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천이 청원을 찾고/ 참동계를 지었으며/ 유엄의 장신을/ 배 엎은 이가 승계했도다.
❶希遷尋原; 希遷(七○○~七九○) 唐代僧 又稱無際大師 端州高要(廣東高要)人 俗姓陳 曾禮六祖慧能 靑原行思爲師 得靑原行思之印可 天寶(七四二~七五五)初年 居衡山南寺 寺之東有石狀如臺 乃結庵其上 時號石頭和尙 時江西以馬祖爲主 湖南以石頭爲主 四方學徒多輻湊於二師之門 唐貞元六年十二月示寂 壽九十一 臘六十三 諡無際大師 著有參同契 草庵歌各一篇行世 [宋高僧傳九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尋原 原 指靑原 則靑原行思 行思住吉州靑原山靜居寺 故號靑原行思 傳燈錄五 靑原行思 六祖將示滅 有沙彌希遷(卽南嶽石頭和尙也)問曰 和尙百年後 希遷未審當依附何人 祖曰 尋思去 及祖順世 遷每於靜處端坐寂若忘生 第一坐問曰 汝師已逝空坐奚爲 遷曰 我稟遺誡故尋思爾 第一坐曰 汝有師兄行思和尙 今住吉州 汝因緣在彼 師言甚直汝自迷耳 遷聞語便禮辭祖龕 直詣靜居 師問曰 子何方而來 遷曰 曹谿 師曰 將得什麼來 曰 未到曹谿亦不失 師曰 恁麼用去曹谿作什麼 曰 若不到曹谿爭知不失 遷又問曰 曹谿大師還識和尙否 師曰 汝今識吾否 曰 識又爭能識得 師曰 衆角雖多一麟足矣
❷作參同契; 參同契 一卷 唐代石頭希遷(七○○~七九○)撰 五言四十四句二百二十字 與洞山良价之寶鏡三昧 同爲曹洞宗珍視之聖典 每朝必於佛前誦讀 按碧巖錄第四則 石頭因閱肇論 至此會萬物爲己處 豁然大悟 而作參同契 題名之由來 或謂假借道士魏伯陽所作參同契之書名 以顯佛法奧妙之理 竝有矯正當時南北二禪互相排斥之弊病之意 或謂乃後人之命名
❸惟儼藏身; 惟儼(七五一~八三四) 唐代僧 絳州(今山西新絳)人 俗姓韓 十七歲依潮陽(廣東)西山慧照出家 大曆八年(七七三) 就衡山希澡受具足戒 博通經論 嚴持戒律 後參石頭希遷 密領玄旨 次參馬祖道一 言下契悟 奉侍三年 後復還石頭 爲其法嗣 不久 至澧州藥山 廣開法筵 唐太和八年(八三四)示寂 壽八十四 一說太和二年十二月示寂 壽七十 敕諡弘道大師 [宋高僧傳十七 祖堂集四 傳燈錄十四 傳法正宗記七] ◆藏身 見下覆船承繼
❹覆船承繼; 五燈全書九 船子德誠 道吾後到京口 遇夾山上堂 僧問 如何是法身 山曰 法身無相 曰 如何是法眼 山曰 法眼無瑕 道吾不覺失笑 山便下座 請問道吾 某甲適來祇對這僧話 必有不是 致令上座失笑 望上座不吝慈悲 吾曰 和尙一等是出世 未有師在 山曰 某甲甚處不是 望爲說破 吾曰 某甲終不說 請和尙却往華亭船子處去 山曰 此人如何 吾曰 此人上無片瓦 下無立錐 和尙若去 須易服而往 山乃散衆束裝 直造華亭 師纔見便問 大德住甚麼寺 山曰 寺卽不住 住卽不似 師曰 不似似箇甚麼 山曰 不是目前法 師曰 甚麼學得來 山曰 非耳目之所到 師曰 一句合頭語 萬劫繫驢橛 乃云 垂絲千尺 意在深潭 離鈎三寸 子何不道 山擬開口 被師一橈打落水中 山纔上船 師又曰 道道 山擬開口 師又打 山豁然大悟 乃點頭三下 師曰 竿頭絲線從君弄 不犯淸波意自殊 山遂問 拋綸擲釣 師意如何 師曰 絲懸綠水浮 定有無之意 山曰 語帶元而無路 舌頭談而不談 師曰 釣盡江波金鱗始遇 山乃掩耳 師曰 如是如是 遂囑曰 汝向去 直須藏身處沒蹤跡 沒蹤跡處莫藏身 吾三十年在藥山 祇明斯事 汝今已得 他後莫住城隍聚落 但向深山裏钁頭邊 覔取一箇半箇 接續無令斷絕 山乃辭行 頻頻回顧 師遂喚闍黎 山乃回首 師豎起橈子曰 汝將謂別有 乃覆船入水而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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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희천심원(希遷尋原); 희천(希遷. 700~790) 당대의 승려며 또 호칭(呼稱)이 무제대사(無際大師)임. 단주고요(端州高要. 