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36칙 본칙 평창

태화당 2021. 8. 26. 08:19

三六*長沙 一日遊山 歸至門首今日一日 只管落草 前頭也是落草 後頭也是落草 首座問 和尙什麽處去來也要勘過這老漢 箭過新羅 沙云 遊山來不可落草 敗缺不少 草裏漢 首座云 到什麽處來拶 若有所至未免落草 相牽入火坑 沙云 始隨芳草去 又逐落花回漏逗不少 元來只在荊棘林裏坐 座云 大似春意相隨來也 將錯就錯 一手擡一手搦 沙云 也勝秋露滴*芙蕖土上加泥 前箭猶輕後箭深 有什麽了期 雪竇著語云 謝答話*一火弄泥團漢 三箇一狀領過

 

長沙; 長沙景岑 景岑(?-868) 唐代僧 幼年出家 參南泉普願 嗣其法 初住長沙(湖南)鹿苑寺 其後居無定所 但隨緣接物 隨宜說法 復住湖南長沙 大宣敎化 時人稱爲長沙和尙 師機鋒峻峭 與仰山對話中 曾踏倒仰山 仰山謂如大蟲()之暴亂 故諸方稱其爲岑大蟲 諡號招賢大師 [祖堂集十七 聯燈會要六 佛祖歷代通載十七]

芙蕖; 芙 芙蓉 也作芙蕖 荷花的別名 蕖 芙蕖 荷花的別名

一火; 一伙 一群

 

三六()하다. 장사(*長沙)가 어느 날 유산(遊山)하다가 돌아와 문수(門首; 門前)에 이르니 금일은 1일이라 하여 다만 낙초(落草)를 관대(管帶)하니 전두(前頭)도 또한 이 낙초며 후두도 또한 이 낙초로다. 수좌가 묻되 화상은 어느 곳에 갔다 오십니까. 또한 이 노한을 감과(勘過; 는 조사)하고자 함이다. 화살이 신라를 지나갔다. 장사가 이르되 유산하고 왔다. 낙초(落草)함은 옳지 못하나니 패결(敗缺; 受挫)이 적지 않는지라 초리한(草裏漢)이다. 수좌가 이르되 어느 곳에 이르렀다가 오십니까. (; 逼拶. 핍박)하는구나. 만약 이르는() 곳이 있으면 낙초를 면하지 못하리라. 서로 끌며 화갱(火坑)에 들어간다. 장사가 이르되 처음에 방초(芳草)를 따라갔다가 또 낙화를 쫓아 돌아왔다. 누두(漏逗; 泄漏)가 적지 않다. 원래 다만 형극림 속에 있으면서 앉았구나. 수좌가 이르되 춘의(春意)와 매우 흡사합니다. 서로 따라온다.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간다. 한 손은 들어 올리고 한 손은 눌렀다. 장사가 이르되 또한 추로(秋露)가 부거(*芙蕖; 연꽃)에 방울짐보다는 낫다. 흙 위에 진흙을 더하는구나. 전전(前箭; 初答)은 오히려 가볍거니와 후전(後箭; 今答)이 깊다. 무슨 마칠 기약이 있으리오. 설두가 착어하여 이르되 답화(答話; 에 답함)에 감사한다. 일화(*一火)의 진흙덩이 희롱하는 자들이니 세 개(장사ㆍ수좌ㆍ설두)를 일장영과(一狀領過)한다.

 

長沙; 장사경잠임. 경잠(景岑) (?-868) 당대승. 유년에 출가했고 남천보원(南泉普願)을 참알해 그의 법을 이었음. 처음엔 장사(호남) 녹원사(鹿苑寺)에 주()했고 그 후엔 거처에 정한 곳이 없었으며 다만 인연 따라 사람을 접화(接化)하고 마땅함을 따라 설법했음. 다시 호남의 장사(長沙)에 머물면서 교화를 대선(大宣)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칭명(稱名)하여 장사화상이라 했음. 스님의 기봉이 준초(峻峭)하여 앙산과 대화하던 중에 일찍이 앙산을 답도(踏倒)하자 앙산이 이르되 마치 대충(大蟲. )의 폭란(暴亂)과 같다 한지라 고로 제방에서 그를 일컬어 잠대충이라 했음. 시호는 초현대사(招賢大師) [조당집17. 연등회요6. 불조역대통재17].

