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68칙 수시 본칙 평창 송 평창

태화당 2021. 8. 27. 08:49

垂示云 掀天關翻地軸 擒虎兕辨龍蛇 須是箇活鱍鱍漢始得 句句相投機機相應 且從上來什麽人合恁麽 請擧看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천관(天關)을 번쩍 들고 지축(地軸)을 엎어버리며 호시(虎兕)를 사로잡고 용사(龍蛇)를 분변함은 모름지기 이(是箇) 활발발한(活鱍鱍漢)이라야 비로소 옳거니와 구구(句句)가 상투(相投)하고 기기(機機)가 상응함은 또 종상래(從上來)로 어떤 사람이 이러함에 합당한지 청컨대 들어보아라(擧看).

 

六八擧 仰山問三聖 汝名什麽名實相奪 勾賊破家 聖云 惠寂坐斷舌頭 攙旗奪鼓 仰山云 惠寂是我各自守封疆 聖云 我名惠然鬧市裏奪去 彼此却守本分 仰山呵呵大笑可謂是箇時節 錦上鋪花 天下人不知落處 何故土廣人稀 相逢者少 一似巖頭笑 又非巖頭笑 一等是笑 爲什麽却作兩段 具眼者始定當看

 

六八()하다. 앙산(仰山; 惠寂이니 남악하 4)이 삼성(三聖; 惠然이니 남악하 5)에게 묻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과 실()을 상탈(相奪; 다 뺏음)한다. 도적을 끌어들여 집안이 파산한다. 삼성이 이르되 혜적(惠寂)입니다 (舌頭)를 좌단(坐斷)하는구나. 참기탈고(攙旗奪鼓; 기를 찌르고 북을 뺏음)함이다. 앙산이 이르되 혜적은 이 나다. 각자 봉강(封疆)을 지킨다. 삼성이 이르되 나의 이름은 혜연입니다.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탈취해 가는구나. 피차 도리어 본분을 지킴이다. 앙산이 하하(呵呵; 의 원음이 하) 대소했다. 가히 이러한(是箇) 시절이라 이르노라. 비단 위에 꽃을 폄이다. 천하인이 낙처를 알지 못하리니 무슨 연고냐 하면 땅은 넓고 사람은 드물어 상봉하는 자가 적어서이다. 암두의 웃음(巖頭笑; 위 제66칙을 보라)과 일사(一似)하지만 또 암두의 웃음이 아니다. 일등(一等; 一樣으로 평등) 이 웃음이거늘 무엇 때문에 두 조각이 되는가, 눈을 갖춘 자라야 비로소 정당(定當; 判明)하여 보리라.

 

三聖是臨濟下尊宿 少具出群作略 有大機有大用 在衆中 *昂昂藏藏 名聞諸方 後辭臨濟 遍遊*淮海 到處叢林 皆以高賓待之 自向北至南方 先造雪峰便問 透網金鱗 未審以何爲食 峰云 待汝出網來 卽向汝道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 話頭也不識 峰云 老僧住持事繁 峰往寺莊 路逢*獼猴 乃云 這獼猴各各佩一面古鏡 聖云 歷劫無名 何以彰爲古鏡 峰云 瑕生也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 話頭也不識 峰云 罪過老僧住持事繁 後至仰山 山極愛其俊利 *待之於明窓下 一日有官人來參仰山 山問 官居何位 云*推官 山竪起拂子云 還推得這箇麽 官人無語 衆人下語 俱不契仰山意 時三聖病在*延壽堂 仰山令侍者持此語問之 聖云 和尙有事也 再令侍者問未審有什麽事 聖云 再犯不容 仰山深肯之 百丈當時 以禪板蒲團付黃檗 拄杖拂子付潙山 潙山後付仰山 仰山旣大肯三聖 聖一日辭去 仰山以拄杖拂子付三聖 聖云 某甲已有師 仰山詰其由 乃臨濟的子也 只如仰山問三聖 汝名什麽 他不可不知其名 何故更恁麽問 所以作家 要驗人得知子細 只似等閑 問云 汝名什麽 更道無計較 何故三聖不云惠然 却道惠寂 看他具眼漢 自然不同 三聖恁麽 又不是顚 一向攙旗奪鼓 意在仰山語外 此語不墮常情 難爲摸索 這般漢手段 却活得人 所以道 他參活句 不參死句 若順常情 則歇人不得 看他古人念道如此 用盡精神 始能大悟 旣悟了用時還同未悟時人相似 隨分一言半句 不得落常情 三聖知他仰山落處 便向他道 我名惠寂 仰山要收三聖 三聖倒收仰山 仰山只得就身打劫道 惠寂是我 是放行處 三聖云 我名惠然 亦是放行 所以雪竇後面頌云 雙收雙放若爲宗 只一句內一時頌了 仰山呵呵大笑 也有權有實 也有照有用 爲他八面玲瓏 所以用處得大自在 這箇笑與巖頭笑不同 巖頭笑有毒藥 這箇笑 千古萬古 淸風凜凜地 雪竇頌云

