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오십삼가주

금강경오십삼가주(金剛經五十三家註) 무법가득분제이십이(無法可得分第二十二)

태화당 2019. 9. 20. 09:24

無法可得分第二十二

 

悟性空故 無法可得이니라

 

오성(悟性)이 공한 고로 법을 가히 얻음이 없다.

 

十九斷無法如何修證疑니라 論云 如來不得一法이면 云何離上上證하고 轉轉得阿耨菩提 爲斷此疑하야 示現非證法 名爲阿耨菩提하니라

 

십구(十九)는 법이 없다면 어떻게 수증(修證)하는가 하는 의심을 끊음이다. 논에 이르되 여래가 일법(一法)도 얻지 않았다면 어떻게 상상(上上)1의 증득을 여의고 전전(轉轉)히 아뇩보리를 얻었는가. 이 의심을 끊기 위해 비증(非證)의 법을 이름해 아뇩보리라고 시현(示現)하다.

 

須菩提白佛言호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無所得耶 佛言 如是如是니라 須菩提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乃至無有少法可得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은 얻은 바가 없음이 됩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수보리여,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내지 소법(少法)도 가히 얻음이 있지 않나니 이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陳雄曰 壇經云 妙性本空이라 無有一法可得이라하다 旣無一法可得이어늘 寧復有菩提可證耶 我佛 無得無證이며 無名可名이라 是以强名曰阿耨菩提니라

 

진웅이 가로되 단경에 이르기를 묘성(妙性)이 본래 공한지라 일법(一法)도 가히 얻음이 있지 않다 하였다. 이미 일법도 가히 얻음이 없거늘 어찌 다시 보리를 가히 증득함이 있겠는가. 우리 부처가 얻음이 없고 증득함이 없으며 가히 이름할 이름이 없는지라 이런 까닭으로 억지로 이름해 가로되 아뇩보리다.

 

琪禪師曰 念念釋迦出世 步步彌勒下生이니 分別現文殊之心이며 運用動普賢之行이로다 門門而皆出甘露 味味而盡是醍醐 不出栴檀之林하고도 長處華藏之境이니라 若如此也 行住坐臥하고 觸目遇緣하면서 雖應用千差 且湛然淸淨하니라

 

기선사(琪禪師)2가 가로되 생각마다 석가의 출세며 걸음마다 미륵의 하생이니 분별은 문수의 마음을 나타내며 운용(運用)보현(普賢)3의 행을 운동(運動)함이다. 문마다 다 감로를 내며 맛마다 모두 이 제호(醍醐)4전단(栴檀)5의 숲을 나오지 않고도 늘 화장(華藏)6의 경계에 거처한다. 만약 이와 같으면 행주좌와(行住坐臥)하고 촉목우연(觸目遇緣)하면서 비록 응용이 천차(千差)나 또 담연하여 청정하다.

 

川禪師曰 求人不如求己니라 頌曰 滴水生氷信有之러니 綠楊芳草色依依로다 春華秋月無窮事 不妨閒聽鷓鴣啼로다

 

천선사가 가로되 남에게서 구함이 자기에게서 구함만 같지 못하다. 송왈 방울 물이 얼음을 내매 이것이 있다고 믿었더니/ 녹양방초의 색이 의의(依依)7하도다/ 춘화추월(春華秋月)의 무궁한 일이여/ 한가히 자고(鷓鴣)8의 지저귐을 들음에 방애되지 않도다.



  1. 상상(上上)의 증득을 여의고; 금강경소기과회구(金剛經疏記科會九)에 이르되 예컨대(如) 초지(初地)와 지전(地前)은 이름이 상(上)이며 이지지상(二地之上)을 여의지 못하거나 내지 등각도 또한 묘각지상(妙覺之上)을 면하지 못함. 오직 부처라야 극증(極證)이라 다시 상위의 상이 없는지라 고로 이르되 상상을 여읜다 했음.
  2. 기선사(琪禪師); 언기(彦琪)니 송대승(宋代僧)이며 서주(舒州) 범천사(梵天寺)에 거주했고 증도가주(證道歌註)가 있음.
  3. 보현(普賢); 범명(梵名)은 필수발타(邲輸跋陀)며 또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로 지음. 혹 번역해 가로되 보현(普賢)이며 혹은 편길(遍吉)로 지음.
  4. 제호(醍醐); 우유로부터 제작(製作)하며 맛 중에 제일이며 약 중에 제일임.
  5. 전단(栴檀); 향나무의 일종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여락(與樂)임.
  6. 화장(華藏);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니 선록(禪錄)의 용례(用例)로는 늘 진여법계(眞如法界)의 오도경계(悟道境界)를 가리킴.
  7. 의의(依依); 대개 사물에 붙거나 인연을 잡아 그 뜻이 끊어지지 않는 모양임.
  8. 자고(鷓鴣); 새 이름. 형체는 꿩과 비슷하고 강남(江南)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