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如何是佛 師云 卽心是佛 無心是道 但無生心動念有無長短彼我能所等心 心本是佛 佛本是心 心如虛空 所以云 佛眞法身猶若虛空 不用別求 有求皆苦 設使恒沙劫行六度萬行得佛菩提 亦非究竟 何以故 爲屬因緣造作故 因緣若盡還歸無常 所以云 報化非眞佛 亦非說法者 但識自心 無我無人本來是佛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운(師云) 즉심(卽心)이 이 불(佛)이며 무심(無心)이 이 도다(道). 단지 생심동념(生心動念)하여 유무(有無)ㆍ장단(長短)ㆍ피아(彼我)ㆍ능소(能所) 등의 마음이 없어야 하나니 마음이 본시(本是) 부처며 부처가 본시 마음이다. 마음이 허공과 같은지라 소이로 이르되 부처의 참 법신(法身)이 마치 허공과 같다. 달리 구함을 쓰지 말지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 고(苦)다. 설사(設使) 항사겁(恒沙劫)에 6도(六度)의 만행(萬行)을 행해 불보리(佛菩提)를 얻더라도 또한 구경(究竟)이 아니다. 무슨 연고냐, 인연(因緣)과 조작(造作)에 속하는 연고이다. 인연이 만약 다하면 무상(無常)으로 환귀(還歸)하나니 소이로 이르되 보화(報化)는 진불(眞佛)이 아니며 또한 설법하는 자도 아니다. 단지 자심(自心)을 알아야 무아무인(無我無人)하여 본래 이 부처다.
佛; <梵> buddha 四十二章經解 佛者 梵語 具云佛陀 此翻覺者 謂自覺覺他覺行圓滿 自覺不同凡夫 覺他不同二乘 覺滿不同菩薩 卽是釋迦牟尼如來萬德慈尊 娑婆世界之敎主也
<범> buddha. 사십이장경해. 불(佛)이란 범어다. 갖추어 이르면 불타(佛陀; 梵 buddha)니 여기에선 각자(覺者)로 번역한다. 이르자면 자각(自覺)하고 각타(覺他)하여 각행(覺行)이 원만함이다. 자각(自覺)은 범부와 같지 않음이며 각타(覺他)는 2승(乘)과 같지 않음이며 각만(覺滿)은 보살과 같지 않음이다. 곧 이 석가모니여래니 만덕(萬德)의 자존(慈尊)이며 사바세계의 교주다.
法身; 佛三身之一 謂證得清淨自性 成就一切功德之身
불타의 3신의 하나. 이르자면 청정한 자성을 증득하여 일체 공덕을 성취한 몸.
恒沙; 恒河沙之略 卽恆河之沙 又作恆邊沙 恆水邊流沙 江河沙 兢伽沙 恆沙 恆河沙數等 恆河沙粒至細 其量無法計算 諸經中凡形容無法計算之數 多以恆河沙一詞爲喩 ▲智度論七 問曰 如閻浮提中 種種大河亦有過恒河者 何故常言恒河沙等 答曰 恒河沙多 餘河不爾 復次是恒河是佛生處 遊行處 弟子現見 故以爲喩 復次諸人經書 皆以恒河爲福德吉河 若入中洗者 諸罪垢惡皆悉除盡 以人敬事此河 皆共識知 故以恒河沙爲喩 復次餘河名字屢轉 此恒河世世不轉 以是故以恒河沙爲喩 不取餘河
항하사(恒河沙; 梵 gaṅgā-nadā-vāluka)의 약칭(略稱). 곧 항하(恆河; 梵 gaṅgā. 갠지스)의 모래. 또 항변사(恆邊沙)ㆍ항수변류사(恆水邊流沙)ㆍ강하사(江河沙)ㆍ긍가사(兢伽沙)ㆍ항사(恆沙)ㆍ항하사수(恆河沙數) 등으로 지음. 항하의 모래알은 지극히 작아서 그 양을 계산할 방법이 없는지라 여러 경중에서 무릇 계산할 방법이 없는 수를 형용하면서 다분히 항하사 1사(詞)로써 비유를 삼음. ▲지도론7. 물어 가로되 예컨대(如) 염부제(閻浮提) 중에 갖가지 대하(大河)도 또한 항하를 초과하는 것이 있거늘 무슨 연고로 항하사 등이라고 늘 말하는가. 답해 가로되 항하는 모래가 많지만 여타의 하(河)는 그렇지 못하다. 다시 다음에 이 항하는 이 불타가 탄생한 곳이며 유행(遊行)하는 곳이며 제자가 현재 보는지라 고로 비유를 삼았다. 다시 다음에 여러 사람의 경서(經書)에 모두 항하를 복덕과 길상으로 삼았으며 만약 가운데 들어가 씻는 자면 모든 죄와 구악(垢惡)이 모두 다 제진(除盡)한다. 사람들이 이 하(河)를 경사(敬事; 공경해 섬김)하며 모두 다 식지(識知)하므로 고로 항하사로 비유를 삼았다. 다시 다음에 여하(餘河)의 명자는 누차 전환(轉換)되었지만 이 항하는 세세(世世)에 전환되지 않은지라 이런 연고로써 항하사로써 비유를 삼고 여하(餘河)를 취하지 않았다.