 

昂昂藏藏; 顯赫出衆貌

淮海; 淮海之名最早見於尙書禹貢 目前主要是蘇魯豫皖四省交界地區 它東瀕黃海 西連中原 南鄰江淮 北接齊魯 [百度百科]

獼猴; 緇門警訓註上 獼猴 陸佃云 此獸無脾 以行消食 蓋猿之德 靜而緩 猴之德 躁以囂

待之於明窓下; 謂寺院住持遇見靈利通悟的衲僧 按排于環境良好的席位 以示褒獎

推官; 推薦官 推 薦擧

延壽堂; 又作涅槃堂 省行堂 無常院 將息寮 禪林中 病僧用以療病休養之堂 含有祈求延長色身壽命而延續法身慧命之意 故稱延壽堂 禪林寶訓音義 延壽堂 撫安老病之所也 古者叢林老僧送安樂堂 病者送延壽堂也 又今涅槃堂是

 

삼성은 이 임제하의 존숙(尊宿)이다. 어릴 적에 출군(出群)의 작략(作略)을 갖추었으므로 대기(大機)가 있고 대용(大用)도 있어 중중(衆中)에 있으면서 앙앙장장(*昂昂藏藏)하여 이름이 제방에 퍼졌다(). 후에 임제를 고별()하고 회해(*淮海)를 편유(遍遊)하니 도처(到處)의 총림에서 모두 고빈(高賓)으로 그()를 접대했다. 향북(向北; 북방)으로부터 남방에 이르면서 먼저 설봉으로 나아가() 곧 묻되 그물을 투탈(透脫)한 금린(金鱗)은 미심하나니 무엇으로써 먹이를 삼는가. 설봉이 이르되 네가 그물에서 빠져나옴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삼성이 이르되 15백 인의 선지식이면서 화두도 또한 알지 못하는가. 설봉이 이르되 노승이 주지사(住持事)가 번다(繁多)하다. 설봉이 사장(寺莊)에 가다가 길에서 미후(*獼猴; 원숭이)를 만나자 곧 이르되 이 미후도 각각 1(; 量詞)의 고경(古鏡)을 지녔다. 삼성이 이르되 역겁(歷劫; 여러 겁을 지냄)에 이름이 없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何以) 드러내어 고경(古鏡)이라 하는가. 설봉이 이르되 티()가 생겨 났다. 삼성이 이르되 15백 인의 선지식이면서 화두도 또한 알지 못하는가. 설봉이 이르되 죄과(罪過)는 노승의 주지사(住持事) 번다(繁多)함이다. 후에 앙산에 이르니 앙산이 그의 준리(俊利)를 극애(極愛)하여 명창하로 그를 접대하였다(*待之於明窓下). 어느 날 어떤 관인(官人)이 와서 앙산을 참례하자 앙산이 묻되 관직이 어느 위()에 거()하느냐. 이르되 추관(*推官)입니다. 앙산이 불자(拂子)를 세워 일으키고 이르되 도리어 이것(這箇)을 추득(推得)하겠느냐. 관인이 말이 없었따. 중인(衆人)이 하어(下語; 機語를 냄)했으나 모두 앙산의 뜻에 계합하지 못했다. 때에 삼성이 병들어 연수당(*延壽堂)에 있었는데 앙산이 시자를 시켜 이 말을 가지고 그에게 물으니 삼성이 이르되 화상이 일이 있으시구나. 다시 시자를 시켜 묻되 미심하나니 무슨 일이 있음인가. 삼성이 이르되 재범(再犯)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니 앙산이 깊이 그를 긍정했다. 백장(百丈)이 당시에 선판(禪板)과 포단(蒲團)을 황벽에게 부촉(付囑)하고 주장자와 불자는 위산에게 부촉했는데 위산이 후에 앙산에게 부촉하였다. 