到這裏 也不消卽心不卽心 不消非心不非心 直下從頂至足 眉毛一莖也無 猶較些子 卽心非心 *壽禪師謂之*表詮遮詮 此是涅槃和尙法正禪師也 昔時在百丈作西堂 *開田說大義者 是時南泉已見馬祖了 只是往諸方*決擇 百丈致此一問 也大難酬 云從上諸聖 還有不爲人說底法麽 若是山僧 掩耳而出 看這老漢一場懡㦬 若是作家 見他恁麽問 便識破得他 南泉只據他所見 便道有 也是孟八郞 百丈便將錯就錯 隨後道作麽生是不爲人說底法 泉云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這漢貪觀天上月 失却掌中珠 丈云 說了也 可惜許 與他注破 當時但劈脊便棒 敎他知痛痒 雖然如是 爾且道什麽處是說處 據南泉見處 不是心不是佛不是物 不曾說著 且問爾諸人 因什麽却道說了也 他語下又無蹤迹 若道他不說 百丈爲什麽却恁麽道 南泉是變通底人 便隨後一拶云 某甲只恁麽 和尙又作麽生 若是別人 未免分疏不下 爭柰百丈是作家 答處不妨奇特 便道 我又不是大善知識 爭知有說不說 南泉便道箇不會 是渠果會來道不會 莫是眞箇不會 百丈云 我太殺爲爾說了也 且道什麽處是說處 若是*弄泥團漢時 兩箇*淈淈?? 若是二俱作家時 如明鏡當臺 其實前頭二俱作家 後頭二俱放過 若是具眼漢 分明驗取 且道作麽生驗他 看雪竇頌出云
●壽禪師; 延壽禪師(904-975) 宋代僧 淨土宗六祖 法眼宗三祖 錢塘(今浙江杭州)人 俗姓王 字仲玄 號抱一子 初爲吏 三十歲依龍冊寺翠巖令參禪師出家 後往天台山參德韶國師 初習禪定 得其玄旨 後於國淸寺行法華懺 頗有感悟 於是朝放諸生類 夕施食鬼神 讀誦法華經 又精修淨業 後住明州雪竇山傳法 法席甚盛 竝復興杭州靈隱寺 建隆二年(962) 應吳越王錢俶之請 遷永明大道場 接化大衆 故世稱永明大師 師倡禪淨雙修之道 指心爲宗 四衆欽服 住永明十五年 時人號慈氏下生 師曾召集慈恩 賢首 天台三宗僧人 輯錄印度中國聖賢二百人之著書 廣蒐博覽 互相質疑 而成宗鏡錄一百卷 對當時各宗派間之宗旨分歧 持調和之態度 高麗王見此書 乃遣使敘弟子之禮 竝派國僧三十六人前來學法 法眼之禪風遂盛行於海東 開寶八年示寂 壽七十二 賜號智覺禪師 著有宗鏡錄百卷 萬善同歸集六卷 神棲安養賦一卷 唯心訣一卷等六十餘部 [宋高僧傳二十八 傳燈錄二十六 傳法正宗記八 宗門統要續集二十 佛祖統紀二十六]
●表詮遮詮; 表示具德曰表詮 遮止過非曰遮詮
●開田說大義; 宗鑑法林十六百丈涅槃禪師 一日謂衆曰 汝等與我開田了 我爲汝說大義 僧開田了 請和尙說大義 師展兩手示之
●決擇; 祛除疑惑 究明道法
●弄泥團漢; 比喩禪家示機應機 若陷入言句情識 斥之爲弄泥團漢
●淈淈??; 甚糊塗
이 속((사람에게 설하지 아니한 곳)에 이르러선 또한 즉심(卽心)과 부즉심(不卽心)을 쓰지(消) 않으며 비심(非心)과 불비심(不非心)을 쓰지 않나니 직하(直下; 즉각)에 정수리로 좇아 발에 이르기까지 눈썹 한 줄기도 없어야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 하리라. 즉심비심(卽心非心)을 수선사(*壽禪師)는 이를 일러 표전차전(*表詮遮詮)이라 하였다. 이것은 이 열반화상 법정선사(法正禪師)며 석시(昔時)에 백장에 있으면서 서당(西堂; 위 제10칙을 보라)이 되었으니 개전하여 대의를 설한(*開田說大義) 자이다. 이때 남천이 이미 마조를 참견(參見)했고 다만 곧(是) 제방으로 가서 결택(*決擇)하였는데 백장이 이 1문(問)을 보내니(致; 送詣) 또한 매우 수대(酬對; 응대)하기 어렵다. 이르되 종상(從上; 從前)의 제성(諸聖)에 도리어 사람을 위해 설하지 아니한 법이 있느냐 하니 만약 이 산승(원오)이었다면 귀를 막고 나가 이 노한(백장)의 일장마라(一場懡㦬; 한바탕의 창피)를 보았겠다. 만약 이 작가일진대 그(백장)의 이러히 물음을 보고 곧 식파(識破)하여 그(백장)를 얻었겠지만 남천은 다만 그의 소견에 의거하여 곧 말하되 있습니다 하니 또한 이 맹팔랑(孟八郞)이다. 백장이 곧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가 뒤따라 말하되 어떤 것이 이, 사람을 위해 설하지 아니한 법인가. 남천이 이르되 이 마음이 아니며 이 부처가 아니며 이 물건도 아닙니다 하니 저한(這漢; 남천)이 천상의 달은 탐해 보다가 장중(掌中)의 구슬을 잃어버렸다. 백장이 이르되 설했다 하니 가석하게도(可惜許) 그에게 주파(注破)해 주었다. 당시에 단지 등에다가(劈脊) 곧 몽둥이질하여 그(남천)로 하여금 통양(痛痒)을 알도록 했어야 한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너희가 그래 말하라 어느 곳이 이 설한 곳인가. 남천의 견처(見處)에 의거하자면 이 마음이 아니며 이 부처가 아니며 이 물건도 아닙니다 하고 일찍이 설착(說著)하지 않았거늘 다만(且) 너희 제인에게 묻노니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되 설했다 했는가. 그(남천)의 어하(語下)에 또 종적이 없다. 만약 말하되 그(남천)가 설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백장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러히 말했는가. 