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73칙 수시 본칙 평창

태화당 2021. 8. 27. 09:37

垂示云 夫說法者 無說無示 其聽法者 無聞無得 說旣無說無示 爭如不說 聽旣無聞無得 爭如不聽 而無說又無聽 却較些子 只如今諸人 聽山僧在這裏說 作麽生免得此過 具透關眼者 試擧看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무릇 설법이란 것은 무설무시(無說無示)하며 그 청법(聽法)이란 것은 무문무득(無聞無得)함이다. ()이 이미 무설무시(無說無示)거늘 어찌 불설(不說)함과 같을 것이며 청()이 이미 무문무득(無聞無得)이거늘 어찌 불청(不聽)함과 같으리오. 무설(無說)하고 또 무문(無聽)해야 도리어 조금은 상당하다 하리라. 지여(只如) 지금 제인은 산승이 이 속에 있으면서 설함을 듣나니 어찌해야 이 허물을 면득(免得)하겠는가. 투관안(透關眼)을 갖춘 자는 시험삼아 들어보아라(擧看).

 

七三擧 僧問馬大師 *離四句絕百非 請師直指某甲西來意什麽處得這話頭來 那裏得這消息 馬師云 我今日勞倦 不能爲汝說 問取*智藏退身三步 蹉過也不知 藏身露影 不妨是這老漢推過與別人 僧問智藏也須與他一拶 蹉過也不知 藏云 何不問和尙草裏焦尾大蟲出來也 道什麽 直得草繩自縛 去死十分 僧云 和尙敎來問愛人處分 前箭猶輕後箭深 藏云 我今日頭痛 不能爲汝說 問取*海兄不妨是*八十四員善知識 一樣患這般病痛 僧問海兄轉與別人 *抱贓叫屈 海云 我到這裏却不會不用忉忉 從敎千古萬古黑漫漫 僧擧似馬大師這僧却有些子眼睛 馬師云 藏頭白海頭黑寰中天子勅 塞外將軍令

 

離四句絕百非; 四句百非 三論宗與禪宗 均常用此一語或槪念 以接引學人 所謂四句 通常指有 無 亦有亦無 非有非無等四句 或指肯定 否定 部分肯定 部分否定 兩者均否定等 維摩經玄疏以爲四句之說有十種之多 百非則指百種之否定 如涅槃經二十一所說如來之涅槃 乃非有 非無 非有爲 非無爲 非有漏 非無漏 乃至非過去 非未來 非現在等種種之否定 故知四句百非 均爲基於一切判斷與論議之立場而設立之假名槪念 然佛敎之究極宗旨 乃在於超越此等假名槪念而達於言亡慮絶之境界 故禪林盛傳離四句絶百非之言 [大般涅槃經三金剛身品 中論疏二十 大乘玄論一 宗鏡錄四十六]

智藏; (735-814) 唐代僧 江西虔化人 俗姓廖 八歲出家 二十五歲受具足戒 於建陽佛迹巖參禮馬祖道一 得嗣其法 道一示寂後 唐貞元七年(791) 依衆請開堂 後住錫於江西虔州西堂 與百丈懷海 南泉普願 共稱馬祖門下之三大士 元和九年示寂 壽八十 臘五十五 憲宗諡 大宣敎禪師 至穆宗重諡大覺禪師 嗣法弟子有虔州處微 及新羅國僧鷄林道義 本如 洪涉 慧徹等 師之禪風盛行於新羅 其弟子中 道義返國後 住於迦智山創派 洪涉亦於實相寺創派 皆爲朝鮮曹溪宗九山之一 [祖堂集十五 宋高僧傳十 傳燈錄七 聯燈會要五 五燈會元三 朝鮮禪敎考 朝鮮金石總覽上]

海兄; 指百丈懷海

八十四員善知識; 馬祖法嗣有八十四人

抱贓叫屈; 抱著贓物却叫寃屈 使人發笑之事 禪錄用例多譏刺禪家以言句義解接人 却自謂不落言詮 手段高妙

 

