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당처(不離當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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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법인소림수(諸佛法忍少林髓)
어묵동정진상수(語默動靜鎭相隨)
종문입자비가진(從門入者非家珍)
타고농금비풍류(打鼓弄琴非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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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諸佛)의 법인(法忍)과 소림(少林)의 골수여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고요히 서로 따르도다
문으로부터 들어온 것은 집안의 보배가 아니며
북을 치고 거문고를 희롱함은 풍류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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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석 당처(當處)를 여의지 않음.
1행 릉엄경주(楞嚴經註)에 이르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 이름하며 무루진지(無漏眞知)를 이름하여 인(忍)이라 하느니라. 이 지(智)를 얻을 때 법의 무생(無生)의 이치를 인가인지(忍可印持)하므로 결정코 어긋나지 않아 경지(境智)가 상명(相冥)함을 이름이 무생인(無生忍)이니라 [禪林疏語考證卷三]. 법인(法忍)이란 무생법인(無生法忍). 소림수(少林髓)란 연등회요권이 달마장(聯燈會要卷二 達磨章)에 이르되 조사(祖師. 달마)가 장차 서쪽(天竺)으로 돌아가려고 이에 문인(門人)에게 명(命)하여 이르되 때가 거의 이르렀으니 너희 등은 각자 얻은 바를 말하라. 도부(道副)가 이르되 제가 본 바와 같은 것은 문자(文字)에 집착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으면서 도(道)의 용(用)을 삼습니다. 조사가 이르되 너는 나의 가죽(皮)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摠持)가 이르되 저의 안 바로는 경희(慶喜. 아난)가 아축불국(阿閦佛國. 不動佛國)을 보되 한 번 보고 다시 재견(再見)하지 않음과 같습니다 (대반야경에 여래가 신통력을 나타내어 대중으로 하여금 不動佛國을 보게 하셨는데 부처님이 神力을 거두시어 忽然之間에 대중으로 하여금 다시 거듭 보지 못하게 하고는 경희에게 물으시되 不動如來와 國土衆會를 네가 다시 보느냐 아니냐. 경희가 대답하되 제가 彼事를 다시 보지 못합니다 云云 했다고 續藏經 聖箭堂述古에 언급했음). 조사가 이르되 너는 나의 살(肉)을 얻었다. 도육(道育)이 이르되 사대(四大. 地水火風)가 본래 공(空)했으며 오음(五陰. 色受想行識)이 있음이 아닌지라 저의 견처(見處)로는 실로 일법(一法)도 가히 정(情)에 당(當)한 게 없습니다. 조사가 이르되 너는 나의 뼈(骨)를 얻었다. 혜가(慧可)가 삼배(三拜)로 예(禮)하고 의위(依位)해 서자 조사가 이르되 너는 나의 수(髓)를 얻었다.
2행 진(鎭)은 고요할(靜) 진.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도리어 함께 일어나나니/ 기좌(起坐)에 고요히 서로 따르고/ 어묵(語默)에 함께 거지(居止)하도다./ 가는 터럭만큼도 서로 여의지 않음이/ 마치 몸과 그림자와 서로 같도다/ 부처의 거처(去處)를 알고자 하느냐/ 단지 이 어성(語聲)이 이것이니라 (夜夜抱佛眠 朝朝還共起 起坐鎭相隨 語默同居止 纖毫不相離 如身影相似 欲識佛去處 秖這語聲是) [五燈會元卷二 善慧偈. 善慧는 傅大士].
4행 만약 금중(琴中)의 지취(旨趣)를 안다면 어찌 현상(絃上)의 소리에 노고하리오 (若識琴中趣 何勞絃上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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