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28칙 송 평창

태화당 2021. 8. 26. 07:12

祖佛從來不爲人各自守疆界 有條攀條 記得箇*元字脚在心 入地獄如箭 衲僧今古競頭走踏破草鞋 拗折拄杖 高掛鉢囊 明鏡當臺列像殊墮也 破也 打破鏡來與爾相見 一一面南看*北斗還見老僧騎佛殿出山門麽 新羅國裏曾上堂 大唐國裏未打鼓 *斗柄落處也不知 在什麽處 無處討瞎 可惜許 椀子落地 *楪子成七八片 拈得鼻孔失却口那裏得這消息來 果然恁麽 便打

 

元字脚; 指文字言句 按禪家力倡不立文字言句 認爲執著于文字言句 是悟道之障礙 或云 元字脚者一字之義 元字之脚乙字 乙與一同一畫 故一之意

北斗; 北斗七星 指在北方聚成斗()形之七星 略稱北斗 卽離北極約三十度距離之七星 天樞 天璇 天璣 天權 玉衡 開陽 瑤光等 於天文學中 稱爲大熊星 其俗名爲貪狼星 巨門星 祿存星 文曲星 廉貞星 武曲星 破軍星等

斗柄; 杓也 卽北斗柄部的三顆星

楪子; 盛食物的小盤 楪 通碟

 

조불(祖佛)은 종래로 사람을 위하지 않거늘 각자 강계(疆界)를 지켜야 하리라. 조문(條文)이 있으면 조문을 당겨 오너라. () 원자각(*元字脚)을 기득(記得; 은 조사)하여 마음에 둔다면 지옥에 들어가기가 화살 같으리라. 납승이 금고(今古)에 머리 다투어 달린다 짚신만 답파(踏破)하나니 주장자를 요절(拗折)하고 발낭(鉢囊)을 높이 걸어라. 명경이 당대(當臺)하여 열상(列像)이 수이(殊異; )한 것을 떨어졌다. 깨어졌다. 거울을 타파하고 와야 너와 더불어 상견하리라. 하나하나 면남(面南; 얼굴을 남쪽으로 향함)하여 북두(*北斗)를 보아라 도리어 노승이 불전을 타고 산문을 나가는 것을 보느냐. 신라국 안에서 일찍이 상당(上堂)하였거늘 대당국 안에선 북도 치지 않았다. 두병(*斗柄)이 드리워졌지만 낙처도 알지 못하느냐. 어느 곳에 있느냐. 찾을 곳이 없나니 눈 멀었는가. 가석하다(可惜許). 완자(椀子; 사발. 는 조사. 과 같음)가 땅에 떨어지매 접자(*楪子)가 칠 팔 조각을 이룬다. 콧구멍을 염득(拈得)하고 입을 잃어버렸다 어느 속에서 이 소식을 얻어왔느냐. 과연 이러한가. 문득 때려주겠다.

 

元字脚; 문자와 언구를 가리킴. 안험컨대 선가에선 강력히 문자와 언구를 세우지 않음을 제창(提倡)하므로 인식하기를 문자와 언구에 집착하면 이는 오도의 장애임. 혹 이르되 원자각이란 것은 일자(一字)의 뜻이니 원자(元字)의 각()이 을자(乙字)며 을()과 일()은 동일한 획()인지라 고로 일()의 뜻.

北斗; 북방에 모여 이룬 두(; 구기)형의 7성을 가리킴. 약칭이 북두. 곧 북극에서 약 30도 떨어진 거리의 7성이니 천추ㆍ천선ㆍ천기ㆍ천권ㆍ옥형ㆍ개양ㆍ요광 등임. 천문학 중에선 대웅성(大熊星)으로 호칭하고 그 속명(俗名)은 탐랑성ㆍ거문성ㆍ녹존성ㆍ문곡성ㆍ염정성ㆍ무곡성ㆍ파군성 등이 됨.

斗柄; (; 북두 자루). 곧 북두 자루 부분의 세 알의 별.

楪子; 식물(食物)을 담는 소반(小盤). ()은 접(; 사발)과 통함.