七三()하다. 중이 마대사에게 묻되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하고 스님이 모갑에게 서래의를 직지(直指)하시기를 청합니다. 어느 곳에서 이 화두를 얻어 왔으며 어느 속에서 이 소식을 얻었는가. 마사(馬師)가 이르되 나는 금일 노권(勞倦)하여 능히 너에게 설하지 못하니 지장(*智藏)에게 문취(問取)하러 가거라. 세 걸음 퇴신(退身)하는구나. 차과(蹉過)하는 줄도 알지 못하네. 몸은 숨겼으나 그림자가 드러났다. 이 노한이 다른 사람(지장)에게 허물을 떠넘김(推過)에 방애되지 않는다. 중이 지장에게 물었다. 또한 모름지기 그에게 1()하여 주면서 차과(蹉過)하는 줄도 알지 못하는구나. 지장이 이르되 왜 화상에게 묻지 않느냐. 풀 속에서 꼬리가 타는 범이 나왔다.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바로 초승(草繩)에 스스로 묶임을 얻은지라 거사십분(去死十分; 사망에 가깝게 임함)이다(抑這僧) 중이 이르되 화상이 와서 묻게 하셨습니다. 남의 처분을 좋아하는구나. 앞의 화살은 오히려 가볍거니와 뒤의 화살이 깊다(馬祖處에서 받은 敗缺이 지금 보다 가벼움). 지장이 이르되 나는 금일 머리가 아파 능히 너에게 설하지 못한다. 해형(*海兄)에게 문취하러 가거라. 84원의 선지식(*八十四員善知識)이 일양(一樣) 이런 종류의 병통(病痛)에 걸린 것임에 방애되지 않는다. 중이 해형에게 물었다. 굴려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장물을 끌어안고 원굴(冤屈)하다고 부르짖는다(*抱贓叫屈) 회해(懷海; )가 이르되 나는 이 속에 이르러 도리어 알지 못한다. 도도(忉忉; 매우 근심하는 모양)를 쓰지 않는다. 천고만고에 흑만만(黑漫漫)하는 대로 좇는다. 중이 마사에게 들어 보이자 이 중이 도리어 조금의 눈동자가 있구나. 마사가 이르되 장두백(藏頭白)이요 해두흑(海頭黑)이다. 환중(寰中; 천자의 畿內)에선 천자의 칙령이며 새외(塞外)에선 장군의 군령이다.

 

離四句絕百非; 사구백비(四句百非)는 삼론종과 선종에서 균일하게 이 1() 혹 개념을 상용하여 학인을 접인함. 이른 바 4구는 통상 유()ㆍ무()ㆍ역유역무(亦有亦無)ㆍ비유비무(非有非無) 4구를 가리킴. 혹은 긍정(肯定)ㆍ부정(否定)ㆍ부분긍정(部分肯定)ㆍ부분부정(部分否定)ㆍ양자균부정(兩者均否定) 등을 가리킴. 유마경현소(維摩經玄疏)4구의 설에 10종의 많음이 있음으로 삼음. 백비(百非)는 곧 백 가지의 부정을 가리킴. 예컨대() 열반경21에 설한 바 여래의 열반은 곧 비유ㆍ비무ㆍ비유위ㆍ비무위ㆍ비유루ㆍ비무루 내지 비과거ㆍ비미래ㆍ비현재 등 갖가지 부정임. 고로 알지니 사구백비(四句百非)는 균일하게 일체의 판단과 논의의 입장을 기초로 하여 설립한 가명(假名)의 개념이 됨. 그러나 불교의 구극(究極)의 종지는 곧 이런 등 가명의 개념을 초월하여 언망여절(言亡慮絶)의 경계에 도달함에 있음. 고로 선림에서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百非)의 말이 성전(盛傳)[대반열반경3금강신품. 중론소20. 대승현론1. 종경록46].

