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산의 목전을/ 범류가 어찌 궁구하리오/ 붉은 잉어 낙포가/ 독 중에 담가져 머물도다.
❶夾山目前; 夾山 夾山善會 嗣船子德誠 靑原下四世 善會(八○五~八八一) 唐代僧 廣州峴亭人 俗姓廖 九歲於潭州(湖南長沙)龍牙山剃度 二十歲受具足戒 未久往江陵 專硏經論 又至禪會處參學 初住潤州(江蘇鎭江)京口之鶴林寺 時値道吾從襄州關南來 與之相互問答 大有所得 後依道吾之勸 赴淛中(江蘇)華亭縣 參船子德誠 師資道契 遂嗣其法 唐懿宗咸通十一年(八七○) 居湖南澧州之夾山 大揚禪風 僖宗中和元年十一月七日示寂 壽七十七 臘五十七 敕諡傳明大師 [傳燈錄十五 聯燈會要二十一 佛祖歷代通載十七 同二十四 釋氏稽古略三 五燈嚴統五] ▲禪宗頌古聯珠通集二十四 夾山示衆云 目前無法 意在目前 不是目前法 非耳目之所到 頌曰 年來萬事總成魔 老去閑添白髮多 道泰不傳天子令 時淸休唱太平歌 (鼓山珪)
❷凡流豈窮; 流 品類 等輩
❸赤鯉洛浦; 五燈會元六 洛浦山元安 鳳翔麟遊人也 丱年出家 具戒通經論 問道臨濟 後爲侍者 濟甞對衆美之曰 臨濟門下一隻箭 誰敢當鋒 師蒙印可 自謂已足 一日侍立次 有座主參濟 濟問 有一人於三乘十二分敎明得 有一人不於三乘十二分敎明得 且道此二人是同是別 主曰 明得卽同 明不得卽別 師曰 這裏是甚麼所在 說同說別 濟顧師曰 汝又作麼生 師便喝 濟送座主回 問師 汝豈不是適來喝老僧者 師曰 是 濟便打 師後辭濟 濟問 甚麼處去 師曰 南方去 濟以拄杖畫一畫 曰 過得這箇便去 師乃喝 濟便打 師作禮而去 濟明日陞堂曰 臨濟門下有箇赤梢鯉魚 搖頭擺尾 向南方去 不知向誰家虀甕裏淹殺 師遊歷罷 直往夾山卓庵 經年不訪夾山 山乃修書 令僧馳往 師接得便坐却 再展手索 僧無對 師便打 曰 歸去擧似和尙 僧回擧似 山曰 這僧若開書 三日內必來 若不開書 斯人救不得也 師果三日後至 見夾山不禮拜 乃當面叉手而立 山曰 鷄棲鳳巢 非其同類 出去 師曰 自遠趨風 請師一接 山曰 目前無闍黎 此間無老僧 師便喝 山曰 住住 且莫草草怱怱 雲月是同 谿山各異 截斷天下人舌頭卽不無闍黎 爭敎無舌人解語 師佇思 山便打 因茲服膺
❹淹留甕中; 淹 沈漬 淹沒 又用鹽沈漬食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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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협산목전(夾山目前); 협산(夾山) 협산선회(夾山善會)니 선자덕성(船子德誠)을 이었으며 청원하사세(靑原下四世)임. 선회(善會. 805~881) 당대(唐代)의 승려며 광주(廣州) 현정(峴亭)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류(廖)임. 아홉 살에 담주(潭州. 湖南長沙) 용아산(龍牙山)에서 체도(剃度)했고 스무 살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오래지 않아 강릉(江陵)에 가서 경론을 오로지 연구했음. 또 선회처(禪會處)에 이르러 참학(參學)했음. 처음에 윤주(潤州. 江蘇 鎭江) 경구(京口)의 학림사(鶴林寺)에 머물렀는데 때에 도오(道吾. 道吾宗智 또는 圓智로 지음. 藥山惟儼의 法嗣)가 양주(襄州) 관남(關南)에서 옴을 만나 그와 더불어 상호(相互) 문답하면서 매우 소득이 있었음. 후에 도오의 권유(勸誘)에 의해 절중(淛中. 江蘇. 淛은 浙과 같음)의 화정현(華亭縣)에 다다라 선자덕성(船子德誠. 藥山惟儼의 法嗣)을 참알(參謁)했는데 사자(師資. 師弟)의 도가 계합(契合)하여 드디어 그 법을 이었음. 당(唐) 의종(懿宗) 함통십일년(咸通十一年. 870) 호남(湖南) 예주(澧州)의 협산(夾山)에 거주하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날렸음. 희종(僖宗) 중화원년(中和元年) 십일월 칠일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일흔일곱이며 승랍(僧臘)은 쉰일곱이며 칙시(敕諡)가 전명대사(傳明大師)임. [傳燈錄十五 聯燈會要二十一 佛祖歷代通載十七 同二十四 釋氏稽古略三 五燈嚴統五]. ▲선종송고연주통집이십사(禪宗頌古聯珠通集二十四) 협산(夾山)이 시중(示衆)해 이르되 목전에 법이 없으나 뜻은 목전에 있나니 이 목전의 법이 아니라서 이목이 이를 바가 아니로다(目前無法 意在目前 不是目前法 非耳目之所到). 송왈(頌曰) 연래(年來)에 만사가 모두 마(魔)를 이룬지라/ 늙어가며 쓸데없이 백발을 더함이 많도다/ 도가 크면 천자의 명령을 전하지 않나니/ 시절이 맑으므로 태평가 부름을 쉬어라. (鼓山珪).
