垂示云 途中受用底 似虎靠山 世諦流布底 如猿在檻 欲知佛性義 當觀時節因緣 欲煅百鍊精金 須是*作家爐韛 且道大用現前底 將什麽試驗
●作家爐韛; 又作作家爐鞴 多指接人手段熟練的禪師 或其主持的法會 爐韛 火爐與風囊 煉鐵設備 韛 鼓風吹火 使火旺烈的皮革囊袋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도중(途中)에 수용(受用)하는 것은 범이 산에 기댐과 같지만 세제(世諦)로 유포(流布)하는 것은 원숭이가 우리(檻)에 있음과 같다.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時節因緣)을 살피고 백련정금(百鍊精金)을 불리고자(煅) 한다면 모름지기 이 작가의 노배(*作家爐韛)라야 하거니와 그래 말하라 대용(大用)이 현전(現前)하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시험하는가.
●作家爐韛; 또 작가노비(作家爐鞴)로 지음. 다분히 접인(接人)의 수단이 숙련된 선사나 혹 그가 주지(主持)하는 법회를 가리킴. 노배(爐韛)는 화로와 풍낭(風囊; 풀무. 허풍선)이니 쇠를 불리는 설비임. 배(韛)는 바람을 두드려 불을 불어 불로 하여금 왕렬(旺烈)하게 하는 피혁의 주머니.
【三九】擧 僧問雲門 如何是淸淨*法身*?圾堆頭見丈六金身 斑斑駁駁是什麽 門云 *花藥欄問處不眞 答來*鹵莽 ?著磕著 曲不藏直 僧云 便恁麽去時如何渾崙呑箇棗 放憨作麽 門云 *金毛獅子也褒也貶 *兩采一賽 將錯就錯 是什麽*心行
●法身; 身卽聚集之義 謂聚集諸法而成身也 所謂理法聚名法身 智法聚名報身 功德法聚名應身 法身 謂始從初住 顯出法性之理 乃至妙覺極果 理聚方圓 是名法身 [出金光明經玄義 三藏法數]
●?圾; 垃圾 ? 同堨 塵埃
●花藥欄; 芍藥牡丹等花卉 以竹木圍其四周者
●鹵莽; 同莽鹵 粗率也 鹵 粗率 魯莽 莽 粗率
●金毛獅子; 又作金毛師子 文殊所乘之獅子 ▲李長者華嚴經論四 又文殊乘師子者 爲明創證法身佛性根本智斷惑之駿故 普賢乘香象王者 表行庠序爲威德故
●兩采一賽; 同兩彩一賽 彩卽賭博得勝 賽卽競爭較量 兩彩一賽 原指一場競賽之後 竟有兩人得彩 意謂雙方棋逢對手 難分勝負 於禪林中 轉指禪者之間 相互勘辨挨拶 其參禪修學之境界 兩俱優勝而不分高下
●心行; 一心爲念念遷流者 故曰心行 又善惡之所念 謂之心行 二心中念念不忘爲心行 禪宗明心見性 不使心有昏昧也 此指前者
【三九】 거(擧)하다. 중이 운문에게 묻되 무엇이 이 청정한 법신(*法身)입니까. 알급퇴두(*?圾堆頭; 쓰레기 더미. 頭는 조사)에 장륙금신(丈六金身)이 나타났으니 반반박박(斑斑駁駁; 문채가 아롱거리는 모양)이 이 무엇인가. 운문이 이르되 화약란(*花藥欄)이다. 문처(問處)가 부진(不眞)이므로 답래(答來)도 노망(*鹵莽)이다. 축착개착(?著磕著; 위 제27칙을 보라)이다. 굽은 것이 곧은 것을 감추지 못한다. 중이 이르되 곧 이러히 갈 땐 어떻습니까. 덩어리째(渾崙) 저(箇) 대추를 삼킨다. 어리석음을 놓아 무엇하려느냐. 운문이 이르되 금모사자(*金毛獅子)다. 또한 포상(褒賞)하기도 하고 또한 폄하(貶下)하기도 하나니 양채일새(*兩采一賽)다. 착오를 가지고 착오로 나아가니 이 무슨 심행(*心行)인가.
●法身; 신(身)은 곧 취집(聚集)의 뜻임. 이르자면 제법을 취집하여 신(身)을 이룸. 이른 바 이법(理法)이 모인 것을 법신이라고 이름하며 지법(智法)이 모인 것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며 공덕법이 모인 것을 응신이라고 이름함. 법신(法身) 이르자면 처음 초주(初住)로부터 법성의 이치를 나타내어 이에 묘각의 극과(極果)에 이르러 이취(理聚)가 비로소 원만하므로 이 이름이 법신임 [출금광명경현의. 삼장법수].