智藏; (735-814) 당대승. 강서(江西) 건화(虔化)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유(; ). 8세에 출가하고 25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건양(建陽) 불적암(佛迹巖)에서 마조도일(馬祖道一)에게 참례해 그의 법을 이음을 얻었음. 도일이 시적한 후 당() 정원(貞元) 7(791) 대중의 요청에 의해 개당(開堂)했고 후에 강서 건주(虔州)의 서당(西堂)에 주석(住錫)했음. 백장회해(百丈懷海)ㆍ남천보원(南泉普願)과 함께 한가지로 마조문하(馬祖門下)3대사(大士)로 일컬음. 원화(元和) 9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0이며 승랍은 55. 헌종(憲宗)이 시호하되 대선교선사(大宣敎禪師)라 했으며 목종(穆宗)에 이르러 중시(重諡)하기를 대각선사(大覺禪師)라 했음. 사법제자(嗣法弟子)에 건주처미(虔州處微)와 및 신라국승(新羅國僧) 계림도의(鷄林道義)ㆍ본여(本如)ㆍ홍척(洪涉)ㆍ혜철(慧徹)등이 있음. 스님의 선풍(禪風)은 신라에서 성행했으니 그의 제자 중에 도의는 반국(返國)한 후에 가지산(迦智山)에 거주하면서 창파(創派)했고 홍척도 또한 실상사(實相寺)에서 창파했으니 다 조선 조계종(曹溪宗) 9산의 하나가 됨 [조당집15. 송고승전10. 전등록7. 연등회요5. 오등회원3. 조선선교고. 조선금석총람상].

海兄; 백장회해(百丈懷海)를 가리킴.

八十四員善知識; 마조의 법사(法嗣)84인이 있음.

抱贓叫屈; 장물(贓物)을 안고서 도리어 원굴(寃屈; 억울)하다고 부르짖음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이 나게 하는 일임. 선록(禪錄)의 용례로는 다분히 선가(禪家)가 언구(言句)와 의해(義解)로써 접인(接人)하고는 도리어 스스로 이르기를 언전(言詮)에 떨어지지 않고 수단(手段)이 고묘(高妙)하다 함을 기자(譏刺; 나무라고 헐뜯음)함임.

 

這箇公案 山僧舊日 在成都參*眞覺 覺云 只消看馬祖第一句 自然一時理會得 且道這僧 是會來問 不會來問 此問不妨深遠 離四句者 有 無 非有非無 非非有非非無 離此四句 絕其百非 只管作道理 不識話頭 討頭腦不見 若是山僧 待馬祖道了 也便與展坐具 禮三拜 看他作麽生道 當時馬祖 若見這僧來 問離四句絕百非 請師直指某甲西來意 以拄杖劈脊便棒趕出 看他省不省 馬大師只管與他打葛藤 以至這漢 當面蹉過 更令去問智藏 殊不知馬大師來風深辨 這僧懞懂 走去問智藏 藏云 何不問和尙 僧云 和尙敎來問 看他這些子 拶著便轉 更無閑暇處 智藏云 我今日頭痛 不能爲汝說得 問取海兄去 這僧又去問海兄 海兄云 我到這裏却不會 且道爲什麽 一人道頭痛 一人云不會 畢竟作麽生 這僧却回來 擧似馬大師 師云 藏頭白海頭黑 若以解路卜度 却謂之相瞞 有者道 只是相推過 有者道 三箇總識他問頭 所以不答 總是拍盲地 一時將古人醍醐上味 著毒藥在裏許 所以馬祖道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與此公案一般 若會得藏頭白海頭黑 便會西江水話 這僧將一檐懞懂 換得箇不安樂 更勞他三人尊宿 入泥入水 畢竟這僧不瞥地 雖然一恁麽 這三箇宗師 却被箇擔板漢勘破 如今人只管去語言上 作活計云 白是明頭合 黑是暗頭合 只管鑽研計較 殊不知古人一句截斷意根 須是向正脈裏 自看始得穩當 所以道 末後一句 始到牢關 把斷要津 不通凡聖 若論此事 如當門按一口劍相似 擬議則喪身失命 *又道 譬如擲劍揮空 莫論及之不及 但向八面玲瓏處會取 不見古人道 這漆桶 或云 野狐精 或云 瞎漢 且道與一棒一喝 是同是別 若知千差萬別 只是一般 自然八面受敵 要會藏頭白海頭黑麽 五祖先師道 *封后先生 雪竇頌云

 

眞覺; 惟勝 宋代僧 潼川(四川三台)羅氏 得法於黃龍慧南 時黃檗席虛 瑞州太守委黃龍擇主 黃龍曰 道得者住黃檗 勝出曰 猛虎當路坐 遂應命 道風大振 [普燈錄四 五燈會元十七]

