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천자문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 종심백수(從諗栢樹) 30

태화당 2019. 8. 11. 09:07

從諗栢樹 立在祖庭 最多商量 狗底佛性

종심백수 립재조정 최다상량 구지불성


종심의 잣나무가/ 조정에 서 있나니/ 가장 많이 상량함은/ 개의 불성이로다.


 


栢樹; (七七八~八九七) 唐代僧 曹州郝鄕(一說靑州臨淄)人 俗姓郝 法號從 幼年於曹州扈通院(一說靑州龍興院)出家 受具足戒前 卽往池陽參南泉普願 南泉深器之 復往嵩山琉璃壇受戒 尋返南泉 依止二十年 其後 歷參黃檗 寶壽 鹽官 夾山 五臺等諸大德 八十歲時 衆請住趙州城東觀音院 四十年間 大揚禪風 師夙居北地 振南宗禪 其玄言法語遍布天下 世稱趙州古佛 昭宗乾寧四年示寂 壽一百二十 敕諡眞際大師 著有眞際大師語錄三卷 [傳燈錄十 宋高僧傳十一 聯燈會要六 五燈會元四 佛祖歷代通載十七] 五燈會元四 趙州從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栢樹子 曰 和尙莫將境示人 師曰 我不將境示人 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栢樹子 補續高僧傳七 雪竇禪師 名重顯 字隱之 遂州李氏子 幼精銳抗志塵表 依普安詵上人 出家受具 遍歷講筵 游刃經論 問辯風馳 同學斂氣不敢伸 棄而歸禪 出蜀入楚 甞典客大陽 與客論趙州宗旨 客曰 法眼禪師 昔解后覺銕觜於金陵 覺趙州侍者也 號稱明眼 問曰 趙州柏樹子因緣 記得麼 覺曰 無此語莫謗先師 法眼拊手曰 眞自師子窟中來 覺公言無此語 法眼肯之 其旨安在 師曰 宗門抑揚 那有規轍乎 時有苦行名韓大伯者 貌寒寢侍其傍 輒匿笑而去 客退 師數之曰 我偶客語耳 乃敢慢笑 笑何事 對曰 笑知客眼未正 擇法不明 師曰 有說乎 對以偈曰 一兔橫身當古路 蒼鷹纔見便生擒 後來獵犬無靈性 空向枯椿舊處尋 師陰異之 結以爲友

