秤頭蠅坐便欹傾〈謾他*一星不過〉 萬世權衡照不平〈斗滿秤錘住〉 斤兩*錙銖見端的〈莫錯認〉 終歸輸我*定盤星〈領取鉤頭意〉
●一星; 星 形容細小 猶言一點
●錙銖; 指重量 錙 古重量單位 六銖 或八銖 十二銖 六兩 八兩 皆稱爲錙 銖 古衡制單位 一兩之二十四分之一爲一銖 ▲孫子算經上 稱之所起 起于黍 十黍爲一絫 十絫爲一銖 二十四銖爲一兩 十六兩爲一斤
●定盤星; 與定盤子同 定盤爲秤 星爲衡上之目 定盤星爲秤起點之星 於物之輕重無關係 故於執著之意味與超越之意味用之也
칭두(秤頭)에 파리가 앉으면 곧 기울지나니(欹傾) 〈그것을 일성(*一星)도 속이어 통과하지 못한다〉/ 만세(萬世)의 권형(權衡; 저울)이 불평(不平)을 비춘다 〈말이 차면(斗滿) 저울추가 머문다〉/ 근량치수(斤兩*錙銖)가 단적(端的)을 보이나니 〈착인(錯認)하지 말아라〉/ 마침내 나의 정반성(*定盤星)으로 귀수(歸輸; 回歸轉輸)한다 〈구두(鉤頭)의 뜻을 영취(領取; 領悟)하라〉.
●一星; 성(星)은 세소(細小)를 형용함. 1점이라고 말함과 같음.
●錙銖; 중량을 가리킴. 치(錙)는 고대의 중량단위니 6수(銖) 혹 8수ㆍ12수ㆍ6량(兩)ㆍ8량을 모두 일컬어 치(錙)라 함. 수(銖)는 고대의 형제단위(衡制單位)니 1량의 24분의 1이 1수가 됨. ▲손자산경상(孫子算經上). 저울의 일어남은 서(黍; 기장 서)에서 일어났다. 10서가 1류(絫)가 되며 10류가 1수(銖)가 되며 24수가 1량(兩)이 되며 16량이 1근(斤)이 된다.
●定盤星; 정반자(定盤子)와 같음. 정반(定盤)은 칭(秤; 저울)이며 성(星)은 저울대(衡) 위의 눈금(目)이니 정반성은 저울의 기점(起點)의 눈금이 됨. 물건의 경중에 관계가 없으으로 고로 집착의 의미와 초월의 의미에 그것을 사용함.
師云 天童破題一句 便頌毫厘有差天地懸隔 *廬山*遠公云 本端竟何從 起滅有無際 一微涉動境 狀此穨山勢 三祖道箇嫌字 先自憎愛了也 却道 但不憎愛洞然明白 諸人退步 就己子細點檢看 梵語三摩地 此云等持 不沈不掉 平等任持也 此可以爲萬世權衡照不平者也 *尙書治要圖說 秤有三義 準者繫也 衡者平也 權者錘也 楞嚴經云 於其自住三摩地中 見與見緣 幷所想相 如虛空花本無所有 此見及緣 元是*菩提*妙淨明體 云何於中有是非是 到此正恁麽時 不須嫌揀擇離憎愛 尙無毫厘之差 豈有雲泥之隔 斤兩錙銖者 八銖爲錙 三錙爲兩 十六兩爲斤 是他權衡在手底人 爾將一斤來 我也一移敎平 將一兩來 也一移敎平 稍似錙銖增減便欹傾也 諸方道 領取鉤頭意 莫認定盤星 蓋定盤星上 本無斤兩 又如北辰鎭居其所 鉤頭加減 計在臨時 萬松道 有心而平 未若無心而不平 所以無星秤上饒人賣 *雙陸盤中*信彩贏 還會法眼道山主徹也麽 秤錘移到徹梢頭 忽然拶落翻*斤斗
●廬山; 位於江西九江 北倚長江 東接鄱陽湖 又稱匡山 南鄣山 南康山 匡廬 廬阜 輔山 靖廬山 相傳黃帝曾遊止於此 故又稱三天子都 三天子鄣 又傳殷商(或周代)之際 有匡俗者 於山中結廬隱棲修仙道 後羽化而去 僅存空廬 自此遂有廬山之名 東晉太元(376-396)初年 道安之門人慧永來山 於香谷建西林寺 十一年 慧遠應慧永之請 來山建東林寺 世稱東林西林 十五年建般若臺精舍 奉安阿彌陀佛像 與道俗百二十餘人 共結白蓮社 作爲淨土敎修行之根本道場 提倡念佛法門
●遠公; 指慧遠(334-416) 東晉僧 樓煩(山西寧武)賈氏 神明英越 機鑑遐深 幼好學 博綜六經 尤善莊老 年二十一 受業於道安 常欲總攝綱維 以大法爲己任 精思諷持 以夜續晝 太元三年(378) 於廬山立東林精舍 與慧永 宗炳 劉遺民等 緇素百二十三人結白蓮社 勤修淨業 六時念佛 求生西方 有十八高賢之目 而遠冠之 居三十餘年 雖帝詔亦不出山 送客以虎溪爲界 嘗作法性論 唱涅槃常住之說 出沙門不敬王者論 張沙門之綱維 有匡山集 [梁高僧傳六 禪林寶訓音義 六學僧傳十一]