❷범류기궁(凡流豈窮); 류(流) 품류(品類)임. 등배(等輩)임.
❸적리낙포(赤鯉洛浦); 오등회원육(五燈會元六) 낙포산(洛浦山) 원안(元安)은 봉상(鳳翔) 인유(麟遊) 사람이다. 관년(丱年)에 출가하였고 계를 구족(具足)하고는 경론에 통달했다. 임제(臨濟)에게 도를 물었고 후에 시자(侍者)가 되었는데 임제가 일찍이 대중을 상대해 그를 칭미(稱美)하여 가로되 임제문하(臨濟門下)의 한 짝의 화살이거늘 누가 감히 기봉(機鋒)을 당하겠는가. 스님이 인가(印可)를 입어 스스로 이르기를 이미 족(足)하다 했다. 어느 날 시립하던 차에 어떤 좌주(座主)가 임제를 참알(參謁)했다. 임제가 묻되 어떤 한 사람은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에서 밝게 얻었고 어떤 한 사람은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에서 밝게 얻지 못했다. 그래 말하라, 이 두 사람이 이 같은가, 이 다른가. 좌주가 가로되 밝게 얻었다면 곧 같고 밝게 얻지 못했다면 곧 다릅니다. 스님이 가로되 이 속이 이 무엇이 있는 바이기에 같음을 설하고 다름을 설하느냐. 임제가 스님을 돌아보고 가로되 너는 또 어떠한가. 스님이 곧 할(喝)했다. 임제가 좌주를 보내고 돌아와 스님에게 묻되 네가 어찌 아까 노승을 할(喝)한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이 가로되 예(是). 임제가 곧 때렸다. 스님이 후에 임제에게 고별하자 임제가 묻되 어느 곳으로 가려느냐. 스님이 가로되 남방으로 갑니다. 임제가 주장자로 한 번 긋고 가로되 이것을 지나감을 얻거든 곧 가거라. 스님이 곧 할(喝)했다. 임제가 곧 때렸다. 스님이 작례(作禮)하고 떠났다. 임제가 다음날 승당(陞堂)해 가로되 임제문하(臨濟門下)에 붉은 꼬리 잉어(赤梢鯉魚)가 있어 머리를 흔들고 꼬리치면서 남방을 향해 떠났나니 뉘 집의 양념독 속을 향해 가서 잠겨 죽을지 알지 못하겠다. 스님이 돌아다님을 마치고 바로 협산(夾山)에 가서 암자를 세웠다. 해가 지나도록 협산을 방문하지 않자 협산이 이에 서신(書信)을 만들어 중을 시켜 달려가게 했다. 스님이 접수(接受)하자 곧 깔고 앉아버렸다. 다시 손을 벌려 찾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곧 때리고 가로되 돌아가서 화상(和尙)에게 들어 보여라. 중이 돌아가 들어 보이자 협산이 가로되 이 중이 만약 서신을 연다면 삼 일 안에 반드시 올 것이다. 만약 서신을 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구제함을 얻지 못하리라. 스님이 과연 삼 일 후에 이르렀다. 협산을 보고도 예배하지 않고 이에 당면(當面)하여 차수(叉手)하고 섰다. 협산이 가로되 닭이 봉의 둥지에 서식(棲息)하니 그 동류(同類)가 아니로다, 나가거라. 스님이 가로되 멀리서부터 풍모(風貌)를 쫓았습니다.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협산이 가로되 목전에 사리(闍黎)가 없고 이 사이에 노승이 없다(目前無闍黎 此間無老僧). 스님이 곧 할(喝)했다. 협산이 가로되 멈추어라, 멈추어라(住住). 다만 초초총총(草草怱怱)하지 말아라. 구름과 달은 이 한가지지만 계곡과 산은 각기 다르느니라. 천하 사람의 혀를 절단함은 곧 사리(闍黎)가 없지 않으나 어찌 혀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할 줄 알게 하겠는가. 스님이 우두커니 생각하자 협산이 곧 때렸다. 이로 인해 복응(服膺. 服從의 뜻)했다.
❹엄류옹중(淹留甕中); 엄(淹) 침지(沈漬. 담가서 적심)임. 엄몰(淹沒. 잠기어 빠짐)임. 또 소금을 써서 식물을 담가서 적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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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夾 낄 협. 山 뫼 산. 目 눈 목. 前 앞 전. 凡 무릇 범. 보통 범. 流 흐를 류. 豈 어찌 기. 窮 궁구할 궁. 다할 궁. 赤 붉을 적. 鯉 잉어 리. 洛 강이름 락. 浦 개 포. 물가 포. 淹 담글 엄. 적실 엄. 留 머무를 류. 甕 독 옹. 中 가운데 중. 속 중. 맞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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