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역해 오종록

집주역해(集註譯解) 오종록(五宗錄; 五家語錄) 卷三 雲門錄 88 室中語要

태화당 2019. 9. 15. 07:49

師有時云 一切處無不是說法 打鐘打鼓時不可不是 若與麽 一切處亦不是有 一切處亦不是無 又云 不可說時卽有 不說時便無也 若約提唱卽未在 爲人門中卽得

스님이 어떤 때 이르되 일체처가 이 설법이 아님이 없다. 종을 치고 북을 칠 때 이것이 아니라 하면 옳지 못하다. 만약 이러할진댄 일체처가 또한 이 있음이 아니며 일체처가 또한 이 없음이 아니다. 또 이르되 설할 때는 곧 있고 설하지 않을 때는 곧 없음이라 함은 옳지 않다. 만약 제창을 대약하자면 곧 얻지 못했지만 사람을 위하는 문중에선 곧 얻는다.


擧 生死涅槃合成一塊 乃拈起扇子云 是什麽不是合成一塊 得與麽不靈利 直饒與麽 也是鬼窟裏作活計

거하다. 생사와 열반을 합성하여 한 덩어리로 이루었다. 이에 부채를 집어 일으키고 이르되 이 무엇이기에 한 덩어리로 합성되지 않고 이러히 영리하지 않음을 얻는가. 直饒(가령. 卽使) 이러하더라도 또한 이 鬼窟 속에서 활계를 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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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 僧問南泉 牛頭未見四祖時 爲什麽*百鳥銜花獻 南泉云 步步蹋佛階梯 僧云 見後爲什麽不銜花獻 南泉云 直饒不來 猶較王老師一線道 師云 南泉秪解步步登高 不解從空放下 僧云 如何是步步登高 師云 *香積世界 僧云 如何是從空放下 師云 塡溝塞壑

百鳥銜花 見上牛頭下 傳燈錄二十二 白鹿師貴禪師章 問 牛頭未見四祖時 百鳥銜華供養 見後爲什麽不來 師曰 曙色未分人盡望 及乎天曉也如常

香積世界 東方香積世界阿閦佛 南方歡喜世界寶相佛 西方安樂世界無量壽佛 北方蓮華莊嚴世界微妙聲佛之稱 又香積 衆香世界之佛名 玄應音義三曰 香積 梵言乾陀羅耶 維摩經香積佛品曰 上方界分 過四十二恒河沙佛土 有國名衆香 佛號香積 今現在 其國香氣 比於十方請佛世界人天之香 最爲第一 事苑七 華嚴疏主引楞伽四云 大慧 非一切佛土言語說法 故有國土 直視不瞬 口無言說 名爲說法 乃至云 有佛國土 動身名說 又香積世界 食香飯而三昧顯 極樂佛國 聽風柯而正念成 絲竹可以傳心 目擊以之存道 旣語默視瞬皆說 則見聞覺知盡聽 苟能得法契神 何必要因言說 況華嚴性海 雲臺寶網同演妙音 毛孔光明皆能說法 花香雲樹卽法界之法門 刹土衆生本十身之正體

거하다. 중이 남천에게 묻되 우두가 사조를 뵙지 않아서는 무엇 때문에 온갖 새가 꽃을 머금어 바쳤습니까. 남천이 이르되 걸음마다 부처의 階梯를 밟아서이다. 중이 이르되 뵌 후엔 무엇 때문에 꽃을 물어다 바치지 않았습니까. 남천이 이르되 直饒(가령. 卽使) 오지 않았더라도 오히려 왕노사와 一線의 길이 어긋난다. 스님이 이르되 남천은 단지 걸음마다 높은 데를 오를 줄 만 알고 공중으로부터 놓을 줄 알지 못한다. 중이 이르되 무엇이 이 걸음마다 높은 데를 오름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향적세계다. 중이 이르되 무엇이 이 공중으로부터 놓음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도랑을 메우고 골을 메웠다.

百鳥銜花 牛頭 아래를 보라. 전등록이십이 白鹿師貴禪師(安國弘瑫法嗣 홍도는 雪峯義存을 이었음)묻되 우두가 사조를 뵙지 않아서는 온갖 새가 꽃을 머금어 공양했지만 뵌 후엔 무엇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새벽 빛이 나뉘지 않아서는 사람들이 다 바라보지만 하늘이 밝아짐에 이르러선 또한 如常하니라.

香積世界 동방 향적세계는 아축불이며 남방 환희세계는 보상불이며 서방 안락세계는 무량수불이며 북방 연화장엄세계는 미묘성불이라 일컬음. 또 향적은 衆香世界의 부처의 이름이니 현응음의삼에 가로되 향적은 梵言으로 건타라야다. 유마경 향적불품에 가로되 상방의 界分(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임. 의 뜻이 되므로 심상에 말하여 계분이라 함)에서 사십이 항하사 불토를 지나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衆香이며 불호는 향적이다. 지금 현재한다. 그 나라의 향기는 시방의 제불세계의 인천의 향에 비하면 가장 제일이 된다. 事苑七 華嚴疏主(澄觀)楞伽四(入楞伽經 十卷 元魏 天竺三藏 菩提留支譯. 卷四)를 인용해 이르되 大慧, 일체 불토가 언어로 설법함이 아니니 고로 어떤 국토는 直視하여 不瞬(눈을 깜작이지 않음)하고 입으로 언설함이 없음을 이름해 설법이며 내지 이르되 어떤 불국토는 몸을 움직임이 이름이 이다(以上楞伽經文을 요약한 것임). 또 향적세계는 香飯을 먹으면 삼매가 나타나고 극락불국은 風柯(가지에 부는 바람)를 들으면 正念을 이루나니 絲竹(管絃이니 絃樂器 竹管樂器)可以 마음을 전하고 목격하매 이를 써 를 둔다. 이미 語默視瞬이 다 설함이라 곧 견문과 각지가 다 들음이다. 진실로 능히 법을 얻어 정신에 계합한다면 하필이면 언설을 인함을 요하리오. 하물며 華嚴性海雲臺寶網이 한가지로 묘음을 연설하고 毛孔과 광명이 다 능히 설법하나니 花香雲樹가 곧 법계의 법문이며 찰토와 중생이 본래 十身正體이다(위의 글은 華嚴經疏卷三에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