●尙書治要圖說; 尙書治要 是根據尙書正義的前人注疏 參考張居正尙書直解 以人物爲主線撰寫的君臣傳記 全書把虞夏商周四書中的各篇 分別編排在各傳主的名下與章節內 對三五八張圖畫配以摘要式圖說 [百度百科]
●菩提; <梵> bodhi 舊譯爲道 新譯爲覺 道者通義 覺者覺悟之義 然所通所覺之境 有事理之二法 理者涅槃 斷煩惱障而證涅槃之一切智 是通三乘之菩提也 事者一切有爲之諸法 斷所知障而知諸法之一切種智 是唯佛之菩提也 佛之菩提 通於此二者 故謂之大菩提 [智度論四 注維摩經四]
●妙淨明體; 妙卽無上最上之意 淨卽淸淨之意 明卽遠離無明而達於徹悟之境地
●雙陸; 又作雙六 古代的一種賭博遊戱 ▲祖庭事苑七 雙陸 博戲也 如樗蒲 雉盧是也 ▲慧琳音義五十九 博掩 博 博戲也 用六箸六棊謂之六博 掩 圍幕也 纂文云 撲掩 跳錢戲也 俗人謂之射意 一曰射數 亦云博戲 掩 取 又財物也
●信彩; 骰子彫一二三等數 此言彩 信彩 本指在雙陸博戲中信手擲骰子 引申指隨意 不拘 信 隨意 任凭 如信手拈來 彩 又文彩 文章 又彩 賞品或賞金 賭博或某種競爭活動中 給得勝者的錢物 唐代李白送外甥鄭灌從軍三首之一 六博爭雄好彩來 金盤一擲萬人開
●斤斗; 又作筋斗 巾斗 唐之俗語 爲倒翻身也 斤是其本字 餘皆爲假用 ▲祖庭事苑七 斤斗 斤 斫木具也 頭重而柯輕 用之則斗轉 爲此技者似之
스님이 이르되 천동의 파제(破題; 문장의 開頭)의 1구는 곧 호리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천지처럼 현격하다를 송했다. 여산(*廬山)의 원공(*遠公)이 이르되 본단(本端)은 마침내 무엇을 말미암는가/ 기멸(起滅)이 무제(無際)함이 있다/ 일미(一微)가 동경(動境)에 건너면/ 이 퇴산(穨山; 穨는 頹와 같음)의 형세를 형상(形狀)한다. 3조가 말한 혐자(嫌字)는 먼저 스스로 증애(憎愛)했거늘 도리어 말하되 단지 증애(憎愛)하지 않으면 통연(洞然)히 명백하다. 제인(諸人)이 퇴보(退步)하여 자기에게로 나아가 자세히 점검해 보아라. 범어 삼마지(三摩地)는 여기에선 이르되 등지(等持)니 불침부도(不沈不掉)하면서 평등히 임지(任持)함이다. 이것은 가이(可以) 만세(萬世)의 권형(權衡)이 되어 불평(不平)을 비추는 것이다. 상서치요도설(*尙書治要圖說) 칭(秤)에 3의(義)가 있나니 준(準)이란 것은 계(繫; 매다)며 형(衡; 저울대)이란 것은 평(平)이며 권(權; 저울추)이란 것은 추(錘)다. 릉엄경에 이르되 그 자주(自住)하는 삼마지(三摩地) 중에 견(見)과 견연(見緣), 아울러 소상(所想)의 상(相)이 허공화(虛空花)와 같아서 본래 있는 바가 없다. 이 견(見) 및 연(緣)이 원래 이 보리(*菩提)의 묘정명체(*妙淨明體)이거늘 어찌하여 이 중에 시(是)와 비시(非是)가 있으리오. 여기에 이르러선 바로 이러한 때 간택을 꺼리거나 증애를 여읨이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호리의 어긋남도 없거늘 어찌 운니(雲泥)의 간격이 있겠는가. 근량치수(斤兩錙銖)란 것은 8수(銖)가 치(錙)가 되고 3치가 량(兩)이 되고 16량이 근(斤)이 된다. 이는 그 권형(權衡)이 손에 있는 사람일진대 네가 1근을 가지고 오면 내가 한 번 옳겨 평(平)하게 하고 1량을 가지고 오면 또한 한 번 옮겨 평하게 하나니 조금이라도 치수(錙銖)가 증감할 것 같으면 곧 의경(欹傾; 기울다)한다. 