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릉록

완릉록 04

태화당 2023. 1. 9. 09:43

問心旣本來是佛 還修六度萬行否 師云 悟在於心 非關六度萬行 六度萬行盡是化門接物度生邊事 設使菩提眞如實際解脫法身 直至十地四果聖位 盡是度門 非關佛心 心卽是佛 所以一切諸度門中佛心第一 但無生死煩惱等心 卽不用菩提等法 所以道 佛說一切法 度我一切心 我無一切心 何用一切法 從佛至祖 並不論別事 唯論一心 亦云一乘 所以十方諦求更無餘乘 此衆無枝葉 唯有諸貞實 所以此意難信 達摩來此土 至梁魏二國 秖有可大師一人 密信自心 言下便會 卽心是佛 身心俱無 是名大道 大道本來平等 所以深信含生同一眞性 心性不異 卽性卽心 心不異性 名之爲祖 所以云 認得心性時 可說不思議

 

묻되 마음이 이미 본래 이 부처라면 도리어() 6()의 만행(萬行)을 닦습니까. 사운(師云) 깨침은 마음에 있고 6도의 만행에 상관되지 않는다. 6도의 만행은 모두() 이 화문(化門)의 접물(接物; 중생을 接引)하여 도생(度生; 중생을 化度)하는 가의 일이다. 설사(設使) 보리(菩提)와 진여(眞如)의 실제(實際)와 해탈(解脫)의 법신(法身)이나 바로 10(十地)4(四果)의 성위(聖位)에 이르더라도 모두() 이 도문(度門; 化度의 문)이라서 불심(佛心)에 상관되지 않는다. 마음이 즉시(卽是) 부처인지라 소이로 일체의 모든 도문(度門) 중에 불심이 제일(第一)이다. 단지 생사와 번뇌 등의 마음이 없어 곧 보리(菩提) 등의 법을 쓰지 않나니 소이로 말하되 부처가 일체법을 설함은 나의 일체심을 화도(化度)함이거니와 내가 일체심이 없거늘 어찌 일체법을 쓰겠는가. 부처로 좇아 조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별사(別事)를 논하지 않고 오직 일심을 논하나니 또한 이르되 1(一乘)이다. 소이로 시방(十方)에 체구(諦求; 자세히 구하다)해도 다시 여승(餘乘)이 없나니 이 도중(徒衆)은 지엽(枝葉)이 없고 오직 모든 정실(貞實)만 있는지라(2구는 법화경1에 나옴) 소이로 차의(此意)를 믿기 어렵다. 달마(達摩)가 차토(此土)에 와서 양위(梁魏) 2()에 이르매 다만 가대사(大師) 1인이 있어 몰래() 자심(自心)을 믿었고 언하에 바로 영회(領會)했다. 즉심(卽心)이 이 부처며 신심(身心)이 모두() 없으니 이 이름이 대도(大道). 대도는 본래 평등한지라 소이로 함생(含生)이 동일한 진성(眞性)임을 깊이 믿는다. ()과 성()이 다르지 않아서 즉성(卽性)이 즉심(卽心)이니 심()이 성()과 다르지 않음을 이름하여 조(; 조사). 소이로 이르되 심성(心性)을 인득(認得)할 때 가히 부사의(不思議)라고 설한다(23鶴勒那의 전법게의 2).

 


化門; 敎化的法門 建化門 第二義門

교화의 법문. 건화문. 제이의문.

 

眞如; 眞實不虛妄之意 如 不變其性之意 卽大乘佛敎所說之萬有之本體 大乘起信論 言眞如者 亦無有相 謂言說之極 因言遣言 此眞如體無有可遣 以一切法悉皆眞故 亦無可立 以一切法皆同如故 當知一切法不可說不可念 故名爲眞如

()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의 뜻이며 여()는 그 자성이 변하지 않음의 뜻이니 곧 대승불교에서 설하는 바의 만유(萬有)의 본체(本體). 대승기신론 말한 진여(眞如)란 것은 또한 모양()이 있지 않나니 이르자면 언설의 극()이라서 말을 인해 말을 보냄이다. 이 진여의 체()는 가히 보냄이 있지 않나니 일체법이 모두 다 진()인 연고며 또한 가히 세움이 없나니 일체법이 다 모두 여()인 연고다. 마땅히 알라, 일체법은 불가설(不可說)이며 불가념(不可念)인지라 고로 이름해 진여다.

 

實際; 眞實際極之意 卽指絶離虛妄之涅槃實證 又指眞如之理體 禪宗常用實際理地一語 表示超越斷絶一切差別妄見的平等一如之世界 或眞實究竟之境地

진실제(眞實際)의 궁극의 뜻. 곧 허망을 절리(絶離)한 열반의 실증(實證)을 가리킴. 또 진여의 이체(理體)를 가리킴. 선종에서 상용하는 실제이지(實際理地)1()는 일체의 차별과 망경(妄見)을 초월하고 단절한 평등일여(平等一如)의 세계, 혹 진실구경(眞實究竟)의 경지를 표시함.