 

釋迦老子出世 四十九年 未曾說一字 始從*光耀土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甞說一字 恁麽道 且道是說是不說 如今滿*龍宮*海藏 且作麽生是不說 豈不見*修山主道 諸佛不出世 四十九年說 達磨不西來 少林有妙訣 又道 諸佛不曾出世 亦無一法與人 但能觀衆生心 隨機應病 與藥施方 遂有三乘十二分敎 其實祖佛 自古至今 不曾爲人說 只這不爲人 正好參詳 山僧常說 若是添一句 *甜蜜蜜地 好好觀來 正是毒藥 若是劈脊便棒 *驀口便摑 推將出去 方始親切爲人 衲僧今古競頭走 到處是也問 不是也問 問佛問祖 問向上問向下 雖然如此 若未到這田地 也少不得 如明鏡當臺列像殊 只消一句 可辨明白 *古人道 萬象及森羅 一法之所印 又道 森羅及萬象 總在箇中圓 *神秀大師云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大滿云 他只在門外 雪竇恁麽道 且道在門內在門外 爾等諸人 各有一面古鏡 森羅萬象 長短方圓 一一於中顯現 爾若去長短處會 卒摸索不著 所以雪竇道 明鏡當臺列像殊 却須是一一面南看北斗 旣是面南 爲什麽却看北斗 若恁麽會得 方見百丈南泉相見處 此兩句頌百丈*挨拶處 丈云 我又不是大善知識 爭知有說不說 雪竇到此頌得 落在死水裏 恐人錯會 却自提起云 卽今目前斗柄垂 爾更去什麽處討 爾纔拈得鼻孔失却口 拈得口失却鼻孔了也

 

光耀土; 是本智所現境毘盧遮那所居土 此名光耀土也 [碧巖錄第二十八則種電鈔]

跋提河; 全稱阿恃多伐底河 阿恃多伐底 譯爲無勝 位於中印度拘尸那揭羅國 因釋尊涅槃於此河西岸而著稱 大唐西域記六稱之爲阿恃多伐底河 其下註 唐言無勝 此世共稱耳 舊云阿利羅跋提河 訛也 舊言謂之尸賴拏伐底河 譯曰有金河 [中阿含二十三水淨梵志經 慧琳音義二十五 翻譯名義集七]

龍宮; 龍王之宮殿 在大海之底 爲龍王之神力所化作 按海龍王經三請佛品 海龍王詣靈鷲山 聞佛陀說法 得信心歡喜 欲請佛至海中龍宮供養之 遂以神力化作宮殿 又按蓮華面經下 閻浮提及十方所有佛鉢及佛舍利 皆在婆伽羅龍王之宮中 又按菩薩處胎經七 摩訶摩耶經下 龍樹菩薩傳 賢首華嚴傳一等 龍宮中藏有勝妙之經典

海藏; 大海龍宮的寶藏

修山主; 五代後晉僧紹修 閩人 參羅漢桂琛得法 居撫州(今屬江西)龍濟山 世稱修山主 不務聚徒 而學者奔至 博學能文 有群經略要 及偈頌六十餘首傳世 [聯燈會要二十六 五燈會元八] 山主 卽一山之主 乃一寺住持之尊稱 例如傳燈錄二十四之撫州龍濟山主紹修禪師 廣燈錄二十八之杭州南山資國圓進山主 續傳燈錄十一之眞州定山惟素山主等 蓋寺院原多建於山林之間 寺稱山號 故住持稱山主 此外 亦稱禪林大寺院之上座爲山主 [象器箋稱呼類]

甜蜜蜜地; 甜蜜貌 地 助詞

驀口; 驀 當 正對著

古人道; 宗鏡錄二十九 法句經頌云 森羅及萬像 一法之所印

神秀; (605-706) 唐代僧 汴州(河南開封之南)尉氏人 俗姓李 身長八尺 尨眉秀目 有巍巍威德 少覽經史 博學多聞 旣剃染受法 尋師訪道 後至蘄州雙峰東山寺 參五祖弘忍 唐高宗上元二年(675)十月 弘忍示寂 師遷江陵當陽山玉泉寺傳法 緇徒靡然歸其德風 道譽大揚 則天武后聞之 召入內道場 特加敬重 敕於當陽山建度門寺 以表旌其德 中宗卽位亦厚重之 師嘗奏武后召請慧能 亦自裁書招之 慧能固辭 答己與嶺南有緣 遂不踰大庾嶺 禪門乃有南能北秀之稱 神龍二年二月示寂於洛陽天宮寺 壽一二 敕號大通禪師 爲禪門諡號最早者 [宋高僧傳八 傳燈錄四 五燈會元二]