又道; 五燈會元三盤山寶積 譬如擲劒揮空 莫論及之不及 斯乃空輪無迹 劒刃無虧 若能如是 心心無知 全心卽佛 全佛卽人 人佛無異 始爲道矣

封后先生; 又作風后先生 意卽伶俐漢 封后 爲上古之人 黃帝嘗於夢中見之 後乃求之爲宰相 轉指能契機入理之伶俐師僧 釋氏稽古略一黃帝有熊氏 擧風后 力牧 犬山 稽常 先大 鴻得六相 而天地治神明至

 

(這箇) 공안을 산승(원오)이 구일(舊日)에 성도(成都)에 있으면서 진각(*眞覺)에게 참문(參問; )했더니 진각이 이르되 다만 마조의 제1구를 소간(消看; )하면 자연히 일시에 이회(理會)하여 얻으리라 하였다. 그래 말하라, 이 중이 이 알고 와서 물은 것인가 알지 못하고 와서 물은 것인가. 이 물음이 심원(深遠)함에 방애되지 않는다. 이사구(離四句)란 것은 유()ㆍ무()ㆍ비유비무(非有非無)ㆍ비비유비비무(非非有非非無)니 이 4구를 여의면 그 백비(百非)를 끊는다 하여 다만 도리를 관작(管作)하고 화두를 알지 못하니 두뇌(頭腦)를 찾아도 보지 못한다. 만약 이 산승이었다면(원오가 이 중이었다면) 마조의 말해 마침을 기다렸다가 또판 곧 좌구(坐具)를 펴고 3()로 예()해 주어 그(마조)가 어떻게 말하는가를 보았을 것이며 당시에 마조였다면(원오가 마조였다면) 만약 이 중이 와서 묻되 이사구절백비하고 스님이 모갑에게 서래의를 직지(直指)하시기를 청합니다 함을 보았다면 주장자로 등에다가(劈脊) 곧 몽둥이질 하여 쫓아내면서 그가 성찰하는지 성찰하지 않는지를 보았겠지만 마대사는 다만 관대(管帶)하여 그에게 타갈등(打葛藤; 언구에 뒤얽힘)하여 주어 이지(以至; 내지) 저한(這漢)이 당면에서 차과(蹉過)하면서 다시 지장에게 가서 묻게 하니 마대사가 내풍(來風; 상대방이 보이는 바의 기봉)을 깊이 분변하는 줄을 너무 알지 못한다. 이 중이 몽동(懞懂)하여 달려가서 지장에게 물으니 지장이 이르되 왜 화상에게 묻지 않느냐. 중이 이르되 화상이 와서 묻게 하셨습니다 하니 보아라 그(這僧)의 이 사자(些子)는 찰착(拶著; 누르다)하면 곧 도는지라 다시 한가(閑暇)한 곳이 없다. 지장이 이르되 나는 금일 머리가 아파 능히 너를 위해 설함을 얻지 못하니 해형(海兄)에게 문취(問取)하러 가거라. 이 중이 또 가서 해형에게 물으니 해형이 이르되 내가 이 속에 이르러선 도리어 알지 못한다 하니 그래 말하라 무엇 때문에 1인은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고 1인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는가(). 필경 어떤 것인가. 이 중이 도리어 돌아와서 마대사에게 들어 보이자 대사가 이르되 장두백(藏頭白)이요 해두흑(海頭黑)이다 하니 만약 해로(解路)로써 복탁(卜度)한다면 도리어 이를 일러 서로 속임(相瞞)이라 한다. 어떤 자는 말하되 다만 이는 서로 퇴과(推過; 허물을 떠넘기다)함이라 하며 어떤 자는 말하되 3(마조ㆍ지장ㆍ회해)가 다 그(這僧)의 문두(問頭)를 아는지라 소이로 답하지 않았다 하나니 다 이 박맹지(拍盲地; 는 조사)에서 일시에 고인의 제호상미(醍醐上味; 제호의 상미)를 가져다 독약을 넣어(著毒藥) 이허(裏許; 內裏. 는 처소를 표시)에 둠이다. 소이로 마조가 말하되 네가 한 입에 서강수(西江水)를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했으니 이 공안과 더불어 일반(一般)이다. 만약 장두백 해두흑을 이회한다면 곧 서강수화(西江水話)를 이회하리라. 이 중이 한 짐의 몽동(懞懂)을 가져 저() 불안락(不安樂)과 교환함을 얻었으며 다시 저 3인의 존숙을 노고롭게 입니입수(入泥入水)하게 하였다. 필경엔 이 중이 별지(瞥地; 瞥然)가 아니므로 비록 그러히 한결같이() 이러했지만 이 3개의 종사도 도리어 저() 담판한(擔板漢)의 감파(勘破)를 입었다. 여금의 사람은 다만 어언상(語言上)으로 관거(管去)하여 활계를 지어 이르되 백은 이 명두(明頭)에 합한 것이며 흑은 이 암두(暗頭)에 합한 것이라 하여 다만 관대(管帶)하여 찬연계교(鑽研計較)하고 고인의 1구가 의근(意根)을 절단함인 줄 너무 알지 못하나니 모름지기 이는 정맥(正脈) 속을 향하여 자간(自看)해야 비로소 온당(穩當)함을 얻으리라. 소이로 말하되 말후의 1구가 비로소 뇌관(牢關)에 이르는지라 요진(要津)을 파단(把斷)하여 범성(凡聖)이 불통(凡聖)한다 하였으니 만약 차사(此事)를 논하자면 마치 당문(當門)하여 1(; 양사)의 검을 어루만짐과 상사하여 의의(擬議)하면 곧 상신실명(喪身失命)한다. 또 말하되(*又道) 비여(譬如) 검을 던져 허공에 휘두르면 미치거나() 미치지 못함을 논하지 말고 단지 팔면에 영롱(玲瓏)한 곳을 향해 회취(會取)하라 하였다. 보지 못하느냐 고인이 말하되 이 칠통(漆桶)아 라고 하며 혹은 이르되 야호정(野狐精)아 하며 혹은 이르되 할한(瞎漢; 눈 먼 자)이라 하니 그래 말하라 11할과 더불어 이 같은가 이 다른가. 만약 천차만별이 다만 이 한 가지인 줄 안다면 자연히 팔면에서 수적(受敵)하리라. 장두백 해두흑을 알고자 하느냐, 오조선사(五祖先師)가 말하되 봉후선생(*封后先生)이다 하였다. 설두가 송해 이르되

