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천자문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 당송원명(唐宋元明) 53

태화당 2019. 8. 11. 09:44

唐宋元明 禪伯闍黎 猶過竺土 頂禮而已

당송원명 선백사리 유과축토 정례이이


당송원명의/ 선백 사리가/ 오히려 축토를 초과하니/ 정례할 따름이로다.



唐宋元明. 唐 二十代 二百九十年(六一八~) 宋 北宋 九代 百六十七年(九六~一一二六) 南宋 九代 百五十三年(一一二七~一二七九) 元 蒙古 四代 五十四年(一二~一二五九) 元 十一代 一百九年(一二六~一三六八) 明 二十代 二百九十五年(一三六八~一六六二) [東洋年表]

禪伯闍黎. 禪伯 對德高望重的禪師的尊稱 祖庭事苑二 禪伯 伯 尊稱也 如侯伯之伯 又晉有八伯 以擬八俊 禪伯亦猶能詩者稱詩伯 杜工部所謂才大今詩伯 一種修練方法 從古印度傳入中國 梵語禪那 略而爲禪 其法爲心注一境 正審思慮 大智度論十七 諸定功德 都是思惟修 禪 秦言思惟修 指中國禪宗的禪法 由釋迦牟尼佛傳付而來 實則中國禪僧創立的正法眼藏 禪家認爲這種禪是不能表述 不能界定 不能解釋 超離思惟的 五燈會元十五淨法章 廣主問 如何是禪 師乃良久 法演語錄下 上堂云 如何是禪 閻浮樹在海南邊 近則不離方寸 遠則十萬八千 畢竟如何 禪 禪 指中國禪宗 元賢廣錄三十 禪敎律三宗 本是一源 後世分之爲三 乃其智力弗能兼也 闍黎 梵語阿闍黎的簡稱 又作闍梨 意爲僧人之師 常用作對僧人的稱呼 玄應音義九 阿祇利 或言阿闍黎 皆訛也 正言阿遮利耶 或作夜 此譯云正行 或言軌範師也 慧琳音義五十九 阿闍梨 經中或作阿祇利 皆訛也 應言阿遮利夜 此云正行 又言阿遮利耶 此云軌範 舊云 於善法中敎授令知 名阿闍梨也 洞山悟本語錄 曹山來謁 師問曰 闍黎名什麽 對曰 本寂

猶過竺土. 竺土 天竺國 印度 祖庭事苑二 竺土 華梵兼擧也 竺是梵語 土是華言 西域記云 梵語天竺此云月 謂佛日旣沒 諸聖法敎如月也 五天竺國亦名五印土 周九萬餘里 三垂大海 北背雪山 北廣南狹 形如半月 畫野區分七十餘國 傳燈錄三十石頭和尙參同契 竺土大仙心 東西密相付 人根有利鈍 道無南北祖

頂禮而已. 頂禮 卽兩膝兩肘及頭著地 以頭頂敬禮 承接所禮者雙足 向佛像行禮 舒二掌過額 承空以示接佛足 又作頭面禮足 頭面禮 其義同於五體投地 接足禮 及印度最上之敬禮 以我所高者爲頂 彼所卑者爲足 以我所尊 敬彼所卑者 卽禮之極 [首楞嚴經六 釋門歸敬儀下]

 

당송원명(唐宋元明); () 이십대(二十代) 이백구십 년(618~907). () 북송(北宋) 구대(九代) 백육십칠 년(960~ 1126) 남송(南宋) 구대(九代) 백오십삼 년(1127~1279). () 몽고(蒙古) 사대(四代) 오십사 년(1206~1259) () 십일대(十一代) 일백구 년(1260~1368). () 이십대(二十代) 이백구십오 년(1368~1662). [東洋年表].

