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著遊五臺 至中路荒僻處 文殊化一寺 接他宿 遂問 近離甚處 著云 南方 殊云 南方佛法 如何住持 著云 末法比丘 少奉戒律 殊云 多少衆 著云 或三百或五百 無著却問文殊 此間如何住持 殊云 凡聖同居龍蛇混雜 著云 多少衆 殊云 前三三後三三 却喫茶 文殊擧起*玻璃*盞子云 南方還有這箇麽 著云 無 殊云 尋常將什麽喫茶 著無語 遂辭去 文殊令*均提童子 送出門首 無著問童子云 適來道前三三後三三 是多少 童子云 大德 著應喏 童子云 是多少 又問 此是何寺 童子指*金剛後面 著回首 化寺童子 悉隱不見 只是空谷 彼處後來謂之金剛窟 後有僧問風穴 如何是*淸涼山中主 穴云 一句不遑無著問 迄今猶作*野盤僧 若要參透平平實實 脚踏實地 向無著言下薦得 自然居鑊湯爐炭中 亦不聞熱 居寒氷上亦不聞冷 若要參透使孤危峭峻 如金剛王寶劍 向文殊言下薦取 自然水灑不著風吹不入 不見*漳州地藏問僧 近離甚處 僧云 南方 藏云 彼中佛法如何 僧云 商量浩浩地 藏云 爭似我這裏種田*博飯喫 且道與文殊答處 是同是別 有底道 無著答處不是 文殊答處 也有龍有蛇 有凡有聖 有什麽交涉 還辨明得前三三後三三麽 前箭猶輕後箭深 且道是多少 若向這裏透得 千句萬句 只是一句 若向此一句下 截得斷把得住 *相次間到這境界
● 玻璃; 又作頗梨 七寶之一 金剛經註解二 疏鈔云 七寶者 金 銀 琉璃 珊瑚 瑪瑙 赤眞珠 玻璃
●盞子; 卽盞 子 後綴
●均提; 文殊之侍者名
●淸涼山; 山西五臺山之別稱 此山歲積堅冰 夏仍飛雪 無炎暑 故稱淸涼
●金剛; 此指天名 持金剛杵之力士 謂之金剛 執金剛之略名 寺院中之四天王像 俗稱爲四大金剛 ▲行宗記二上 金剛者 卽侍從力士 手持金剛杵 因以爲名
●野盤僧; 指到處遊方 奔走于各地寺院的行脚僧 野盤 盤旋草野之意
●漳州地藏; 地藏桂琛 桂琛(867-928) 五代僧 常山(位於浙江)人 俗姓李 夙有出塵之志 依萬歲寺無相大師剃髮受戒 專學毘尼 然以持戒束身非解脫之道 乃轉志遊方 參訪南宗諸師 先謁雪峰義存 參訊禪要 惜無所見 至福州玄沙師備座下 得一言啓發 廓爾脫落衆惑 時漳州州牧於閩城西方石山建地藏院 請師演法 駐錫十八年 學徒集者二百餘人 後住漳州羅漢院 大闡玄要 南北參徒臻湊 契機開悟者不知其數 世人尊以羅漢桂琛之號 唐天成三年秋示疾 安坐數日告終 享年六十二 僧臘四十 諡號眞應禪師 弟子有淸涼文益 龍濟紹修等多數 [五燈會元八 宋高僧傳十三]
●博飯; 博 換 交換 又討取 謀求
●相次間; 俄頃
무착이 오대산을 유행(遊行)하다가 중로(中路)의 황벽(荒僻)한 곳에 이르렀는데 문수가 1사(寺)를 화작(化作)하여 그를 접대하여 숙박케 하고 드디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무착이 이르되 남방입니다. 문수가 이르되 남방의 불법은 어떻게 주지하는가. 무착이 이르되 말법의 비구인지라 계율을 봉지함이 적습니다. 문수가 이르되 대중은 얼마인가. 무착이 이르되 혹 3백이며 혹 5백입니다.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묻되 차간(此間)에선 어떻게 주지합니까. 문수가 이르되 범성이 동거하고 용사가 혼잡하다. 무착이 이르되 대중은 얼마입니까. 문수가 이르되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이다. 도리어 차를 먹다가 문수가 파리잔자(*玻璃*盞子)를 들어 일으키고 이르되 남방에도 도리어 이것(這箇)이 있느냐. 무착이 이르되 없습니다. 문수가 이르되 심상(尋常; 평상시)에 무엇을 가지고 차를 먹는가. 무착이 말이 없었다. 드디어 고별(辭)하고 떠나자 문수가 균제동자(*均提童子)로 하여금 문수(門首; 문 앞)까지 송출(送出; 전송해 보냄)하게 하였다. 무착이 동자에게 물어 이르되 적래(適來; 아까)에 말한 전삼삼후삼삼은 이 얼마인가. 동자가 이르되 대덕(大德)님. 무착이 응낙(應喏)하자 동자가 이르되 이 얼마입니까. 또 묻되 이것은 이 어떤 절이냐. 동자가 금강(*金剛)의 후면을 가리켰다. 무착이 머리를 돌리자 화사(化寺)와 동자가 모두 은몰(隱沒)하여 보이지 않았고 다만 이 빈 계곡인지라 그곳을 후래에 금강굴이라 일컬었다. 후에 어떤 중이 풍혈(風穴)에게 묻되 무엇이 이 청량산(*淸涼山) 가운데의 주인입니까. 풍혈이 이르되 1구(句)를 급하지 않게 무착에게 물으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야반승(*野盤僧)이 되었다 했다. 