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변재와/ 야보의 게타여,/ 변벽과 무부는/ 쉽게 값을 매기도다.
❶淨因辯才; 淨因 指東京淨因蹣菴繼成禪師 繼成 宋代臨濟宗僧 江西宜春人 俗姓劉 字蹣菴 崇寧年間(一一○二~一一○六) 參仰山普得度 嗣開封智海禪院普融道平(臨濟下九世)之法 宣和六年(一一二四)春 奉詔住右街顯忠寺 建炎初年(一一二七) 入天台山華頂峰 紹興年間(一一三一~一一六二) 入福建秀峰 師嘗受徽宗之歸依 賜號佛慈禪師 [普燈錄十二 五燈會元十二 釋氏稽古略四] ▲禪門寶藏錄中 有善華嚴者 問繼成禪師曰 吾佛設敎 自小乘至於圓頓 掃除空有 獨證眞常 然後萬德莊嚴 方名爲佛 甞聞禪宗一喝 能轉凡成聖 則與諸經論 似相違背 今一喝 若能入吾宗五敎 是爲正說 若不能入 是爲邪說 師召善 善應喏 師曰 法師所謂小乘敎者 乃有義也 大乘始敎者 乃無義也 大乘終敎者 乃不有不空義也 大乘頓敎者 乃卽有卽空義也 一乘圓敎者 乃不有而有 不空而空義也 如我一喝 非唯能入五敎 至於工巧伎藝諸子百家 悉皆能入 師振聲喝一喝 問善曰 聞麼 云 聞 曰 汝旣聞此一喝 是有 能入小乘敎 須臾又問善曰 聞麼 云 不聞 適來一喝是無 能入始敎 遂顧善曰 我初一喝 汝旣道有 喝久聲消 汝復道無 道無則元初實有 道有則而今實無 不有不無 能入終敎 我有一喝之時 非有是有 因無故有 無一喝之時 非無是無 因有故無 卽有卽無 能入頓敎 須知我此一喝 不作一喝用 有無不及 情解俱亡 道有之時 纖塵不立 道無之時 橫遍虗空 卽此一喝 入百千萬億喝 百千萬億喝 入此一喝 是故能入圓敎 善乃起再拜 師復謂曰 非唯一喝爲然 乃至語嘿動靜 一切時一切處 一切事一切物 契理契機 周遍無餘 於此一喝中 悉皆具足 此猶是建化門庭 隨機方便 謂之小歇場 未至寶所 殊不知吾祖師門下 以心傳心 不立文字 見性成佛 有千聖不傳底向上一路在 善又問 如何是一路 師曰 汝且向下會取 善云 如何是寶所 師曰 非汝境界 善曰 望禪師慈悲 師曰 任從滄海變 終不爲君通 善膠口而退 [五燈會元] ▲五燈會元十二 東京淨因蹣菴繼成禪師 師同圓悟 法眞 慈受幷十大法師 禪講千僧 赴太尉陳公良弼府齋 時徽宗皇帝私幸觀之 太師魯國公亦與焉 有善華嚴者 乃賢首宗之義虎也 …… 師曰 任從滄海變 終不爲君通 善膠口而退 聞者靡不歎仰 皇帝顧謂近臣曰 禪宗玄妙深極如此 淨因才辯亦罕有也 近臣奏曰 此宗師之緒餘也
❷冶父偈陀; 父 古代對男子的美稱 也作甫 廣韻 父 尼父 尙父 皆男子之美稱 冶父 指冶父道川 道川 宋代臨濟宗僧 崑山(今屬江蘇)狄氏 初爲縣之弓級 聞東齋謙爲道俗演法 往從之 一日因不職遭笞 忽於杖下大悟 遂辭職 依謙 謙爲改今名 建炎(一一二七~一一三○)初 謁天封蹣庵繼成(臨濟下十世) 蒙其認可 歸憩東齋 道俗愈敬 學子請益 依金剛般若撰頌行世 隆興改元(一一六三) 住無爲軍(安徽)冶父山實際禪院 [普燈錄十七 五燈會元十二 續傳燈錄三十] ◆偈陀 梵語偈陀 又作伽陀 伽他 譯曰頌 十二分敎(十二部經)之一 定字數結四句者 不問三言四言乃至多言 要必四句 是佛家常用詩體 ▲楞嚴經箋三 偈者 不正梵 梵語偈陀 又云伽陀 唐言重頌 ▲法華玄贊二 梵云伽陀 此翻爲頌 頌者美也歌也 頌中文句 極美麗故 歌頌之故 訛略云偈 ▲祖庭事苑六 伽陀 此云諷頌 亦云不頌頌 謂不頌長行故 或名直頌 謂直以偈說法故 今儒家所謂游揚德業 褒讚成功者 諷頌也 所謂直頌者 自非心地開明 達佛知見 莫能爲也 今時輩往往謂頌不尙綺靡 率爾可成 殊不知難於世間詩章遠甚 故齊己龍牙序云 其體雖詩 其旨非詩者 則知世間之雅頌與釋氏伽陀固相萬矣
❸卞璧珷玞; 卞璧 和氏之璧 卞和之璧 和璧 連城之璧 ▲祖庭事苑三 卞和 楚人卞和獻玉於楚厲王 王曰 石也 遣使刖一足 及武王卽位 和又獻之武 武王復怒 又刖一足 至楚文王立 和抱璞哭於荊山之下 文王召而謂曰 刖足者 何怨乎 曰 不怨刖足 而怨眞玉以爲凡石 忠事以爲慢事 是以哭之 文王乃使工剖石 乃眞玉也 文王嘆曰 哀哉 二先君易刖人足 而難於剖石 令和果是璧 乃國寶也 見韓子(韓非子和氏第十三) ▲圓悟語錄十九 堪笑卞和三獻玉 縱榮刖却一雙足 ◆珷玞 似玉的石
