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編辟曾挨*老古錐何必拶著這老漢 挨拶向什麽處去 七斤衫重幾人知再來不直*半分錢 直得*口似匾擔 又却被他贏得一籌 如今拋擲西湖裏還雪竇手脚始得 山僧也不要 *下載淸風付與誰自古自今 且道雪竇與他酬唱 與他下注脚 一子親得
●編辟; 五家宗旨纂要上 汾陽十八問 …… 偏僻問 鶴立枯松時如何 偏枯僻執而問也
●老古錐; 老古錐能爲鑽物之用 老古者尊稱 言師家說得機鋒峭峻也 又指老練圓熟之師家
●半分錢; 表示極少的錢 半分 平分爲二 二分之一
●口似匾擔; 見上第一八則口似匾檐
●下載; 對上載而云 下 從高處到低處 載 運也
편벽(*編辟)하여 일찍이 노고추(*老古錐)를 애착(挨著; 挨)하매 하필이면 이 노한을 애착(拶著)하는가. 애찰(挨拶)이 어느 곳을 향해 갔는가. 적삼의 무게를 몇 사람이 아느냐 재래(再來)하니 반분전(*半分錢)의 가치도 안되는구나. 바로 입이 편담과 비슷함(*口似匾擔)을 얻었다. 여금에 서호(西湖) 속에 포척(拋擲)하였더니 도리어 설두의 수각(手脚)이라야 비로소 옳다. 산승도 또한 필요치 않노라. 청풍을 하재(*下載)하여 누구에게 부여할까 자고자금(自古自今; 옛이나 지금이나 쉬지 않는 것은 이 청풍)이다. 그래 말하라 설두가 그(조주)에게 수창(酬唱)해 줌인가, 그에게 주각(注脚)하여 줌인가. 1자(子; 설두)가 친히 얻었다.
●編辟; 오가종지찬요상 분양십팔문 …… 편벽문(偏僻問) 학이 고송(枯松)에 섰을 땐 어떠한가. 편고(偏枯)로 벽집(僻執)하여 물음이다.
●老古錐; 노고추(老古錐)는 능히 물건을 뚫는 데 사용함. 노고(老古)란 것은 존칭이니 말하자면 사가(師家)가 기봉이 초준(峭峻; 높고 가파름)함을 설해 얻음임. 또 노련하고 원숙(圓熟)한 사가를 가리킴.
●半分錢; 극소의 돈을 표시함. 반분(半分)은 고르게 나누어 2로 만듦이니 2분의 1임.
●口似匾擔; 위 제18칙 구사편담(口似匾檐)을 보라.
●下載; 상재(上載)에 상대해 이름이니 하(下)는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에 이름이며 재(載)는 운(運; 운반)임.
十八問中 此謂之編辟問 雪竇道 編辟曾挨老古錐 編辟萬法敎歸一致 這僧要挨拶他趙州 州也不妨作家 向轉不得處有出身之路 敢開大口便道 我在靑州作一領布衫 重七斤 雪竇道 這箇七斤布衫能有幾人知 如今拋擲西湖裏 萬法歸一 一亦不要 七斤布衫亦不要 一時拋在西湖裏 雪竇住洞庭翠峰 有西湖也 下載淸風付與誰 此是趙州示衆 爾若向北來 與爾*上載 爾若向南來 與爾下載 爾若從雪峰雲居來 也是箇擔板漢 雪竇道 如此淸風堪付阿誰 上載者 與爾說心說性 說玄說妙 種種方便 若是下載 更無許多義理玄妙 有底擔一擔禪 到趙州處 一點也使不著 一時與他打疊 敎灑灑落落無一星事 謂之悟了還同未悟時 如今人盡作無事會 有底道 無迷無悟 不要更求 只如佛未出世時 達磨未來此土時 不可不恁麽也 用佛出世作什麽 祖師更西來作什麽 總如此有什麽干涉 也須是大徹大悟了 依舊山是山水是水 乃至一切萬法悉皆成現 方始作箇無事底人 不見龍牙道 學道先須有悟由 還如曾鬪*快龍舟 雖然舊閣閑田地 一度贏來方始休 只如趙州這箇七斤布衫話子 看他古人恁麽道 如金如玉 山僧恁麽說 諸人恁麽聽 總是上載 且道作麽生是下載 三條椽下看取
●上載; 對下載而云 上 從低處到高處 載 運也
●快龍舟; 禪門拈頌集第八九九則 拈頌說話曰 龍舟者 荊楚歲時記云 龍競渡者 治其舡輕利 謂之飛鳧 俗以屈原死於汨羅 時人傷之 將舟楫以拯之 因以名焉