 

眞覺; 유승(惟勝)이니 송대승. 동천(사천 삼태) 나씨(羅氏). 황룡혜남(黃龍慧南)에게서 득법했음. 당시에 황벽의 법석이 비자 서주태수가 황룡에게 위임해 주지를 선택하게 했음. 황룡이 가로되 도득(道得)하는 자가 황벽에 주지한다. 유승이 나가 가로되 맹호가 당로(當路)에 앉았습니다. 드디어 응명(應命)했고 도풍을 크게 떨쳤음 [보등록4. 오등회원17].

又道; 오등회원3 반산보적(盤山寶積). 비유컨대 검을 던져 허공에 휘두르면 미치거나 미치지 못함을 논하지 않고 이것은 곧 공륜(空輪)이 흔적이 없으며 칼날도 이지러지지 않음과 같다.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마음마다 앎이 없어 온 마음이 곧 부처며 온 부처가 곧 사람인지라 사람과 부처가 다름이 없어 비로소 도가 된다.

封后先生; 또 풍후선생(風后先生)으로 지음. 뜻은 곧 영리한(伶俐漢). 봉후(封后)는 상고(上古)의 사람이 되며 황제(黃帝)가 일찍이 꿈속에서 보았고 후에 곧 그를 구해서 재상으로 삼았음. ()하여 능히 계기입리(契機入理)하는 영리한 사승(師僧)을 가리킴. 석씨계고략1 황제유웅씨. 풍후(風后)ㆍ역목ㆍ견산ㆍ계상ㆍ선대ㆍ홍득 여섯 재상을 천거했으니 천지가 다스려지고 신명(神明)이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