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2칙 본칙

태화당 2021. 8. 24. 11:19

*趙州*示衆這老漢作什麽 莫打這葛藤 至道無難非難非易 唯嫌揀擇眼前是什麽 *三祖猶在 纔有語言 是揀擇是明白兩頭三面 *少賣弄 魚行水濁鳥飛落毛 老僧不在明白裏賊身已露 這老漢向什麽處去 是汝還*護惜也無敗也 也有一箇半箇 時有僧問 旣不在明白裏 護惜箇什麽也好與一拶 *舌拄上齶 州云 我亦不知拶殺這老漢 倒退三千 僧云 和尙旣不知 爲什麽却道不在明白裏看走向什麽處去 逐敎上樹去 州云 問事卽得 禮拜了退賴有這*一着 這老賊

 

趙州; 趙州從諗 從諗(778-897) 唐代僧 曹州郝鄕(一說靑州臨淄)人 俗姓郝 法號從諗 幼年於曹州扈通院(一說靑州龍興院)出家 受具足戒前 卽往池陽參南泉普願 南泉深器之 復往嵩山琉璃壇受戒 尋返南泉 依止二十年 其後 歷參黃檗 寶壽 鹽官 夾山 五臺等諸大德 八十歲時 衆請住趙州城東觀音院 四十年間 大揚禪風 師夙居北地 振南宗禪 其玄言法語遍布天下 世稱趙州古佛 昭宗乾寧四年示寂 壽一百二十 敕諡眞際大師 著有眞際大師語錄三卷 [傳燈錄十 宋高僧傳十一 聯燈會要六 五燈會元四 佛祖歷代通載十七] 趙州 位於河北省西部之都市 卽趙縣 隋謂趙郡 唐名趙州 宋名慶源府 元稱趙州而爲首邑 其地形 西爲太行山脈 前臨河北平原 自古卽爲軍事要地 唐末大中(847-859)年間 趙州從諗禪師 以趙州爲中心 大振南宗禪風

示衆; 於禪林中 禪師爲門弟大衆等開示宗要 稱爲示衆 又作垂語 垂示 六祖壇經定慧品 師示衆云 善知識 我此法門以定慧爲本 諸經錄中有關示衆一詞 以本經所載爲最早

三祖; 三祖僧璨 僧璨(?-606) 又作僧粲 隋代僧 禪宗三祖 籍貫不詳 或謂徐州人 初以居士身參二祖慧可 得法受衣鉢 年已四十餘 隱於司空山 北周武帝滅法 師往來避難 隱居皖公山 人無知者 隋開皇十二年(592) 道信來投 年僅十四 從學九年 傳之以法 待其緣熟 以大業二年 於所居山舍前 合掌立化 壽不詳 唐玄宗賜諡鑑智禪師 後世尊爲禪宗三祖 又稱三祖僧璨 撰有信心銘傳世 [傳燈錄三 佛祖統紀三十 五燈會元一]

少賣弄; 同小賣弄 謂自慢能解少許賣弄 喩指譏刺少黠慧者

護惜; 守護而愛惜

舌拄上齶; 閉口不言之貌

一著; 本爲圍棋用語 猶言一事也 又一回一次也 又稱一著子

 

()하다. 조주(*趙州)가 시중(*示衆)해 이르되 이 노한이 무엇을 하는가, 이 갈등을 짓지 말아라. 지도(至道)는 무난하지만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오직 간택을 꺼린다. 눈 앞에 이 무엇인고. 삼조(*三祖)가 오히려 있다. 겨우 어언(語言)이 있으면 이는 간택이며 이는 명백(明白)이다. 두 머리에 세 얼굴이다. 소매롱(*少賣弄)하는구나. 고기가 다니면 물이 탁하고 새가 날면 깃털이 떨어진다. 노승은 명백 속에 있지 않나니 도적의 몸이 이미 드러났다. 이 노한이 어느 곳을 향해 가는가. 이 너희 제인은 도리어 호석(*護惜)하느냐 또는 아니냐. 패했다. 또한 일 개 반 개가 있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이미 명백 속에 있지 않을진대 이 무엇을 호석합니까. 또한 좋게 일찰(一拶)하여 주었다. 혀가 윗잇몸을 버티리라(*舌拄上齶). 조주가 이르되 나도 또한 알지 못한다. 이 노한을 너무 애찰(挨拶; 밀치고 핍박함)하는구나(拶殺). 3(3천 리)을 도퇴(倒退)하는구나. 중이 이르되 화상이 이미 알지 못하신다면 무엇 때문에 도리어 명백 속에 있지 않다고 말씀했습니까. 보아라, 도주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가는가. 쫓아 나무에 올라가게 하리라. 조주가 이르되 물은 일을 곧 얻었으니 예배하고 물러가라. 다행히() 이 일착(*一着)이 있구나. 이 노적(老賊).