●?圾; 날급(垃圾; 쓰레기)임. 알(?)은 알(堨)과 같으며 진애(塵埃)임.
●花藥欄; 작약 모란 등의 화훼에 죽목으로 그 사주(四周; 사방의 둘레)를 두른 것.
●鹵莽; 망로(莽鹵)와 같음. 조솔(粗率; 거칠고 경솔함)임. 로(鹵)는 조솔(粗率)ㆍ노망(魯莽; 무디고 거침). 망(莽)은 조솔(粗率).
●金毛獅子; 또 금모사자(金毛師子)로 지음. 문수가 타는 바의 사자임. ▲이장자화엄경론4. 또 문수가 사자를 타는 것은 법신의 불성을 처음으로 증득하여 근본지로 단혹(斷惑)함의 준걸(俊傑; 駿)을 밝히는 연고이다. 보현이 향상왕(香象王)을 타는 것은 상서(庠序)를 행하면서 위덕이 됨을 표하는 연고이다.
●兩采一賽; 양채일새(兩彩一賽)와 같음. 채(彩)는 곧 도박하여 승리를 얻음이며 새(賽)는 곧 경쟁하며 교량(較量)함임. 양채일새는 원래 한마당의 경새(競賽)의 뒤에 마침내 두 사람이 득채(得彩)함이 있음을 가리킴. 뜻으로 이르자면 쌍방의 기사(棋士)가 대수(對手; 敵手)를 만나 승부를 가르기 어려움임.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선자(禪者)의 사이에 상호 감변(勘辨)하고 애찰(挨拶)하매 그 참선 수학(修學)의 경계가 둘 다 모두 우승하여 고하를 나누지 못함을 가리킴.
●心行; 1. 심은 염념(念念)에 천류(遷流)하는 것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행임. 또 선악의 소념(所念)을 일러 심행이라 함. 2. 심중의 염념에 잊지 않음을 심행이라 함. 선종은 명심견성하여 마음에 혼매(昏昧)가 있지 않게 함. 여기에선 전자(前者)를 가리킴.
諸人還知這僧問處與雲門答處麽 若知得 兩口同無一舌 若不知 未免顢頇 僧問玄沙 如何是淸淨法身 沙云 膿滴滴地 具*金剛眼 試請辨看 雲門不同別人 有時把定壁立萬仞 無爾湊泊處 有時與爾開一線道 同死同生 雲門*三寸甚密 有者道 是*信彩答去 若恁麽會 且道雲門落在什麽處 這箇是屋裏事 莫向外卜度 所以百丈道 森羅萬象 一切語言 皆轉歸自己 令*轉轆轆地 向活潑潑處便道 若擬議尋思 便落*第二句了也 永嘉道 法身覺了無一物 本源自性天眞佛 雲門驗這僧 其僧亦是他屋裏人 自是久參 知他屋裏事 *進云 便恁麽去時如何 門云 金毛獅子 且道是肯他 是不肯他 是褒他是貶他 巖頭道 若論戰也 箇箇立在轉處 又道他參活句 不參死句 活句下薦得 永劫不忘 死句下薦得 自救不了 又僧問雲門 佛法如水中月是否 門云 淸波無透路 進云 和尙從何而得 門云 再問復何來 僧云 正恁麽去時如何 門云 重疊*關山路 須知此事 不在言句上 如擊石火似閃電光 構得構不得 未免喪身失命 雪竇是其中人 便當頭頌出
●金剛眼; 堅固眼 卽明定正邪 辨別得失之眼
●三寸; 三寸之舌 ▲史記七十六 以三寸之舌 彊(當也)於百萬之師
●信彩; 骰子彫一二三等數 此言彩 信彩 本指在雙陸博戲中信手擲骰子 引申指隨意 不拘 信 隨意 任凭 如信手拈來 彩 又文彩 文章
●轉轆轆地; 與阿轆轆地同義 以車輪之旋轉 比喩圓轉無礙 自由自在之境地 地 語尾助詞
●第二句; 相對第一句而言 指表達通常意義(非玄妙禪義) 或屬方便法門的語句
●進云; 進 奉獻 送上 進云者 禪家問答的記錄用語 表示問話者繼續向禪師提問
●關山; 一故鄕之山 故鄕 二關隘山嶺 比喻難關
제인은 도리어 이 중의 문처(問處)와 운문의 답처(答處)를 알겠느냐. 만약 알아 얻으면 두 입에 한가지로 한 혀도 없으려니와 만약 알지 못한다면 만한(顢頇; 糊塗)을 면치 못하리라. 중이 현사에게 묻되 무엇이 이 청정한 법신입니까. 현사가 이르되 농적적지(膿滴滴地;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것)다 하였으니 금강안(*金剛眼)을 갖추었거든 시험삼아 청하나니 분변해 보아라. 운문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서 어떤 때는 파정(把定)하여 벽립만인(壁立萬仞)인지라 너희가 주박(湊泊)할 곳이 없으며 어떤 때는 너희에게 일선도(一線道)를 열어 주어 동사동생(同死同生)하나니 운문의 삼촌(*三寸)이 매우 면밀(綿密)하다. 