大滿; 五祖弘忍諡號 弘忍(602-675) 唐代僧 東土禪宗第五祖 潯陽(江西九江)人 或謂蘄州(湖北蘄春)黃梅人 俗姓周 七歲 從四祖道信出家於蘄州黃梅雙峰山東山寺 唐永徽二年(651)五十一歲 道信入寂 乃繼承師席 世稱五祖黃梅 或僅稱黃梅 咸亨二年(671) 傳法於六祖慧能 師於高宗上元二年示寂 壽七十四 代宗敕諡大滿禪師 相傳著有五祖弘忍大師最上乘論一卷 或以爲僞作 [宋高僧傳八 傳燈錄三]

挨拶; 挨卽强進 拶卽逼迫之意 禪家問答應酬互相交換意見知識 以期相互勘驗悟道知見之深淺 作爲向上之資

 

석가노자가 출세하여 49년 동안 일찍이 한 글자도 설하지 않으셨다. 처음 광요토(*光耀土)로 좇아 마침인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이 두 중간에 일찍이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노라 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래 말하라 이 설()인가 이 불설(不說)인가. 여금에 용궁(*龍宮)에 가득하여 해장(*海藏)에 넘치거늘 또한 어찌하여(作麽生) 이 불설(不說)인가. 어찌 보지 못하는가 수산주(*修山主)가 말하되 제불이 출세하지 않으시고도/ 사십구 년을 설하셨으며/ 달마가 서래하지 않았더라도/ 소림에 묘한 비결이 있다 했으며 또 말하되 제불이 일찍이 출세하지 앟으셨으며 또한 1법도 사람에게 주심이 없다 하니 단지 능히 중생의 마음을 관()하여 근기를 따르고 병에 응해 약을 주고 방편을 베푸시어 드디어 삼승(三乘) 십이분교(十二分敎)가 있지만 기실(其實)은 조불(祖佛)이 옛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사람을 위해 설하지 않으셨다. 다만 이, 사람을 위하지 않는다 한 것을 바로 잘() 참상(參詳; 자세히 참구)할지니 산승이 늘 설하되 만약 곧() 1구를 더하여 첨밀밀지(*甜蜜蜜地)일지라도 매우 잘(好好) 관찰하여 온다면 이 독약이며 만약 이 등에다가 문득 몽둥이질 하고 입에다가(*驀口) 문득 후려치고는() 밀어내어 쫓아보내어야 비로소(方始) 친절하게 사람을 위함이라 했다. 납승이 금고(今古)에 머리 다투어 달린다 하니 도처(到處)에서 시()도 묻고 불시(不是)도 묻고 부처를 묻고 조사를 묻고 향상(向上)을 묻고 향하(向下)를 묻나니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마약 이 전지(田地; 경계)에 이르지 못하면 또한 조금도 얻지 못한다. 마치 명경이 당대(當臺)하매 열상(列像)이 수이(殊異)함과 같다 하여 다만 1구를 써서() 가히 명백을 분변했다. 고인이 말하되(*古人道) 만상 및 삼라(森羅)1법으로 인() 친 바라 하며 또 말하되 삼라 및 만상이 모두 개중(箇中; 이 중)에 있으면서 뚜렷하다()했다. 신수대사(*神秀大師)가 이르되 몸은 이 보리수며/ 마음은 명경대(明鏡臺)와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진애(塵埃; 티끌 먼지)를 야기(惹起)하지 말아라 하니 대만(*大滿)이 이르되 그(신수)는 다만 문 밖에 있다 하였다. 설두가 이러히 말함(명경이 當臺 운운)은 그래 말하라 문 안에 있음인가 문 밖에 있음인가. 너희 등 제인이 각기 1(; 量詞)의 고경(古鏡)이 있어서 삼라만상과 방원장단(長短方圓)의 하나하나가 가운데에(거울 가운데에) 환히 나타나지만 너희가 만약 장단처(長短處)로 가서 이회하려 한다면 마침내() 모색을 얻지 못한다(摸索不著). 소이로 설두가 말하되 명경이 당대하여 열상(列像)이 수이(殊異)한 것을 도리어 모름지기 이 하나하나(一一) 면남(面南; 얼굴을 남쪽으로 향함)하여 북두를 보아라 하니 이미 이 면남(面南)하였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북두를 보느냐. 만약 이러히 회득(會得)하면 바야흐로 백장과 남천이 상견한 곳을 보리라. 이 양구(兩句)는 백장의 애찰(*挨拶)한 곳을 송했음이니 백장이 이르되 나는 또 이 대선지식이 아니거늘 어찌 설()과 불설(不說)이 있는 줄 알겠는가 하였다. 설두가 여기에 이르러 송해 얻음이 사수(死水) 속에 떨어져 있는지라 사람들이 착회(錯會)핦까 염려하여 도리어 스스로 제기(提起)해 이르되 즉금 목전에 두병(斗柄)이 드리웠거늘 너희가 다시 어느 곳으로 가서 찾는가, 너희가 겨우 콧구멍을 염득(拈得)하면 입을 실각(失却)하고 입을 염득하면 콧구멍을 실각했다 하였다.