앙산이 이미 삼성을 매우 긍정하였는데 삼성이 어느 날 고별하고 떠나려 하자 앙산이 주장자와 불자를 삼성에게 부촉하니 삼성이 이르되 모갑은 이미 스승이 있습니다. 앙산이 그 사유(事由)를 힐문(詰問)하니 곧 임제의 적자(的子; 的嗣)였다. 지여(只如) 앙산이 삼성에게 묻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 그(앙산)가 그(삼성)의 이름을 가히 알지 못하지 않거늘 무슨 연고로 다시 이렇게 물었는가. 소이로 작가는 사람을 시험하여 자세히 득지(得知)코자 하므로 다만 등한(等閑)한 것 같이하여 물어 이르되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였으니 다시 말해도 계교(計較)가 없다(빈주가 互相 酬對하매 계교가 없음). 무슨 연고로 삼성이 혜연이라고 이르지 않고 도리어 혜적이라고 말했는가. 저 구안한(具眼漢)을 보아라, 자연히 부동(不同; 常流와 부동)하다. 삼성의 이러함이 또 이 전광(癲狂; )이 아니며 일향(一向; 한결같이) 참기탈고(攙旗奪鼓)하므로 뜻이 앙산의 어외(語外)에 있다. 차어(此語; 삼성의 말)가 상정(常情)에 떨어지지 않는지라 모색하기 어려우니 저반한(這般漢; 삼성)의 수단은 도리어 사람을 활득(活得)하는지라 소이로 말하되 그는 활구를 참구하고 사구를 참구하지 않는다 하였다. 만약 상정(常情)에 순()한다면 곧 사람을 쉬게 함을 얻지 못하나니 보아라 저 고인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이와 같아 정신을 써서 다하는지라 비로소 능히 대오한다. 이미 오료(悟了)하고서도 쓸 때엔 도리어 깨치지 못한 때의 사람과 한가지로 상사하지만 수분(隨分)하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상정(常情)에 떨어짐을 얻지 않는다. 삼성이 저 앙산의 낙처를 알았으므로 곧 그를 향해 말하되 나의 이름은 혜적입니다 하니 앙산이 삼성을 거두고자 하다가 삼성이 거꾸로 앙산을 거두었다. 앙산이 다만 취신타겁(就身打劫; 人身으로 趨向하여 겁탈을 지음)을 얻어 말하되 혜적은 이 나다 하니 이것은 방행처(放行處)며 삼성이 이르되 나의 이름은 혜연입니다 하니 역시(亦是) 방행이다. 소이로 설두가 후면에서 송해 이르되 쌍수쌍방(雙收雙放)이 무슨 종(若爲宗)인가 하여 다만 1구 내에 일시에 송료(頌了)했다. 앙산의 하하대소(呵呵大笑)에 또한 유권유실(有權有實)하고 또한 유조유용(有照有用)하여 그(앙산)가 팔면에 영롱(玲瓏)하기 때문에 소이로 용처(用處)가 대자재를 얻었다. (這箇) 웃음과 암두의 웃음은 같지 않나니 암두의 웃음엔 독약이 있고 이(這箇) 웃음은 천고만고의 청풍이 늠름지(凜凜地). 설두가 송해 이르되

 

昂昂藏藏; 환히 빛나며 출중(出衆)한 모양.

淮海; 회해(淮海)의 이름이 상서 우공(禹貢)에 최조(最早)로 보임. 목전(目前)에 주요(主要)는 이 소로예환(蘇魯豫皖) 4()의 교계지구(交界地區). 그것은 동으로는 황해(黃海)에 잇닿았고() 서로는 중원과 연접(連接)했고 남으로는 강회(江淮)와 이웃했고 북으로는 제로(齊魯)와 연접했음 [백도백과].

