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究竟無我分第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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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下究竟이라 本無我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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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하에 구경이라 본래 아체(我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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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一斷住修降伏是我疑니라 佛教我住修降伏하라하고 兼不住前十種疑執過患하라하니 若無我者면 誰人受教며 誰人住修며 誰人如此離過云云이니라 亦云除微細執故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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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十一)은 주수(住修)와 항복(降伏)은 이 나라는 의심을 끊음이다. 부처가 나로 하여금 주수하고 항복하라 하고 겸하여 앞의 십종의 의집(疑執)과 과환(過患)에 머물지 말라 하니 만약 내가 없다면 누가 가르침을 받으며 누가 주수(住修)하며 누가 이와 같이 과환(過患)을 여의리오 운운함이다. 또한 이르기를 미세한 집착을 제거하려 함인 연고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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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須菩提가 白佛言호대 世尊하 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면 云何應住며 云何降伏其心이니꼬 佛告須菩提하사대 善男子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인댄 當生如是心하라 我應滅度一切衆生하리니 滅度一切衆生已하얀 而無有一衆生實滅度者로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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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면 어떻게 응당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합니까.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시되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면 응당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라. 내가 응당 일체중생을 멸도하리니 일체중생을 멸도해 마치고는 한 중생도 실로 멸도한 자가 있지 않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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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鈔曰 言滅度一切衆生已者는 時中妄想과 取捨人我와 貪嗔嫉妬와 一切不善心이 卽是一切衆生이며 以無我心으로 將忍辱以降伏하야 令邪惡不生이 卽是滅度一切衆生已니 已卽盡也니라 言而無有一衆生實滅度者는 卽煩惱妄念과 取捨와 貪嗔의 一切不善心이 本自不有나 因貪財色과 恩愛情重하야 方有此心이어니와 今旣知覺하야 以正智而滅之며 亦不可見實有滅者는 本自不生이며 今亦不滅인지라 故云而無有一衆生實滅度者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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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에 가로되 말한 일체중생을 멸도해 마쳤다는 것은 시중(時中)의 망상과 인아(人我)를 취사함과 탐진(貪嗔) 질투와 일체의 착하지 못한 마음이 곧 이 일체중생이며 무아의 마음으로써 인욕을 가져 항복하여 사악(邪惡)으로 하여금 나지 않게 함이 즉시(卽是) 일체중생을 멸도해 마침이니 이(已)는 곧 마침(盡)이다. 한 중생도 실로 멸도한 자가 있지 않다는 것은 곧 번뇌 망념과 취사와 탐진(貪嗔)의 일체 착하지 않은 마음이 본래 스스로 있지 않으나 재색(財色)을 탐함과 은애(恩愛)의 정이 무거움으로 인하여 비로소 이 마음이 있거니와 지금 이미 지각(知覺)하여 정지(正智)로써 그것을 없앴으며 또한 가히 실로 없앤 자가 있음으로 보지 않음은 본래 스스로 불생(不生)이며 지금도 또한 불멸(不滅)인지라 고로 이르되 한 중생도 실로 멸도한 자가 있지 않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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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雄曰 大涅槃經云 自未得度先度他라하며 懺法曰 先度衆生하고 然後作佛이라하니 故度一切衆生者는 我佛之所應爲也니라 不然이면 則絕物矣니라 又何以作佛耶아하면 佛了眞空無相하니 則能所俱寂이라 雖衆生已滅度나 且不起能度之一念이며 亦不見所度之衆生인지라 故曰無一衆生實滅度者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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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이 가로되 대열반경에 이르기를 스스로 제도(濟度)를 얻지 않고 먼저 남을 제도한다 했으며 참법(懺法)에 가로되 먼저 중생을 제도하고 연후에 부처를 짓는다 하니 고로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우리 부처의 응당 시위(施爲)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곧 사람을 단절함이다. 또 무엇 때문에 부처를 짓는가 하면 부처가 진공무상(眞空無相)을 요오(了悟)하니 곧 능소(能所)가 다 적멸인지라 비록 중생을 이미 멸도했으나 또 능도(能度)의 일념(一念)을 일으키지 않으며 또한 소도(所度)의 중생을 보지 않는지라 고로 가로되 한 중생도 실로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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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禪師曰 覺諸相空하니 心自無念이며 念起卽覺이라 覺之卽無니 修行妙門이 唯在此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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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선사(圭峰禪師)1가 가로되 모든 모양이 공했음을 각(覺. 깨침)하니 마음이 스스로 무념(無念)이며 상념(想念)이 일어나면 곧 각(覺)인지라 이를 각(覺)하면 곧 없음(無)이니 수행의 묘문(妙門)이 오직 여기에 있다.
