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2칙 송평창

태화당 2021. 8. 24. 11:29

雪竇知他落處 所以如此頌 至道無難 便隨後道 言端語端 *擧一隅不以三隅反 雪竇道 一有多種 二無兩般 似三隅反一 爾且道 什麽處是言端語端處 爲什麽一却有多種 二却無兩般 若不具眼 向什麽處摸索 若透得這兩句 所以*古人道 *打成一片 依舊見山是山水是水 長是長短是短 天是天地是地 有時喚天作地 有時喚地作天 有時喚山不是山 喚水不是水 畢竟*怎生得平穩去 風來樹動 浪起船高 春生夏長 秋收冬藏 一種*平懷 泯然自盡 則此四句頌頓絕了也 雪竇有餘才 所以分開結裹算來也 只是*頭上安頭道 至道無難 言端語端 一有多種 二無兩般 雖無許多事 天際日上時月便下 檻前山深時水便寒 到這裏 言也端 語也端 *頭頭是道 物物全眞 豈不是心境俱忘 打成一片處 雪竇頭上*太孤峻生 末後也漏逗不少 若參得透見得徹 自然如*醍醐*上味相似 若是情解未忘 便見七花八裂 決定不能會如此說話 髑髏識盡喜何立 枯木龍吟銷未乾 只這便是*交加處 這僧恁麽問 趙州恁麽答 州云 至道無難 唯嫌揀擇 纔有語言 是揀擇是明白 老僧不在明白裏 是汝還護惜也無 時有僧便問 旣不在明白裏 又護惜箇什麽 州云 我亦不知 僧云 和尙旣不知 爲什麽却道不在明白裏 州云 問事卽得 禮拜了退 此是古人問道底公案 雪竇拽來一串穿却 用頌至道無難 唯嫌揀擇 如今人不會古人意 只管咬言嚼句 有甚了期 若是*通方*作者 始能辨得這般說話 不見僧問*香嚴 如何是道 嚴云 枯木裏龍吟 僧云 如何是道中人 嚴云 髑髏裏眼睛 僧後問*石霜 如何是枯木裏龍吟 霜云 猶帶喜在 如何是髑髏裏眼睛 霜云 猶帶識在 僧又問*曹山 如何是枯木裏龍吟 山云 血脈不斷 如何是髑髏裏眼睛 山云 乾不盡 什麽人得聞 山云 盡大地未有一箇不聞 僧云 未審龍吟是何章句 山云 不知是何章句 聞者皆喪 復有頌云 枯木龍吟眞見道 髑髏無識眼初明 喜識盡時*消息盡 當人那辨濁中淸 雪竇可謂大有手脚 一時與爾交加頌出 然雖如是 都無兩般 雪竇末後有爲人處 更道難難 只這難難 也須透過始得 何故 *百丈道 一切語言 山河大地 一一轉歸自己 雪竇凡是一拈一掇 到末後須歸自己 且道 什麽處是雪竇爲人處 揀擇明白君自看 旣是打葛藤頌了 因何却道君自看 好彩敎爾自看 且道 意落在什麽處 莫道諸人理會不得 設使山僧到這裏 也只是理會不得

 

擧一隅不以三隅反; 論語述而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上已出

古人道; 五燈會元十五香林澄遠 師謂衆曰 老僧四十年 方打成一片 言訖而逝

打成一片; 指融合一體 卽去除一切之情量計較 而將千差萬別之事物 融通一片 不再有你我彼此主客等之差別情想

怎生; 同怎麽生 作麽生 卽何 生爲接尾詞 相當於如何了 禪宗多用於公案之感歎或疑問之詞

平懷; 平常心 對于萬事萬物等同視之

頭上安頭; 頭上再加一箇頭 比喩重複累贅 安 安放

頭頭; 事事 樣樣 每件

太孤峻生; 生 助詞 太 表示程度過分 相當于甚 廣韻 太 甚也

醍醐; 製自牛乳 味中第一 藥中第一 涅槃經八云 因乳生酪 因酪得生酥 因生酥得熟酥 因熟酥得醍醐 又云 雪山有草 名曰肥膩 牛若食者 純得醍醐

上味; 指最佳味

交加; 錯雜

通方; 通大方 通方便 又通達 方 大方 方便

作者; 同作家 機用傑出的禪家高手

香嚴; 香嚴智閑 智閑(?-898) 唐代僧 靑州(山東益都)人 初從百丈懷海出家 後謁潙山靈祐禪師 不契 泣涕辭去 偶於山中芟草 瓦礫擊竹作聲 廓然有省 乃悟潙山祕旨 因嗣其法 住於鄧州香嚴山 化法大行 淨侶千餘人 後世稱之爲香嚴禪師 師生性嚴謹 語喜簡直 有偈頌二百餘首 諸方盛行 後敕諡襲燈大師 [傳燈錄十一 宋高僧傳十三]