廣東 高要)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진(陳)임. 일찍이 육조혜능을 참례(參禮)했고 청원행사(靑原行思)를 스승으로 삼아 청원행사의 인가(印可)를 얻었음. 천보(天寶. 742~755) 초년(初年)에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 거주했는데 절의 동쪽에 암석이 있어 형상(形狀)이 돈대(臺)와 같았으며 이에 암자를 그 위에 엮은지라 당시에 호하기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 했음. 당시(當時)에 강서(江西)는 마조(馬祖)로써 주체(主體)로 삼았고 호남(湖南)에선 석두(石頭)로써 주체로 삼았는데 사방의 학도(學徒)가 많이 두 스님의 문으로 복주(輻湊)하였음. 당(唐) 정원육년(貞元六年) 십이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아흔하나며 승랍(僧臘)은 예순셋임. 시호(諡號)가 무제대사(無際大師)며 저서에 참동계(參同契)ㆍ초암가(草庵歌) 각 한 편(篇)이 있어 세상에 행함. [宋高僧傳九 傳燈錄十四 五燈會元五]. ◆심원(尋原) 원(原)은 청원(靑原)을 가리킴이니 곧 청원행사(靑原行思)임. 행사(行思)가 길주(吉州)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 머문지라 고로 호가 청원행사(靑原行思)임. 전등록오(傳燈錄五) 청원행사(靑原行思) 육조(六祖)가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였다. 사미희천(沙彌希遷)이 있어 물어 가로되 화상(和尙)의 백년후(百年後. 죽은 후)에 희천(希遷)은 미심(未審)하오니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의부(依附)해야 합니까. 육조가 가로되 심사거(尋思去. 尋은 찾을 심. 쓸 심)하라. 및 육조가 순세(順世. 入寂)하자 희천이 매양(每樣) 고요한 곳에서 단정히 앉았는데 적연(寂然)하기가 마치 삶을 잊은 것 같았다. 제일좌(第一座)가 물어 가로되 너의 스님(六祖)이 이미 서거(逝去)하셨거늘 공연히 앉아 무엇하느냐. 희천이 가로되 저는 유계(遺誡)를 품수(稟受)하는지라 고로 심사(尋思)할 뿐입니다. 제일좌가 가로되 너에겐 사형(師兄)인 행사화상(行思和尙)이 있어 지금 길주(吉州)에 거주하나니 너의 인연은 그에게 있다. 스님(六祖)의 말씀이 매우 곧거늘 네가 스스로 미혹했을 뿐이다. 희천이 말을 듣자 곧 육조의 감실(龕室. 塔下室)에 예사(禮辭)하고 바로 정거사(靜居寺. 靑原山 靜居寺니 行思가 住持하던 절)로 나아갔다. 스님(行思)이 물어 가로되 자네는 어느 방면에서 오느냐. 희천이 가로되 조계(曹谿. 曹溪와 같음)입니다. 스님이 가로되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희천이 가로되 조계에 이르기 전에도 또한 잃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이러하다면 조계에 감을 써서 무엇하리오. 가로되 만약 조계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찌 잃지 않은 줄 알았겠습니까. 희천이 또 물어 가로되 조계대사(曹谿大師)는 화상(和尙)을 도리어 아십니까. 스님이 가로되 네가 지금 나를 아느냐. 가로되 알지만 또 어찌 알아 얻겠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뭇 뿔(衆角)이 비록 많지만 일린(一麟)으로 족하도다.