 

趙州; 조주종심(趙州從諗). 종심(從諗) (778-897) 당대승. 조주(曹州) 학향(郝鄕; 일설엔 靑州 臨淄)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학()이며 법호(法號)는 종심(從諗). 어린 나이에 조주(曹州) 호통원(扈通院; 일설엔 靑州 龍興院)에서 출가하였음. 구족계를 받기 전에 곧 지양(池陽)으로 가서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參謁)했으며 남천이 깊이 그를 법기(法器)로 여겼음. 다시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으로 가서 수계하고는 이윽고 남천으로 돌아와 의지하기가 20년이었음. 그 후 황벽(黃檗)ㆍ보수(寶壽)ㆍ염관(鹽官)ㆍ협산(夾山)ㆍ오대(五臺) 등의 여러 대덕을 역참(歷參; 다니면서 참알)하였음. 80세 때 대중이 청하여 조주성(趙州城) 동쪽의 관음원(觀音院)에 거주했는데 40년 간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음. 스님이 일찍 북지(北地)에 거주하면서 남종선(南宗禪)을 진작(振作)하였으며 그 현언(玄言)과 법어가 천하에 두루 분포하였음. 세칭 조주고불(趙州古佛).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시적했으니 나이는 120. 칙시(敕諡)는 진제대사(眞際大師)며 저서에 진제대사어록(眞際大師語錄) 3권이 있음 [전등록10. 송고승전11. 연등회요6. 오등회원4. 불조역대통재17]. 조주(趙州) 하북성 서부에 위치하는 도시니 곧 조현(趙縣). ()에서는 조군(趙郡)이라 일컬었고 당()에선 조주(趙州)로 이름했고 송()에선 경원부(慶源府)로 이름했고 원()에선 조주(趙州)로 호칭하면서 수읍(首邑)으로 삼았음. 그 지형은 서쪽으론 태행산맥(太行山脈)이 되고 앞으로는 하북평원(河北平原)에 임()했음. 자고(自古)로 곧 군사요지(軍事要地)가 됨. 당말(唐末) 대중(大中; 847-859)년 간 조주종심선사(趙州從諗禪師)가 조주를 중심으로 하여 남종선풍(南宗禪風)을 크게 떨쳤음.

示衆; 선림 중에서 선사가 문제(門弟)나 대중 등을 위해 종요(宗要)를 개시(開示)함을 일컬어 시중이라 함. 또 수어(垂語)ㆍ수시(垂示)로 지음. 육조단경 정혜품. 스님이 시중(示衆)해 이르되 선지식이여 나의 이 법문은 정혜를 근본으로 삼는다. 모든 경록(經錄) 중 시중 1()에 유관한 것은 본경에 실린 것으로써 최조(最早)로 삼음.

三祖; 삼조승찬(三祖僧璨). 승찬(僧璨) (?-606) 또는 승찬(僧粲)으로 지으며 수대승(隋代僧). 선종 3. 적관(籍貫; 貫鄕. 本官)은 상세치 못하며 혹 이르되 서주(徐州) 사람이라 함. 처음에 거사(居士)의 몸으로 2조 혜가(慧可)를 참알(參謁)하여 법을 얻고 의발을 받았음. 나이가 이미 40여에 사공산(司空山)에 은거했는데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가 멸법(滅法)하자 스님이 왕래하며 피난하다가 환공산(皖公山)에 은거했으며 사람이 아는 이가 없었음. () 개황 12(592) 도신(道信)이 와서 투신(投身)하였는데 나이가 겨우 14이었음. 좇아 배우기 9 년에 법을 그에게 전하면서 그 기연(機緣)이 익기를 기다렸음. 대업(大業) 2년 거주하는 바의 산사(山舍)의 앞에서 합장한 채 입화(立化; 서서 죽음)하였음. 나이는 상세치 못함. 당현종이 시호를 주어 감지선사(鑑智禪師)라 했음. 후세에 존중해 선종의 3조가 되었고 또 일컫기를 삼조승찬(三祖僧璨)이라 했음. ()에 신심명(信心銘)이 있어 세상에 전함 [전등록3. 불조통기30. 오등회원1].

少賣弄; 소매롱(小賣弄)과 같음. 이르자면 자만하여 능히 소허(少許; 얼마 안 되는 적은 분량)의 매롱(賣弄; 스스로 자랑함)을 할 줄 앎이니 조금의 힐혜자(黠慧者; 세속의 지혜를 가진 자)를 기자(譏刺)함을 비유로 가리킴.

護惜; 수호하면서 애석(愛惜).

舌拄上齶; 입을 닫고 말하지 않는 모양.

一著; 본래 위기(圍棋; 바둑) 용어가 됨. 1()라고 말함과 같음. 1, 1차임. 또 명칭이 일착자(一著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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