劫; 梵語劫波 劫跛 劫簸 羯臘波 此云分別時分 分別時節 長時 大時 時 原爲古代印度婆羅門敎極大時限之時間單位 佛敎沿之 而視之爲不可計算之長大年月 故經論中多以譬喩故事喩顯之 [智度論三十八 釋迦氏譜 慧苑音義上]
범어 겁파(劫波; 梵 kalpa)ㆍ겁파(劫跛)ㆍ겁파(劫簸)ㆍ갈랍파는 여기에선 이르되 분별시분ㆍ분별시절ㆍ장시(長時)ㆍ대시(大時)ㆍ시(時). 원래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극대한 시한의 시간단위가 됨. 불교에서 이를 따르되 계산이 불가한 장대한 연월이 됨으로 봄. 고로 경론 중에 다분히 옛일을 비유하면서 이를 비유로 나타냄 [지도론38. 석가씨보. 혜원음의상].
六度; 六波羅蜜也 波羅蜜 舊譯爲度 三藏法數十九 六度[出六度集經] 一檀那 梵語檀那 華言布施 二尸羅 梵語尸羅 華言性善 謂好行善道 不自放逸 此據義而譯也 正翻止得 謂止惡得善也 又翻爲戒 謂戒能防止身口所作之惡也 三羼提 梵語羼提 華言忍辱 四毘梨耶 梵語毘梨耶 華言精進 五禪那 梵語禪那 華言靜慮 六般若 梵語般若 華言智慧
육바라밀(六波羅蜜; 梵 śaḍ-pāramitā)임. 바라밀은 구역에 도(度)라 했음. 삼장법수19. 육도(六度) [출육도집경] 1. 단나(檀那; 梵 dāna) 범어 단나는 화언(華言)으론 보시임. 2. 시라(尸羅; 梵 śīla) 범어 시라는 화언으론 성선(性善)이니 이르자면 선도(善道)를 행하기를 좋아해 스스로 방일하지 않음임. 이것은 뜻에 의거해 번역했음이며 바로 번역하면 지득(止得)이니 이르자면 악을 그치고 선을 얻음임. 또 계(戒)로 번역함. 이르자면 계는 능히 몸과 입으로 짓는 바의 악을 방지함. 3. 찬제(羼提; 梵 kṣānti) 범어 찬제는 화언으론 인욕임. 4. 비리야(毗梨耶; 梵 vīrya) 범어 비리야는 화언으론 정진임. 5. 선나(禪那; 梵 dhyāna) 범어 선나는 화언으론 정려(靜慮)임. 6. 반야(般若; 梵 prajñā) 범어 반야는 화언으론 지혜임.
萬行; 一切之行法 ▲宗鏡錄三十七 夫一心者 萬法之總也 分而爲戒定慧 開而爲六度 散而爲萬行 萬行未嘗非一心 一心未嘗違萬行
일체의 행법. ▲종경록37. 무릇 일심이란 것은 만법의 총(總)이니 나누면 계정혜가 되고 열면 육도(六度)가 되고 흩으면 만행(萬行)이 된다. 만행이 일찍이 일심이 아님이 없고 일심이 일찍이 만행을 위배하지 않는다.
佛菩提; 唯佛能得之菩提
오직 불타만이 능히 얻는 보리.
菩提; <梵> bodhi 舊譯爲道 新譯爲覺 道者通義 覺者覺悟之義 然所通所覺之境 有事理之二法 理者涅槃 斷煩惱障而證涅槃之一切智 是通三乘之菩提也 事者一切有爲之諸法 斷所知障而知諸法之一切種智 是唯佛之菩提也 佛之菩提 通於此二者 故謂之大菩提 [智度論四 注維摩經四]
<범> bodhi. 구역은 도(道)라 했고 신역은 각(覺)이라 했음. 도란 것은 통(通)의 뜻이며 각이란 것은 각오의 뜻임. 그러나 소통소각(所通所覺)의 경계는 사리(事理)의 2법이 있음. 리(理)란 것은 열반이니 번뇌장(煩惱障)을 끊고 열반을 증득하는 일체지(一切智)며 이는 3승(乘)의 보리에 통함. 사(事)란 것은 일체 유위의 제법이니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제법을 아는 일체종지(一切種智)며 이는 오직 불타의 보리임. 이 둘에 통하는 것인지라 고로 이를 일러 대보리(大菩提)라 함 [지도론4. 주유마경4].
究竟; 一事理道法至極高深之處 終極永恒的眞理 二畢竟 此指一
1. 사리의 도법이 지극하고 고심(高深)한 곳. 종극의 영항(永恒)의 진리. 2. 필경.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因緣 (一)一物之生 親與强力者爲因 疏添弱力者爲緣 例如種子爲因 雨露農夫等爲緣 此因緣和合而生米 (二)禪家把機語或示機應機的行爲動作等 稱爲因緣 意同公案 (三)梵語尼陀羅 華言因緣 十二分敎(十二部經)之一 此指(一)
(1). 1물(物)의 생(生)에 강력(强力)을 친여(親與)하는 것을 인(因)이라 하고 약력(弱力)을 소첨(疏添)하는 것을 연(緣)이라 함. 예여(例如) 종자는 인이 되고 우로(雨露)와 농부 등은 연이 되어 이 인연이 화합하여 쌀이 생산됨. (2). 선가에선 기어(機語)나 혹은 시기응기(示機應機)의 행위동작(行爲動作) 등을 잡아서 인연이라 호칭함. 뜻이 공안(公案)과 같음. (3). 범어 니다라(尼陀羅)는 화언으로 인연이니 12분교(12부경)의 하나.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造作; 特意做作 含有貶義
특의(特意)로 주작(做作)함이니 폄의(貶義)를 함유했음.
報化; 指法報化三身中報身與化身
법ㆍ보ㆍ화 3신 중의 보신과 화신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