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34칙 본칙 평창

태화당 2021. 8. 26. 08:04

三四*仰山問僧 近離甚處天下人一般 也要問過 因風吹火 不可不作常程 僧云 廬山*實頭人難得 山云 曾遊*五老峰因行不妨掉臂 何曾蹉過 僧云 不曾到移一步 面赤不如語直 也似*忘前失後 山云 闍黎不曾遊山*太多事生 惜取眉毛好 這老漢著甚死急 雲門云 此語皆爲慈悲之故 有落草之談殺人刀活人劒 兩箇三箇 要知山上路 須是去來人

 

仰山; 仰山慧寂 慧寂(807-883) 唐代僧 爲潙仰宗開山祖師之一 韶州(廣東韶關)葉氏 初生頗有異蹟 爲童穉 依番禺安和寺不語通出家 年十四 父母欲奪其志 遂斷二指以爲誓 因從剃落 通累加接引 而師無所啓發 年十八 通卒 因往謁乳源 洎筠州處微 吉州性空 鵶山躭源 皆不契 至大和三年(829) 參大潙靈祐 擧性空如人在井之緣 因而有省 山指令請戒於襄陽之大悲 師曰 慧寂平生不妄語 山云 你但依沙門法 師從之 時年三十三矣 復還潙山作直歲 尋領衆居郴州之王莽山 旣而移錫居袁州仰山 衆盈數百 一日 有梵僧負貝葉造師 師問 近離甚處 曰 早別西天 師曰 太遲生 曰 游山翫水 師曰 神通不無你 佛法未夢見 曰 來此禮文殊 却遇小釋迦 語訖隱去 大中十三年(859) 韋宙中丞 爲師創洪州觀音院居之 咸通(860-873)中 歸韶州之東平山 至中和三年二月十三日 集衆說偈 以兩手抱屈膝 儼然而終 歸葬於仰山 師行道於世 蒙寵賜者三 懿宗賜號知宗 僖宗賜澄虛 昭宗諡智通 [祖庭事苑七 宋高僧傳十二]

實頭; 老實 如實 頭 助詞 常指答問時據實應對

五老峰; 廬山中有五老香爐漢陽白雲雙劍等數十峰 一統志五十二南康府部 五老峰在廬山 五峰如五老相連故名 [碧巖錄第三十四則種電鈔]

忘前失後; 忘却前面前際 失却後面後際

太多事生; 多事奔忙之貌 太 表示程度過分 相當于甚 生 語助辭 相當于然或樣字

 

三四()하다. 앙산(*仰山)이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천하인이 일반(一般)이다. 또한 문과(問過; 물어봄. 는 조사)를 요한다. 바람으로 인해 불을 부는 것이라서 가히 상정(常程)을 짓지 아니하지 못하리라. 중이 이르되 여산(廬山)입니다. 실두인(*實頭)을 얻기 어렵다. 앙산이 이르되 일찍이 오로봉(*五老峰)을 유람하였느냐. 다님으로 인해 팔이 흔들림에 방애되지 않나니 어찌 일찍이 차과(蹉過; 놓침)하리오. 중이 이르되 일찍이 이르지 못했습니다. 1()를 옮기는구나. 얼굴 붉힘이 말 정직함만 같지 못하다. 또한 망전실후(*忘前失後)와 흡사하다. 앙산이 이르되 사리(闍黎)는 유산(遊山)하지 못했군. 너무 일이 많다(*太多事生) 눈썹을 석취(惜取; 는 조사)함이 좋다. 이 노한(앙산)이 무슨 사급(死急)을 얻는가(). 운문이 이르되 차어(此語)는 모두 자비하기 때문인 연고로 낙초(落草)의 얘기가 있다. 살인도며 활인검이다. 두 개 세 개로구나(앙산ㆍ운문:설두가 다 이 落草漢). 산 위의 길을 알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이 갔다 온 사람이라야 한다.

 