제방에서 말하되 구두(鉤頭)의 뜻을 영취(領取; 領悟)하고 정반성(定盤星)을 인정하지 말아라 한다. 대개 정반성 위엔 본래 근량(斤兩)이 없다. 또 북신(北辰; 북극성)이 그 처소에 고요히(鎭) 거처함과 같다. 구두(鉤頭)의 가감(加減)은 계산이 임시(臨時)에 있다. 만송이 말하노니 유심(有心)하면서 평(平)함이 무심(無心)하면서 불평(不平)함만 같지 못하다. 소이로 무성칭상(無星秤上)에 사람의 매매(買賣)를 관서(寬恕; 饒)하고 쌍륙반중(*雙陸盤中)에 신채(*信彩)하여 이긴다(贏). 도리어 법안이 말한 산주(山主)가 철(徹; 徹悟)했다 함을 알겠는가. 칭추(秤錘)를 이도(移到)하여 초두(梢頭)를 관철(貫徹)했다가 홀연히 찰락(拶落; 압박해 떨어지다)하니 근두(*斤斗)가 뒤집혔다.
●廬山; 강서 구강에 위치함. 북쪽은 장강에 기대었고 동쪽은 파양호에 인접했음. 또 명칭이 광산(匡山)ㆍ남장산(南鄣山)ㆍ남강산(南康山)ㆍ광려(匡廬)ㆍ여부(廬阜)ㆍ보산(輔山)ㆍ정려산(靖廬山)임. 서로 전하기를 황제(黃帝)가 일찍이 유람하다가 여기에서 머물렀다 하며 고로 또 명칭이 삼천자도(三天子都)ㆍ삼천자장(三天子鄣)임. 또 전하기를 은상(殷商) (혹은 周代)의 즈음에 광속(匡俗)이란 자가 있어 산중에 오두막집을 엮고 은서(隱棲)하며 선도(仙道)를 닦았고 후에 우화(羽化)하여 떠났으며 겨우 공려(空廬)만 잔존한지라 이로부터 드디어 여산(廬山)의 이름이 있었다 함. 동진 태원(376-396) 초년에 도안(道安)의 문인인 혜영(慧永)이 산에 도래하여 향곡에 서림사(西林寺)를 세웠으며 11년에 혜원(慧遠)이 혜영의 청에 응해 산에 도래하여 동림사(東林寺)를 세웠으니 세칭이 동림ㆍ서림임. 15년에 반야대정사를 건립하고 아미타불상을 봉안하고 도속 120여 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정토교 수행의 근본도량으로 삼았으며 염불법문을 제창했음.
●遠公; 혜원(慧遠; 334-416)을 가리킴. 동진승(東晉僧). 누번(樓煩; 산서 寧武) 가씨. 신명(神明; 神靈)하고 영월(英越)했으며 기감(機鑑; 鑒識)이 하심(遐深)했음. 어릴 적에 학문을 좋아했고 6경(經)을 박종(博綜; 博通)했으며 장로(莊老)를 더욱 잘했음. 나이 21에 도안(道安)에게서 수업(受業)했고 늘 강유(綱維)를 총섭(總攝)하고자 했고 대법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고 정사(精思)하며 풍지(諷持; 諷誦修持)했고 밤으로써 낮을 이었음. 태원 3년(378) 여산(廬山)에 동림정사(東林精舍)를 세워 혜영ㆍ종병ㆍ유유민 등 치소(緇素) 123인과 더불어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정업(淨業)을 근수(勤修)했음. 육시(六時)에 염불하며 서방에 왕생하기를 구했으니 18고현(高賢)의 명목이 있어 멀리 관개(冠蓋)했음. 30여 년 거주하면서 비록 황제가 부르더라도 또한 산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송객(送客)은 호계(虎溪)로써 경계를 삼았음. 일찍이 법성론을 지었고 열반상주(涅槃常住)의 설을 제창했음.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내었고(出) 사문의 강유(綱維)를 펼쳤음. 광산집(匡山集)이 있음 [양고승전6. 선림보훈음의. 육학승전11].
