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역해 오종록

집주역해(集註譯解) 오종록(五宗錄; 五家語錄) 卷四 洞山錄 42

태화당 2019. 9. 16. 10:15

師問僧 名甚麽 僧云 某甲 師云 阿那箇是闍黎主人公 僧云 見祗對次 師云 苦哉 苦哉 今時人*例皆如此 秪認得*驢前馬後底 將爲自己 佛法平沈 此之是也 賓中主尙未分 如何辯得主中主 僧便問 如何是主中主 師云 闍黎自道取 僧云 某甲道得 卽是賓中主 雲居代云 某甲道得 不是賓中主如何是主中主 師云 恁麽道卽易 相續也大難 遂示頌云 嗟見今時學道流 千千萬萬認門頭 恰似入京朝聖主 秪到*潼關卽便休

例皆 例 皆也

驢前馬後 謂隨逐於驢馬前後之奴隸 禪宗用以指斥追從他人言行 而無自己獨特之機用者

潼關 縣名 又關所名 位於陝西省 自洛陽通長安之要地

永覺和尙廣錄二十七 四賓主者 主 卽正卽體卽理 賓 卽偏卽用卽事 理之本體 不涉於用者 名主中主 喩如帝王深居九重之內也 親從體發出用者 名主中賓 喩如臣相奉命而出者也 在用中之體 名賓中主 如鬧市裏天子也 用與體乖 全未有主 名賓中賓 喩如化外之民 無主之客也 此四賓主 與臨濟不同 學者詳之 又有書載明安語 以四賓主配四料揀者 謬妄殊甚 乃僞譔之書也

스님이 중에게 묻되 이름이 무엇인가. 중이 이르되 모갑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어느 것이 이 사리의 주인공인가. 중이 이르되 현재 응대하는 차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괴롭구나, 괴로워. 금시의 사람이 모두 다 이와 같다. 단지 驢前馬後의 것을 인정해 장차 자기로 삼으니 불법이 平沈한다 함이 이것이다. 빈중주도 오히려 분별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주중주를 분변해 얻겠는가. 중이 곧 묻되 무엇이 이 주중주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사리가 스스로 말하라. 중이 이르되 모갑이 말해 얻음은 곧 이 빈중주입니다. 운거가 대신해 이르되 모갑이 말해 얻음은 이 빈중주가 아닙니다무엇이 이 주중주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이러히 말함은 곧 쉽지만 상속하기가 또한 매우 어렵다. 드디어 송을 보여 이르되 슬프다 금시의 학도하는 무리를 보니/ 千千萬萬門頭를 인정하도다/ 흡사 입경하여 聖主를 뵈려 하면서/ 단지 동관에 이르러 곧 바로 쉬는구나.

例皆 例.

驢前馬後 이르자면 나귀나 말의 전후를 따라 쫓는 노예임. 선종에서 인용하여 타인의 언행을 추종하고 자기의 독특한 기용이 없는 자를 가리킴.

潼關 縣의 이름이며 또 關所의 이름임. 섬서성에 위치하며 낙양으로부터 장안으로 통하는 요지임.

永覺和尙廣錄二十七 四賓主란 것은 는 곧 이며 곧 며 곧 . 은 곧 이며 곧 이며 곧 . 의 본체가 에 교섭치 않는 것을 이름해 主中主니 비유컨대 제왕이 구중의 궐내에 깊이 거처함과 같다. 친히 체로부터 용을 발출함을 이름해 主中賓이다. 비유컨대 이 서로 칙명을 받들어 나가는 것과 같다. 용 가운데의 체에 있음을 이름해 賓中主. 마치 시끄러운 시장 속의 천자와 같다. 용과 체가 어긋나서 온전히 가 있지 않음을 이름해 賓中賓이니 비유컨대 교화 밖의 백성과 같다. 가 없는 객이다. 이 사빈주는 임제와 같지 않으므로 학자는 이를 詳考하라. 또 어떤 책에는 명안의 말을 실어 사빈주로써 사료간에 짝한 것은 곧 허위로 지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