仰山; 앙산혜적임. 혜적(慧寂) (807-883) 당대승. 위앙종(潙仰宗)의 개산조사(開山祖師)의 하나가 됨. 소주(韶州; 광동 소관) 섭씨(葉氏)며 처음 출생하자 자못 이적(異蹟)이 있었음. 어린이(童穉)가 되자 번옹(番禺) 안화사(安和寺)의 불어통(不語通)에 의지(依止)해 출가하였음. 나이 14에 부모가 그 뜻을 뺏으려 하자 드디어 두 손가락을 잘라 맹서(盟誓)를 삼았으며 인하여 체락(剃落)을 좇았음. ()이 누차(屢次) 접인(接引)을 가했으나 스님은 계발(啓發)한 바가 없었음. 나이 18에 통이 죽자 인해 유원(乳源)에게 가서 참알(參謁)했으며 균주(筠州)의 처미(處微)ㆍ길주(吉州)의 성공(性空)ㆍ아산(鵶山)의 탐원(躭源)에 이르렀으나 다 계합(契合)치 못했음. 대화(大和) 3(829)에 이르러 대위영우(大潙靈祐)를 참알해 성공(性空), 마치 어떤 사람이 우물에 있음과 같다는 인연을 들어 인해 살핌이 있었음. 위산(潙山)이 양양(襄陽)의 대비원(大悲院)에 청계(請戒; 곧 수계)를 지령(指令)하자 스님이 가로되 혜적(慧寂)은 평생에 망어(妄語)를 하지 않았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너는 단지 사문법(沙門法)에 의지(依止)하라. 스님이 이를 좇았는데 때의 나이는 33이었음. 다시 위산으로 돌아와 직세(直歲)가 되었으며 이윽고 대중을 거느리고 침주(郴州)의 왕망산(王莽山)에 거주하였음. 그러고는 이석(移錫)하여 원주(袁州)의 앙산(仰山)에 거주했는데 대중이 수백(數百)을 채웠음. 어느 날 어떤 범승(梵僧)이 패엽(貝葉; 佛經을 가리킴)을 지고 스님에게 나아가자 스님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아침에 서천(西天)을 떠났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너무 느리다. 가로되 유산완수(游山翫水)했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신통은 너에게 없지 않으나 불법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가로되 여기에 와서 문수(文殊)에게 예배하려 했더니 도리어 소석가(小釋迦)를 만났습니다. 말을 마치자 은몰(隱沒)했음. 대중 13(859) 위주중승(韋宙中丞)이 스님을 위해 홍주(洪州)에 관음원(觀音院)을 창건하고 거쳐하게 했음. 함통(咸通. 860-873) 중에 소주(韶州)의 동평산(東平山)으로 돌아갔다가 중화(中和) 3213일에 이르자 대중을 모아 게()를 설하고 두 손으로 무릎을 안아 구부러지게 하고는 엄연(儼然; 의젓이)히 마쳤음. 앙산으로 귀장(歸葬)했음. 스님이 세상에 도를 행해 총사(寵賜)를 입은 게 세 번이니 의종(懿宗)이 호()를 주어 지종(知宗)이라 했고 희종(僖宗)이 징허(澄虛)를 주었고 소종(昭宗)이 지통(智通)이라 시호(諡號)했음 [조정사원7. 송고승전12].

實頭; 노실(老實; 誠實)ㆍ여실. 두는 조사. 늘 답문 시 사실에 의거하여 응대함을 가리킴.

五老峰; 여산(廬山) 가운데 오로ㆍ향로ㆍ한양ㆍ백운ㆍ쌍검 등 수십 봉()이 있음. ()일통지52 남강부부(南康府部) 오로봉은 여산에 있다. 5()5()가 상련(相連)한 듯하여 고로 이름했다 [벽암록 제34칙 종전초]

忘前失後; 전면과 전제(前際)를 망각하고 후면과 후제를 실각(失却).

太多事生; 일이 많고 분망(奔忙)한 모양. ()는 정도가 과분함을 표시하며 심()에 상당함. ()은 어조사며 연() 혹 양자(樣字)에 상당함.

 

驗人端的處 下口便知音 古人道 沒量大人 向語脈裏轉却 若是頂門具眼 擧著便知落處 看他一問一答 *歷歷分明 雲門爲什麽却道 此語皆爲慈悲之故 有落草之談 古人到這裏 如明鏡當臺明珠在掌 胡來胡現漢來漢現 一箇*蠅子也過他鑑不得 且道作麽生是慈悲之故有落草之談 也不妨險峻 到這田地 也須是箇漢始可提掇 雲門拈云 這僧親從廬山來 因什麽却道闍黎不曾遊山 潙山一日問抑山云 諸方若有僧來 汝將什麽驗他 仰山云 某甲有驗處 潙山云 子試擧看 仰云 某甲尋常見僧來 只擧拂子向伊道 諸方還有這箇麽 待伊有語只向伊道 這箇卽且置 那箇如何 潙山云 此是向上人牙爪 豈不見 馬祖問百丈 什麽處來 丈云 山下來 祖云 路上還逢著一人麽 丈云 不曾 祖云 爲什麽不曾逢著 丈云 若逢著 卽擧似和尙 祖云 那裏得這消息來 丈云 某甲罪過 祖云 却是老僧罪過 仰山問僧正相類此 當時待他道曾到五老峰麽 這僧若是箇漢 但云禍事 却道不曾到 這僧旣不作家 仰山何不據令而行 免見後面許多葛藤 却云 闍黎不曾遊山 所以雲門道 此語皆爲慈悲之故 有落草之談 若是*出草之談 則不恁麽

