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27칙 송 평창

태화당 2021. 8. 26. 07:00

問旣有宗深辨來風 箭不虛發 答亦攸仝豈有兩般 如鐘待扣 功不浪施 三句可辨上中下 如今是第幾句 須是向三句外*薦取始得 一鏃*遼空中 過也 *?著磕著 箭過新羅 大野兮涼飈颯颯普天匝地 還覺骨毛卓竪麽 放行去也 長天兮疏雨濛濛風浩浩 水*漫漫 頭上漫漫 脚下漫漫 君不見少林久坐未歸客更有不唧?漢 帶累殺人 黃河頭上瀉將過來 靜依熊耳一叢叢開眠也著 合眼也著 鬼窟裏作活計 眼瞎耳聾 誰到這境界 不免打折爾*版齒

 

薦取; 又作薦得 薦 領會 領悟 又識 認識 取 後綴

遼空; 意爲摩天 又作遼天

?著磕著; 同築著磕著 (突然地)撞著碰著 觸此觸彼 事事上物物上契當本分也 ? 用同築 刺也 廣韻 磕 苦盍切 又苦蓋切 說文 磕 石聲 正字通 磕 兩石相擊聲

漫漫; 指時間長久或空間廣遠的樣子

版齒; 又作板齒 當門齒 謂前齒也

 

물음이 이미 종(; 宗旨)이 있는지라 깊이 내풍(來風)을 분변하는지라 화살을 헛되이 발사하지 않는다. 답도 또한 이에() 한가지다 어찌 두 가지가 있으리오. 종이 두드림을 기다림과 같아서 공을 헛되이() 베풂이 아니다. 3구를 가히 분변해야 상중하에 여금은 이 몇 번째의 구()인가. 모름지기 이는 3구 밖을 향해 천취(*薦取)해야 비로소 옳다. 1(; 화살촉)이 요공(*遼空)하리라 적중했다(). 지나갔다. 축착개착(*?著磕著)이로다. 화살이 신라를 지나갔다. 대야(大野)엔 양표(涼飈; 서늘한 회리바람)가 삽삽(颯颯; 바람 소리)하고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도나니 도리어 골모(骨毛; 뻣뻣한 털)가 쭈뼛 섬을 깨닫느냐. 방행(放行)하여 감이다. 장천(長天)엔 소우(疏雨; 성기게 뚝뚝 오는 비)가 몽몽(濛濛; 안개나 비 따위가 자욱한 모양)하다 바람은 호호(浩浩; 가없이 드넓음)하고 물은 만만(*漫漫)한지라 머리 위에도 만만하고 발 아래도 만만하다. 그대가 보지 못하는가, 소림(少林)에 오래 앉아 돌아가지 않는 나그네여 다시 부즉류한(不唧?漢)이 있구나. ()를 사람들에게 너무 끼치는구나. 황하(黃河)의 두상(頭上)에 쏟아부어 가지고 지나온다. 웅이(熊耳)의 일총총(一叢叢; 빽빽한 모양)에 고요히 의지했다 눈을 뜨도 부딪히고() 눈을 감아도 부딪히거늘 귀굴 속에서 활계를 지으니 눈 멀고 귀 먹었는가. 누가 이 경계에 이르렀는가. 너의 판치(*版齒; 앞니)가 타절(打折)됨을 면하지 못하리라.

 

薦取; 또 천득(薦得)으로 지음. ()은 영회(領會; 깨달아 이해함). 영오(領悟; 깨달아 앎). 또 식(), 인식. ()는 후철.

遼空; 뜻이 마천(摩天; 하늘을 어루만지다)이 됨. 또 요천(遼天)으로 지음.

?著磕著; 축착개착(築著磕著)과 같음. (突然地)에서 당착팽착(撞著碰著; 부딪침)하고 촉차촉피(觸此觸彼; 여기저기 부딪침)하여 사사상(事事上) 물물상(物物上) 본분에 계당(契當; 계합). (?)은 용이 축()과 같으며 자(). 광운 개() 고합절(苦盍切; )이며 또 고개절(苦蓋切; )이다. 설문 개() 석성(石聲)이다. 정자통 개() 두 돌이 서로 치는 소리다. 同築著磕著 (突然地)撞著碰著 觸此觸彼 事事上物物上契當本分也

漫漫; 시간이 장구하거나 혹 공간이 광원(廣遠)한 양자(樣子)를 가리킴.

版齒; 또 판치(板齒)로 지음. 당문치(當門齒)니 이르자면 전치(前齒; 앞니).

 

古人道 承言須會宗 勿自立規矩 古人言不虛設 所以道 大凡問箇事 也須識些子好惡 若不識尊卑去就 不識*淨觸 *信口亂道 有什麽*利濟 凡出言吐氣 須是如鉗如鋏 有鉤有鎖 須是相續不斷始得 這僧問處有宗旨 雲門答處亦然 雲門尋常以三句接人 此是極則也 雪竇頌這公案 與頌*大龍公案相類 三句可辨 一句中具三句 若辨得則透出三句外 一鏃遼空 鏃乃箭鏃也 射得太遠 須是急著眼看始得 若也見得分明 可以一句之下 開展大千沙界 到此頌了雪竇有餘才 所以展開頌出道 大野兮涼飈颯颯 長天兮疏雨濛濛 且道是心是境 是玄是妙 古人道 法法不隱藏 古今常顯露 他問樹凋葉落時如何 雲門道體露金風 雪竇意只作一境 如今眼前 風拂拂地 不是東南風 便是西北風 直須便恁麽會始得 爾若更作禪道會 便沒交涉 君不見少林久坐未歸客 達磨未歸西天時 九年面壁 靜悄悄地 且道是樹凋葉落 且道是體露金風 若向這裏 盡古今凡聖 乾坤大地 打成一片 方見雲門雪竇的的爲人處 靜依熊耳一叢叢 熊耳卽西京嵩山少林也 前山也千叢萬叢 後山也千叢萬叢 諸人向什麽處見 還見雪竇爲人處麽 也是靈龜曳尾

