 하나가 되며 부처 및 십지보살의 가슴 등의 곳에 환히 나타나는 덕상(德相)임. 장아함1대본경(長阿含一大本經)과 대반야경381 등에 불타의 가슴 앞ㆍ수족ㆍ허리 사이 등의 곳에 만자(卍字)가 있다고 균일하게 기재되었음. 여금의 인도 아마라바제(阿摩羅婆提; 梵 Amarāvatī)에서 출토된 불타의 족석(足石)에도 또한 몇 개의 만자(卍字)가 새겨져 있음. 만(卍)의 형상은 원래 이 고대 인도에서 길상의 표지(標誌)를 표시했음. 인도를 제한 밖에도 파사(波斯; Persia)ㆍ희랍(希臘; Greece)에도 균일하게 이런 종류의 부호가 있음. 고대 인도에 있어서 불교ㆍ바라문교(婆羅門敎)ㆍ기나교(耆那敎)에서 균일하게 이것을 사용했으며 보편적으로 길상ㆍ청정ㆍ원만의 표상(標相)으로 보았음. 만자(卍字)의 한역(漢譯)은 고래로 몇 가지 설이 있음. 구마라집과 현장 등 여러 스님은 덕자(德字)로 번역했고 보리류지는 만자(萬字)로 번역했으며 공덕원만의 뜻을 표시했음. 그러나 만자의 음은 초시(初時)엔 경전(經傳)에 넣지 않았는데 무측천(武則天) 장수(長壽) 2년(693)에 이르러 비로소 이 글자를 제정했으며 만(萬)으로 읽었음 [普曜經二 十地經論十二 毘奈耶雜事十三 慧苑音義二 華嚴經隨疏演義鈔二十七 祖庭事苑四].
●환희행(歡喜行); 화엄경담현결택3(華嚴經談玄決擇三) 1. 환희행(歡喜行) 3시(施)에 다 능하여 자타를 기쁘게 하는 연고이다(三施皆能 悅自他故).
●차문(借問); 경사(敬辭)니 다른 사람을 향해 사정을 순문(詢問)함에 사용함.
●지점(指點); 1. 제설(提說; 설해 일으킴). 2. 지시(指示).
●삼십팔하(三十八河); 화엄경65 입법계품 제39지6 선견(善見)이 답해 말하되 선남자여 나의 나이가 이미 적고 출가함도 또한 근년(近年)이지만 38항하사 불타의 처소에서 범행(梵行)을 정수(淨修)했다(善見答言 善男子 我年旣少 出家又近 我此生中 於三十八恒河沙佛所 淨修梵行).
●백천만겁(百千萬劫); 범어 겁파(劫波; 梵 kalpa)ㆍ겁파(劫跛)ㆍ겁파(劫簸)ㆍ갈랍파(羯臘波)는 여기에선 이르되 분별시분(分別時分)ㆍ분별시절(分別時節)ㆍ장시(長時)ㆍ대시(大時)ㆍ시(時). 원래 고대 인도 바라문교(婆羅門敎)의 극대한 시한의 시간단위임. 불교에서 이를 따르되 계산이 불가한 장대한 연월이 됨으로 봄. 고로 경론 중에 다분히 옛일을 비유하면서 이를 비유로 나타냄 [智度論三十八 釋迦氏譜 慧苑音義上]. △대지도론38(大智度論三十八). 무엇을 겁(劫)이라고 이름하는가. 답해 가로되 예컨대(如) 경에 설하기를 한 비구가 있어 불타에게 물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얼마를 겁이라고 이름합니까. 불타가 비구에게 고하시되 내가 비록 능히 설하더라도 네가 능히 알지 못한다. 마땅히 비유를 써야 가히 이해하리라. 사방 100유순(由旬)의 성이 있다. 개자(芥子)를 넘치게 채웠다. 장수하는 사람이 있어 백세가 지나면 한 개자를 가지고 떠난다. 개자가 모두 없어져도 겁은 오히려 다하지 않는다. 또 예컨대(如) 사방 100유순의 돌을 어떤 사람이 백세(百歲)에 가시(迦尸)의 가볍고 부드러운 베옷(疊은 氎으로 의심됨)을 가지고 한 번 와서 이를 떨친다. 돌은 없어지더라도 겁은 오히려 다하지 않는다. △혜림음의9(慧琳音義九). 1겁. 범언(梵言)으로 겁파(劫簸)는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별시절(別時節)이다.
●차타(蹉跎); 이 글에선 아래 ①을 가리킴. ①실오(失誤; 差錯). 고착(搞錯; 착오를 지음). △선림소어고증1(禪林疏語考證一). 한문(韓文)이 가로되 오호라, 나의 뜻이 그 차타(蹉跎)했다. 말하자면 그 뜻을 이루지 못함이다. ②시일을 헛되이 보냄임 [潙山警策句釋記上]. △위산경책. 시광(時光)이 엄몰(淹沒; 침몰)하고 세월이 차타(蹉跎)하다. △선림유취3(禪林類聚三). 천의회선사(天衣懷禪師)가 이르되 구천(九天)의 운로(雲路)를 일찍 찾음을 쓰고 세월을 차타(蹉跎)하여 보내면서 깊어지게 하지 말아라(九天雲路早須尋 莫遣蹉跎歲月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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