●尙書治要圖說; 상서치요(尙書治要)는 이 상서정의(尙書正義)의 전인(前人)의 주소(注疏)에 근거하고 장거정(張居正)의 상서직해(尙書直解)를 참고하여 인물을 주선(主線)으로 삼아 찬사(撰寫)한 군신(君臣)의 전기(傳記)임. 전서(全書)에 우(虞)ㆍ하(夏)ㆍ상(商)ㆍ주(周) 4서(書) 중의 각편(各篇)을 파악하여 각 전주(傳主)의 이름 아래와 장절(章節) 내에 분별하여 편배(編排)해 두었음. 358장의 도화(圖畫)에 대해 적요식(摘要式) 도설(圖說)을 배치했음 [백도백과]
●菩提; <범> bodhi. 구역은 도(道)라 했고 신역은 각(覺)이라 했음. 도란 것은 통(通)의 뜻이며 각이란 것은 각오의 뜻임. 그러나 소통소각(所通所覺)의 경계는 사리(事理)의 2법이 있음. 리(理)란 것은 열반이니 번뇌장(煩惱障)을 끊고 열반을 증득하는 일체지(一切智)며 이는 3승(乘)의 보리에 통함. 사(事)란 것은 일체 유위의 제법이니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제법을 아는 일체종지(一切種智)며 이는 오직 불타의 보리임. 이 둘에 통하는 것인지라 고로 이를 일러 대보리(大菩提)라 함 [지도론4. 주유마경4].
●妙淨明體; 묘(妙)는 곧 무상최상(無上最上)의 뜻이며 정(淨)은 곧 청정의 뜻이며 명(明)은 곧 무명을 멀리 여의고 철오(徹悟)의 경지에 도달함임.
●雙陸; 또 쌍륙(雙六)으로 지음. 고대의 1종 도박 유희임. ▲조정사원7. 쌍륙(雙陸) 박희(博戲; 도박놀이)니 저포(樗蒲; 樗는 가죽나무 저. 저포는 윷놀이의 한 가지. 옛날의 도박)와 치로(雉盧) 같은 게 이것임. ▲혜림음의59. 박엄(博掩) 박(博)은 박희(博戲)임. 6저(箸)ㆍ6기(棊)를 사용함을 일러 육박(六博)이며 엄(掩)은 위막(圍幕)임. 찬문(纂文)에 이르되 박엄(撲掩) 도전희(跳錢戲)다. 속인이 이를 일러 사의(射意)라 함. 한편으론 가로되 사수(射數)며 또 이르되 박희(博戲)니 엄(掩)은 취(取)며 또 재물임.
●信彩; 투자(骰子; 주사위)에 일이삼(一二三) 등의 수를 새기는데 이것을 채(彩)라고 말함. 신채(信彩)는 본래 쌍륙(雙陸)의 박희(博戲; 노름) 중에 손 닿는 대로 투자를 던짐을 가리킴. 인신(引申; 轉義)하여 수의(隨意)ㆍ불구(不拘)를 가리킴. 신(信)은 수의(隨意)ㆍ임빙(任凭; 마음대로 하게 하다)이니 신수염래(信手拈來)와 같음. 채(彩)는 또 문채ㆍ문장임. 또 채(彩)는 상품 혹 상금이니 도박 혹 모종의 경쟁 활동 중 승자에게 급여하는 전물(錢物)임. 당대 이백(李白)의, 종군하는 외생 정관을 보냄(送外甥鄭灌從軍)의 3수의 하나 육박(六博)에서 쟁웅(爭雄)하매 호채(好彩)가 오고 금반(金盤)에 한 번 던지니 만인(萬人)이 열리다.
●斤斗; 또 근두(筋斗)ㆍ건두(巾斗)로 지음. 당의 속어니 몸을 거꾸로 뒤집음이 됨. 근(斤)이 이 그의 본래 글자며 나머지는 가차(假借)하여 씀이 됨. ▲조정사원7. 근두(斤斗) 도끼는 나무를 쪼개는 도구임. 머리가 무겁고 자루가 가벼워 이를 쓰면 곧 두(斗; 말. 자루가 있음)가 회전하므로 이 기예를 하는 자가 이와 흡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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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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