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域交馳*天馬駒五百年一間生 千人萬人中有一箇半箇 子承父業 化門舒卷不同途已在言前 *渠儂得自由 還他作家手段 電光石火存機變劈面來也 左轉右轉 還見百丈爲人處也無 堪笑人來捋虎鬚好與三十棒 重賞之下必有勇夫 不免喪身失命 放過闍黎一著
●天馬駒; 駒 少壯的馬 說文 駒 馬二歲曰駒 ▲翻譯名義集二 阿濕婆 此云馬 漢書西域傳云 大宛國有高山 其上有馬不可得 因取五色母馬置其下 與集生駒 皆汗血 因號天馬
●渠儂; 他 第三人稱代詞 禪錄用例多指本來面目 眞如法身 渠 代詞 表示第三人稱 相當于他 儂 代詞 表示第一人稱 相當于我 表示第二人稱 相當于你
조역(祖域)을 교치(交馳)하는 천마구(*天馬駒)여 5백 년에 한 번 간생(間生)하므로 천인만인(千人萬人) 중에 일개반개(一箇半箇)가 있다. 아들이 아비의 업을 계승하였다. 화문(化門; 建化門)의 서권(舒卷)이 동도(同途)가 아니다 이미 언전(言前)에 있으므로 거농(*渠儂; 백장을 가리킴)이 자유를 얻었다. 저 작가의 수단에 반환(返還)하라. 전광석화에 기변(機變)을 두거늘 벽면(劈面; 얼굴에 正對著)하여 온다. 좌로 도는가 우로 도는가. 도리어 백장의, 사람을 위하는 곳을 보느냐 또는 아니냐. 가히(堪) 우습나니 사람이 와서 범의 수염을 건드린다 좋게 30방 때려주어야 한다. 무겁게 상을 내리는 아래엔 반드시 용감한 사내가 있다. 상신실명(喪身失命)을 면하지 못한다. 사리(闍黎)를 1착 방과(放過)했다.
●天馬駒; 구(駒; 망아지)는 소장(少壯)의 말임. 설문 구(駒) 말이 두 살이면 가로되 구(駒)다. ▲번역명의집2. 아습바(阿濕婆) 여기에선 이르되 말이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이르되 대완국(大宛國)에 높은 산이 있고 그 위에 말이 있으나 가히 얻지 못하는지라 인하여 5색의 모마(母馬)를 취해 그 아래 두매 더불어 모였으며 망아지를 낳았는데 다 피땀을 흘리므로 인해 호를 천마(天馬)라 했다.
●渠儂; 타(他)니 제3인칭대사. 선록의 용례에 많이 본래면목ㆍ진여법신을 가리킴. 거(渠) 대사(代詞)니 제3인칭을 표시함. 타(他)에 상당함. 농(儂) 대사(代詞)니 제1인칭을 표시함. 아(我)에 상당함. 제2인칭을 표시함. 니(你)에 상당함.