 

解脫; 梵語毘木叉 毘目叉 毘木底 又作木叉 木底 意謂解放 指由煩惱束縛中解放 而超脫迷苦之境地 以能超度迷之世界 故又稱度脫 以得解脫 故稱得脫 [大般涅槃經五 顯揚聖敎論十三 十住毘婆沙論十一]

범어 비목차(毘木叉; vimokṣa)ㆍ비목차(毘目叉)ㆍ비목지(毘木底; vimukti), 또 목차(木叉)ㆍ목지(木底)로 지음. 뜻으로 이르면 해방이니 번뇌의 속박 가운데로부터 해방하여 미고(迷苦)의 경지(境地)를 초탈함을 가리킴. 능히 미()의 세계를 초도(超度)하므로 고로 또 명칭이 도탈(度脫)이며 해탈을 얻으므로 고로 명칭이 득탈(得脫)[대반열반경5. 현양성교론13. 십주비바사론11].

 

十地; 或曰十住 種種不一 一歡喜地 二離垢地 三發光地 四焰慧地 五難勝地 六現前地 七遠行地 八不動地 九善慧地 十法雲地 [三藏法數]

혹 가로되 십주(十住)니 갖가지라 일치하지 않음. 1은 환희지며 2는 이구지며 3은 발광지며 4는 염혜지며 5는 난승지며 6은 현전지며 7은 원행지며 8은 부동지며 9는 선혜지며 10은 법운지임 [삼장법수].

 

四果; 聲聞乘聖果之差別也 其階段依次爲預流果(須陀洹果) 一來果(斯陀含果) 不還果(阿那含果) 阿羅漢果

성문승 성과(聖果)의 차별임. 그 계단은 차제헤 의해 예류과(수다원과)ㆍ일래과(사다함과)ㆍ불환과(아나함과)ㆍ아라한과가 됨.

 

一乘; 成佛唯一之敎也 乘爲車乘 以譬佛之敎法 敎法能載人運於涅槃岸 故謂之乘 法華經專說此一乘 法華經方便品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성불할 유일한 교임. ()은 거승(車乘)이 되며 불타의 교법에 비유함. 교법이 능히 사람을 싣고 열반의 언덕으로 운행하는지라 고로 이를 일러 승이라 함. 법화경은 오로지 이 1승을 설함. 법화경 방편품. 시방의 불토 중에/ 오직 일승법만 있고/ 둘이 없고 또 셋이 없나니/ 불타의 방편설을 제한다.

 

貞實; 其心誠實而無諂曲 堪受法者

그 마음이 성실해 첨곡(諂曲)이 없으며 수법(受法)을 감내할 자.

 

達摩; 又作達磨 菩提達磨 此云道法 又稱菩提達摩 菩提達磨多羅 達磨多羅 菩提多羅 通稱達磨 東土禪宗初祖 西天第二十八祖 南天竺香至國國王之第三子 從般若多羅學道 與佛大先竝稱爲門下二甘露門 梁武帝普通元年(520 西來年度 異說紛紜) 師泛海至廣州番禺 武帝遣使迎至建業 然與武帝語不相契 遂渡江至魏 止嵩山少林寺 面壁坐禪 時人不解其意 稱壁觀婆羅門 經九載 欲歸西方 囑慧可一宗之祕奧 授袈裟及楞伽經四卷 未久卽入寂 葬於熊耳山定林寺 師之示寂年代 有梁大通二年(528) 梁大同元年(535)或二年等異說 又梁武帝尊稱師爲聖胄大師 唐代宗賜圓覺大師之諡號 塔名空觀 [續高僧傳十六 傳燈錄三 傳法正宗記五 祖庭事苑二 同五 同八 舊唐書列傳一四一神秀傳]