 

光耀土; 이것은 본지(本智)가 나타낸 바의 경계며 비로자나가 거처하는 바의 국토니 이 이름이 광요토임 [벽암록 제28칙 종전초].

跋提河; 전칭이 아시다벌지하(阿恃多伐底河). 아시다벌지(阿恃多伐底; Ajitavatī)는 무승(無勝)으로 번역하나니 중인도 구시나갈라국(拘尸那揭羅國)에 위치함. 석존이 이 강의 서쪽 언덕에서 열반함으로 인해 호칭이 저명함. 대당서역기6에선 이를 일컬어 아시다벌지하(阿恃多伐底河)라 했으며 그 아래 주() 당나라 말로 무승(無勝)이니 이는 세간의 공칭(共稱)이다. 구역(舊譯)에 이른 아리라발제하(阿利羅跋提河)는 잘못이다. 구역에 말해 이른 시뢰나벌지하(尸賴拏伐底河)는 번역해 가로되 유금하(有金河; 금이 있는 강)이다 [중아함23수정범지경. 혜림음의25. 번역명의집7].

龍宮; 용왕의 궁전. 대해의 바닥에 있으며 용왕의 신력으로 화작(化作)한 것이 됨. 해룡왕경3 청불품을 안험컨대 해룡왕이 영취산에 이르러 불타의 설법을 듣고 신심(信心)으로 환희를 얻었으며 불타를 초청해 해중의 용궁에 이르러 공양하려고 했음. 드디어 신력으로 궁전을 화작(化作)했음. 또 연화면경하(蓮華面經下)를 안험하니 염부제 및 시방에 있는 바 불발(佛鉢) 및 불사리가 모두 바가라용왕(婆伽羅龍王)의 궁중에 있다 함. 또 보살처태경7ㆍ마하마야경하ㆍ용수보살전ㆍ현수의 화엄전1 등을 안험컨대 용궁 중에 승묘(勝妙)한 경전이 저장되어 있다 함.

海藏; 대해 용궁의 보장(寶藏).

修山主; 오대 후진승(後晉僧) 소수(紹修)니 민() 사람. 라한계침을 참해 득법했고 무주(撫州; 지금 강서에 속함) 용제산(龍濟山)에 거주했음. 세칭이 수산주(修山主). 도중을 모음에 힘쓰지 않았지만 학자가 분주히 이르렀음. 박학하고 글에 능했음. 군경약요(群經略要) 및 게송 60여 수가 있어 세상에 전함 [연등회요26. 오등회원8]. 山主 1산의 주인이니 곧 1()의 주지의 존칭임. 예여(例如) 전등록24의 무주 용제산주 소수선사(紹修禪師)ㆍ광등록28의 항주 남산 자국 원진산주(圓進山主)ㆍ속전등록11의 진주 정산 유소산주(惟素山主) 등임. 대개 사원은 원래 산림의 사이에 많이 건립했고 사()를 산호(山號)로 일컬은지라 고로 주지를 일컬어 산주라 함. 이 밖에 또한 선림의 대사원의 상좌를 일컬어 산주라 함 [상기전칭호류].