芙蕖; ()는 부용(芙蓉)이니 또 부거(芙蕖)로 지음. 연꽃의 별명. ()는 부거니 연꽃의 별명.

一火; 일화(一伙)니 일군(一群).

 

長沙鹿苑招賢大師 法嗣南泉 與趙州紫胡輩同時 機鋒敏捷 有人問敎 便與說敎 要頌便與頌 爾若要作家相見 便與爾作家相見 仰山尋常機鋒 最爲第一 一日同長沙翫月次 仰山指月云 人人盡有這箇 只是用不得 沙云*恰是 便*用那 仰山云 爾試用看 沙一踏踏倒 仰山起云 師叔一似箇大蟲 後來人號爲岑大蟲 因一日遊山歸 首座亦是他會下人 便問 和尙什麽處去來 沙云 遊山來 座云 到什麽處去來 沙云 始隨芳草去 又逐落花回 須是坐斷十方底人始得 古人出入未甞不以此事爲念 看他賓主互換 當機直截 各不相饒 旣是遊山 爲什麽却問道 到什麽處去來 若是如今禪和子 便道到夾山亭來 看他古人 無絲毫道理計較 亦無住著處 所以道 始隨芳草去 又逐落花回 首座便隨他意向他道 大似春意 沙云 也勝秋露滴芙蕖 雪竇云 謝答語 *代末後語也 也落兩邊 畢竟不在這兩邊 昔有張拙秀才 看*千佛名經 乃問 百千諸佛 但聞其名 未審居何國土 還化物也無 沙云 *黃鶴樓*崔顥題詩後 秀才曾題也未 拙云 未曾題 沙云 得閑題取一篇也好 岑大蟲平生爲人 直得珠回玉轉 要人當面便會 頌云

 

恰是; 恰 適當也 却也

; 七政切 借也

代末後語; 代首座末後無語處

千佛名經; 有過去莊嚴劫千佛名經 現在賢劫千佛名經 未來星宿劫千佛名經等三部經書 合稱三劫三千佛名經 經書譯者不詳 僅知譯於南朝梁代(502-557) 收於大正藏第十四冊 三部經書各各列出千佛之名 竝說明懺悔滅罪與稱佛名號之功德

黃鶴樓; 樓名 在湖北省武昌西南邊

崔顥題詩; 崔顥(704-754) 唐代詩人 開元中進士 累官司勳員外郞 天寶十三載卒 禪門拈頌集第四九二則 拈頌說話云 黃鶴樓崔顥題云云者 崔顥詩云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烟波江上使人愁 李白題云 眼前有景不能道 崔顥題詩在上頭 則崔顥題詩 古今絶唱 無人繼得 題詩 題 寫上 簽署 如題詩 題字

 

