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종문무고(宗門武庫) 119

태화당 2022. 9. 5. 08:08

119兜率悅禪師 在道吾首衆 時老*和尙居雲蓋 悅一日領數十衲子謁 智與語未及數句 知悅所蘊深淺 笑曰 觀首座氣質不凡 奈何出言吐氣如醉人耶 悅面熱汗下 曰願和尙不吝慈悲 復與語未幾 又*錐劄之 悅茫然 遂領其徒咨聞入室 智笑曰 公首衆說法人也 如某聞見不博 何益於公耶 再四懇之 智曰 老僧無福 道不取信於人 脫受首座禮拜 異日定取謗於某 竟不許 乃問悅曰 首座曾見法昌遇禪師否 曰曾看他語錄自了 可以不願見之 又問 曾見洞山文和尙否 曰*關西子 沒頭腦 拕一條布裙作尿臭氣 有甚長處 智曰 首座但向尿臭氣參取 悅依敎乃往洞山依止 未久深領奧旨 復往見老智 智曰 首座見關西子後 大事如何 悅曰 若不得和尙指示 洎乎蹉過一生 乃焚香禮謝 後出世嗣法洞山 居常誡其徒 敘其雲蓋指見洞山之語 汝等當以師事智和尙也 後智遷寂 是時*禪師住兜率 乃悅之高弟也 智後事盡得照主之 如*師資禮 蓋其不忘付囑也

 

; 守智(1025-1115) 宋代黃龍派僧 嗣慧南 詳見1雲蓋智

錐劄; 與針錐同義 喩指思量卜度分辨是非

關西子; 宋代黃龍派僧克文的雅號

; 慧照(1049-1119) 北宋黃龍派僧 亦作惠照 嗣法隆興兜率院從悅 南安軍郭氏子 從悅去世後 嗣居兜率二十七年 宣和元年休夏日 沐浴更衣 禮觀音大士三拜 退居丈室 端然而逝 壽七十一 臈四十七 [五燈會元十八 僧寶正續傳一]

師資; 慧琳音義五十 師資 師徒也 資 用也 又取也 善人不善人之師 不善人善人之資 亦如資財者也 祖庭事苑一 師資 老氏(老子)曰 善人不善人之師 不善人善人之資(道德經第二十七襲明章) 說者曰 善人有不善人 然後善救之功著 故曰資

 

119도솔열(兜率悅; 從悅) 선사가 도오(道吾)에 있으면서 수중(首衆; 수좌)이었다. 때에 노지(*; 守智) 화상이 운개(雲蓋)에 거주했는데 종열(從悅)이 어느 날 수십 납자를 거느리고 수지(守智)를 예알(禮謁)했다. 수지가 더불어 어화(語話)하면서 몇 구에 미치지도 아니하여 종열의 소온(所蘊; 쌓은 바)의 심천(深淺)을 알았다. 웃으며 가로되 수좌의 기질을 보건대 범상치 않지만 출언토기(出言吐氣)하매 취인(醉人)과 같음을 어찌하겠는가. 종열이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땀을 흘렸다. 가로되 원컨대 화상은 자비를 아끼지 마십시오. 다시 더불어 어화한 지 얼마되지 아니하여서 또 그를 추차(*錐劄)하자 종열이 망연(茫然)했다. 드디어 그 도중(徒衆)을 영도(領導)하여 자문(咨聞)하려고 입실하려 하자 수지가 웃으며 가로되 공()은 수중(首衆)으로서 설법하는 사람이다. () 같은 것은 문견(聞見)이 넓지 못하거늘 공에게 무슨 이익이겠는가. 재사(再四) 그에게 간청(懇請)하자 수지가 가로되 노승은 복이 없어 도가 사람에게 취신(取信)하지 못한다네. 혹시() 수좌의 예배를 받더라도 다른 날(異日)에 결정코 모()에게서 비방을 받으리라. 마침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종열에게 물어 가로되 수좌는 일찍이 법창우(法昌遇; 倚遇) 선사를 참견했는가. 가로되 일찍이 그의 어록을 보고 저절로 깨달았으니 가이(可以; 는 조사) 상견을 원하지 않습니다. 또 묻되 일찍이 동산문(洞山文; 克文) 화상을 참견했는가. 가로되 관서자(*關西子)는 두뇌(頭腦)가 없습니다. 일조(一條)의 포군(布裙)을 끌어다가 요취기(尿臭氣; 오줌 냄새)를 짓거늘 무슨 장처(長處; 나은 곳)가 있겠습니까. 수지가 가로되 수좌는 단지 요취기(尿臭氣)를 향해 참취(參取)하라. 종열이 가르침에 의해 곧 동산(洞山)으로 가서 의지(依止)했다. 오래지 않아 깊이 오지(奧旨)를 영오(領悟)했다. 다시 노지(老智)를 왕견(往見)하자 수지가 가로되 수좌는 관서자(關西子)를 본 후 대사(大事)가 어떠한가. 종열이 가로되 만약 화상의 지시(指示)를 얻지 못했다면 거의(洎乎) 일생을 차과(蹉過; 錯過. 놓치다)할 뻔했습니다. 이에 분향하고 예사(禮謝)했다. 후에 출세하여 동산(洞山; 克文)에게 사법(嗣法)했다. 거상(居常; 평상시)에 그의 도중(徒衆)에게 경계(警戒; )하여 그 운개(雲蓋)가 동산(洞山)을 참견하라고 지시한 말을 서술하면서 너희 등은 마땅히 지화상(智和尙)을 사사(師事)하여라. 후에 수지가 천적(遷寂; 逝世)했는데 이때 조선사(*禪師)가 도솔(兜率)에 주지했으니 곧 종열의 고제(高弟)였다. 수지를 후에 사사(師事)하여 마치고 조()를 얻어 그것(도솔)을 주지(主持)하게 했는데 사자(*師資)의 예()와 같았음은 대개 그것은 부촉(付囑)을 잊지 않아서이다.

 

; 수지(守智; 1025-1115)니 송대 황룡파승. 혜남(慧南)을 이었음. 상세한 것은 1운개지(雲蓋智)를 보라.

錐劄; 침추(針錐)와 같은 뜻. 사량하고 복탁(卜度)하면서 시비를 분변함을 비유로 가리킴.

關西子; 송대 황룡파승 극문(克文)의 아호(雅號).

; 혜조(慧照; 1049-1119)니 북송 황룡파승. 또한 혜조(惠照)로 지으며 융흥 도솔원(兜率院) 종열(從悅)의 법을 이었고 남안군 곽씨의 아들임. 종열이 세상을 떠난 후 도솔에 사거(嗣居)하기 27년이었음. 선화 원년 휴하일(休夏日)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고 관음대사에게 3()로 예배하고 장실(丈室)에 퇴거하여 단연(端然)히 떠났으니 나이는 71, (; 과 같음)47 [오등회원18. 승보정속전1].

師資; 혜림음의50. 사자(師資) 사도(師徒; 스승과 제자). ()는 용()이며 또 취(). 선인(善人)은 불선인(不善人)의 사()며 불선인은 선인의 자()니 또한 자재(資財)와 같은 것임. 조정사원1. 사자(師資) 노씨(老氏; 노자)가 가로되 선인(善人)은 불선인(不善人)의 사()며 불선인은 선인의 자()(도덕경 제27 습명장). 설자(說者)가 가로되 선인이 불선인이 있은 연후에 선구(善救)의 공이 드러나므로 고로 가로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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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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