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峰*盤屈色如藍還見文殊麽 誰謂文殊是對談設使普賢也不顧 蹉過了也 *堪笑淸涼多少衆且道笑什麽 已在言前 前三三與後三三試請脚下辨看 爛泥裏有刺 碗子落地楪子成七片
●盤屈; 盤曲
●堪笑; 可笑 堪 可也
천봉(千峰)이 반굴(*盤屈)하고 색이 쪽(藍)과 같거늘 도리어 문수를 보느냐. 누가, 문수가 이 대담(對談)한다고 이르리오 설사 보현일지라도 또한 돌아보지 않는다. 차과(蹉過; 놓침)했다. 가히 우습구나(*堪笑) 청량의 다소중(多少衆)이여 그래 말하라 무엇을 웃느냐. 이미 언전(言前)에 있다. 전삼삼과 후삼삼이로다 시험삼아 청하노니 각하(脚下)를 분변해 보아라. 문드러진 진흙 속에 가시가 있다. 완자(碗子; 사발)가 땅에 떨어지매 접자(楪子; 小盤)가 일곱 조각을 이룬다.
●盤屈; 반곡(盤曲; 얽히어 꼬불꼬불함)
●堪笑; 가소(可笑)니 감(堪)은 가(可)임.
千峰盤屈色如藍 誰謂文殊是對談 有者道 雪竇只是重拈*一遍 不曾頌著 只如僧問法眼 如何是曹源一滴水 眼云 是曹源一滴水 又*僧*瑯瑘覺和尙 淸淨本然云何忽生山河大地 覺云 淸淨本然云何忽生山河大地 不可也喚作重拈一遍 明招獨眼龍 亦頌其意 有蓋天蓋地之機 道 *廓周沙界勝*伽藍 滿目文殊是對談 言下不知開佛眼 回頭只見翠山巖 廓周沙界勝伽藍 此指草窟化寺 所謂有權實雙行之機 滿目文殊是對談 言下不知開佛眼 回頭只見翠山巖 正當恁麽時 喚作文殊普賢觀音境界得麽 要且不是這箇道理 雪竇只改明招底用 却有*針線 千峰盤屈色如藍 更不傷鋒犯手 句中有權有實 有理有事 誰謂文殊是對談 一夜對談 不知是文殊 後來無著 在五臺山作典座 文殊每於粥鍋上現 被無著拈攪粥篦便打 雖然如是 也是賊過後張弓 當時等他道南方佛法如何住持 劈脊便棒 猶較些子 堪笑淸涼多少衆 雪竇笑中有刀 若會得這笑處 便見他道前三三與後三三
●一遍; 遍 量詞 次 回
●僧; 指子璿(965-1038) 北宋華嚴宗僧 杭州錢塘(一說秀州嘉興)人 俗姓鄭 號東平 又稱長水大師 九歲師事普慧寺契宗 誦楞嚴經 十三歲受具足戒 初從秀州洪敏學華嚴之敎 後參瑯琊慧覺(臨濟下六世)而有所省悟 慧覺敎其返故居 弘闡華嚴 乃住長水寺 設講席 以華嚴楞嚴授徒 從學徒衆 幾及一千 有宋一代 華嚴宗之再振 師居功甚偉 大中祥符六年(1013) 翰林學士錢公易奏賜紫衣 署號長水疏主楞嚴大師 著有首楞嚴義疏注經二十卷 首楞嚴經科二卷 金剛般若經纂要科一卷 大乘起信論筆削記二十卷等行世 寶元元年示寂 壽七十四 [釋門正統八 佛祖統紀二十九 五燈會元十二 釋氏稽古略四]
●瑯瑘覺; 瑯瑘慧覺 慧覺 北宋臨濟宗僧 西洛人 弱冠時 父爲衡陽太守 因疾而歿於任地 師扶靈柩自衡陽歸洛 過澧州藥山古寺 宛若宿居於此 遂緣此出家 復遊方參學 得法於汾陽善昭 後住滁州瑯琊山 大振臨濟宗風 世稱瑯琊慧覺 同時 明州雪竇重顯 唱雲門之法道 時人稱二甘露門 及今淮南地區猶蒙其遺化 其餘事蹟與生卒年皆未詳 [釋氏稽古略四 聯燈會要十二 續傳燈錄三 禪宗正脈十二]
●廓周沙界勝伽藍; 廣淸涼傳中 無著和尙愒曰 廓周沙界聖伽藍 滿目文殊接話譚 言下不知開何印 迴頭秖見舊山巖
●沙界; 恆河沙之世界 恒河沙者多數之喩 ▲金剛經 諸恆河所有沙數佛世界 如是寧爲多不
●伽藍; 僧伽藍摩之略 譯曰衆園 爲僧衆所住之園庭 寺院之通稱也 [十誦律三十四 大毘婆沙論九十九]