雪竇見得透 方乃頌出 天馬駒日行千里 橫行竪走 奔驟如飛 方名天馬駒 雪竇頌百丈於祖域之中 東走向西 西走向東 一來一往 七縱八橫 殊無少礙 如天馬駒相似 善能交馳 方見自由處 這箇自是得他馬祖大機大用 不見僧問馬祖 如何是佛法大意 祖便打云 我若不打爾 天下人笑我去在 又問 如何是祖師西來意 祖云 近前來向爾道 僧近前 祖*劈耳便掌云 *六耳不同謀 看他恁麽得大自在 於建化門中 或卷或舒 有時舒不在卷處 有時卷不在舒處 有時卷舒俱不在 所以道同塗不同轍 此頌百丈有這般手脚 雪竇道 電光石火存機變 頌這僧如擊石火似閃電光 只在些子機變處 巖頭道 却物爲上 逐物爲下 若論戰也 箇箇立在轉處 雪竇道 機輪曾未轉 轉必兩頭走 若轉不得 有什麽用處 大丈夫漢 也須是識些子機變始得 如今人只管供他款 彼他穿却鼻孔 有什麽了期 這僧於電光石火中 能存機變 便禮拜 雪竇道堪笑人來捋虎鬚 百丈似一箇大蟲相似 堪笑這僧去捋虎鬚
●劈耳; 對著耳 劈 冲著 正對著
●六耳不同謀; 本謂三人在場 不便密謀 用作公案機語 則謂禪旨幽密 非言句所能傳示 學人切勿尋言逐句
설두가 보아 궤뚫음을 얻은지라 바야흐로 이에 송출(頌出)했다. 천마구(天馬駒)는 하루에 천 리를 가나니 횡행수주(橫行竪走)하며 분취(奔驟)함이 나는 듯하므로 또한(方; 且) 이름이 천마구다. 설두가, 백장이 조역(祖域)의 가운데에 동주향서(東走向西)하고 서주향동(西走向東)하며 일래일왕(一來一往)하고 칠종팔횡(七縱八橫)하되 특수히 조금도 막힘 없음이 마치 천마구와 상사하여 잘 능히 교치(交馳)하여 바야흐로 자유처(自由處)를 나타냄(見)을 송한 것이니 이것(這箇)은 스스로 곧(是) 저 마조의 대기대용(大機大用)을 얻어서이다. 보지 못하는가 중이 마조에게 묻되 무엇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마조가 문득 때리고 이르되 내가 만약 너를 때리지 않는다면 천하인이 나를 비웃으리라(去在는 조사). 또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마조가 이르되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를 향해 말하리라. 중이 앞으로 가까이하자 마조가 귀에다(*劈耳) 문득 손바닥으로 때리고 이르되 6이(耳)면 함께 모의하지 못한다(*六耳不同謀) 하였으니 그(마조)의 이러함을 보건대 대자재를 얻었다. 건화문(建化門) 가운데에서 혹은 거두고(卷) 혹은 펴나니(舒) 어떤 때는 폄이 거두는 곳에 있지 않고 어떤 때는 거둠이 펴는 곳에 있지 않고 어떤 때는 거둠과 폄이 다 있지 않는지라 소이로 말하되 같은 길(塗)에 같은 바퀴 자국이 아니라 하니 이것은 백장이 저반(這般; 이런 종류)의 수각(手脚)이 있음을 송한 것이다. 설두가 말하되 전광석화에 기변(機變)을 두거늘 이라 한 것은 이 중이 돌을 치는 불과 같고 번쩍하는 번갯빛과 흡사하여 다만 조금(些子)의 기변처(機變處)에 있음을 송한 것이다. 암두가 말하되 사물을 물리침은 상(上)이 되고 사물을 쫓아감은 하(下)가 되나니 만약 법전(法戰; 戰)을 논할진대 개개가 전처(轉處)에 서 있다 하였다. 설두가 말하되 기륜(機輪)이 일찍이 돌지 않았거니와 돈다면 반드시 양두(兩頭)로 달릴 것이다 하니 만약 돎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쓸 곳이 있으리오. 대장부한(大丈夫漢)은 또한 모름지기 곧(是) 사자(些子; 極少)의 기변(機變)을 알아야 비로소 옳거늘 여금의 사람은 다만 그(師家)에게 정관(情款; 罪狀)을 관공(管供; 바침)하다가 그에게 콧구멍을 뚫려버림을 입나니 무슨 깨칠 기약이 있으리오. 이 중이 전광석화 가운데에서 능히 기변을 두어 곧 예배하였거늘 설두가 말하되 가히 우습나니 사람이 와서 범의 수염을 건드린다 하니 백장이 흡사 한 개의 대충(大蟲)과 상사하거늘 이 중이 가서 범의 수염을 건드림을 가히 웃노라 함이다.
●劈耳; 귀에 대착(對著). 벽(劈)은 충착(冲著; 찌르다). 정대착(正對著).
●六耳不同謀; 본래는 3인이 장소에 있으면 밀모(密謀)하기에 불편함을 말함이나 공안의 기어(機語)로 사용해 지음. 곧 이르기를 선지(禪旨)는 유밀(幽密)하여 언구로 능히 전시(傳示)할 바가 아니므로 학인은 절실하게 심언축구(尋言逐句)하지 말라 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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