獼猴; 치문경훈주상. 미후(獼猴) 육전(陸佃)이 이르되 이 짐승은 지라가 없으며 다니면서 먹이를 소화한다. 대개 원()의 덕은 고요하면서 느리고 후()의 덕은 조급하면서 시끄럽다.

待之於明窓下; 이르자면 사원의 주지가 영리하고 통오(通悟)한 납승을 만나보면 환경이 양호한 석위(席位)에 안배하여 포장(褒獎)을 보임임.

推官; 추천관(推薦官)이니 추()는 천거(薦擧).

延壽堂; 또 열반당(涅槃堂)ㆍ성행당(省行堂)ㆍ무상원(無常院)ㆍ장식료(將息寮)로 지음. 선림 중에서 병승(病僧)이 병을 치료하며 휴양하는 당()으로 사용함. 색신(色身)의 수명을 연장함을 기구(祈求)하면서 법신의 혜명(慧命)을 연속(延續)함의 뜻을 함유한지라 고로 명칭이 연수당(延壽堂). 선림보훈음의. 연수당(延壽堂) 늙고 병든 이를 어루만지는 곳이다. 옛적에 총림에서 노승(老僧)은 안락당(安樂堂)으로 보내고 병자는 연수당으로 보냈다. 또 지금의 열반당(涅槃堂)이 이것이다.

 

雙收雙放若爲宗知他有幾人 八面玲瓏 將謂眞箇有恁麽事 騎虎由來要*絕功若不是頂門上有眼肘臂下有符 爭得到這裏 騎則不妨 只恐爾下不得 不是恁麽人 爭明恁麽事 笑罷不知何處去*四百軍州覓恁麽人也難得 言猶在耳 千古萬古有淸風 只應千古動悲風如今在什麽處 咄 旣是大笑 爲什麽却動悲風 大地黑漫漫

 

絕功; 奇絶妙功

四百軍州; 四百餘軍州之中國全土 軍 中國宋代行政區劃名 與府 州 監同屬於路

 

쌍수쌍방(雙收雙放)이 무슨 종인가(若爲宗) 그것을 아는 이가 몇 사람이 있는가. 팔면이 영롱하다. 다만() 이르나니 진개(眞箇; 는 조사)로 이러한 일이 있는가. 기호(騎虎)는 유래(由來; 來源)가 절공(*絕功)을 요함이다 만약 이 정문상(頂門上)에 눈이 있고 주비하(肘臂下; 팔꿈치 아래)에 영부(靈符)가 있지 않다면 어찌 이 속에 이름을 얻으리오. ()은 곧 불방(不妨; 無妨)하지만 다만 네가 내림을 얻지 못할까 염려한다. 이 임마인(恁麽人;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임마사(恁麽事)를 밝히리오. 웃어 마치고는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나니 온 사백군주(*四百軍州)에 이러한 사람을 찾아도 또한 얻기 어렵다. 말씀이 아직 귀에 있구나. 천고만고에 청풍이 있다. 다만 상응하여 천고에 비풍(悲風)이 동()하누나 여금에 어느 곳에 있느냐, (). 이미 이 대소(大笑)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비풍이 동하는가. 대지가 흑만만(黑漫漫)하다.

 

絕功; 기절(奇絶)의 묘공(妙功).

四百軍州; 4백여 군주(軍州)의 중국 전토. ()은 중국 송대 행정구획의 명칭이니 부()ㆍ주()ㆍ감()과 더불어 모두 로()에 속했음.

