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골산이 쟁영하여/ 반등하는 이 극히 드물고/ 소양의 똥막대는/ 복욱한 향이 향기롭도다.
❶象骨崢嶸; 象骨 象骨巖 又稱象骨峰象骨山 雪峰山(位於福建侯官縣西)原名象骨山 雪峰山下有象骨巖 此指雪峰義存 義存(八二二~九○八) 唐代僧 泉州(福建)南安人 俗姓曾 號雪峰 十二歲從父遊蒲田玉潤寺 拜慶玄律師爲師 留爲童侍 十七歲落髮 謁芙蓉山恆照大師 唐宣宗中興佛敎後 歷遊吳楚梁宋燕秦 於幽州寶刹寺受具足戒 後至武陵德山(湖南常德) 參宣鑒 承其法系 唐懿宗咸通六年(八六五)歸芙蓉山 十一年登福州象骨山 立庵興法 其山爲閩越之勝景 未冬先雪 盛夏尙寒 故有雪峰之稱 師亦以之爲號 寺初成 緇素雲集 衆每逾千五百人 僖宗賜號眞覺大師 竝紫袈裟一襲 大順(八九○~八九一)年中 遊丹丘 四明之地 竝宣法於軍旅之中 後還閩 備受閩王禮遇 開平二年五月入寂 壽八十七 其法嗣有雲門文偃玄沙師備等 文偃乃雲門宗之祖 師備下有桂琛 琛下有法眼文益 乃法眼宗之祖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六 五燈會元七] ▲禪宗頌古聯珠通集二十八 雪峯上堂 南山有一條鼈鼻蛇 汝等諸人 切須好看 長慶出曰 今日堂中大有人喪身失命 雲門以拄杖攛向師前作怕勢 有僧擧似玄沙 沙曰 須是稜兄始得 然雖如是 我卽不然 曰 和尙作麼生 沙曰 用南山作麼 頌曰 象骨巖高人不到 到者須是弄蛇手 稜兄備師不奈何 喪身失命知多少 韶陽知重撥草 南北東西無處討 忽然突出拄杖頭 拋對雪峯大張口 大張口同閃電 剔起眉毛還不見 如今藏在乳峯前 來者一一看方便 師高聲喝云 看脚下(雪竇顯)
❷攀登極稀; 廣雅 攀 引也 正字通 攀 自下援上也 碧巖錄 第二二則 評唱云 雪峯山下有象骨巖 雪峯機鋒高峻 罕有人到他處
❸韶陽屎橛; 橛 小段的木頭 韶陽 廣東韶陽 此指雲門文偃 佛祖歷代通載十七曰 師居靈樹 久之遷韶陽(廣東)雲門 文偃(八六四~九四九) 唐末五代僧 爲雲門宗之祖 浙江嘉興人 俗姓張 法名文偃 幼懷出塵之志 從嘉興空王寺志澄出家 未久 至毘陵壇受具足戒 遍覽諸經 深究四分律 後至睦州(浙江省建德)參學於道明門下 經數載 盡得其道 又謁雪峰義存 依住三年 受其宗印 後歷叩諸方 參究玄要 名聲漸著 後梁乾化元年(九一一) 至曹溪(廣東省)禮六祖塔 後投於靈樹如敏會下 如敏推爲首座 貞明四年(九一八) 如敏示寂 師嗣其法席 主持靈樹寺 同光元年(九二三) 於雲門山創建光泰禪院 道風愈顯 海衆雲集 法化四播 後漢隱帝乾祐元年(九四八) 南漢王劉晟敕賜匡眞禪師 二年四月十日上表辭王 垂誡徒衆 端坐示寂 壽八十六 僧臘六十六 北宋乾德四年(九六六) 太祖復追諡大慈雲匡眞弘明禪師 師之機鋒險峻 門風殊絶 世稱雲門文偃 有雲門匡真禪師廣錄三卷 語錄一卷行世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雲門廣錄上 問 如何是釋迦身 師云 乾屎橛 ▲大慧錄二十八 僧問雲門 如何是佛 門云 乾屎橛 但擧此話 忽然伎倆盡時 便悟也 切忌尋文字引證 胡亂摶量註解 縱然註解得分明 說得有下落 盡是鬼家活計 疑情不破 生死交加疑 情若破 則生死心絕矣 生死心絕 則佛見法見亡矣 佛見法見尙亡 況復更起衆生煩惱見耶 ▲禪宗頌古聯珠通集三十三 韶陽乾屎橛 多年硬似銕 堪笑韓獹不奈何 狺狺怨恨天邊月(典牛游) ▲聯燈會要二十八 佛印元 師謂衆曰 雲門說法 如雲如雨 絶不許人記錄其語 見則詬曰 汝口不用 返記吾語 他日異時 裨販我去在 今室中對機錄 皆香林以紙爲衣 隨所聞卽書之 後世漁獵語言 正如吹網欲滿 非愚卽狂也