❹易尔著價; 謂其價値容易分別 尔 同爾 助詞 又代詞 相當于你 又相當于彼 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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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정인변재(淨因辯才); 정인(淨因) 동경정인만암계성선사(東京淨因蹣菴繼成禪師)를 가리킴. 계성(繼成) 송대 임제종 승려며 강서(江西) 의춘(宜春) 사람임. 속성(俗姓)은 유(劉류)며 자(字)는 만암(蹣菴)임. 숭녕년간(崇寧年間. 1102~1106) 앙산보(仰山普)를 참알(參謁)해 득도(得度)했고 개봉(開封) 지해선원(智海禪院)의 보융도평(普融道平. 臨濟下九世)을 이었음. 선화육년(宣和六年. 1124) 봄 조칙을 받들어 우가현충사(右街顯忠寺)에 주지(住持)했으며 건염초년(建炎初年. 1127) 천태산 화정봉(華頂峰)에 들어갔으며 소흥년간(紹興年間. 1131~1162) 복건(福建) 수봉(秀峰)에 들어갔음. 스님은 일찍이 휘종(徽宗)의 귀의를 받았으며 불자선사(佛慈禪師)란 호를 주었음. [普燈錄十二 五燈會元十二 釋氏稽古略四]. ▲선문보장록중(禪門寶藏錄中) 선화엄(善華嚴. 賢首宗의 義虎로 일컬어지던 승려)이란 자가 있어 계성선사(繼成禪師)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 부처님이 교(敎)를 시설(施設)하시매 소승(小乘)으로부터 원돈(圓頓. 圓敎와 頓敎)에 이르기까지 공유(空有)를 쓸어버리고 진상(眞常)을 독증(獨證)한 연후에 만덕(萬德)을 장엄(莊嚴)해야 바야흐로 부처라고 이름하거니와 일찍이 들으니 선종에선 일할(一喝)로 능히 범부를 굴려 성인을 이룬다 하니 곧 모든 경론과 서로 위배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일할이 만약 능히 오종(吾宗. 우리의 종. 화엄종을 가리킴)인 오교(五敎)에 들어온다면 이는 정설(正說)이 되려니와 만약 능히 들어오지 못한다면 이는 사설(邪說)이 될 것입니다. 스님이 선(善)을 부르자 선이 예, 하며 응답했다. 스님이 가로되 법사(法師)의 이른 바 소승교(小乘敎)란 것은 곧 있다(有)는 뜻이며 대승시교(大乘始敎)란 것은 곧 없다(無)는 뜻이며 대승종교(大乘終敎)란 것은 곧 불유불공(不有不空)의 뜻이며 대승돈교(大乘頓敎)란 것은 곧 즉유즉공(卽有卽空)의 뜻이며 일승원교(一乘圓敎)란 것은 곧 있지 않으면서 있음이며(不有而有) 공하지 않으면서 공했다(不空而空)는 뜻이거니와 예컨대(如. 如는 例擧를 표시) 나의 일할은 능히 오교(五敎)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공교기예(工巧技藝)와 제자백가(諸子百家)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능히 들어가느니라. 스님이 소리를 떨쳐 한 번 할(喝)하고는 선(善)에게 물어 가로되 듣느냐. 이르되 듣습니다. 가로되 네가 이미 이 일할을 들으니 이는 있음(有)이라서 능히 소승교(小乘敎)에 들어간 것이니라. 수유(須臾. 잠시 후)에 또 선에게 물어 가로되 듣느냐. 이르되 듣지 못합니다. 아까(適來)의 일할이 이 없음(無)인지라 능히 시교(始敎)에 들어간 것이니라. 