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三斷無因則無佛法疑니라 初斷一向無佛疑니 論云 若無菩提면 卽無諸佛如來리니 有如是謗하니라 謂一向無佛이니 斷此疑故로 云如來者卽是眞如라하니라 二斷一向無法疑니 論云 有人謗言호대 若無因行이면 則如來不得阿耨菩提리라 爲斷此疑故로 云如來所得等이라하다
●십삼(十三)은 인(因)이 없으면 곧 불법이 없다는 의심을 끊음이다. 초(初)은 한결같이 부처가 없다는 의심을 끊음이니 논에 이르되 만약 보리(菩提)가 없다면 곧 제불여래도 없으리니 이와 같은 비방이 있다. 이르자면 한결같이 부처가 없다 함이니 이 의심을 끊는 고로 이르되 여래란 것은 곧 이 진여(眞如)라 하다. 이(二)는 한결같이 법이 없다는 의심을 끊음이니 논에 이르되 어떤 사람이 비방해 말하되 만약 무인(無因)의 행이라면 곧 여래가 아뇩보리를 얻지 못했으리라. 이 의심을 끊기 위한 고로 이르되 여래가 얻은 바 1등이라 하다.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무슨 연고인가, 여래란 것은 곧 모든 법이 같아짐(如)의 뜻이니라.
僧若訥曰 如來者卽眞如也니 眞如不離諸法이라 故云卽諸法如義니라
승 약눌이 가로되 여래란 것은 곧 진여니 진여가 모든 법을 여의지 않는지라 고로 이르되 모든 법이 같아짐(如)의 뜻이다.
陳雄曰 佛이 辯論호대 如來를 膺釋迦尊號者는 何故오하면 蓋以了諸法空하야 得如如之義也니 如者는 眞如也니라 楞伽經云 離不實妄想을 是名如如住니 如如者는 得無所有境界니라 故維摩經云 如者는 不二不異니 一切法亦如也며 衆聖賢亦如也며 至於彌勒亦如也니라
진웅이 가로되 부처가 변론하되 여래를 석가의 존호(尊號)로 접수(膺)하는 것은 무슨 연고냐 하면 대개 모든 법이 공했음을 요오(了悟)하여 여여(如如)의 뜻을 얻었기 때문이니 여(如)란 것은 진여(眞如)이다. 릉가경(楞伽經)에 이르되 부실(不實)의 망상을 여읨을 이 이름이 여여주(如如住)니 여여란 것은 무소유의 경계를 얻음이다. 고로 유마경(維摩經)2에 이르되 여(如)란 것은 불이불이(不二不異)니 일체법이 또한 여(如)며 뭇 성현도 또한 여(如)며 미륵에 이르기까지 또한 여(如)이다.
川禪師曰 且住且住하라 文殊與淨名이 對談不二하니 如何是不二오 不得動著이니 動著則三十棒이니라 頌曰 上是天兮下是地며 男是男兮女是女로다 牧童撞著看牛兒하야 大家齊唱囉囉哩로다 是何曲調오 萬年歡이니라
천선사가 가로되 다만 멈추어라, 다만 멈추어라. 문수와 정명(淨名)3이 불이(不二)를 대담(對談)하니 무엇이 이 불이(不二)인가, 움직임을 얻지 말지니 움직이면 삼십 방(棒)이다. 송왈 위는 이 하늘이며 아래는 이 땅이며/ 남자는 이 남자며 여자는 이 여자로다/ 목동이 소를 보는 아이를 맞닥뜨려/ 대가(大家)가 일제히 라라리(囉囉哩)를 부르도다. 이 무슨 곡조인가, 만년환(萬年歡)4이니라.
若有人言호대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須菩提여 實無有法하야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須菩提여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無實無虗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면 수보리여, 실로 법이 있어서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게 아니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 중에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王日休曰 如來所得正覺之法者는 謂佛所得으로 以明眞性之法也니 此非眞性中所有라 故曰非實이며 謂亦爲妄也니라 然必賴於此하야 以明眞性이니 故云非虗니라
왕일휴가 가로되 여래가 얻은 바 정각의 법이란 것은 이르자면 부처가 얻은 것으로 진성의 법을 밝히는데 쓰나니 이것은 진성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지라 고로 가로되 실다움이 아니라 했으며 이르기를 또한 허망이 된다 했다. 그러나 반드시 이에 의뢰(依賴)하여 진성을 밝히나니 고로 이르되 헛되지 않다 했다.