❹馥郁香馨; 禪宗頌古聯珠通集三十三 雲門因僧問 如何是佛 師曰 乾屎橛 頌曰 稽首金容乾屎橛 應物現形如水月 香臭皆從佛口生 凡聖從敎同一舌(佛鑑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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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상골쟁영(象骨崢嶸). 상골(象骨)은 상골암(象骨巖)이니 또 칭호가 상골봉(象骨峰)ㆍ상골산(象骨山)ㆍ설봉산(雪峰山. 福建 侯官縣의 서쪽에 위치함)이며 설봉산의 원래 이름이 상골산임. 설봉산 아래 상골암이 있음. 여기에선 설봉의존(雪峰義存)을 가리킴. 의존(義存. 822~908) 당대(唐代)의 승려며 천주(泉州. 福建) 남안(南安) 사람임. 속성(俗姓)은 증(曾)이며 호가 설봉임. 열두 살에 아버지를 따라 포전(蒲田) 옥윤사(玉潤寺)에 놀러갔다가 경현율사(慶玄律師)를 배알(拜謁)하고 스승으로 삼았으며 머물며 동시(童侍)가 되었는데 열일곱 살에 낙발(落髮)하였고 부용산(芙蓉山)의 항조대사(恆照大師)를 알현(謁見)했음. 당(唐) 선종(宣宗)이 불교를 중흥한 후 오(吳)ㆍ초(楚)ㆍ양(梁)ㆍ송(宋)ㆍ연(燕)ㆍ진(秦)을 지나며 노닐다가 유주(幽州) 보찰사(寶刹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후에 무릉(武陵) 덕산(德山. 湖南 常德)에 이르러 선감(宣鑒)을 참알(參謁)하고 그 법계(法系)를 이었음. 당(唐) 의종(懿宗) 함통육년(咸通六年) 부용산(芙蓉山)에 돌아왔고 십일년(十一年)에 복주(福州) 상골산(象骨山)에 올라 암자를 세우고 흥법(興法)했음. 그 산이 민월(閩越)의 승경(勝景)이 되며 겨울 전에 먼저 눈 오고 성하(盛夏)에도 오히려 서늘한지라 고로 설봉(雪峰)의 명칭이 있으며 스님도 또한 이로써 호를 삼았음. 절이 처음 이루어지자 치소(緇素. 僧俗)가 운집하여 대중이 매양(每樣) 천오백 인을 넘었음. 희종(僖宗)이 진각대사(眞覺大師)란 호와 아울러 자가사(紫袈裟) 한 벌을 주었음. 대순(大順. 890~891)년 중에 단구(丹丘)ㆍ사명(四明)의 땅에 노닐었으며 아울러 군려(軍旅. 軍隊)의 가운데서 선법(宣法)했고 후에 민(閩)으로 돌아와 민왕(閩王)의 예우(禮遇)를 갖춰 받았음. 개평이년(開平二年) 오월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여든일곱임. 그의 법사(法嗣)에 운문문언(雲門文偃)ㆍ현사사비(玄沙師備) 등이 있음. 문언(文偃)은 곧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며 사비하(師備下)에 계침(桂琛)이 있으며 침하(琛下)에 법안문익(法眼文益)이 있으니 곧 법안종(法眼宗)의 개조(開祖)임.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六 五燈會元七]. ▲선종송고연주통집이십팔(禪宗頌古聯珠通集二十八) 설봉(雪峯)이 상당(上堂)했다. 남산(南山)에 한 가닥의 별비사(鼈鼻蛇)가 있나니 너희 등 제인(諸人)은 간절히 잘 봄을 써라. 장경(長慶. 長慶慧稜이니 설봉의존의 法嗣)이 나와 가로되 금일 당중(堂中)에 대유인(大有人. 다시 어떤 사람)이 상신실명(喪身失命)하리라. 운문(雲門)이 주장자를 스님의 앞에 던지고 두려워하는 형세를 지었다. 어떤 중이 현사(玄沙. 玄沙師備니 설봉의존의 法嗣)에게 들어보이자 현사가 가로되 무름지기 이는 능형(稜兄. 長慶慧稜)이라야 비로소 옳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나는 곧 그러하지 않겠다.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沙)가 가로되 남산을 써서 무엇하리오. 송왈(頌曰) 상골암이 높아 사람이 이르지 못하나니/ 이르는 자는 꼭 이 농사수(弄蛇手)라야 하리라/ 능형(稜兄. 