石霜; 石霜慶諸 慶諸(807-888) 唐代僧 靑原下四世 廬陵新淦(江西)人 俗姓陳 十三歲隨從紹鑾出家 二十三歲至嵩山受具足戒 學戒律 後專志於禪 投潙山靈祐門下 竝領米頭執 爲衆服勞 精勤不懈 次至潭州雲巖參道吾宗智 言下契機 從此洞悟 遂混俗於長沙 人莫能識 洞山良价遣僧訪尋 師始露面 遂住瀏陽石霜山 其後道吾將示寂 以師爲嫡嗣 乃親至石霜山訪之 迨道吾示寂 禪侶雲集石霜山 達五百衆 師止於石霜山二十年間 學衆有長坐不臥 屹若株杌者 世人稱之石霜枯木衆 唐僖宗聞師之道譽 遣使齎賜紫衣 師固辭不受 光啓四年示寂 壽八十二 臘五十九 敕諡普會大師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五 五燈會元五 敎外別傳十四 禪宗正脈五]

曹山; 曹山本寂 本寂(840-901) 僧寶傳一謂師諱躭章(耽章) 唐代僧 泉州莆田(福建古田)人 俗姓黃 幼習儒學 十九歲入福州福唐縣靈石山出家 二十五歲受具足戒 咸通年間 禪風極盛 乃謁洞山良价 遂得密受宗門玄旨 後開堂於撫州吉水 改名曹山 以表思慕曹谿之情 未久 遷住荷玉山(或謂師以此山改名曹山) 學徒雲集 大振洞門宗風 講授洞山五位之旨訣 成爲叢林之標準 竝注解寒山詩以饗學人 時有洪州鍾氏 屢請不赴 天復元年六月 焚香安坐而終 壽六十二 敕諡元證禪師 其後 洞山曹山之風益盛 門徒日衆 遂稱曹洞宗 著有曹山語錄二卷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七]

消息; 涅槃玄義發源機要一 報示消息者 此以音信爲消息 ▲梵網經心地品菩薩戒義疏發隱三 消息者 猶酌量也 祖庭事苑四 消息 消 盡也 息 生也 謂可加卽加 可減卽減 禪林寶訓音義 消息 陰死爲消 陽死爲息

百丈; 百丈懷海 嗣馬祖道一 見下第二六則

 