●針線; 指縫紉刺繡等工作
천봉(千峰)이 반굴(盤屈)하고 색이 쪽(藍)과 같거늘 누가, 문수가 이 대담(對談)한다고 이르리오 한 것을 어떤 자는 말하되 설두가 다만 이 1편(*一遍) 중념(重拈)한 것이며 일찍이 송착(頌著; 著은 조사)한 게 아니라 하나니 지여(只如) 중이 법안에게 묻되 무엇이 이 조원(曹源)의 한 방울 물입니까. 법안이 이르되 이것이 조원의 한 방울 물이다. 또 중(*僧)이 낭야각(*瑯瑘覺) 화상에게 묻되 청정하여 본연(本然)이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겨 났습니까(此句는 릉엄경4에 나옴). 각(覺)이 이르되 청정하여 본연(本然)이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겨 나리오 한 것을 또한 1편(遍) 중념(重拈)이라고 불러 짓는 것은 옳지 못하다. 명초(明招) 독안용(獨眼龍)이 또한 그 뜻을 송했는데 개천개지(蓋天蓋地)의 기(機)가 있나니 말하되 사계를 확주한 수승한 가람이여(*廓周*沙界勝*伽藍)/ 눈 가득히 문수의 이 대담이로다/ 언하에 불안(佛眼)을 열 줄은 알지 못하지만/ 머리 돌리매 다만 푸른 산의 바위만 보인다. 사계를 확주한 수승한 가람이여 라고 한 것은 이것은 초굴(草窟)인 화사(化寺)를 가리킴이니 이른 바 권실(權實)을 쌍행(雙行)하는 기(機)가 있음이며 눈 가득히 문수의 이 대담이로다 언하에 불안(佛眼)을 열 줄은 알지 못하지만 머리 돌리매 다만 푸른 산의 바위만 보인다 한 것은 바로 임마시(恁麽時; 千峰이 盤屈하고 색이 쪽과 같은 시절)에 해당되나니 문수ㆍ보현ㆍ관음의 경계라고 불러 지음을 얻겠는가. 요차(要且; 도리어, 그러나) 이는 이런(這箇; 문수ㆍ보현ㆍ관음의 경계) 도리가 아니다. 설두가 다만 명초(明招)의 것(底)을 고쳐 썼으니 도리어 침선(*針線)이 있다. 천봉(千峰)이 반굴(盤屈)하고 색이 쪽과 같거늘 이라 하니 다시 칼날을 상하거나 손을 다치지(犯; 損壞) 않고 구중(句中)에 유권유실(有權有實)하고 유리유사(有理有事)하다. 누가, 문수가 이 대담한다고 이르리오 하니 하룻밤을 대담하되 이 문수인 줄 알지 못함이다. 후래에 무착이 오대산에 있으면서 전좌(典座)가 되었는데 문수가 매번 죽과(粥鍋; 죽 솥) 위에 나타나다가 무착의, 교죽비(攪粥篦; 죽을 젓는 주걱)를 잡아 문득 때림을 입었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또한 이 도적이 지나간 후에 활을 당김이다. 당시에 그가 남방의 불법은 어떻게 주지하는가 하고 말함을 기다렸다가(等) 등에다가(劈脊) 문득 몽둥이질하였더라면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였으리라. 가히 우습노니 청량의 다소중(多少衆)이여 하니 설두의 웃음 중에 칼이 있다. 만약 이 소처(笑處)를 회득(會得)한다면 곧 그(문수)가 말한 전삼삼후삼삼을 보리라.
●一遍; 편(遍)은 양사니 차(次), 회(回).