어떤 자는 말하되 이는 신채(*信彩)하여 답해 간 것이라 하나니 만약 이렇게 이회한다면 그래 말하라, 운문이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이것(這箇; 운문이 답한 것)은 이 옥리(屋裏)의 일이니 밖을 향해 복탁(卜度)하지 말아라. 소이로 백장(百丈)이 말하되 삼라만상과 일체의 어언(語言)을 다 자기에게로 전귀(轉歸)하여 전녹록지(*轉轆轆地)로 하여금 활발발처(活潑潑處)로 향하게 하여 곧 말해야 하나니 만약 의의심사(擬議尋思)하면 곧 제2구(*第二句)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하며 영가(永嘉)가 말하되 법신을 깨달아 마쳐 한 물건도 없음이 본원자성(本源)의 천진불이다(이상 2구는 證道歌文) 하였다. 운문이 이 중을 감험(勘驗; 驗)하매 그 중도 역시(亦是) 그(운문)의 옥리(屋裏)의 사람이며 스스로 이 구참(久參)인지라 그의 옥리의 일을 알고서 여쭈어 이르되(*進云) 곧 이러히 갈 땐 어떻습니까. 운문이 이르되 금모사자다 하니 그래 말하라, 이는 그를 긍정함인가 이는 그를 긍정하지 않음인가, 이는 그를 포상함인가 이는 그를 폄하함인가. 암두가 말하되 만약 법전(法戰; 戰)을 논할진대 개개가 전처(轉處)에 서 있다 했다. 또 말하되 그는 활구(活句)를 참구하고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않나니 활구 아래 천득(薦得; 領悟)하면 영겁토록 잊지 않으려니와 사구 아래 천득하면 자기를 구제함도 마치지 못한다 했다. 또 중이 운문에게 묻되 불법이 수중의 달과 같다 하니 그렇습니까. 운문이 이르되 청파(淸波)는 뚫을 길이 없다. 여쭈어 이르되 화상은 어디로 좇아 얻었습니까. 운문이 이르되 재문(再問)은 다시 어디에서 왔느냐. 중이 이르되 바로 이러히 갈 땐 어떻습니까. 운문이 이르되 관산로(*關山路)가 중첩(重疊)하니라 하였다. 모름지기 차사(此事)는 언구상(言句上)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하나니 돌을 치는 불과 같고 번쩍하는 번갯빛과 비슷하여 구득(構得)하거나 구(構; 領悟)함을 얻지 못하거나 상신실명(喪身失命)을 면하지 못한다. 설두도 이 기중(其中)의 사람인지라 곧 당두(當頭)에 송해 내었다.
●金剛眼; 견고안(堅固眼)이니 곧 사정(正邪)을 밝혀 정하고 득실을 변별하는 눈.
●三寸; 세 치의 혀. ▲사기76. 세 치의 혀로 백만의 군사(軍師)에 강(彊; 當임)하다.
●信彩; 투자(骰子; 주사위)에 일이삼(一二三) 등의 수를 새기는데 이것을 채(彩)라고 말함. 신채(信彩)는 본래 쌍륙(雙陸)의 박희(博戲; 노름) 중 손 닿는 대로 투자를 던짐을 가리킴. 인신(引申; 轉義)하여 수의(隨意)ㆍ불구(不拘)를 가리킴. 신(信)은 수의(隨意)ㆍ임빙(任凭; 마음대로 하게 하다)이니 신수염래(信手拈來)와 같음. 채(彩)는 또 문채ㆍ문장임.
●轉轆轆地; 아녹록지(阿轆轆地)와 같은 뜻. 수레바퀴의 선전(旋轉; 빙빙 돌며 굴러감)으로써 원전무애(圓轉無礙; 둥글게 빙빙 돌며 걸림 없음)하며 자유자재한 경지에 비유함. 지(地)는 어미조사(語尾助詞).
●第二句; 제1구를 상대하여 말함이니 통상의의(通常意義; 현묘한 禪義가 아님)를 표달(表達; 표현)하거나 혹 방편법문에 속하는 어구를 가리킴.
●進云; 진(進)은 봉헌. 송상(送上). 진운(進云)이란 것은 선가문답의 기록용어니 문화자(問話者)가 계속 선사를 향해 제문(提問)함을 표시함.
●關山; 1. 고향의 산. 고향. 2. 관애(關隘; 국경에 있는 관문과 요새의 높고 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의 산봉우리. 난관에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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