慧稜)과 비사(備師. 師備)가 어쩌지 못하나니/ 상신실명(喪身失命)한 이가 얼마인지 아느냐./ 소양(韶陽. 운문)이 알아 거듭 발초(撥草)했으나/ 남북동서에 찾을 곳이 없도다/ 홀연히 주장자에 돌출(突出)했나니/ 설봉에게 던져 상대해 입을 크게 벌렸도다./ 입을 크게 벌림이여, 번쩍하는 번개와 같아/ 눈썹을 치켜세워도 도리어 보지 못하도다/ 여금에 유봉(乳峯. 雪竇山名) 앞에 숨었나니/ 오는 자는 낱낱이 방편을 보아라. 스님(雪竇)이 고성으로 할(喝)하고 이르되 발 아래를 보아라. (雪竇顯).
❷반등극희(攀登極稀); 광아(廣雅) 반(攀) 인(引)임. 정자통(正字通) 반(攀) 아래로부터 위를 당김임. 벽암록(碧巖錄) 제2칙 평창(評唱)에 이르되 설봉산(雪峯山) 아래 상골암(象骨巖)이 있나니 설봉의 기봉(機鋒)이 고준(高峻)하여 그곳에 이르는 사람이 드물게 있다.
❸소양시궐(韶陽屎橛); 궐(橛) 작은 조각의 나무. 소양(韶陽)은 광동소양(廣東韶陽)이니 여기에선 운문문언(雲門文偃)을 가리킴. 불조역대통재십육(佛祖歷代通載十七)에 가로되 스님(雲門文偃)이 영수(靈樹)에 거처하다가 오랜만에 소양(韶陽. 廣東)의 운문(雲門)으로 옮겼다. 문언(文偃. 864~949) 당말(唐末) 오대(五代)의 승려며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가 됨. 절강(浙江) 가흥(嘉興)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張)이며 법명은 문언(文偃)임.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품고 가흥(嘉興) 공왕사(空王寺)의 지징(志澄)을 좇아 출가했음. 오래지 않아 비릉단(毘陵壇)에 이르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여러 경을 편람(遍覽)하였고 사분율(四分律)을 깊이 연구했음. 후에 목주(睦州. 浙江省 建德)에 이르러 도명(道明. 黃檗希運의 法嗣)의 문하(門下)에서 참학(參學)해 몇 해가 지나 그 도를 다 얻었음. 또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알현(謁見)해 삼 년을 의지(依止)하며 머물고 그의 종인(宗印)을 받았음. 후에 제방(諸方)을 다니며 고문(叩問)하면서 현요(玄要)를 참구(參究)하였고 명성(名聲)이 점차(漸次) 드러났음. 후량(後梁) 건화원년(乾化元年. 911) 조계(曹溪. 廣東省)에 이르러 육조탑(六祖塔)에 예배하고 뒤에 영수여민(靈樹如敏)의 회하(會下)에 투입(投入)했는데 여민이 추천(推薦)해 수좌(首座)가 되었음. 정명사년(貞明四年. 918) 여민이 시적(示寂)하자 스님이 그 법석(法席)을 이어 영수사(靈樹寺)를 주지(主持)했음. 동광원년(同光元年. 923) 운문산(雲門山)에 광태선원(光泰禪院)을 창건(創建)하자 도풍(道風)이 더욱 환해져 해중(海衆)이 운집하였고 법화(法化)가 사방으로 퍼졌음.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우원년(乾祐元年. 948) 남한왕(南漢王) 유성(劉晟)이 광진선사(匡眞禪師)로 칙사(敕賜)했으며 이년(二年) 사월 십일에 표(表)를 올려 왕을 고별하고 도중(徒衆)에게 훈계(訓戒)를 내리고는 단정히 앉아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여든여섯이며 승랍(僧臘)은 예순여섯임. 북송(北宋) 건덕사년(乾德四年. 966) 태조(太祖)가 다시 추시(追諡)하여 대자운광진홍명선사(大慈雲匡眞弘明禪師)라 했음. 