설두가 그것(; 本則)의 낙처를 안지라 소이로 이와 같이 송하되 지도(至道)는 어려움이 없다 하니 곧 뒤따라 말하되 언()도 단적(端的)하고 어()도 단적하다 하니 한 모퉁이를 들매 세 모퉁이로 반(; 돌아오다)하지 않음이다. 설두가 말하되 일()에 여러 종()이 있으면서 이()에 두 가지가 없다 하니 세 모퉁이가 한 모퉁이로 반()함과 흡사하다. 너희가 그래 말하라, 어느 곳이 이 언()도 단적(端的)하고 어()도 단적한 곳인가. 무엇 때문에 일()에 도리어 여러 종()이 있으면서 이()에 도리어 두 가지가 없는가. 만약 눈을 갖추지 못했다면 어느 곳을 향해 모색하겠는가. 너희()가 이 양구(兩句)를 투득(透得)해야 하리라. 소이로 고인이 말하되(*古人道) 타성일편(*打成一片)하여도 의구히 보매 산은 이 산이며 물은 이 물이며 긴 것은 이 긴 것이며 짧은 것은 이 짧은 것이며 하늘은 이 하늘이며 땅은 이 땅이지만 어떤 때엔 하늘을 땅이라고 지어 부르고 어떤 때엔 땅을 하늘이라고 지어 부르고 어떤 때엔 산이 이 산이 아니라 부르고 물이 이 물이 아니라고 부른다 하였으니 필경 어떻게(*怎生) 해야 평온(平穩)을 얻겠는가(는 조사). 바람이 오면 나무가 움직이고 물결이 일어나면 배가 높아지고 봄에 나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감추는지라 일종(一種)으로 평회(*平懷)하면 민연(泯然)히 저절로 없어져서(2구는 信心銘의 글) 곧 이 사구송(四句頌)이 단박에 끊어져버릴 것이다. 설두가 여재(餘才)가 있는지라 소이로 결과(結裹)를 분개(分開)하여 셈하여 와서 다만 머리 위에 머리를 얹어(*頭上安頭) 말하되 지도(至道)는 어려움이 없다 하니/ ()도 단적(端的)하고 어()도 단적하다/ ()에 여러 종()이 있으면서/ ()에 두 가지가 없다. 비록 허다한 일이 없으나 하늘 가에 해가 뜰 때에 달은 곧 떨어지며 난간 앞에 산이 깊을 때에 물이 곧 차다 하니 이 속에 이르러선 언()도 단적하고 어()도 단적한지라 두두(*頭頭)가 이 도며 물물(物物)이 온통 진()이거늘 어찌 이 심()과 경()을 모두() 잊은 타성일편처(打成一片處)가 아니리오. 설두가 두상(頭上; 지도는 어려움이 없다로부터 두 가지가 없다에 이르기까지)은 태고준생(*太孤峻生)이더니 말후(末後; 하늘 가엔 이하의 글)엔 누두(漏逗)가 적지 않다. 만약 참()해 투과()함을 얻고 보아 철저()함을 얻는다면 자연히 마치 제호(*醍醐)의 상미(*上味)와 상사(相似)하려니와 만약 이 정해(情解)를 잊지 못한다면 곧 칠화팔렬(七花八裂)을 보는지라 결정코 능히 이와 같은 설화를 이회(理會)하지 못하리라. 촉루(髑髏; 해골)의 식()이 다했거늘 희()를 어찌 세우리오만 고목(枯木)에 용의 읊조림이 녹아 마르지 않았다 하니 다만 이것이 곧 이 교가처(*交加)인지라 이 중이 이렇게 물으매 조주가 이렇게 답했다. 조주가 이르되 지도는 어려움이 없지만 오직 간택을 꺼리나니 겨우 어언이 있으면 이 간택이며 이 명백이거니와 노승은 명백 속에 있지 않나니 이 너희가 도리어 호석(護惜)하느냐 또는 아니냐. 때에 어떤 중이 바로 묻되 이미 명백 속에 있지 않을진대 또 이 무엇을 호석하라 하십니까. 조주가 이르되 나도 또한 알지 못한다. 중이 이르되 화상이 이미 알지 못할진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되 명백 속에 있지 않다 하셨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물은 일을 곧 얻었으니 예배하고 물러가거라 했다. 이것은 이 고인이 도를 물은 공안이거니와 설두가 끌어와서 한 꼬챙이(; 꼬챙이 찬)로 꿰어버리고 송을 써서 지도는 어려움이 없지만 오직 간택을 꺼린다 하였거니와 여금의 사람은 고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다만 관대(管帶)하여 교언작구(咬言嚼句; 언구를 물고 씹음. 곧 이리저리 따져봄)하니 무슨 깨칠 기약이 있으리오. 이에() 이 통방작자(*通方*作者)라야 비로소 능히 이러한 설화(說話)를 변득(辨得)하리라. 보지 못하는가 중이 향엄(*香嚴)에게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향엄이 이르되 고목 속에 용이 읊조림이다. 중이 이르되 무엇이 도중(道中)의 사람입니까. 향엄이 이르되 촉루(髑髏) 속의 눈동자다. 중이 후에 석상(*石霜)에게 묻되 무엇이 이 고목 속에 용이 읊조림입니까. 석상이 이르되 오히려 기쁨을 띠고 있다. 무엇이 이 촉루 속의 눈동자입니까. 석상이 이르되 오히려 식()을 띠고 있다. 중이 또 조산(*曹山)에게 묻되 무엇이 이 고목 속에 용이 읊조림입니까. 조산이 이르되 혈맥이 끊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이 촉루 속의 눈동자입니까. 조산이 이르되 말라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조산이 이르되 온 대지에 한 개(1)라도 듣지 않음이 있지 않다. 중이 이르되 미심(未審)합니다, 용의 읊조림은 이 어떤 장구(章句)입니까. 조산이 이르되 이 어떤 장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듣는 자는 모두 죽는다(). 다시 송이 있어 이르되 고목에 용이 읊조림에서 참으로 도를 보나니/ 촉루에 식()이 없어야 눈이 처음으로 밝다/ ()와 식()이 다한 때에 소식(*消息)도 다하나니/ 당인(當人)이 어찌 탁중(濁中)의 청()을 분변하리오 하였다. 설두도 가위(可謂) 매우() 수각(手脚)이 있어 일시에 너희에게 교가(交加)하여 송출(頌出)해 주었거니와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기는 하나 도무지 양반(兩般; 두 가지)이 없다. 설두가 말후에 사람을 위하는 곳이 있어 다시 말하되 난난(難難)이여 하니 다만 이 난난(難難)을 또한 모름지기 투과해야 비로소 옳다. 무슨 연고냐, 백장(*百丈)이 말하되 일체의 어언(語言)과 산하대지를 낱낱이(一一) 자기에게 전귀(轉歸)해야 한다 했거니와 설두도 무릇 이렇게() 일념일철(一拈一掇)하다가 말후에 이르러선 모름지기 자기에게로 돌리니 그래 말하라 어느 곳이 이 설두가 사람을 위한 곳인가. 간택과 명백을 그대가 스스로 보아라 하니 이미 이 타갈등(打葛藤; 언구에 뒤얽힘)하여 송해 마쳤거늘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말하되 그대가 스스로 보아라 하는가 하면 호채(好彩)를 너희로 하여금 스스로 보게 함이니 그래 말하라 뜻이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제인이 이회(理會)함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설사 산승(원오)일지라도 이 속에 이르러선 또한 다만 곧() 이회함을 얻지 못한다.