 

雙收雙放若爲宗 放行互爲賓主 仰山云 汝名什麽 聖云 我名惠寂 是雙放 仰山云 惠寂是我 聖云 我名惠然 是雙收 其實是互換之機 收則大家收 放則大家放 雪竇一時頌盡了也 他意道 若不放收 若不互換 爾是爾我是我 *都來只四箇字 因甚却於裏頭 出沒卷舒 古人道 爾若立我便坐 爾若坐我便立 若也同坐同立 二俱瞎漢 此是雙收雙放 可以爲宗要 騎虎由來要絕功 有如此之高風最上之機要 要騎便騎 要下便下 據虎頭亦得 收虎尾亦得 三聖仰山 二俱有此之風 笑罷不知何處去 且道他笑箇什麽 直得淸風凜凜 爲什麽末後却道 只應千古動悲風 也是*死而不弔 一時與爾注解了也 爭柰天下人啗啄不入 不知落處 縱是山僧 也不知落處 諸人還知麽

 

都來; 都 全部 來 後綴

死而不弔; 祖庭事苑一 禮記(第三檀弓上) 死而不弔者有三 畏壓溺 溺 謂憑河者也

 

쌍수쌍방(雙收雙放)이 무슨 종인가(若爲宗) 하니 방행(放行)하여 서로 빈주(賓主)가 되어 앙산이 이르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삼성이 이르되 나의 이름은 혜적입니다 한 것은 이는 쌍방(雙放)이며 앙산이 이르되 혜적은 이 나다. 삼성이 이르되 나의 이름음 혜연입니다 한 것은 이 쌍수(雙收)이거니와 기실(其實)은 이 호환지기(互換之機)니 수()한 즉 대가(大家; 빈주를 가리킴)가 수()며 방()한 즉 대가가 방()이다. 설두가 일시에 송진(頌盡)하여 마쳤으니 그의 뜻에 말하되 만약 방수(放收)하지 않거나 만약 호환(互換)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 너며 나는 이 나이므로 도래(*都來) 다만 4개의 글자(혜적혜연)이거늘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이두(裏頭; 裏邊이니 4개 자를 가리킴)에서 출몰권서(出沒卷舒)하리오 함이다. 고인(首山省念)이 말하되 네가 만약 선다면 나는 곧 앉으며 네가 만약 앉는다면 나는 곧 선다 하니 만약에 동좌동립(同坐同立)한다면 둘 다 할한(瞎漢; 눈 먼 자)이므로 이것이 이 쌍수쌍방(雙收雙放)으로 가이(可以; 는 조사) 종요(宗要)를 삼음이다. 기호(騎虎)는 유래(由來; 來源)가 절공(絕功)을 요함이다 한 것은 이와 같은 고풍(高風)과 최상의 기요(機要)가 있으므로 타고자 하면 곧 타고 내리고자 하면 곧 내리므로 호두(虎頭)에 의거함도 또한 얻으며 호미(虎尾)를 거둠도 또한 얻나니 삼성과 앙산이 둘 다 이러한 풍모(風貌; )가 있다 함이다. 웃어 마치고는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나니 라고 하니 그래 말하라 그가 저() 무엇을 웃었는가. 바로 청풍이 늠름함을 얻었거늘 무엇 때문에 말후에 도리어 말하되 다만 상응하여 천고에 비풍(悲風)이 동()하누나 하였는가. 또한 이는 죽어도 조위하지 않을(*死而不弔) 것을 일시에 너희에게 주해하여 주었음이지만 천하인이 담탁(啗啄; 먹고 쪼다)하여도 불입(不入)하여(언구를 붙이지 못함) 낙처를 알지 못함을 어찌하리오. 비록 이 산승(원오)일지라도 또한 낙처를 알지 못하나니 제인은 도리어 아느랴.

 

都來; ()는 전부며 래()는 후철(後綴).

死而不弔; 조정사원1 예기(禮記; 3 檀弓上) 죽어도 조위하지 않는 자 셋이 있으니 외압닉(畏壓溺; 畏死者壓死者溺死者)이다. ()은 이르자면 빙하(憑河; 과 같음. 徒涉이니 곧 배 없이 맨발로 강하를 건넘)하는 자임.

'벽암록주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암록 제69칙 송 평창  (0) 2021.08.27
벽암록 제69칙 수시 본칙 평창  (0) 2021.08.27
벽암록 제67칙 송 평창  (0) 2021.08.27
벽암록 제67칙 본칙 평창  (0) 2021.08.27
벽암록 제66칙 송 평창  (0) 202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