 

歷歷; 甚分明貌 歷 分明也

蠅子; 卽蒼蠅 子 後綴

出草; 爲入草落草之對稱 草 比喩世間俗衆 超出世俗 稱爲出草 宣說超出世俗之宗旨奧義 或提示佛法第一義 卽稱爲出草談

 

사람의 단적(端的; 확실, 진실)한 곳을 감험(勘驗)함에는 하구(下口; 開口)하면 곧 음을 아나니 고인이 말하되 몰량대인(沒量大人)도 어맥(語脈) 속을 향해 돌아버린다(轉却) 하였다. 만약 이 정문(頂門; 정수리)에 눈을 갖추었다면 거착(擧著)하면 곧 낙처를 아나니 저 일문일답을 보건대 역력분명(*歷歷分明)하거늘 운문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되 차어(此語)는 모두 자비하기 떼문인 연고로 낙초(落草)의 얘기가 있다 했는가. 고인은 이 속에 이르러 명경(明鏡)이 당대(當臺)하며 명주(明珠)가 손바닥에 있음과 같아서 호래호현(胡來胡現)하고 한래한현(漢來漢現)하는지라 1개의 승자(*蠅子; 쉬파리)도 그 거울을 지나감(도망감)을 얻지 못한다. 그래 말하라, 어떤 것이 이 자비하기 떼문인 연고로 낙초(落草)의 얘기가 있는가. 또한 험준함에 방애되지 않는다. 이 전지(田地; 경계)에 이르러선 또한 모름지기 시개한(是箇漢; 진정한 丈夫漢)이라야 비로소 가히 제철(提掇; 문제를 제출하고 아울러 탐구를 가함)한다. 운문이 염운(拈云)하되 이 중이 친히 여산으로 좇아왔거늘 무엇 때문에()에 도리어 말하되 사리는 일찍이 유산(遊山)하지 못했군 이라고 했는가. 위산이 어느 날 앙산에게 물어 이르되 제방에서 만약 어떤 중이 오면 네가 무엇을 가지고 그를 감험(勘驗)하겠느나. 앙산이 이르되 모갑이 감험할 곳이 있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네가 시험삼아 들어보아라(擧看). 앙산이 이르되 모갑이 심상(尋常)에 중이 오는 것을 보면 다만 불자를 들고 그를 향해 말하되 제방에 도리어 이것(這箇)이 있느냐. 그의 말 있음을 기다렸다가 다만 그를 향해 말하되 이것(這箇)은 곧 그래 두고 저것(那箇)은 어떠한가 합니다. 위산이 이르되 이것은 이 향상인(向上人)의 아조(牙爪)다 하였다. 어찌 보지 못하는가, 마조가 백장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백장이 이르되 산 아래에서 옵니다. 마조가 이르되 노상에서 도리어 한 사람을 봉착(逢著; 만나다. 은 조사)했느냐. 백장이 이르되 부증(不曾; 일찍이 만난 적이 없다는 말. 眼不見眼)입니다. 마조가 이르되 무엇 대문에 일찍이 봉착하지 않았느냐. 백장이 이르되 만약 봉착했다면 곧 화상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임)했을 것입니다. 마조가 이르되 나리(那裏; 어느 속)에서 이 소식을 얻어 왔느냐. 백장이 이르되 모갑의 죄과(罪過)입니다. 마조가 이르되 도리어 이 노승의 죄과니라. 앙산이 중에게 물은 것도 바로() 이것과 서로 유사하다. 당시에 그(앙산)가 말하되 일찍이 오로봉에 이르렀느냐 함을 기다렸다가 이 중이 만약 시개한(是箇漢)이었다면 다만 이르되 화사(禍事)로다 해야 할 것이거늘 도리어 말하되 일찍이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였다. 이 중이 이미 작가가 아니거늘 앙산이 왜 영()에 의거해 행하여 후면의 허다한 갈등을 봄을 면하지 않았는가. 도리어 이르되 사리는 일찍이 유산하지 못했군 이라 하니 소이로 운문이 말하되 차어(此語)는 모두 자비하기 때문인 연고로 낙초의 얘기가 있다 하였거니와 만약 이 출초(*出草)의 얘기라면 곧 이러하지 않을 것이다.

 

歷歷; 매우 분명한 모양. ()은 분명임.

蠅子; 곧 창승(蒼蠅; 쉬파리)이니 자는 후철(後綴)

出草; 입초(入草)와 낙초(落草)의 대칭임. ()는 세간과 속중(俗衆)에 비유함. 세속을 초출함을 출초라고 일컬음. 세속을 초출하는 종지의 그윽한 뜻을 선설(宣說)하거나 혹은 불법의 제일의를 제시(提示)함을 곧 출초의 얘기라고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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