 

擧一隅不以三隅反; 논어 술이(述而). 한 모퉁이를 들매 세 모퉁이로 돌아오지 않으면 곧 반복하지 않는다. 위에 이미 나왔음.

古人道; 오등회원15 향림징원(香林澄遠).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노승이 40년 만에 비로소 타성일편(打成一片)했다. 말을 마치자 서거했다.

打成一片; 일체(一體)로 융합(融合)함을 가리킴. 곧 일체의 정량(情量)과 계교(計較)를 거제(去除; 除去)하고 천차만별의 사물을 가져다 일편(一片)으로 융통함이니 다시는 니아(你我; 너와 나)ㆍ피차ㆍ주객 등의 차별의 정상(情想)이 있지 않는 것.

怎生; 즘마생(怎麽生), 작마생(作麽生)과 같음. 곧 하()니 생()은 접미사가 됨. 여하료(如何了; 어떠한가)에 상당함. 선종에서 다분히 공안의 감탄, 혹 의문지사(疑問之詞)에 사용함.

平懷; 평상심이니 만사만물에 대해 등동(等同)하게 봄.

頭上安頭; 머리 위에 다시 한 개의 머리를 더함이니 중복과 누췌(累贅; 군더더기)에 비유. ()은 안방(安放; 안치).

頭頭; 사사(事事), 양양(樣樣), 매건(每件).

太孤峻生; ()은 조사며 태()는 정도가 과분함을 표시하며 심()에 상당함. 광운 태() ()이다.

醍醐; 우유로부터 제조하며 맛 중에 제일이며 약 중에 제일임. 열반경8에 이르되 우유로 인해 낙(; 진한 유즙 락)이 나오고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 煉乳 )를 얻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를 얻고 숙소로 인해 제호를 얻는다. 또 이르되 설산에 풀이 있는데 이름해 가로되 비니(肥膩). 소가 만약 먹는다면 순전히 제호를 얻는다.

上味; 가장 좋은 맛을 가리킴.

交加; 착잡(錯雜).

通方; 대방(大方)을 통달함. 방편을 통달함. 또 통달. ()은 대방, 방편.

作者; 작가와 같음. 기용이 걸출한 선가의 고수.

香嚴; 향엄지한(香嚴智閑). 지한(智閑) (?-898) 당대승. 청주(靑州; 산동 益都) 사람. 처음엔 백장회해(百丈懷海)를 좇아 출가했고 뒤에 위산영우(潙山靈祐)를 참알(參謁)했으나 계합(契合)치 못했음. 읍제(泣涕; 울며 눈물 흘림)하며 고별하고 떠나 우연히 산중에서 풀을 베다가 와력(瓦礫)이 대나무에 부딪치며 소리를 짓자 휑하게 깨침이 있었음. 이에 위산(潙山)의 비지(秘旨)를 깨쳤고 인하여 그의 법을 이었음. 등주(鄧州) 향엄산(香嚴山)에 거주하면서 교화의 법을 크게 행했으며 정려(淨侶)가 천여 인이었으며 후세에 그를 일컬어 향엄선사(香嚴禪師)라 했음. 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엄근(嚴謹)하고 말은 간직(簡直)을 좋아했음. 게송 2백여 수()가 있어 제방에 성행(盛行). 후에 칙시(敕諡)하여 습등대사(襲燈大師)라 했음 [전등록11. 송고승전13].