장사(長沙) 녹원(鹿苑)의 초현대사(招賢大師; 景岑의 시호)는 법을 남천에게서 이었으므로 조주ㆍ자호(紫胡) 무리와 동시(同時). 기봉이 민첩하여 교()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곧 교를 설해 주고 송을 요구하면 곧 송을 주고 그가 만약 작가로 상견하기를 요구하면 곧 그에게 작가로 상견하여 주었다. 앙산이 심상(尋常; 평일)에 기봉이 가장 제일이라 하였는데 어느 날 장사와 함께 달 구경하는 차에 앙산이 달을 가리키며 이르되 사람마다 모두 이것(這箇)이 있지만 다만 이 씀을 얻지 못한다. 장사가 이르되 흡시(*恰是)거늘(이것으로 흡족하거늘) 곧 너의 씀을 빌리겠는가(*). 앙산이 이르되 네가 시험삼아 써 보아라. 장사가 한 번 밟아 밟아 거꾸러뜨렸다. 앙산이 일어나며 이르되 사숙(師叔)이 저() 대충(大蟲; )과 일사(一似; 똑같음)하다. 후래에 사람들이 호하여 잠대충(岑大蟲)이라 했다. 인하여 어느 날 유산(遊山)하다가 돌아오니 수좌도 또한 이 그(장사)의 회하(會下)의 사람이므로 곧 묻되 화상은 어느 곳에 갔다 오십니까. 장사가 이르되 유산하다가 왔다. 수좌가 이르되 어느 곳에 이르러 갔다 오십니까. 장사가 이르되 처음 방초를 따라갔다가 또 낙화를 쫓아 돌아왔다 하니 반드시 이는 시방(十方)의 사람을 좌단()해야 비로소 옳다. 고인은 출입함에도 미상불(未甞不; 아닌 게 아니라) 차사(此事; 종문의 일대사)로 생각을 삼았나니 저 빈주(賓主)의 호환(互換)을 보아라, 당기(當機)하여 직절(直截)하고 각기 서로 용납()하지 않는다. 이미 이 유산(遊山)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물어 말하되 어느 곳에 이르러 갔다 오십니까 하였는가. 만약 이 여금의 선화자(禪和子)일진대 곧 말하되 협산정(夾山亭)에 이르렀다가 왔다 하리라. 저 고인을 보건대 실터럭만큼의 도리와 계교(計較)가 없으며 또한 주착처(住著處)도 없는지라 소이로 말하되 처음 방초를 따라 갔다가 또 낙화를 쫓아 돌아왔다 하니 수좌가 곧 그의 뜻을 따라 그를 향해 말하되 춘의(春意)와 매우 흡사합니다. 장사가 이르되 또한 추로(秋露)가 부거(芙蕖)에 방울짐보다 낫다 하였다. 설두가 이르되 답화(答語)에 감사한다 하니 말후의 말(*代末後語)에 대신함이며 또한 양변(兩邊; 賓主)에 떨어진 것이나 필경 이 양변에 있음도 아니다. 지난날 장졸수재(張拙秀才)가 있어 천불명경(*千佛名經)을 보고서 이에 묻되 백천제불(百千諸佛)이 단지 그 이름만 들으니 미심합니다, 어떤 국토에 거주하며 도리어 중생()을 교화하십니까 또는 아닙니까. 장사가 이르되 황학루(*黃鶴樓)를 최호가 제시(*崔顥題詩)한 후 수재가 일찍이 제()했는가 또는 아닌가. 장졸이 이르되 일찍이 제()하지 못했습니다. 장사가 이르되 한가함을 얻거든 1()을 제취(題取)함도 또한 좋으니라. 잠대충의 평생 사람을 위함이 바로 주회옥전(珠回玉轉)을 얻은지라 사람들에게 당면(當面)에 곧 이회하기를 요했다. 송운(頌云)

 

恰是; ()은 적당(適當). (; 도리어).

; 칠정절(七政切; )이며 차().

代末後語; 수좌가 말후에 말이 없은 곳을 대()함임.

千佛名經; 과거장엄겁천불명경ㆍ현재현겁천불명경ㆍ미래성수겁천불명경 등 3부의 경서(經書)가 있으며 합칭하여 삼겁삼천불명경(三劫三千佛名經)이라 함. 경서(經書)의 역자는 불상이나 다만 남조 양대(502-557)에 번역했음을 앎. 대정장 제14책에 수록되었고 3부의 경서에 각각 천불의 이름을 열출(列出)했으며 아울러 참회멸죄와 칭불명호(稱佛名號)의 공덕을 설명했음.

黃鶴樓; 누명(樓名)이니 호북 무창 서남변에 있음.

崔顥題詩; 崔顥(704-754) 당대 시인. 개원(開元) 중 진사(進士)며 누관(累官; 공을 쌓아 升官)하여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이 되었고 천보 13()에 마쳤음. 선문염송집 제492. 염송설화에 이르되 황학루최호제 운운한 것은 최호(崔顥)의 시에 이르되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고/ 이 땅에 공연히 황학루만 남았다/ 황학은 한 번 가자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백운만 천재(千載)에 공연히 유유(悠悠)하다/ 청천(晴川; 해가 비치는 漢江)엔 역력한 한양수(漢陽樹; 은행나무)/ 방초(芳草)가 처처(萋萋; 초목이 무성한 모양)한 앵무주(鸚鵡洲)/ 일모(日暮)에 향관(鄕關)은 어느 곳이 이것이냐/ 연파(烟波)의 강 위에서 사람을 수심케 하네. 이백(李白)이 제()하여 이르되 눈 앞에 풍경이 있으나 능히 말하지 못하나니 최호의 제시(顥題)가 상두(上頭)에 있다. 곧 최호의 제시가 고금의 절창(絶唱)이라 계득(繼得)할 사람이 없음. 題詩 ()는 사상(寫上; 위에 서사함). 첨서(簽署; 문건에 자기의 이름을 쓰고 수결을 둠). 예컨대() 제시(題詩). 제자(題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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