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천자문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 탁발하당(托鉢下堂) 33

태화당 2019. 8. 11. 09:11

托鉢下堂 遭他勘驗 將云優劣 鐘鼓惆悵

탁발하당 조타감험 장운우렬 종고추창


발우를 받들고 하당하다가/ 그의 감험을 만났거니와/ 장차 우열을 이른다면/ 종고가 추창하리라.



托鉢下堂; 托 用手掌或盤子承著 如手托鉢盂 下堂 此指下法堂也 此句指德山托鉢話 禪林中著名之公案也 德山 德山宣鑑 宗門拈古彚集二十三 德山一日飯遲 自托鉢至法堂前(諸禪錄作先托鉢下堂) 時雪峰作飯頭 見曰 者老漢 鐘未鳴鼓未響 托鉢向甚麼處去 山便低頭歸方丈 峰擧似巖頭 頭曰 大小德山未會末後句在 山聞令侍者喚巖頭問曰 你不肯老僧那 巖密啓其意 山乃休 至明日陞堂 果與尋常不同 巖至僧堂前撫掌大笑曰 且喜老漢會末後句也 他後天下人不奈伊何 雖然如是 也只得三年活

遭他勘驗; 他 指巖頭全豁 勘驗 禪人之間試驗對方悟道之深淺稱爲勘 亦作勘辨勘驗等 全豁(八二八~八八七) 又作全奯 唐代僧 泉州(今屬福建)人 俗姓柯 出家於靈泉寺 受具足戒於長安西明寺 與雪峰義存 欽山文邃同修互勉 竝參訪仰山慧寂 又參學於德山宣鑑 承其法嗣 出居鄂州(今湖北武昌)巖頭院 大振宗風 故又稱巖頭全豁 唐光啓三年四月 賊亂 臨刃仍泰然自若 大喝一聲而終 壽六十 諡號淸儼大師 [宋高僧傳二十三 祖堂集七 景德傳燈錄十六]

將云優劣; 宗門拈古彚集二十三 (不記載古則 見上托鉢下堂) 高峰妙云 佛祖機緣古今公案 其中誵訛無出於此 或謂巖頭智過於師 故有密啓其意 殊不知犯彌天之咎萬劫遭殃 且道利害在什麼處 撫掌大笑云 侍者分明記取 三十年後有人證明 宗門拈古彚集二十九 雪峰問僧甚處來 僧曰 浙中來 峰曰 船來陸來 曰 二途俱不涉 峰曰 爭得到者裏 曰 有甚麼隔礙 峰便打趂出 僧後十年再來 峰問甚處來 曰 湖南 峰曰 湖南與此間相去多少 曰 不隔 峰擧拂曰 還隔者個麼 曰 若隔怎得到者裏 峰又打趁出 僧住後每見人必詬罵雪峰 同行聞 特去訪問 你因甚罵雪峰 者僧擧前兩段因緣 同行乃痛罵與伊點破 者僧遂悲泣 乃每于中夜焚香望雪峰禮拜 高峰妙云 者個公案頗類德山托鉢話 諸方商量者極多 錯會者不少 俱眼底但於德山低頭處見得 便會雪峰打意 於巖頭不肯處見得 便會者僧罵意 又於巖頭密啓處見得 便會同行點破意 於巖頭撫掌處見得 便會者僧悲泣意 又於巖頭受記處見得 便會者僧遙禮意 西峰今日將二老父父子子 縛作一束 拋在諸人面前了也 諸人要見二老則易 要見西峰則難 何故 有眼無耳朵 六月火邊坐

鐘鼓惆悵; 惆悵 失意 悲痛 失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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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하당(托鉢下堂); () 손바닥을 써서 혹은 반자(盤子)를 받듦이니 예컨대() 손으로 발우(鉢盂)를 받듦임. 하당(下堂)은 여기에선 법당(法堂)으로 내려감을 가리킴. 이 구는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를 가리킴이니 선림 중 저명한 공안임. 덕산은 덕산선감(德山宣鑑). 종문염고휘집이십삼(宗門拈古彚集二十三) 덕산(德山)이 어느 날 밥이 늦자 스스로 발우(鉢盂)를 받들고 법당 앞에 이르렀다(여러 禪錄에 먼저 발우를 받들고 下堂했다 라고 지어졌음). 때에 설봉(雪峰)반두(飯頭)가 되었는데 보고 가로되 이 노한(老漢)이 종도 울리지 않았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받들고 어느 곳을 향해 가십니까. 덕산이 곧 머리를 숙이고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설봉이 암두(巖頭)에게 들어 보이자 암두가 가로되 대소(大小) 덕산(德山)말후구(末後句)를 알지 못하셨다. 덕산이 듣고서 시자를 시켜 암두를 불러 물어 가로되 네가 노승을 긍정하지 않느냐. 암두가 몰래 그 뜻을 알렸다. 덕산이 이에 쉬었다. 명일(明日)에 이르자 승당(陞堂)하였는데 과연 심상(尋常. 평상시)과 같지 않았다. 암두가 승당(僧堂) 앞에 이르러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고 가로되 다만 노한(老漢)이 말후구를 아셨음을 기뻐하노라. 타후(他後)에 천하 사람이 그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또한 단지 삼 년 동안 삶을 얻으리라(五燈會元七 夾註에 이르되 덕산이 과연 삼 년 후에 示滅했다 했고 여러 禪錄에도 이와 같이 기록했음).