石霜; 석상경제(石霜慶諸). 경제(慶諸) (807-888) 당대승. 청원하 4. 여릉 신감(新淦; 강서) 사람이며 속성은 진(). 13세에 소란(紹鑾)을 수종(隨從)하다가 출가했고 23세에 숭산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음. 계율을 배우고는 후에 선()에 전지(專志; 專心)하였음. 위산영우의 문하에 투입하였고 아울러 미두(米頭)의 집무(執務)를 받아 대중을 위해 복로(服勞)하며 정근하면서 느슨하지 않았음. 다음에 담주(潭州) 운암(雲巖)에 이르러 도오종지(道吾宗智)를 참했고 언하에 계기(契機)하고 이로부터 환히 깨쳤음. 드디어 장사(長沙)에서 세속에 섞였는데 사람들이 능히 알지 못했음. 동산양개가 중을 보내어 방심(訪尋)케 하자 스님이 비로소 얼굴을 노출했으며 드디어 유양(瀏陽) 석상산(石霜山)에 거주했음. 그 후에 도오가 장차 시적하려 하면서 스님을 적사(嫡嗣)로 삼았으며 이에 친히 석상산에 이르러 그를 방문했음. 도오가 시적함에 이르러선 선려(禪侶)가 석상산에 운집하기가 5백 중()에 달했음. 스님이 석상산에 머문 20년 간에 학중(學衆)이 장좌불와하며 우뚝하기가 나무 그루터기 같은자가 있어 세인이 이를 호칭하기를 석상의 고목중(枯木衆)이라 했음. 당 희종이 스님의 도예(道譽)를 듣고 사신을 보내 자의(紫衣)를 싸서 주었으나 스님이 고사(固辭)하며 받지 않았음. 광계(光啓) 4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82며 납은 59며 칙시(敕諡)가 보회대사 [송고승전12. 전등록15. 오등회원5. 교외별전14. 선종정맥5]..

曹山; 조산본적(曹山本寂). 본적(本寂) (840-901) 승보전1에 이르되 스님의 휘()가 탐장(躭章; 耽章)이라 했음. 당대의 승려며 천주(泉州) 보전(莆田; 복건 古田) 사람이며 속성은 황(). 어려서 유학(儒學)을 익혔으며 19세에 복주 복당현의 영석산에 들어가 출가했으며 25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함통년(咸通年) 사이 선풍이 극히 성했으며 이에 동산양개(洞山良价)를 알현(謁見)하고 드디어 종문의 현지(玄旨)를 몰래 받음을 얻었음. 후에 무주(撫州) 길수(吉水)에서 개당(開堂)하고 조산(曹山)으로 개명(改名)했으니 조계를 사모하는 정을 표했음임. 오래지 않아 하옥산(荷玉山; 혹 이르기를 스님이 이 산을 조산으로 개명했다 함)으로 옮겨 거주했음. 학도가 운집하였고 동문(洞門)의 종풍을 크게 떨쳤음. 동산(洞山)5()의 지결(旨訣)을 강수(講授)하여 총림의 표준을 이루게 되었음. 아울러 한산시(寒山詩)를 주해하여 학인을 대접()했음. 때에 홍주의 종씨(鍾氏)가 있어 누차 청했으나 다다르지 않았음. 천복(天復) 원년 6월에 분향하고 안좌(安坐)하여 마쳤으니 나이는 62. 칙시(敕諡)가 원증선사(元證禪師). 그 후 동산과 조산의 종풍이 더욱 성해 문도가 날로 많아지자 드디어 조동종으로 일컬었음. 저서에 조산어록 2권이 있음 [송고승전. 전등록17].

消息; 열반현의발원기요1. 소식(消息)을 보시(報示)한다는 것은 이것은 음신(音信)으로 소식을 삼음이다. ▲범망경심지품보살계의소발은3. 소식(消息)이란 것은 작량(酌量)과 같다. 조정사원4. 소식(消息) ()는 진()이며 식()은 생()이니 이르자면 가()가 옳으면 곧 가()하고 감()이 옳으면 곧 감()함임. 선림보훈음의. 소식(消息) ()이 죽음을 소()라 하고 양()이 죽음을 식()이라 한다.

百丈; 백장회해(百丈懷海)니 마조도일을 이었음. 아래 제26칙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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