또 달마(達磨)로 지음. 보리달마(菩提達磨; Bodhidharma)니 여기에선 이르되 도법(道法)이며 또 호칭이 보리달마(菩提達摩)ㆍ보리달마다라(菩提達磨多羅)ㆍ달마다라(達磨多羅)ㆍ보리다라(菩提多羅)며 통칭이 달마임. 동토(東土)의 선종 초조며 서천(西天)의 제28조임. 남천축(南天竺) 향지국(香至國) 국왕의 셋째 아들이며 반야다라(般若多羅)를 좇아 도를 배웠으며 불대선(佛大先)과 아울러 문하(門下)의 두 감로문(甘露門)이라고 호칭하였음. () 무제(武帝) 보통원년(普通元年; 520. 西來年度異說紛紜) 스님이 바다에 떠서 광주(廣州)의 번옹(番禺)에 이르자 무제가 사자를 보내 영접해 건업(建業)에 이르렀음. 그러나 무제와 말이 서로 계합(契合)치 못해 드디어 도강(渡江)하여 위()에 이르러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면서 면벽(面壁)하며 좌선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해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일컬었음. 아홉 해가 지나 서방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혜가(慧可)에게 1()의 비오(祕奧)를 부촉하고 가사(袈裟)와 릉가경(楞伽經) 4권을 주었음. 오래지 않아 입적했고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 장사 지냈음. 스님의 시적(示寂) 연대는 양() 대통이년(大通二年; 528)ㆍ양 대동원년(大同元年; 535) 2년 등의 이설(異說)이 있음. 또 양무제가 스님을 존칭해 성주대사(聖胄大師)라 했으며 당() 대종(代宗)은 원각대사(圓覺大師)란 시호를 주었음. 탑 이름은 공관(空觀) [속고승전16. 전등록3. 전법정종기5. 조정사원2, 5, 8. 구당서열전141신수전].

 

; 慧可(487-593) 又作惠可 亦作僧可 東土禪宗二祖 南北朝之僧 河南洛陽人 俗姓姬 初名神光 幼時於洛陽龍門香山 依寶靜出家 於永穆寺受具足戒 早年周遊聽講 精硏孔老之學與玄理 北魏正光元年(520) 參達磨祖師於嵩山少林寺 從學六年 達磨乃傳大法竝衣鉢 師於北齊天保三年(552) 傳法僧璨 其後赴河南鄴都 演說楞伽經意 凡三十餘年 韜光晦跡 人莫能識 後於筦城縣匡救寺三門下 談無上道 聽者林會 時有辯和法師者 於寺中講涅槃經 學徒聞師闡法 稍稍引去 辯和不勝其憤 興謗于邑宰翟仲侃 仲侃惑其邪說 加師以非法 師怡然委順 時年一百七歲 卽隋文帝開皇十三(一說十二)年癸丑歲三月十六日也 唐德宗諡大祖禪師 [傳燈錄三 寶林傳八 傳法正宗記六]

혜가(慧可; 487-593) 또 혜가(惠可)로 지으며 또한 승가(僧可)로 지음. 동토선종(東土禪宗)2(). 남북조(南北朝)의 승인이며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이며 속성(俗姓)이 희()며 처음의 이름은 신광(神光)이었음. 어릴 때 낙양 용문(龍門)의 향산(香山)에서 보정(寶靜)을 의지(依止)해 출가하였고 영목사(永穆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젊은 나이에 돌아다니며 청강(聽講)하였으며 공로(孔老; 孔子老子)의 학문과 현리(玄理)를 정밀하게 연구했음. 북위(北魏) 정광(正光) 원년(520)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달마조사(達磨祖師)를 참알(參謁)해 좇아 배우기가 6년이었으며 달마가 이에 대법(大法)과 아울러 의발(衣鉢)을 전수(傳授)했음. 스님이 북제(北齊) 천보(天保) 3(552)에 승찬(僧璨)에게 전법(傳法)했고 그 후에 하남의 업도(鄴都)에 다다라 릉가경(楞伽經)의 뜻을 연설했음. 무릇 30여 년 동안 도광회적(韜光晦跡; 빛을 감추고 자취를 어둡게 함)하여 사람들이 능히 알지 못했음. 뒤에 관성현(筦城縣)의 광구사(匡救寺) 3() 아래에서 무상도(無上道)를 얘기하자 듣는 자가 숲처럼 모였음. 때에 변화법사(辯和法師)란 자가 있어 사중(寺中)에서 열반경을 강설했는데 배우는 무리가 스님의 법 여심을 듣고 조금씩 인도(引導)해 떠나자 변화가 그 분을 이기지 못해 읍재(邑宰)인 적중간(翟仲侃)에게 비방을 일으켰으며 적중간이 그 삿된 설에 현혹(眩惑)되어 스님에게 비법(非法)을 가했음. 스님이 기쁜 듯(怡然) 위순(委順; 세상을 떠남)했으며 당시의 나이가 107세였으니 곧 수() 문제(文帝) 개황(開皇) 13(一說12) 계축세(癸丑歲) 316일임. () 덕종(德宗)이 시호(諡號)하여 대조선사(大祖禪師)라 했음 [전등록3. 보림전8. 전법정종기6].

 

大師; 初果以上 乃至諸佛菩薩 堪爲衆生之師範 故稱大師

초과(初果) 이상 내지 제불보살은 가히 중생의 사범이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임.

 

含生; 又稱含識 含靈 含類 含情 卽指衆生

또 명칭이 함식ㆍ함령ㆍ함류ㆍ함정이니 곧 중생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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