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故空中 無色無受想行識
이런 고로 공 가운데엔 색이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이 없고
忠云 法性本空 故云空中 求色不可得 故云無色 推心不可得 故云無受想行識
충(忠)이 이르되 법성은 본래 공한지라 고로 이르되 공 가운데라 했다. 색을 구하면 가히 얻지 못하므로 고로 이르되 색이 없다 했고 마음을 추구하면 가히 얻지 못하므로 고로 이르되 수ㆍ상ㆍ행ㆍ식이 없다 했다.
楷云 無五蘊
해(楷)가 이르되 5온이 없다.
深云 是故空中者 是眞空之中也 到者裏 生滅垢淨增減之法 纖塵盡淨 無色無受想行識者 生滅等之法 已不可得 五蘊之法 故不可知也
심(深)이 이르되 이런 고로 공 가운데란 것은 이는 진공의 가운데다. 이 속에 이르러선 생멸ㆍ구정(垢淨)ㆍ증감의 법에 가는(纖) 티끌도 모두 깨끗하다. 색이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이 없다는 것은 생멸 등의 법을 이미 가히 얻지 못하는지라 5온의 법도 고로 가히 알지 못한다 함이다.
無眼耳鼻舌身意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가 없고
忠云 此名六根 凡夫確執妄繫爲實 種種惡業因茲而生 故名爲根 一一根中 積業潤生 恒沙罪障 無有休息 此六知根 以心爲本 心若休伏 根境俱空 自然明徹 故云無眼耳鼻舌身意也
충(忠)이 이르되 이 이름이 6근(根)이다. 범부가 굳게 집착하고 망령되이 묶어 진실로 삼나니 갖가지 악업이 이로 인해 나는지라 고로 이름하여 근(根)이다. 하나하나의 근 중에 업을 쌓고 윤생(潤生)하여 항사(恒沙)의 죄장(罪障)을 휴식함이 있지 않다. 이 육지근(六知根)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나니 마음을 만약 휴복(休伏; 쉬어서 항복시킴)하면 근경(根境)이 모두 공하여 자연히 명철(明徹)하므로 고로 이르되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가 없다.
楷云 無六根
해(楷)가 이르되 6근이 없음이다.
深云 凡夫不了自心 心外求法 遂成流浪 若能一根已反源 六用成休復 然後在眼曰見 在耳曰聞 在鼻嚊香 在舌知味 在身覺觸 在意攀緣 又豈在閉智塞聰 然後爲無者哉
심(深)이 이르되 범부가 자심을 깨치지 못해 마음 밖에 법을 구하므로 드디어 유랑(流浪)을 이룬다. 만약 능히 1근(根)이 이미 반원(反源)하면 6용(用)이 휴복(休復)을 이루나니 연후에 눈에 있으면 가로되 봄(見)이며 귀에 있으면 가로되 들음(聞)이며 코에 있으면 향기를 맡고(嚊; 嗅와 같음. 맡을 후) 혀에 있으면 맛을 알고 몸에 있으면 각촉(覺觸)하고 뜻에 있으면 반연(攀緣)하거늘 또 어찌 지혜를 닫고 총명을 막은 연후에 무(無)라 함에 있겠는가.
●윤생(潤生); 곧 번뇌가 업을 자윤(滋潤)하여 당래의 과(果)를 발생함이니 이를 일러 윤생이라 함.