立在祖庭; 祖庭 祖師門庭 禪宗 禪門

最多商量. 商量 原指商賈買賣物品時之互相議價 於禪林中 轉指學人參禪辨道時之問答審議 祖庭事苑一 商量 如商賈之量度 使不失於中平 以各得其意也

狗底佛性; 底 助詞 相當于的 從容錄第十八則 趙州狗子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有 僧云 旣有 爲甚麽却撞入這箇皮袋 州云 爲他知而故犯 又有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曰 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狗子爲什麽却無 州云 爲伊有業識在 無門關 趙州狗子 趙州和尙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無門曰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禪宗無門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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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백수(栢樹); 종심(. 778~897) 당대(唐代)의 승려며 조주학향(曹州郝鄕. 일설엔 靑州 臨淄 사람임. 속성(俗姓)은 학()이며 법호(法號)는 종심(). 어린 나이에 조주호통원(曹州扈通院. 일설엔 靑州龍興院)에서 출가하였음.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전에 곧 지양(池陽)으로 가서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參謁)했으며 남천이 깊이 그를 법기(法器)로 여겼음. 다시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으로 가서 수계하고는 이윽고 남천으로 돌아와 의지(依止)하기가 이십 년이었음. 그 후 황벽(黃檗)ㆍ보수(寶壽)ㆍ염관(鹽官)ㆍ협산(夾山)ㆍ오대(五臺) 등의 여러 대덕을 역참(歷參. 다니면서 참알)하였음. 여든 살 때 대중이 청하여 조주성(趙州城) 동쪽의 관음원(觀音院)에 거주했는데 사십년 간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음. 스님이 일찍 북지(北地)에 거주하면서 남종선(南宗禪)을 진작(振作)하였으며 그 현언(玄言)과 법어가 천하에 두루 분포(分布)하였음. 세칭(世稱) 조주고불(趙州古佛). 소종(昭宗) 건녕사년(乾寧四年)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일백이십(一百二十). 칙시(敕諡)는 진제대사(眞際大師)며 저서(著書)에 진제대사어록(眞際大師語錄) 세 권이 있음. [傳燈錄十 宋高僧傳十一 聯燈會要六 五燈會元四 佛祖歷代通載十七]. 오등회원사(五燈會元四) 조주종심(趙州從) 묻되 무엇이 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祖師西來意). 스님이 가로되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栢樹子). 가로되 화상(和尙)은 경계(境界)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스님이 가로되 나는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뜰 앞의 잣나무니라. 보속고승전칠(補續高僧傳七) 설두선사(雪竇禪師. 雲門下三世)는 이름이 중현(重顯)이며 자가 은지(隱之)며 수주이씨(遂州李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정예(精銳)하여 진세(塵世) 밖으로 뜻을 겨루었다. 보안선상인(普安詵上人)에게 의지(依止)해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강연(講筵)을 편력(遍歷)하며 경론에 유인(游刃)했다. 문변(問辯)이 바람 달리듯 해 동학(同學)이 기()를 거두고 감히 펴지 못했다. 버리고 귀선(歸禪)해 촉()을 나와 초()에 들어갔다. 일찍이 대양(大陽)에서 전객(典客)하면서 객()과 조주의 종지(宗旨)를 논했다. 객이 가로되 법안선사(法眼禪師. 法眼文益)가 예전에 각철취(覺鐵觜. 조주의 法嗣)를 금릉(金陵)에서 해후(解后. 邂逅와 통함)했는데 각()은 조주의 시자며 명안(明眼)으로 호칭(呼稱)했다. 물어 가로되 조주의 백수자(柏樹子. 는 조사) 인연을 기억합니까. 각이 가로되 이 말씀이 없었으니 선사(先師)를 비방(誹謗)하지 마시오. 법안이 손뼉을 치며 가로되 참다운 사자가 굴 속에서 오셨구나. 각공(覺公)이 말한 이 말씀이 없으셨다 한 것을 법안이 이를 긍정했으니 그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종문(宗門)의 억양(抑揚)에 어찌 규철(規轍)이 있겠습니까. 때에 고행(苦行)이 있었으니 이름이 한대백(韓大伯)이란 자다. 모습이 천하였고 그 옆 방에서 자며 시봉(侍奉)했는데 곧 웃음을 숨기며 떠났다. 객이 물러가자 스님이 이를 캐물어 가로되 내가 객을 상대해 얘기하는데 이에 감히 오만(傲慢)하게 웃느냐. 무슨 일을 웃었느냐. 대답해 가로되 객의 눈이 바르지 못함을 알고 웃었으며 법을 간택(揀擇)함이 밝지 못함을 알고 웃었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설()이 있는가. ()로 대답해 가로되 한 토끼가 몸을 비껴 옛길에 당대(當對)하니/ 푸른 매가 겨우 보자 곧 사로잡았도다/ 후래에 사냥개가 영성(靈性)이 없어/ 공연히 마른 말뚝의 구처(舊處)를 향해 찾더라. 스님이 가만히 이를 이상히 여겼으며 결약(結約)하여 벗으로 삼았다.

입재조정(立在祖庭); 조정(祖庭) 조사(祖師)의 문정(門庭). 선종(禪宗). 선문(禪門).

최다상량(最多商量); 상량(商量) 원래(原來)는 상고(商賈. 상인)가 물품을 매매(買賣)할 때 서로 값을 의논(議論)함을 가리킴. 선림 중에선 전()하여 학인이 참선하고 변도(辨道)할 때의 문답과 심의(審議)를 가리킴. 조정사원일(祖庭事苑一) 상량(商量) 마치 상고(商賈)가 헤아려 중평(中平)을 잃지 않게 하여 각기 그 뜻을 얻음과 같음이다.

구지불성(狗底佛性); () 조사(助詞)니 적()에 상당함. 종용록(從容錄) 18칙 조주구자(趙州狗子) 중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개도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가 이르되 있다. 중이 이르되 이미 있다면 무엇 때문에 이 피대(皮袋)에 치고 들어갔습니까. ()가 이르되 그가 알면서 고의(故意)로 범하기 때문이다(爲他知而故犯). 또 어떤 중이 묻되 개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주가 가로되 없다. 중이 이르되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다 불성이 있거늘 개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없습니까. 주가 이르되 그가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다. 무문관(無門關) 조주구자(趙州狗子) 조주화상(趙州和尙), 중이 묻되 개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함으로 인해 주()가 이르되 없다. 무문(無門)이 가로되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컨대 궁구(窮究)해 심로(心路)가 끊겨야 하나니 조관(祖關)을 뚫지 못하고 심로(心路)가 끊기지 않으면 다 이 의초부목(依草附木)정령(精靈)이니라. 그래 말해라, 무엇이 이 조사관인가. 단지 이 일개의 무자(無字)가 곧 종문(宗門)의 일관(一關)이니 드디어 제목해 가로되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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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좇을 종. 고할 심. 잣 백. 측백 백. 나무 수. 설 립. 있을 재. 할아버지 조. 조상 조. 뜰 정. 가장 최. 많을 다. 헤아릴 상. 장사 상. 헤아릴 량. 개 구. 밑 저. 어조사 지. 부처 불. 성품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