❷작참동계(作參同契); 참동계(參同契) 한 권임. 당대(唐代)의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이 지었음. 오언(五言) 사십사구(四十四句) 이백이십 자며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보경삼매(寶鏡三昧)와 함께 한가지로 조동종(曹洞宗)에서 진기(珍奇)하게 보는 성전(聖典)이 됨. 매일 아침에 반드시 불전(佛前)에서 송독(誦讀)함. 벽암록(碧巖錄) 제4칙을 안험(按驗)하니 석두(石頭)가 조론(肇論)을 열람하다가 만물을 모아 자기로 삼는다(會萬物爲己) 라고 한 곳에 이르러 휑하게 대오했기 때문에 참동계를 지었다 함. 제명(題名)의 유래(由來)는 혹 이르기를 도사(道士) 위백양(魏伯陽)이 지은 바인 참동계의 서명(書名)을 가차(假借)하여 불법의 오묘(奧妙)한 도리(道理)를 나타냈다고도 하며 아울러 당시 남북이선(南北二禪)이 호상(互相) 배척(排斥)하는 폐병(弊病)을 교정(矯正)하는 뜻이 있음. 혹은 이르기를 곧 후인이 명명(命名)했다고도 함.
❸유엄장신(惟儼藏身); 유엄(惟儼. 751~834) 당대(唐代)의 승려며 강주(絳州. 지금의 山西 新絳) 사람임. 속성(俗姓)은 한(韓)이며 열일곱 살에 조양(潮陽. 廣東) 서산(西山)의 혜조(慧照)에 의지(依止)해 출가했음. 대력팔년(大曆八年. 773) 형산(衡山)의 희조(希澡)에게 나아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경론을 널리 통달했고 계율을 엄히 가졌음. 후에 석두희천(石頭希遷)을 참알(參謁)해 몰래 현지(玄旨)를 영오(領悟)했음. 다음으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알(參謁)해 언하(言下)에 계합(契合)해 깨쳤고 삼 년 동안 받들어 모시다가 뒤에 다시 석두로 돌아와 그 법사(法嗣)가 되었음. 오래지 않아 예주(澧州)의 약산(藥山)에 이르러 법연(法筵)을 널리 열었음. 당(唐) 태화팔년(太和八年. 834)애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여든넷이며 일설엔 태화이년 십이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가 일흔이라 함. 칙시(敕諡)가 홍도대사(弘道大師)임. [宋高僧傳十七 祖堂集四 傳燈錄十四 傳法正宗記七]. ◆장신(藏身) 아래의 복선승계(覆船承繼)를 보라.
❹복선승계(覆船承繼); 오등전서구(五燈全書九) 선자덕성(船子德誠) 도오(道吾. 宗智니 藥山의 法嗣. 靑原下三世)가 뒤에 경구(京口)에 이르렀는데 협산(夾山. 善會니 船子德誠의 法嗣. 靑原下四世)의 상당(上堂)을 만났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법신입니까. 협산이 가로되 법신은 모양이 없느니라(法身無相). 가로되 무엇이 이 법안입니까. 협산이 가로되 법안은 티가 없느니라(法眼無瑕). 도오가 불각(不覺)에 실소(失笑)했다. 협산이 하좌하여 도오에게 청문(請問)하되 모갑(某甲)이 아까 이 중에게 지대(祇對. 대답. 祇는 공경할 지)한 말에 반드시 옳지 않음이 있어 상좌(上座. 禪僧을 가리킴)로 하여금 실소에 이르게 했으리니 바라건대 상좌께선 자비를 아끼지 마십시오. 도오가 가로되 화상(和尙)이 한가지로 이 출세(出世)했으나 스승이 있지 않도다. 협산이 가로되 모갑(某甲)의 어느 곳이 옳지 않습니까 설파(說破)하시기를 바랍니다. 도오가 가로되 모갑은 마침내 설하지 못하나니 청컨대 화상(和尙)이 도리어 화정선자(華亭船子)의 거처(居處)로 가게나. 협산이 가로되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도오가 가로되 이 사람은 위로는 한 조각의 기와도 없고 아래론 송곳 세울 곳이 없다네(上無片瓦 下無立錐). 화상(和尙)이 만약 가거든 반드시 옷을 바꿔 입고 가게나. 