만약 평평실실(平平實實; 平實의 疊語니 平常의 穩實)을 참투(參透)하여 발이 실지(實地)를 밟고자 한다면 무착의 언하(言下)를 향해 천득(薦得; 領悟)하면 자연히 확탕노탄(鑊湯爐炭) 가운데 거처하더라도 또한 뜨거움을 듣지 않으며 한빙(寒氷) 위에 거처하더라도 또한 차가움을 듣지 않으려니와 만약 참투(參透)하여 고위초준(孤危峭峻)함이 금강왕보검과 같게 하고자 한다면 문수의 언하를 향하여 천취(薦取; 領悟)하면 자연히 물을 뿌려도 붙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보지 못하는가, 장주지장(*漳州地藏)이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중이 이르되 남방입니다. 지장이 이르되 그 가운데의 불법이 어떠하던가. 중이 이르되 상량(商量)이 호호지(浩浩地)입니다. 지장이 이르되 어찌 나의 이 속의 밭에 씨 뿌려 밥과 바꾸어(*博飯) 먹음과 같으리오 하였으니 그래 말하라 문수의 답한 곳과 이 같은가 이 다른가. 어떤 이(有底)는 말하되 무착이 답한 곳은 옳지 못하고 문수가 답한 곳은 또한 용도 있고 뱀도 있꼬 범부도 있고 성인도 있다 하나니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도리어 전삼삼후삼삼을 변명(辨明)함을 얻겠느냐. 전전(前箭; 凡聖同居 龍蛇混雜)은 오히려 가볍지만 후전(後箭; 前三三後三三)이 깊나니 그래 말하라 이것(是; 전삼삼후삼삼)이 얼마인가. 만약 이 속을 향해 투득하면 천구만구(千句萬句)가 다만 이 1구(句)니 만약 이 1구 아래를 향해 잘라 끊음을 얻고 잡아 머묾을 얻는다면 상차간(*相次間; 잠깐 사이)에 이 경계에 이를지니라.
● 玻璃; 또 파리(頗梨; 梵 sphaṭika)로 지음. 7보의 하나. 금강경주해2. 소초(疏鈔)에 이르되 7보(寶)란 것은 금ㆍ은ㆍ유리ㆍ산호ㆍ마노ㆍ적진주ㆍ파리(玻璃)다.
●盞子; 곧 잔(盞)이니 자(子)는 후철(後綴).
●均提; 문수의 시자 이름.
●淸涼山; 산서(山西) 오대산의 별칭. 이 산은 해마다 견고한 얼음이 쌓여 여름에도 그대로 눈이 날리면서 염서(炎暑)가 없는지라 고로 명칭이 청량임.
●金剛; 여기에선 천명(天名)을 가리킴이니 금강저(金剛杵)를 가진 역사를 일컬어 금강이라 함. 집금강(執金剛)의 약명(略名)이니 사원 중의 사천왕상을 속칭 사대금강이라 함. ▲행종기2상. 금강이란 것은 곧 시종하는 역사니 손에 금강저를 가진지라 인하여 이름한다.
●野盤僧; 도처에 유방(遊方)하면서 각지의 사원으로 분주하는 행각승을 가리킴. 야반(野盤)은 초야에 반선(盤旋; 徘徊)함의 뜻.
●漳州地藏; 지장계침임 계침(桂琛) (867-928) 오대승. 상산(절강에 위치함) 사람이며 속성은 이(李). 일찍이 출진(出塵. 俗塵을 벗어남)의 뜻이 있었으며 만세사 무상대사에게 의지해 머리 깎고 수계했음. 비니(毘尼; 律)를 오로지 배웠는데 그러나 지계(持戒)는 몸을 구속하고 해탈의 도가 아니라 하여 이에 뜻을 돌려 유방(遊方)하면서 남종(南宗)의 여러 스님을 참방했음. 먼저 설봉의존을 참알하여 선요(禪要)를 참신(參訊; 參問)했으나 아깝게도 보는 바가 없었음. 복주의 현사사비(玄沙師備)의 좌하(座下)에 이르러 1언의 계발(啓發)을 얻자 휑하게 온갖 의혹을 탈락(脫落)했음. 때에 장주(漳州)의 주목(州牧)이 민성(閩城)의 서쪽 방석산(方石山)에 지장원(地藏院)을 건립하고 스님에게 청하여 법을 연설케 했음. 주석하기 18년에 학도로 모인 자가 2백여 사람이었음. 후에 장주 라한원(羅漢院)에 주지하면서 현요(玄要)를 크게 열자 남북의 참도(參徒)가 진주(臻湊. 이르러 모임)하여 계기(契機)하여 개오(開悟)한 자는 그 수를 알지 못함. 세인이 라한계침(羅漢桂琛)의 호로써 존경했음. 당 천성(天成) 3년 가을에 질환을 보이더니 안좌(安坐)하기 며칠 만에 종말을 고했음. 향년은 62며 승랍은 40이며 시호는 진응선사. 제자에 청량문익ㆍ용제소수 등 다수가 있음 [오등회원18. 송고승전13].
●博飯; 박(博)은 환(換), 교환. 또 토취(討取), 모구(謀求).
●相次間; 아경(俄頃; 조금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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