선백사리(禪伯闍黎); 선백(禪伯) 덕이 높고 신망(信望)이 두터운 선사(禪師)의 존칭임. 조정사원이(祖庭事苑二) 선백(禪伯) ()은 존칭이니 후백(侯伯)의 백()과 같음. 또 진()에 팔백(八伯)이 있어 팔준(八俊)에 비겼음. 선백(禪伯)은 또한 시()에 능한 자를 시백(詩伯)이라 일컬음과 같나니 두공부(杜工部)가 이른 바 재능(才能)이 큰 이는 지금 시백(詩伯)이다. () 일종의 수련방법(修練方法). 고인도(古印度)로부터 중국에 전입(傳入)되었음. 범어(梵語) 선나(禪那)를 약칭(略稱)하면 선()이 됨. 그 방법은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입(注入)하여 바르게 살피면서 사려(思慮). 대지도론십칠(大智度論十七) 제정(諸定)의 공덕은 모두 이 사유수(思惟修. 사유하여 수행함)이다. () ()나라 말로 사유수(思惟修). 중국 선종의 선법(禪法)을 가리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전부(傳付)하여 옴을 말미암지만 사실은 곧 중국 선승들이 창립한 정법안장(正法眼藏). 선가(禪家)에선 이런 종류의 선은 이 능히 표술(表述)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認識). 능히 계정(界定)하지 못하고 능히 해석하지 못하는, 사유(思惟)를 초월해 여읜 것임. 오등회원십오(五燈會元十五) 정법장(淨法章) 광주(廣主)가 묻되 무엇이 이 선()입니까. 스님이 이에 양구(良久)했다. 법연어록하(法演語錄下) 상당(上堂)해 이르되 무엇이 선()인가, 염부수(閻浮樹)가 해남(海南) 가에 있나니 가깝기로는 곧 방촌(方寸. 사방 한 치. 마음)을 여의지 않지만 멀기로는 곧 십만팔천(十萬八千)이로다. 필경 어떠한가, (), (). 중국의 선종을 가리킴. 원현광록삼십(元賢廣錄三十) 선교율(禪敎律) 삼종(三宗)이 본래 이 일원(一源)이지만 후세에 이를 나누어 셋으로 삼았음은 곧 그 지력(智力)이 능히 겸하지 못하여서이다. 사리(闍黎) 범어(梵語) 아사리(阿闍黎)의 간칭(簡稱)이니 또 사리(闍梨)로 지음. 뜻이 승인(僧人)의 스승이 됨. 늘 승인(僧人)에 대한 칭호(稱呼)로 쓰임. 현응음의구(玄應音義九) 아지리(阿祇利) 혹은 말하되 아사리(阿闍黎) 다 와류(訛謬). 바른 말로는 아자리야(阿遮利耶) 혹은 야()로 짓는다.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정행(正行)이며 혹은 말하되 궤범사(軌範師). 혜림음의오십구(慧琳音義五十九) 아사리(阿闍梨) 경중(經中)에 혹 아지리(阿祇利)로 짓는데 다 와류(訛謬). 응당 아자리야(阿遮利夜)라고 말해야 한다. 여기에선 이르되 정행(正行)이다. 또 말하되 아자리야(阿遮利耶)니 여기에선 이르되 궤범(軌範)이다. 구역(舊譯)에 이르기를 선법(善法) 가운데 교수(敎授)하여 알게 하는 이를 이름해 아사리(阿闍梨). 동산오본어록(洞山悟本語錄) 조산(曹山)이 와서 참알(參謁)했다. 스님이 물어 가로되 사리(闍黎)는 이름이 무엇인가. 대답해 가로되 본적(本寂)입니다.

유과축토(猶過竺土); 축토(竺土) 천축국(天竺國). 인도(印度). 조정사원이(祖庭事苑二) 축토(竺土) 화범(華梵)을 겸거(兼擧)했으니 축()은 이 범어(梵語)며 토()는 이 화언(華言). 서역기(西域記. 卷第二)에 이르되 범어(梵語)로 천축(天竺)은 여기에선 이르되 월()이니 이르자면 불일(佛日)이 이미 몰락(沒落)하매 제성(諸聖)의 법교(法敎)가 월()과 같다. 오천축국(五天竺國)은 또한 이름이 오인토(五印土)니 둘레가 구만여리(九萬餘里)며 삼면(三面)이 대해에 드리웠고 북쪽은 설산(雪山)을 등졌다.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으며 형상(形狀)이 반월(半月)과 같다. 들판을 그어 칠십여국(七十餘國)으로 나뉘었다. 전등록삼십(傳燈錄三十) 석두화상참동계(石頭和尙參同契) 축토(竺土)대선(大仙)의 마음이 동서로 가만히 상부(相付)하나니 인근(人根)은 이둔(利鈍)이 있지만 도는 남북의 조사가 없다.

정례이이(頂禮而已); 정례(頂禮) 곧 두 무릎과 두 팔꿈치 및 머리를 땅에 붙여 두정(頭頂. 머리)으로 경례(敬禮)하면서 소례(所禮. 절을 받는)자의 두 발을 승접(承接). 불상(佛像)을 향해 경례(敬禮)를 행하면 두 손바닥을 펴 이마를 지나야 하며 허공을 받들어 불족(佛足)을 접촉함을 보여야 함. 또 두면예족(頭面禮足)ㆍ두면례(頭面禮)로 짓나니 그 뜻은 오체투지(五體投地)와 같음. 그리고 인도(印度)의 최상의 경례임. 나의 높은 것은 머리가 되며 그의 낮은 것은 발이 되거니와 나의 존귀한 것으로써 그의 낮은 것에 경례를 함은 곧 경례의 지극함임. [首楞嚴經六 釋門歸敬儀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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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당나라 당. 송나라 송. 원나라 원. 으뜸 원. 명나라 명. 밝을 명. 선 선. 봉선(封禪: 산천에 제사 지내던 일) . 맏 백. 큰아버지 백. 사리 사. 망루 도. 검을 려(). 무리 려(). 동틀 려(). . 오히려 유. 같을 유. 지날 과. 나라 이름 축. 흙 토. 이마 정. 정수리 정. 꼭대기 정. 예도 례. 말 이을 이. 뿐 이. 이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