스님의 기봉(機鋒)이 험준(險峻)하고 문풍(門風)이 수절(殊絶)했으며 세칭(世稱)이 운문문언(雲門文偃)임.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真禪師廣錄) 세 권과 어록 한 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운문광록상(雲門廣錄上) 묻되 무엇이 이 석가(釋迦)의 몸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건시궐(乾屎橛. 마른 똥막대)이다. ▲대혜록이십팔(大慧錄二十八) 중이 운문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문이 이르되 건시궐(乾屎橛)이다. 다만 이 얘기를 들다가 홀연히 기량(伎倆)이 다할 때 곧 깨닫는다. 문자를 찾아 인증(引證)하여 어지럽게 박량(摶量. 마음대로 헤아림)하고 주해(註解)함을 간절히 꺼리나니 비록 그러히 주해하여 분명함을 얻거나 설해 하락(下落. 落處의 뜻)함이 있더라도 다 이 귀가(鬼家)의 활계(活計. 생계)다. 의정(疑情)이 깨지지 않으면 생사가 교차하며 의심을 가하거니와 의정이 만약 깨지면 곧 생사의 마음이 끊어지고 생사의 마음이 끊어지면 곧 불견(佛見)ㆍ법견(法見)이 없어지느니라. 불견ㆍ법견도 오히려 없어지거늘 하물며 다시 중생의 번뇌를 일으키겠는가. ▲선종송고연주통집삼십삼(禪宗頌古聯珠通集三十三) 소양(韶陽)의 건시궐(乾屎橛)이여/ 여러 해에 단단하기가 쇠와 같도다/ 가히 우습구나 한로(韓獹)가 어쩌지 못해/ 으르렁거리며 하늘 가의 달을 원한(怨恨)하는구나. (典牛游). ▲연등회요이십팔(聯燈會要二十八) 불인원(佛印元)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운문의 설법이 구름 같고 비 같았지만 절대로 사람에게 그 말을 기록함을 허락치 않았느니라. 본 즉 꾸짖어 가로되 너의 입을 쓰지 않고 도리어 나의 말을 기록한다면 다른 날 다른 때에 나를 비판(裨販)하여 가 있으리라 했으니 여금에 실중(室中)에서 기록을 대함은 다 향림(香林. 澄遠이니 운문의 法嗣)이 종이로써 옷을 만들어 듣는 바를 따라 바로 그것을 쓴 것이니라. 후세에 어언(語言)을 어렵(漁獵)하려 한다면 바로 그물을 불어 채우고자 함과 같나니 어리석음이 아니면 곧 미친 것이니라.
❹복욱향형(馥郁香馨); 선종송고연주통집이십삼(禪宗頌古聯珠通集三十三) 운문이,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가로되 건시궐(乾屎橛)이다. 송왈(頌曰) 금용(金容)의 건시궐에 계수(稽首)하옵나니/ 사물에 응해 형상을 나타냄이 물의 달과 같도다/ 향취(香臭)가 다 불구(佛口)로부터 생하나니/ 범성(凡聖)이 따라서 동일한 혀가 되도다. (佛鑑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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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象 코끼리 상. 骨 뼈 골. 崢 가파를 쟁. 嶸 가파를 영. 攀. 더위잡을 반. 登 오를 등. 極 다할 극. 稀 드물 희 韶 풍류 이름 소. 陽 볕 양. 屎 똥 시. 橛 막대 궐. 말뚝 궐. 馥 향기 복. 郁 성할 욱. 香 향기 향. 향기로울 향. 馨 향기 형. 향기로울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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