협산(夾山)이 곧 대중을 흩고 행장(行裝)을 꾸려 바로 화정(華亭)으로 나아가니 스님(德誠)이 겨우 보자 곧 묻되 대덕(大德)은 어느 사(寺)에 주(住)하는가. 협산이 가로되 사(寺)엔 곧 주(住)하지 않나니 주(住)한 즉 곧 사(似. 恰似)하지 않습니다(寺卽不住 住卽不似). 스님이 가로되 흡사(恰似)하지 않다 하니 이 무엇과 흡사한가(不似似箇甚麽). 협산이 가로되 이 목전의 법이 아닙니다(不是目前法). 스님이 가로되 어느 곳에서 배워 얻어 왔는가. 협산이 가로되 이목(耳目)의 이를 바가 아닙니다(非耳目之所到). 스님이 가로되 일구(一句)의 합두어(合頭語. 合當한 말)가 만겁에 나귀를 매는 말뚝이니라(一句合頭語 萬劫繫驢橛) 하고는 이에 이르되 낚싯줄을 천척(千尺)에 드리움은 뜻이 심담(深潭)에 있거늘 낚시를 세 치 여의고서 자네가 어찌 말하지 못하는가. 협산이 입을 열려고 하다가 스님의, 일요(一橈. 橈는 노 뇨)로 때려 수중에 떨어짐을 입었다. 협산이 겨우 배에 오르려 하니 스님이 또 가로되 말하라, 말하라. 협산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스님이 또 때리매 협산이 휑하게(豁然) 대오하고 이에 머리를 세 번 끄덕였다. 스님이 가로되 낚싯대와 낚싯줄은 그대의 희롱하는 대로 좇겠지만 청파(淸波)를 범하지 못함은 뜻이 스스로 특수하여서이니라(竿頭絲線從君弄 不犯淸波意自殊). 협산이 드디어 묻되 포륜척조(抛綸擲釣. 낚싯줄과 낚시를 던짐)하는 스님의 뜻이 어떤 것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낚싯줄을 푸른 물에 드리움은 부(浮. 낚씨찌)로 유무(有無)의 뜻을 정함이니라. 협산이 가로되 말이 원(元)을 띠려고 하나 길이 없고 혓바닥으로 얘기하려 하나 얘기하지 못합니다(語帶元而無路 舌頭談而不談). 스님이 가로되 강파(江波)를 낚아 없애 금린(金鱗)을 비로소 만났도다(釣盡江波 金鱗始遇). 협산이 귀를 막자 스님이 가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하고는 드디어 부촉(付囑)하여 가로되 네가 향거(向去)하면서 바로 모름지기 몸을 감춘 곳에 종적을 없애고 종적을 없앤 곳에 몸을 감추지 말지니(藏身處沒踪跡 沒踪跡處莫藏身) 내가 삼십 년을 약산에 있으면서 단지 이 일(몸을 감춘 곳 云云)을 밝혔느니라. 네가 이제 이미 얻었으니 타후(他後)에 성황취락(城隍聚落)에 머물지 말고 다만 깊고 깊은 산속 곽두변(钁頭邊. 钁은 괭이)을 향(向. 向은 去의 뜻이 있음)해 일개반개(一箇半箇. 一人半人)를 멱취(覓取)하여 접속(接續)해 단절(斷絕)됨이 없도록 하라. 협산이 이에 고별하고 가는데 자주자주 돌아보자 스님이 드디어 부르되 사리(闍黎)여. 협산이 이에 머리를 돌리니 스님이 노(橈뇨子. 子는 助詞)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네가 장차 별다른 게 있다고 이르려 하느냐, 곧 배를 엎어 입수(入水)하여 장서(長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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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希 바랄 희. 遷 옮길 천. 尋 찾을 심. 原 언덕 원. 근원 원. 원래 원. 作 지을 작. 參 참여할 참. 뵐 참. 同 한가지 동. 같을 동. 契 맞을 계. 맺을 계. 惟 생각할 유. 儼 엄연할 엄. 의젓할 엄. 藏 숨길 장. 身 몸 신. 覆 엎을 복. 다시 복. 덮을 부. 船 배 선. 承 받들 승. 繼 이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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