●僧; 자선(子璿; 965-1038)을 가리킴. 북송 화엄종승. 항주 전당(錢塘; 일설엔 秀州 嘉興)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정(鄭)이며 호는 동평(東平)이며 또 호칭이 장수대사(長水大師)임. 9세에 보혜사 계종(契宗)에게 사사(師事)하고 릉엄경을 외웠으며 13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처음엔 수주(秀州)의 홍민(洪敏)을 좇아 화엄의 교를 배웠고 뒤에 낭야혜각(瑯琊慧覺; 임제하 6세)을 참알(參謁)해 성오(省悟)한 바가 있었음. 혜각이 그로 하여금 옛 거처로 돌아가게 했으며 크게 화엄을 천양(闡揚)하다가 곧 장수사(長水寺)에 주(住)하면서 강석(講席)을 베풀고 화엄과 릉엄을 도중(徒衆)에게 주었으며 좇아 배우는 도중이 거의 1천에 이르렀음. 유송(有宋; 有는 조사) 일대(一代)에 화엄종이 다시 진작된 것은 스님이 공(功)에 거(居)함이 매우 위대했음. 대중상부(大中祥符) 6년(1013) 한림학사(翰林學士) 전공역(錢公易)이 주청(奏請)하여 자의(紫衣)를 주었으며 서호(署號; 호를 줌)하여 장수소주릉엄대사(長水疏主楞嚴大師)라 했음. 저서에 수릉엄의소주경(首楞嚴義疏注經) 20권ㆍ수릉엄경과(首楞嚴經科) 2권ㆍ금강반야경찬요과(金剛般若經纂要科) 1권ㆍ대승기신론필삭기(大乘起信論筆削記) 20권 등이 있어 세상에 행함. 보원 원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4 [석문정통8. 불조통기29. 오등회원12. 석씨계고략4].
●瑯瑘覺; 낭야혜각임. 혜각(慧覺) 북송(北宋)의 임제종승. 서락(西洛) 사람. 약관(弱冠; 20세 안팎의 남자 나이) 때 아버지가 형양태수(衡陽太守)가 되었는데 질병으로 인해 임지(任地)에서 죽었음. 스님이 영구(靈柩)를 떠받치고 형양으로부터 서락(西洛)으로 돌아오다가 예주(澧州) 약산고사(藥山古寺)를 지나는데 완연(宛然)히 전부터 여기에 거주한 것 같았음. 드디어 이 때문에 출가하였고 다시 유방(遊方)하며 참학(參學)했으며 분양선소(汾陽善昭; 首山省念을 이었으니 임제하 5세)에게서 법을 얻었음. 후에 저주(滁州) 낭야산(瑯琊山)에 머물며 임제의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니 세칭(世稱)이 낭야혜각(瑯琊慧覺)임. 동시대(同時代)에 명주(明州)의 설두중현(雪竇重顯; 운문하 3세)이 운문의 법도(法道)를 제창(提唱)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2감로문(甘露門)이라 일컬었음. 지금에 이르도록 회남지구(淮南地區)에선 아직도 그 유화(遺化)를 입었음. 그 나머지 사적(事蹟)과 생졸(生卒)한 해는 다 미상(未詳)임 [석씨계고략4. 연등회요12. 속전등록3. 선종정맥12].
●廓周沙界勝伽藍; 광청량전중(廣淸涼傳中) 무착화상의 게에 가로되 사계(沙界)를 빙 두른(廓周) 성가람(聖伽藍)이여/ 눈 가득히 문수가 접대하며 얘기하네/ 언하에 무슨 인(印)을 연 줄을 알지 못하고/ 머리를 돌리니 단지 구일(舊日)의 산암(山巖)만 보이누나
●沙界; 항하사(恆河沙)의 세계. 항하사란 것은 다수의 비유. ▲금강경. 모든 항하에 있는 바 모래 수의 불세계가 이와 같다면 어찌 많다고 하겠는가.
●伽藍; 승가람마(僧伽藍摩; 梵 saṃghārāma)의 약칭. 번역해 가로되 중원(衆園)이니 승중이 머무는 바의 원정(園庭)이 됨. 사원의 통칭임 [십송률34. 대비바사론99]
●針線; 봉인(縫紉; 裁縫)과 자수 등의 공작(工作)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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