드디어 선을 돌아보며 가로되 나의 처음 일할을 네가 이미 있음(有)이라고 말했다가 할한 지 오래되어 소리가 사라지자 네가 다시 없음(無)이라고 말했거니와 없음(無)이라고 말한 즉 원초(元初)엔 실로 있었고 있음(有)이라고 말한 즉 이금(而今)엔 실로 없으니 불유불무(不有不無)이므로 능히 종교(終敎)에 들어간 것이니라. 내가 일할이 있을 때엔 있음이 이 있음이 아니라 없음을 인한 고로 있음이며 일할이 없을 때엔 없음이 이 없음이 아니라 있음을 인한 고로 없음인지라 즉유즉무(卽有卽無. 卽有며 卽無임)이므로 능히 돈교(頓敎)에 들어간 것이니라. 모름지기 나의 이 일할이 일할로만 지어 씀이 아닌 줄 알지니 유(有)와 무(無)가 미치지 못하고 정(情)과 해(解)가 다 망하느니라. 있음이라고 말할 때엔 가는 티끌도 세우지 않음이며 없음이라고 말할 때엔 허공에 횡편(橫遍)하므로 곧 이 일할이 백천만억할(百千萬億喝)에 들어가고 백천만억 할이 이 일할에 들어가는지라 이런 고로 능히 원교(圓敎)에 들어간 것이니라. 선(善)이 이에 일어나 재배(再拜)했다. 스님이 다시 일러 가로되 오직 일할만 그러함이 아니라 내지(乃至) 어묵동정(語默動靜)과 일체시(一切時)ㆍ일체처(一切處)와 일체사(一切事)ㆍ일체물(一切物)이 계리계기(契理契機)하여 주편(周遍)해 남김없이 이 일할 중에 모두 다 구족(具足)했거니와 이는 오히려 건화문정(建化門庭. 第二義門)에서 근기(根機)를 따르는 방편이므로 이를 일러 조금 쉬는 마당이라 하며 보소(寶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나니 우리의 조사문하(祖師門下)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하고 불립문자(不立文字)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천성(千聖)일지라도 전하지 못할 향상일로(向上一路)가 있는 줄을 너무 알지 못함이니라. 선이 또 묻되 어떤 것이 이 일로(一路)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너는 다만 향하(向下)하여 회취(會取. 會는 領悟의 뜻. 取는 助詞)하라. 선이 가로되 어떤 것이 이 보소(寶所)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너의 경계(境界)가 아니니라. 선이 가로되 선사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스님이 가로되 창해가 변하는 대로 맡길지라도 마침내 그대에게 통하게 하지는 못하느니라(任從滄海變 終不爲君通). 선이 입을 다물고 물러갔다. [五燈會元]. ▲오등회원십이(五燈會元十二) 동경정인만암계성선사(東京淨因蹣菴繼成禪師) 스님이 원오(圓悟)ㆍ법진(法眞)ㆍ자수(慈受)와 아울러 십대법사(十大法師)와 선강천승(禪講千僧)이 태위(太尉) 진공양필(陳公良弼)의 부재(府齋)에 다다랐다. 때에 휘종황제(徽宗皇帝)도 사행(私幸)하여 이를 관람했으며 태사(太師) 노국공(魯國公)도 또한 함께했다. 선화엄(善華嚴)이란 자가 있었으니 곧 현수종(賢首宗)의 의호(義虎)였다. …… 스님이 가로되 창해가 변하는 대로 맡길지라도 마침내 그대에게 통하게 하지는 못하느니라(任從滄海變 終不爲君通). 선(善)이 입을 다물고 물러갔다. 듣는 자가 탄앙(歎仰)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황제(皇帝)가 근신(近臣)을 돌아보며 가로되 선종(禪宗)의 현묘(玄妙)하고 심극(深極)함이 이와 같은가, 정인(淨因)의 재변(才辯) 또한 드물게 있도다. 근신(近臣)이 아뢰어 가로되 이것은 종사(宗師)의 서여(緒餘)입니다.