川禪師曰 有時因好月하야 不覺過滄洲니라 頌曰 若問云何住면 非中及有無라호리라 頭無纖草蓋며 足不履閻浮로다 細似隣虗析이며 輕如蝶舞初로다 衆生滅盡知無滅이니 此是隨流大丈夫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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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사가 가로되 어떤 때엔 아름다운 달로 인해 불각에 창주(滄洲)2를 지난다. 송왈 만약 어떻게 머무는가 하고 묻는다면/ 중간과 및 유무(有無)가 아니라 하리라/ 머리엔 가는 풀 덮개도 없으며/ 발은 염부제를 밟지 않도다/ 작기로는 인허(隣虗)3를 분석한 것과 같고/ 가볍기론 나비가 처음 춤을 춤과 같도다./ 중생을 멸(滅. 滅度)해 없애고는 무멸(無滅)임을 아니/ 이것이 이 흐름을 따르는 대장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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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오 須菩提여 若菩薩이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이면 卽非菩薩이니라 所以者何오 須菩提여 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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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고냐,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소이란 것이 무엇이냐, 수보리여 실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 자는 있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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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曰 須菩提問佛호대 如來滅後 後五百歲에 若有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면 依何法而住며 如何降伏其心이니꼬 佛言호대 當發度脫一切衆生心이니 度脫一切衆生하야 盡得成佛已케하고는 不得見有一衆生이라도 是我滅度者니 何以故오 爲除能所心也며 除有衆生心也며 亦除我見心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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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가 가로되 수보리가 부처에게 묻기를 여래가 멸도한 후 후오백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라면 어떤 법에 의지하여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합니까. 부처가 말하되 마땅히 일체중생을 도탈(度脫)4한다는 마음을 발할지니 일체중생을 도탈하여 다 부처 이룸을 얻어 마치게 하고는 한 중생이라도 이 내가 멸도한 자라는 견해를 얻지 않음이니 무슨 연고냐, 능소(能所)의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며 중생이 있다는 마음을 제거함이며 또한 아견(我見)의 마음을 제거함이다.
川禪師曰 少他一分을 又爭得이리오 頌曰 獨坐翛然一室空하니 更無南北與西東이로다 雖然不借陽和力하야도 爭奈桃華一樣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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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사가 가로되 저 일분(一分)5을 적게 하려 함을 또 어찌 얻으리오. 송왈 홀로 앉아 소연(翛然)6한 일실(一室)이 비었으니/ 다시 남북과 서동이 없도다/ 비록 그러히 양화(陽和)7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복사꽃이 한 모양으로 붉음을 어찌 하겠는가.
- 규봉(圭峰) 당대승(唐代) 종밀(宗密. 780~841)이니 호가 규봉(圭峰)이며 화엄종 제오조(第五祖)임.
- 창주(滄洲); 물 가의 지방. 옛적에 늘 상용(常用)하기를 은사(隱士)의 거처의 명칭으로 썼음.
- 인허(隣虗); 저본(底本)엔 인허(鱗虗)로 지어졌음. 타본(他本)에 의거해 고쳤음. 인허(隣虗)는 신역(新譯)으론 이르되 극미(極微)임. 색법(色法)의 가장 극히 소분(少分)이니 허공과 이웃함과 흡사한 것.
- 도탈(度脫); 득도해탈(得度解脫)의 약칭(略稱). 곧 삼계에 유전(流轉)하는 경계를 탈리(脫離)하여 열반의 피안(彼岸)에 도달함.
- 일분(一分); 분(分)은 일반(一半)임. 또 나눈 바의 물건이니 부분(部分)과 같음.
- 소연(翛然) 소(翛)는 자여(自如)임.
- 양화(陽和); 춘천(春天)의 온화(溫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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