●항사(恒沙); 항하사(恒河沙; 梵 gaṅgā-nadā-vāluka)의 약칭. 곧 항하(恆河; 梵 gaṅgā. 갠지스)의 모래. 또 항변사(恆邊沙)ㆍ항수변류사(恆水邊流沙)ㆍ강하사(江河沙)ㆍ긍가사(兢伽沙)ㆍ항사(恆沙)ㆍ항하사수(恆河沙數) 등으로 지음. 항하의 모래알은 지극히 작아서 그 양을 계산할 방법이 없는지라 여러 경중에서 무릇 계산할 방법이 없는 수를 형용하면서 다분히 항하사 1사(詞)로써 비유를 삼음. △지도론7. 물어 가로되 예컨대(如) 염부제(閻浮提) 중에 갖가지 대하(大河)도 또한 항하를 초과하는 것이 있거늘 무슨 연고로 항하사 등이라고 늘 말하는가. 답해 가로되 항하는 모래가 많지만 여타의 하(河)는 그렇지 못하다. 다시 다음에 이 항하는 이 불타가 탄생한 곳이며 유행(遊行)하는 곳이며 제자가 현재 보는지라 고로 비유를 삼았다. 다시 다음에 여러 사람의 경서(經書)에 모두 항하를 복덕과 길상으로 삼았으며 만약 가운데 들어가 씻는 자면 모든 죄와 구악(垢惡)이 모두 다 제진(除盡)한다. 사람들이 이 하(河)를 경사(敬事; 공경해 섬김)하며 모두 다 식지(識知)하므로 고로 항하사로 비유를 삼았다. 다시 다음에 여하(餘河)의 명자(名字)는 누차 전환(轉換)되었지만 이 항하는 세세(世世)에 전환되지 않은지라 이런 연고로써 항하사로써 비유를 삼고 여하(餘河)를 취하지 않았다.
●죄장(罪障); 죄악은 성도(聖道)를 장애하며 선과(善果)를 얻음의 장애가 되므로 고로 명칭이 죄장임.
●육지근(六知根); 릉엄경집주2(楞嚴經集註二) 이르자면 안(眼) 등 근(根)이 능히 각지(覺知)하므로 고로 이름하여 근이다(謂眼等根能覺知故 故名爲根).
●6용(用)이 휴복(休復); 6용(用)은 6근(根)의 공능(功能)을 가리키며 휴(休)는 선(善)이니 그 자성에 잘 복귀함임. 또 휴는 쉼이니 점합(粘合; 끈끈하게 붙음)을 헐탈(歇脫)하여 그 자성에 복귀함임 [百度漢語 楞嚴經集註六].
●눈에 있으면 가로되 견(見)이며 운운; 전등록3 바라제(波羅提; 無相宗 가운데 두 수령 중의 하나. 달마에게 교화됨을 입었음)가 가로되 왕(異見王이니 달마의 조카임)이 이미 도가 있다면 왜 사문을 배척합니까. 내가 비록 아는 게 없지만 원컨대 왕께선 물음을 보내십시오. 왕이 노해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답해 가로되 견성이 이 부처입니다. 왕이 가로되 스님은 견성했습니까. 답해 가로되 나는 불성을 보았습니다. 왕이 가로되 불성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답해 가로되 불성은 작용에 있습니다. 왕이 가로되 이 무슨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답해 가로되 지금 작용이 나타나건만 왕이 스스로 보지 못합니다. 왕이 가로되 나에게도 있습니까. 답해 가로되 왕께서 만약 작용하신다면 이것이 아님이 있지 않지만 왕이 만약 쓰지 않으신다면 체를 또한 보기 어렵습니다. 왕이 가로되 만약 쓸 때를 당하여선 몇 곳에서 출현합니까. 답해 가로되 만약 출현할 때면 마땅히 여덟이 있습니다. 왕이 가로되 그 여덟의 출현을 마땅히 나를 위해 설하십시오. 바라제가 곧 게를 설해 가로되 태(胎)에 있으면 몸이 되며/ 세상에 처해서는 이름이 사람이며/ 눈에 있으면 가로되 봄이며/ 귀에 있으면 가로되 들음이며/ 코에 있으면 향을 분변하며/ 입에 있으면 담론하며/ 손에 있으면 집착(執捉)하며/ 발에 있으면 움직여 달리도다./ 두루 나타나 사계(沙界)를 포괄하지만/ 거두면 한 미진에 있도다/ 식자는 이 불성인 줄 알지만/ 알지 못하는 이는 정혼(精魂)이라고 불러 짓도다(在胎爲身 處世名人 在眼曰見 在耳曰聞 在鼻辨香 在口談論 在手執捉 在足運奔 遍現俱該沙界 收攝在一微塵 識者知是佛性 不識喚作精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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