❷야보가타(冶父伽陀); 보(父) 고대(古代) 남자에 대한 미칭(美稱)임. 또한 보(甫)로 지음. 광운(廣韻) 보(父) 니보(尼父) ㆍ상보(尙父) 다 남자의 미칭이다. 야보(冶父) 야보도천(冶父道川)을 가르킴. 도천(道川) 송대 임제종 승려며 곤산(崑山. 지금 江蘇에 속함) 적씨(狄氏)임. 처음에 현(縣)의 궁급(弓級)이 되었는데 동재겸(東齋謙)이 도속(道俗. 승속)을 위해 연법(演法)한다 함을 듣고 가서 그를 좇았음. 어느 날 부직(不職. 직무를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태형(笞刑)을 만났는데 홀연히 태장(笞杖) 아래에서 대오했음. 드디어 사직(辭職)하고 겸(謙)에게 의지(依止)했는데 겸이 지금의 이름(道川)으로 개명했음. 건염(建炎. 1127~1130) 초 천봉(天封) 만암계성(蹣庵繼成. 臨濟下十世)을 참알(參謁)해 그 인가(認可)를 받았음. 동재(東齋)로 돌아가 쉬는데 도속(道俗)이 더욱 공경했음. 학자가 청익(請益)하자 금강반야경에 의해 송을 지었는데 세상에 행함. 융흥개원(隆興改元. 1163) 무위군(無爲軍. 安徽) 야보산(冶父山) 실제선원(實際禪院)에 주지(住持)했음. [普燈錄十七 五燈會元十二 續傳燈錄三十]. ◆게타(偈陀) 범어(梵語) 게타(偈陀)는 또 가타(伽陀)ㆍ가타(伽他)로 지으며 번역해 가로되 송(頌)이니 십이분교(十二分敎. 十二部經)의 하나임. 글자 수를 정해 사구(四句)를 맺은 것이니 삼언(三言)ㆍ사언(四言) 내지 다언(多言)을 불문하고 반드시 사구(四句)를 요하며 이는 불가(佛家)에서 상용(常用)하는 시체(詩體)임. ▲릉엄경전삼(楞嚴經箋三) 게(偈)란 것은 바른 범어(梵語)가 아니다. 범어 게타(偈陀) 또 이르되 가타(伽陀)는 당언(唐言)으로 중송(重頌)이다. ▲법화현찬이(法華玄贊二) 범어(梵語)로 이르되 가타(伽陀)는 여기에서 번역하면 송(頌)이다. 송이란 것은 미(美)며 가(歌)다. 송 가운데 문구가 극히 미려(美麗)한 연고며 가송(歌頌)인 연고이다. 와략(訛略)하여 이르되 게(偈)다. ▲조정사원육(祖庭事苑) 가타(伽陀) 여기에선 이르되 풍송(諷頌)이다. 또 이르되 불송송(不頌頌)이니 이르자면 장행(長行)을 송(頌)하지 않기 때문이며 혹은 이름이 직송(直頌)이니 이르자면 바로 게(偈)로써 설법하기 때문이다. 여금(如今)의 유가(儒家)에서 이르는 바 덕업(德業)을 유양(游揚. 浮揚)하고 성공(成功)을 포찬(褒讚. 褒는 기릴 포. 讚은 기릴 찬)하는 것인 풍송(諷頌)임. 이른 바 직송(直頌)이란 것은 스스로 심지(心地)가 개명(開明. 열려 환함)하고 부처의 지견(知見)에 통달하지 못했다면 능히 짓지 못하거늘 금시(今時)의 무리가 왕왕 이르기를 송(頌)은 기미(綺靡)를 숭상하지 않으므로 솔이(率爾)하게 가히 이룬다 하거니와 너무 알지 못하나니 세간의 시장(詩章)보다 어려움이 원심(遠甚. 멀고 심함)하다. 고로 제기(齊己)의 용아서(龍牙序. 龍牙는 居遁이니 洞山良价의 法嗣)에 이르되 그 체(體)는 비록 시(詩)이지만 그 뜻(旨)은 시가 아니라 한 것이다. 곧 알지니 세간의 아송(雅頌)이 석씨(釋氏. 佛ㆍ佛法ㆍ佛門을 가리킴)의 가타(伽陀) 보다는(與) 진실로 많다(萬은 많을 만).