甜蜜蜜地; 첨밀(甜蜜; 달콤함)한 모양. ()는 조사.

驀口; ()은 당(), 정대착(正對著).

古人道; 종경록29 법구경 송에 이르되 삼라 및 만상이 1법으로 인() 친 것이다(森羅及萬像 一法之所印).

神秀; (605-706) 당대승. 변주(하남 개봉의 남) 울지(尉氏)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이(). 신장이 8척이며 큰 눈썹에 빼어난 눈(尨眉秀目)이었으며 외외(巍巍)한 위덕(威德)이 있었음. 어릴 적에 경사(經史)를 열람했고 박학다문(博學多聞)했음. 이미 체염(剃染)하고 수법(受法)하고는 스승을 찾고 도를 물었음. 후에 기주(蘄州)의 쌍봉산(雙峰山) 동산사(東山寺)에 이르러 5조 홍인(弘忍)을 참알(參謁)했음. 당 고종 상원(上元) 2(675) 10월에 홍인이 시적하자 스님이 강릉(江陵) 당양산(當陽山) 옥천사(玉泉寺)로 옮겨 전법(傳法)했음. 치도(緇徒; 僧徒)가 쓰러질 듯 그의 덕풍(德風)에 귀의했고 도예(道譽)를 크게 드날렸음.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이를 듣고 내도량(內道場)에 불러들여 특별히 경중(敬重)을 더했으며 칙령으로 당양산(當陽山)에 도문사(度門寺)를 세워 그의 덕을 표정(表旌)했음. 중종이 즉위하자 또한 그를 후중(厚重)하였음. 스님이 일찍이 무후(武后)에게 아뢰어 혜능(慧能)을 소청(召請)하게 했으며 또한 스스로 서신을 지어 그를 초청했지만 혜능이 고사(固辭)하며 답하기를 자기는 영남(嶺南)에 인연이 있다 하며 드디어 대유령(大庾嶺)을 넘지 않았음. 선문에 남능북수(能北秀之)의 호칭이 있음. 신룡(神龍) 22월에 낙양의 천궁사(天宮寺)에서 시적했으니 나이는 102. 칙호(敕號)가 대통선사(大通禪師)니 선문에서 시호의 가장 이른() 자가 됨 [송고승전8. 전등록4. 오등회원2].

大滿; 5조 홍인의 시호임. 홍인(弘忍) (602-675) 당대승. 동토 선종 제5. 심양(潯陽; 강서 九江) 사람이니 혹은 이르기를 기주(蘄州; 호북 蘄春) 황매(黃梅) 사람이라 함. 속성(俗姓)은 주(). 7세에 4조 도신(道信)을 좇아 기주(蘄州) 황매(黃梅) 쌍봉산(雙峰山)의 동산사(東山寺)에서 출가했음. () 영휘(永徽) 2(651) 51세에 도신이 입적(入寂)하자 이에 사석(師席)을 계승(繼承)했음. 세칭이 오조황매(五祖黃梅)며 혹은 다만 명칭이 황매(黃梅). 함형(咸亨) 2(671) 6조 혜능(慧能)에게 전법(傳法)했으며 스님은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4. 대종(代宗)이 칙시(敕諡)하여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했음. 서로 전()하기를 저서(著書)에 오조홍인대사최상승론(五祖弘忍大師最上乘論) 1권이 있다 하지만 혹은 위작(僞作)이라 하기도 함 [송고승전8. 전등록3].

挨拶; ()는 곧 강력히 전진함이며 찰()은 곧 핍박의 뜻. 선가가 문답하고 응수하면서 호상 의견과 지식을 교환하며 상호 오도의 지견의 심천(深淺)을 감험하여 향상의 자량(資糧)을 만듦을 기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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