조타감험(遭他勘驗); ()는 암두전활(巖頭全豁)을 가리킴. 감험(勘驗) 선인지간(禪人之間)에 상대방의 오도(悟道)의 심천(深淺)을 시험함을 일컬어 감()이라 함. 또 감변(勘辨)ㆍ감험(勘驗) 등으로 지음. 전활(全豁. 828~887) 또 전활(全奯)로 지음. 당대(唐代)의 승려며 천주(泉州. 지금 福建에 속함)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가(). 영천사(靈泉寺)에서 출가하였고 장안(長安)의 서명사(西明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설봉의존(雪峰義存. 德山宣鑑法嗣)흠산문수(欽山文邃. 洞山良价法嗣)와 함께 수행하고 서로 권면(勸勉)했음. 함께 앙산혜적(仰山慧寂. 潙山靈祐法嗣)을 참방(參訪)했고 또 덕산선감(德山宣鑑)에게 참학(參學)해 그 법사(法嗣)를 이었음. 출세하여 악주(鄂州. 지금의 湖北 武昌)의 암두원(巖頭院)에 거주하면서 종풍(宗風)을 크게 떨친지라 고로 또 칭호가 암두전활(巖頭全豁). () 광계삼년(光啓三年) 사월에 도적이 난입(亂入)하자 칼날에 임해 그대로 태연자약(泰然自若)했으며 대갈일성(大喝一聲)하고 마쳤으니 나이는 예순이며 시호(諡號)는 청엄대사(淸儼大師). [宋高僧傳二十三 祖堂集七 景德傳燈錄十六].

장운우열(將云優劣); 종문염고휘집이십삼(宗門拈古彚集二十三) (古則을 기재하지 않음. 위의 托鉢下堂을 보라) 고봉묘(高峰妙. 高峰原妙)가 이르되 불조의 기연(機緣)과 고금의 공안(公案), 그 중에 효와(誵訛)가 이를 초출(超出)하는 게 없다. 혹은 이르기를 암두의 지혜가 스승을 초과한지라 고로 몰래 그 뜻을 알림이 있었다 한다면 너무 알지 못하나니 하늘에 두루한 허물을 범해 만겁에 재앙을 만나리라. 그래 말하라, 이해(利害)가 어느 곳에 있느냐.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고 이르되 시자야, 분명히 기취(記取)하라, 삼십 년 후에 어떤 사람이 증명하리라. 종문염고휘집이십구(宗門拈古彚集二十九) 설봉(雪峰)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중이 가로되 절중(浙中. 浙江)에서 옵니다. 설봉이 가로되 배로 왔느냐 육로(陸路)로 왔느냐. 가로되 이도(二途. 船陸)에 다 교섭(交涉)치 않습니다. 설봉이 가로되 어떻게 이 속에 이름을 얻었느냐. 가로되 무슨 격애(隔碍)가 있으리오. 설봉이 바로 때리고 쫓아내었다. 중이 후에 십 년 만에 다시 왔다. 설봉이 묻되 어느 곳에서 왔느냐. 가로되 호남(湖南)입니다. 설봉이 가로되 호남과 이 속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인고. 가로되 막히지 않았습니다. 설봉이 불자(拂子)를 들고 가로되 도리어 이것에 막혔느냐. 가로되 만약 막혔다면 어찌 이 속에 이름을 얻었겠습니까. 설봉이 또 때리고 쫓아내었다. 중이 주지(住止)한 후에 매양(每樣) 사람을 보면 반드시 설봉을 꾸짖고 욕했다. 동행(同行. 道伴)이 듣고 특별히 가서 방문(訪問. 의 뜻)하되 네가 무엇 때문에 설봉을 욕하느냐. 이 중이 앞의 양단(兩段)의 인연을 들자 동행이 이에 통렬(痛烈)히 욕하며 그에게 점파(點破. 點檢)해 주었다. 이 중이 드디어 비읍(悲泣)하더니 이에 매양(每樣) 중야(中夜)에 분향(焚香)하고 설봉을 바라보며 예배했다. 고봉묘(高峰妙)가 이르되 이 공안은 자못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와 유사(類似)하다. 제방(諸方)에서 상량(商量)하는 자가 극히 많고 잘못 아는 자가 적지 않다. 눈을 갖춘 자가 다만 덕산(德山)의 머리 숙인 곳에서 보아 얻는다면 곧 설봉(雪峰)이 때린 뜻을 알 것이며 암두(巖頭)의 긍정치 않은 곳에서 보아 얻는다면 곧 이 중이 욕한 뜻을 알 것이다. 또 암두가 몰래 알린 곳에서 보아 얻는다면 곧 동행(同行)이 점파(點破)한 뜻을 알 것이며 암두가 손바닥을 친 곳에서 보아 얻는다면 곧 이 중이 비읍(悲泣)한 뜻을 알 것이다. 또 암두의 수기(受記)한 곳에서 보아 얻는다면 곧 이 중이 멀리서 예배한 뜻을 알 것이다. 서봉(西峰. 原妙 자신을 가리킴)이 금일 두 늙은 부부자자(父父子子)를 묶어서 한 묶음을 지어 제인(諸人)의 면전에 던져 놓았노라. 제인이 두 노인을 보고자 한다면 곧 쉽지만 서봉을 보고자 한다면 곧 어렵나니 무엇 때문인가. 눈이 있으나 귀가 없이 유월에 화로 옆에 앉았노라(有眼無耳朵 六月火邊坐).

종고추창(鐘鼓惆悵); 추창(惆悵) 실의(失意). 비통(悲痛). 실망(失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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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받들 탁. 바리때 발. 아래 하. 내릴 하. 집 당. 만날 조. 그 타. 다를 타. 따져 물을 감. 심문할 감. 시험할 험. 장차 장. 장수 장. 이를 운. 뛰어날 우. 넉넉할 우. 못할 렬. 종 종. 북 고. 실심할 추. 슬퍼할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