 

淨觸; 淨 淨潔 觸 觸穢之意 又作淨濁

信口; 随口 谓出言不加思索

利濟; 利益 益處

 

고인이 말하되 말씀 받들자 모름지기 종(; 宗旨)임을 알고 스스로 규구(規矩; 법칙)를 세우지 말아라 하니 고인은 말씀을 헛되이 베풀지 않았다. 소이로 말하되 대범(大凡) 개사(箇事; 此事. 向上事)를 물음엔 또한 모름지기 사자(些子; 極少)의 호오(好惡)를 알아야 하나니 만약 존비(尊卑)와 거취(去就)를 알지 못하며 정촉(*淨觸)을 알지 못하고 입 따라(*信口) 어지럽게 말한다면 무슨 이제(*利濟)가 있으리오. 무릇 출언토기(出言吐氣)하되 반드시 이 겸(; 목 자물쇠)과 같고 협(; 집게. 가위)과 같으며 갈고리도 있고 자물쇠도 있어 모름지기 이 상속하여 부단(不斷)해야 비로소 옳다. 이 중의 문처(問處)에 종지가 있으므로 운문의 답처에도 또한 그러하다. 운문이 심상(尋常)3구로써 접인(接人)했는데 이것이 이 극칙(極則)이다. 설두가 이 공안을 송한 것과 대룡공안(大龍公案; 아래 제82칙을 보라)을 송한 것이 서로 유사하다. 3구를 가히 분변할진대 1구 중에 3구를 갖추었거니와 만약 변득(辨得)한다면 곧 3구 밖을 투출(透出)하여 1()이 요공(遼空; 허공을 마찰하다)하리니 족()은 곧 전족(箭鏃)이며 매우 먼 데를 사득(射得; 은 조사)한다면 모름지기 이 급히 착안하여 보아야 비로소 옳다. 만약에 분명함을 견득(見得)한다면 가이(可以; 는 조사) 일구지하(一句之下)에 대천사계(大千沙界)를 개전(開展; 전개)한다. 여기(一鏃遼空)에 이르러 송해 마치고 설두가 여재(餘才)가 있는지라 소이로 전개하여 송출(頌出)해 말하되 대야(大野)엔 양표(涼飈)가 삽삽(颯颯)하고 장천(長天)엔 소우(兮疏)가 몽몽(濛濛)하다 하니 그래 말하라, 이 심()인가 이 경()인가 이 현()인가 이 묘()인가. 고인이 말하되 법마다(法法) 은장(隱藏)하지 못하여 고금에 늘 현로(顯露; 환히 드러남)한다 하였다. 그가 묻되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운문이 말하되 금풍이 체로(體露)했다 하였거늘 설두의 뜻은 다만 1()을 지으니 여금의 눈 앞에 바람이 불불지(拂拂地; 솔솔 부는 모양. 는 조사)이거니와 곧 이 동남풍이 아니면 곧 이 서북풍이니 바로 모름지기 곧 이러히 이회해야 비로소 옳으려니와 너희가 만약 다시 선도(禪道)라는 이회를 짓는다면 곧 교섭이 없다. 그대가 보지 못하는가, 소림에 오래 앉아 돌아가지 않는 나그네여 라고 하니 달마가 서천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때 9년 면벽한지라 적정(寂靜)하여 초초지(悄悄地; 고요한 모양. 는 조사)니 그래 말하라, 이 수조엽락(樹凋葉落)인가, 그래 말하라 이 체로금풍(體露金風)인가. 만약 이 속을 향해 고금범성(古今凡聖)을 다하고 건곤대지(乾坤大地)를 타성일편(打成一片)하면 바야흐로 운문과 설두의 적적(的的; 확실. 진실)하게 사람을 위한 곳을 보리라. 웅이(熊耳)의 일총총(一叢叢)에 고요히 의지했다 하니 웅이는 곧 서경 숭산 소림이거니와 앞 산도 천총만총(千叢萬叢)이며 뒷산도 천총만총이니 제인이 어느 곳을 향해 보는가. 도리어 설두의, 사람을 위하는 곳을 보느냐. 또한 이 영귀(靈龜)가 꼬리를 당김이다.

 

淨觸; ()은 정결이며 촉()은 촉예(觸穢)의 뜻이니 또 정탁(淨濁)으로 지음.

信口; 수구(随口)니 이르자면 말을 내면서 사색을 가하지 않음.

利濟; 이익. 이익되는 곳.

 

'벽암록주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암록 제28칙 본칙평창  (0) 2021.08.26
벽암록 제28칙 본칙  (0) 2021.08.26
벽암록 제27칙 수시 본칙 평창  (0) 2021.08.25
벽암록 제26칙 송 평창  (0) 2021.08.25
벽암록 제26칙 본칙 평창  (0) 202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