남천은 이 변통(變通)의 사람인지라 곧 뒤따라 1찰(拶; 다그치다)하여 이르되 모갑은 다만 이러하니 화상은 또 어떻습니까 하니 만약 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소하지 못함(分疏不下)을 면하지 못했겠지만 백장은 이 작가임을 어찌하랴. 답처(答處)가 기특함에 방애되지 않아 곧 말하되 나는 또 이 대선지식이 아니거늘 어찌 설(說)과 불설(不說)이 있는 줄 알겠는가. 남천이 곧 저(箇) 알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니 이는 그가 과연 알고 와서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인가, 이 진개(眞箇; 진짜. 箇는 조사)로 알지 못한 게 아닐까. 백장이 이르되 내가 너무 심하게 너를 위해 설했다 하니 그래 말하라 어느 곳이 이 설처(說處)인가. 만약 이 진흙덩이 희롱하는 자(*弄泥團漢)일 때엔 두 개가 굴굴순순(*淈淈??)이며 만약 이 둘 다 작가일 때엔 명경이 당대(當臺)함과 같으려니와 기실(其實)은 전두(前頭; 처음의 문답)는 둘 다 작가며 후두(後頭; 뒤의 문답)는 둘 다 방과(放過; 放棄)했음이니 만약 이 눈을 갖춘 사내라면 분명히 험취(驗取)하라. 그래 말하라 어떻게 그들을 감험(勘驗; 驗)하는가. 설두의 송출(頌出)함을 보아라. 이르되
●壽禪師; 연수선사(延壽禪師; 904-975)니 송대승. 정토종의 6조(祖)며 법안종의 3조. 전당(錢塘; 지금의 절강 항주) 사람이니 속성(俗姓)이 왕(王)이며 자가 중현(仲玄)이며 호가 포일자(抱一子). 처음엔 관리가 되었다가 30세에 용책사(龍冊寺) 취암영참선사(翠巖令參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했음. 뒤에 천태산으로 가서 덕소국사(德韶國師)를 참알(參謁)하고 처음으로 선정(禪定)을 익혀 그 현지(玄旨)를 얻었음. 후에 국청사에서 법화참(法華懺)을 행했으며 자못 감오(感悟)가 있었음. 이에 아침엔 여러 생류(生類)를 놓아주고 저녁엔 귀신에게 시식(施食)하면서 법화경을 독송했으며 또 정업(淨業)을 정수(精修)했음. 후에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에 머물며 법을 전했으며 법석이 매우 성했음. 아울러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를 부흥했음. 건륭(建隆) 2년(961) 오월왕(吳越王) 전숙(錢俶)의 청에 응해 영명대도량(永明大道場)으로 옮겨 대중을 접화(接化)한지라 고로 세칭 영명대사(永明大師)임. 스님은 선정쌍수(禪淨雙修)의 도를 노래 불러 마음을 가리켜 종(宗)을 삼았으며 4중(衆)이 흠복(欽服)했음. 영명(永明)에 머문 지 15년이었으며 당시의 사람이 호하되 자씨(慈氏; 미륵)가 하생했다 했음. 스님이 일찍이 자은(慈恩)ㆍ현수(賢首)ㆍ천태(天台) 3종(宗)의 승인(僧人)을 소집해 인도와 중국의 성현(聖賢) 200인의 저서를 집록(輯錄)해 널리 모으고 널리 열람하며 호상(互相) 질의하여 종경록(宗鏡錄) 100권을 만들었음. 당시의 각 종파 간의 종지(宗旨)와 분기(分歧)에 대해서 조화의 태도를 유지했음. 고려왕(高麗王)이 이 책을 보고 이에 사자(使者)를 파견해 제자의 예(禮)를 펴고 아울러 국승(國僧) 36인을 파견해 앞에 와서 법을 배우게 했음. 법안(法眼)의 선풍(禪風)이 드디어 해동에서 성행했음. 개보 8년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2며 사호(賜號)가 지각선사(智覺禪師). 저서에 종경록 100권ㆍ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3권ㆍ신서안양부(神棲安養賦) 1권ㆍ유심결(唯心訣) 1권 등 60여 부(部)가 있음. [송고승전28. 전등록26. 전법정종기8. 종문통요속집20. 불조통기26].
●表詮遮詮; 구덕(具德)을 표시함을 가로되 표전(表詮)이며 과비(過非)를 차지(遮止)함을 가로되 차전(遮詮)임.
●開田說大義; 종감법림16 백장열반선사. 어느 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이 나에게 개전(開田)하여 준다면 내가 너희를 위해 대의(大義)를 설하리라. 중이 개전(開田)하여 마치고 화상에게 대의를 설하기를 청하자 스님이 두 손을 펴서 그들에게 보였다.
●決擇; 의혹을 거제(祛除; 제거)하고 도법을 구명(究明)함.
●弄泥團漢; 선가의 시기응기(示機應機)에 비유함이니 만약 언구와 정식(情識)에 빠져들면 이를 가리켜 농이단한(弄泥團漢)이라 함.
●淈淈??; 매우 호도(糊塗)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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