❸변벽무부(卞璧珷玞); 변벽(卞璧) 화씨지벽(和氏之璧)ㆍ변화지벽(卞和之璧)ㆍ화벽(和璧)ㆍ연성지벽(連城之璧)임. ▲조정사원삼(祖庭事苑三) 변화(卞和) 초(楚)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초(楚)의 여왕(厲려王)에게 옥을 바쳤다. 왕이 가로되 돌이로다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 한 발을 잘랐다. 및 무왕(武王. 在位 B.C 740~B.C 690)이 즉위(卽位)하자 화(和)가 또 무왕에게 그것을 바쳤다. 무왕이 다시 노해 또 한 발을 잘랐다. 초문왕(楚文王. 在位 B.C 689~B.C 675)이 옹립됨에 이르러 화가 옥덩이를 안고 형산(荊山) 아래에서 곡(哭)했다. 문왕(文王)이 불러서 일러 가로되 발을 베인 자야, 무엇을 원망하는가. 가로되 발을 베임을 원망함이 아니라 진옥(眞玉)을 범석(凡石)으로 삼고 충사(忠事)를 만사(慢事. 慢은 傲慢할 만)로 삼음을 원망함이니 이 때문에 그것을 곡합니다. 문왕이 이에 공인(工人)을 시켜 돌을 쪼개게 했는데 곧 진옥(眞玉)이었다. 문왕이 탄식하며 가로되 슬프다, 두 선군(先君)이 사람의 발을 쉬이 자르면서 돌을 쪼갬엔 어려워했도다. 변화(卞和)에게 시키니 과연 이 벽옥(璧玉)은 곧 국보(國寶)였다. 한자(韓子. 韓非子 和氏第十三)를 보라. ▲원오어록십구(圓悟語錄十九) 가히 우습구나 변화(卞和)는 세 번 옥을 바쳤나니 비록 영화로웠으나 한 쌍의 발이 잘려 버렸네. ◆무부(珷玞) 옥과 비슷한 돌임.
❹이이착가(易尔著價); 이르자면 그 가치를 용이하게 분별함임. 이(尔) 이(爾)와 같으며 조사(助詞)임. 또 대사(代詞)니 니(你. 너 니)에 상당함. 또 피(彼)ㆍ차(此)에 상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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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淨 깨끗할 정. 因 인할 인. 辯 말 잘할 변. 才 재주 재. 겨우 재. 冶 불릴 야. 父 아비 부. 남자의 미칭 보. 偈 게타 게. 陀 비탈질 타. 卞 성 변. 법 변. 璧 구슬 벽. 珷 옥돌 무. 玞 옥돌 부. 易 쉬울 이. 바꿀 역. 尔 조사 이. 너 이. 著 조사 착. 붙을 착. 나타날 저. 價 값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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