僧微師曰 無實者는 以菩提無色相故며 無虗者는 色相空處가 卽是菩提니 故知如來所證菩提之法은 不空不有라 故曰無實無虗니라
승미사(僧微師. 僧微禪師. 미상)가 가로되 실다움이 없다는 것은 보리는 색상(色相)이 없는 연고며 헛됨이 없다는 것은 색상의 공한 곳이 곧 이 보리니 고로 알지라 여래가 증득한 바 보리의 법은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닌지라 고로 가로되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李文會曰 於是中者는 淸淨心也며 無實者는 眞空無分別이니라 故境界經云 諸欲不染故로 敬禮無所觀이라하다 無虗者는 妙用也니 具河沙德用也니라
이문회가 가로되 이 가운데란 것은 청정한 마음이며 실다움이 없다는 것은 진공(眞空)이라서 분별이 없음이다. 고로 경계경(境界經)5에 이르되 제욕(諸欲)에 물들지 않는 고로 관하는 바 없음에 경례한다 했다. 헛됨이 없다는 것은 묘용(妙用)이니 하사(河沙)의 덕용(德用)을 갖췄음이다.
川禪師曰 富嫌千口少며 貧恨一身多로다 頌曰 生涯如夢若浮雲하니 活計都無絕六親이로다 留得一雙青白眼하야 笑看無限往來人하노라
천선사가 가로되 부유하면 일천 식구도 적다고 혐의하며 빈곤하면 일신의 많음을 한탄한다. 송왈 생애가 꿈과 같고 뜬 구름 같으니/ 활계(活計)가 모두 없고 육친(六親)6이 끊겼도다/ 한 쌍의 청백안(青白眼)7을 머물러 두었다가/ 무한한 왕래인을 웃으며 보노라.
是故로 如來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니라
이런 고로 여래가 설한 일체법이 다 이 불법이니라.
馬祖曰 一切衆生이 從無量劫來로 不出法性三昧니 長在法性中하면서 著衣喫飯하고 言談秪對하니라 六根運用하는 一切施爲가 盡是法性이어늘 不解返源하는지라 所以隨名逐相하야 迷情妄起하야 造種種業하니라 若能一念迴光返照하면 全體聖心이어늘 何處不是佛法이리오
마조가 가로되 일체중생이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법성삼매(法性三昧)를 벗어나지 않나니 늘 법성 가운데 있으면서 옷 입고 밥 먹고 언담(言談)하고 지대(秪對)8한다. 육근이 운용하는 일체의 시위(施爲)가 모두 이 법성이거늘 반원(返源)을 알지 못하는지라 소이로 이름을 따르고 형상을 따라 미정(迷情)을 망령되이 일으켜 갖가지 업을 조작한다. 만약 능히 한 생각 회광반조(迴光返照)9하면 전체가 성심(聖心)이거늘 어느 곳인들 이 불법이 아니리오.
川禪師曰 明明百草頭가 明明祖師意로다 頌曰 會造逡巡酒하고 能開頃刻華하며 琴彈碧玉調하고 爐煉白丹砂로다 幾般伎倆從何得고 須信風流出當家하라
천선사가 가로되 밝디밝은 백초두(百草頭)10가 밝디 밝은 조사의 뜻이다. 송왈 준순주(逡巡酒)11를 빚을 줄 알고/ 능히 경각화(頃刻華)를 피우며/ 벽옥조(碧玉調)의 거문고를 퉁기고/ 백단사(白丹砂)를 화로에 단련하도다./ 몇 가지의 기량(伎倆)을 어디로부터 얻었는가/ 모름지기 풍류가 당가(當家)12에서 나옴을 믿어라.
須菩提여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이니 是故名一切法이니라
수보리여, 말한 바 일체법이란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니니 이런 고로 이름이 일체법이니라.
顏丙曰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 乃如如不動之意며 於是中無實無虗니라 無實者어늘 向甚處摸索이며 無虗者어늘 何處不分明고 虗實은 乃斷見常見이니라 大士云 斷常俱不染이라하니 所以道卽非一切法이니라
안병이 가로되 여래란 것은 곧 제법이 같아짐(如)의 뜻이니 곧 여여(如如)하여 부동(不動)의 뜻이며 이 가운데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실다움이 없는 것이거늘 어느 곳을 향해 모색할 것이며 헛된 것이 없거늘 어느 곳인들 분명하지 않겠는가. 헛됨과 실다움은 곧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이다. 대사(大士. 傅大士)가 이르되 단상(斷常)에 다 물들지 않는다 했으니 소이로 말하되 곧 일체법이 아니라 했다.