18문(問) 중에 이것을 편벽문(編辟問)이라고 이른다. 설두가 말하되 편벽(編辟)하여 일찍이 노고추(老古錐)를 애착(挨著; 挨)하매 라고 하니 만법을 편벽(編辟)하여 한 이치로 돌아오게 함이다. 이 중이 저 조주를 애찰(挨拶)하고자 하나 조주도 작가임에 방애되지 않으므로 전환(轉換; 轉)을 얻지 못할 곳을 향해 출신(出身)할 길이 있는지라 감히 큰 입을 벌려 곧 말하되 내가 청주에 있으면서 한 벌의 베적삼을 지었는데 무게가 7근이더라 하였다. 설두가 말하되 이(這箇) 7근 베적삼을 능히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함이다. 여금에 서호(西湖) 속에 포척(拋擲)하였더니 라고 함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지만 하나도 또한 필요하지 않고 7근 베적삼도 또한 필요하지 않으므로 일시에 던져 서호 속에 있다 함이다. 설두가 동정호의 취봉(翠峰)에 거주했으니 서호(西湖)가 있다. 청풍을 하재(下載)하여 누구에게 부여할까 하니 이것은 이 조주가 시중(示衆)하되 너희가 만약 향북(向北; 북방)에서 오면 너희에게 상재(*上載)하여 주고 너희가 만약 향남(向南)에서 오면 너희에게 하재(下載)하여 주며 너희가 만약 설봉이나 운거(雲居)로 좇아오면 또한 이는 저(箇) 담판한(擔板漢)이니라 하였다. 설두가 말하되 이와 같은 청풍을 가히(堪) 누구에게 부여할까 함이니 상재(上載)란 것은 너희에게 설심설성(說心說性)하고 설현설묘(說玄說妙)하여 갖가지 방편을 줌이거니와 만약 이 하재(下載)일진대 다시 허다한 의리(義理)의 현묘(玄妙)가 없다 함이다. 어떤 이는 한 짐의 선(禪)을 짊어지고 조주의 처소에 도착하매 한 점도 또한 붙이지 못하게 하고 일시에 그에게 타첩(打疊; 掃除. 收拾)하여 주어 쇄쇄낙락(灑灑落落)하여서 일성사(一星事; 一點事)도 없게 하니 이를 일러 깨치고 나선 도리어 깨치지 못한 때와 같다 하거니와 여금의 사람은 모두 무사(無事)라는 이회를 지으며 어떤 이는 말하되 무미무오(無迷無悟)이므로 다시 구함을 요하지 않나니 지여 (只如)부처가 출세하지 않은 때와 달마가 차토(此土)에 오지 아니한 때에도 가히 이러하지 아니치 못하거늘 부처의 출세를 써서 무엇할 것이며 조사가 다시 서래(西來)한들 무엇하리오 하여 모두 이와 같나니 무슨 간섭(干涉)이 있으리오. 또한 반드시 이 대철대오(大徹大悟)해 마쳐야 의구히 산은 이 산이며 물은 이 물이니 내지 일체 만법이 모두 다 성현(成現; 現前成就)해야 비로소(方始) 저 무사(無事)한 사람이 되리라. 보지 못하느냐 용아가 말하되 학도(學道)는 먼저 반드시 오유(悟由)가 있어야 하나니/ 도리어 일찍이 쾌룡주(*快龍舟)를 다툼(鬪)과 같다/ 비록 그렇게 구각(舊閣)의 한가한 전지(田地)지만/ 한 차례 이기고 와야 비로소(方始) 쉰다 하였으니 다만 조주의 이(這箇) 7근 포삼화자(布衫話子; 子는 조사)와 같다. 저 고인의 이러히 말함을 보니 금과 같고 옥과 같다. 산승의 이러한 설함과 제인의 이러히 들음이 다 이 상재(上載)니 그래 말하라 무엇이 이 하재(下載)인가. 삼조연하(三條椽下)에서 간취(看取)하라.
●上載; 하재(下載)에 상대해 이름임. 상(上)은 낮은 곳으로부터 높은 곳에 이름이며 재(載)는 운(運)임.
●快龍舟; 선문염송집 제899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용주(龍舟)란 것은 형초세시기에 이르되 용경도(龍競渡)란 것은 그 배를 경리(輕利)하게 고치는데(治) 이를 일러 비부(飛鳧)라 한다. 풍속에 굴원(屈原)이 멱라(汨羅)에서 죽었으므로 시인(時人)이 이를 불쌍히 여겨 주즙(舟楫; 배와 노. 배)을 가지고 그를 건지려고 했으니 인하여 이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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