川禪師曰 上大人 丘乙己로다 頌曰 是法非法不是法이여 死水藏龍活潑潑하며 是心非心不是心이여 逼塞虗空古到今로다 秪者是니 絕追尋하라 無限野雲風捲盡하니 一輪孤月照天心이로다
천선사가 가로되 상대인(上大人)13 구을기(丘乙己)14로다. 송왈 이 법이 법이 아닌 이 법이 아님이여/ 사수(死水)에 숨은 용이 활발발하며/ 이 마음이 마음이 아닌 이 마음이 아님이여/ 허공에 핍색(逼塞. 충만)하여 예부터 지금에 이르도다./ 단지 이것이 이것이니/ 추심(追尋)을 끊어라/ 무한한 야운을 바람이 걷어 없애니/ 일륜의 고월(孤月)이 하늘 가운데를 비추도다.
須菩提여 譬如人身長大니라 須菩提言호대 世尊하 如來說人身長大는 卽爲非大身이니 是名大身이니다
수보리여 비유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長大)함과 같느니라. 수보리가 말하되 세존이시여 여래가 설하신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 함은 곧 큰 몸이 아님이 되나니 이 이름이 큰 몸입니다.
川禪師曰 喚作一物卽不中이니라(南獄懷讓禪師가 見六祖하니 祖問 什麼處來아 曰 嵩山來니다 祖曰 是什麼物이 恁麼來아 曰 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頌曰 天產英靈六尺軀가 能文能武善經書로다 一朝識破娘生面하야사 方信閒名滿五湖하더라
천선사가 가로되 한 물건이라고 불러 지어도 곧 맞지 않다.(南獄懷讓禪師가 六祖를 뵈니 육조가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숭산에서 옵니다. 육조가 가로되 이 무슨 물건이 이러히 오느냐. 가로되 한 물건이라고 설해 주더라도 곧 맞지 않습니다) 송왈 하늘이 낳은 영령(英靈)15한 육 척의 몸이/ 문에도 능하고 무에도 능하고 경서를 잘하도다/ 어느 날 아침에 낭생면(娘生面)16을 식파(識破)하고서야/ 비로소 쓸데없는 이름이 오호(五湖)에 가득한 줄을 믿더라.
- 여래가 얻은 바; 아랫글에 이르되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 중에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 유마경(維摩經); 유마경에 삼역(三譯)이 있음. 진(秦) 라집역(羅什譯)은 제목하여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며 3권임.
- 정명(淨名); 범어 유마힐(維摩詰)、비마라힐(毘摩羅詰)은 화언(華言)으로 정명(淨名)、무구칭(無垢稱) 등임. 곧 중인도 비사리성(毘舍離城)의 장자(長者)임.
- 萬年歡; 당(唐)의 교방곡명(敎坊曲名)임.
- 경계경(境界經); 여래장엄지혜광명입일체불경계경(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佛境界經)이니 2권. 북위(元魏) 담마류지(曇摩流支) 역(譯).
- 육친(六親); 부(父)、모(母)、형(兄)、제(弟)、처(妻)、자(子) 등의 육종(六種)의 친속(親屬)을 가리킴.
- 청백안(青白眼); 진서사십구(晉書四十九) 완적전(阮籍傳)을 안험(按驗)하니 완적은 능히 정책안(靑白眼)을 지었다. 선림(禪林) 중에선 잘 능히 상대방의 근기(根機)의 천심(淺深)을 분변하는 안목임.
- 지대(秪對); 또 지대(秖對)ㆍ지대(祇對)로 지음. 회답ㆍ응대임. 지(秪)는 지(秖)ㆍ지(祇)와 용(用)이 같음.
- 회광반조(迴光返照); 이르자면 밖을 향해 찾아 구하던 안광(眼光)을 회수(回收)하여 자신(自身)과 자심(自心)을 관조(觀照)함.
- 백초두(百草頭); 두(頭)는 조사니 후철(後綴).
- 준순(逡巡); 뒤로 물러나는 모양. 배회(徘徊)하며 전진하지 못하는 모양.
- 당가(當家); 자가(自家)、본인(本人).
- 상대인(上大人); 확정적 해석이 없음. 상고(上古)의 성인 공자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고 일본의 무착도충(無著道忠著)은 이르기를 이는 공자가 그 아버지에게 올린 글이다. 상대인(上大人)의 상(上)은 대인에게 글을 올린다 함이니 이르자면 숙량흘(叔梁紇)이다.
- 구을기(丘乙己); 구(丘)는 공자의 이름이며 을기(乙己)의 을(乙)은 일(一)과 통하니 말하자면 일신(一身)임.
- 영령(英靈); 영명(英明)하고 영수(靈秀)함.
- 낭생면(娘生面); 또 양생면(孃生面)으로 지음. 본래면목을 가리킴. 또한 곧 자심(自心)、본성(本性)、불성(佛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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