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擧 僧問趙州 初生孩子 還具*六識也無閃電之機 說什麽初生孩兒子 趙州云 急水上打*毬子過也 俊鷂趁不及 也要驗過 僧復問投子 急水上打毬子 意旨如何也是作家同驗過 還會麽 過也 子云 念念不停流打葛藤漢
●六識; 三藏法數二十一 六識[出法界次第] 六識者 眼耳鼻舌身意 各有識也 謂依五根 能見五塵 而爲五識 於五塵境 而起分別 爲第六識 一眼識 謂眼根若對色塵 卽生眼識 眼識生時 但能見色 而未起分別也 二耳識 謂耳根若對聲塵 卽生耳識 耳識生時 但能聞聲 而未起分別也 三鼻識 謂鼻根若對香塵 卽生鼻識 鼻識生時 但能齅香 而未起分別也 四舌識 謂舌根若對味塵 卽生舌識 舌識生時 但能嘗味 而未起分別也 五身識 謂身根若對觸塵 卽生身識 身識生時 但能覺觸 而未起分別也 六意識 謂意根若對法塵 卽生意識 意識生時 卽能於五塵之境 分別善惡好醜也
●毬子; 卽毬 子 後綴 最初以毛糾結而成 後以皮爲之 中實以毛 或充以氣
【八○】 중이 조주에게 묻되 처음 출생(初生)한 해자(孩子; 아기)가 도리어 6식(*六識)을 갖추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섬전지기(閃電之機)이거늘 무슨 처음 출생한 해아자(孩兒子; 아기)를 설하느냐. 조주가 이르되 급수(急水) 위에서 공(*毬子)을 친다. 지나갔다. 준요(俊鷂; 뛰어난 새매)가 쫓아가더라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험과(驗過; 過는 조사)코자 함이다. 중이 다시 투자(投子; 大同)에게 물었다. 급수의 위에서 공을 친다 함은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또한 이 작가이므로 한가지로 험과(驗過)한다. 도리어 알겠느냐. 지나갔다. 투자가 이르되 염념(念念)이 정류(停流)하지 않음이다. 타갈등한(打葛藤漢; 언구에 서로 뒤얽히는 자)이다.
●六識; 삼장법수21. 육식(六識) [출법계차제] 6식(識)이란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각기 식(識)이 있음이다. 이르자면 5근(根)에 의하여 능히 5진(塵)을 보며 5식(識)이 된다. 5진경(塵境)에 분별을 일으킴이 제6식이 된다. 1은 안식(眼識)이니 이르자면 안근이 만약 색진을 대하면 곧 안식을 낸다. 안식이 날 때 단지 능히 색은 보지만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2는 이식(耳識)이니 이르자면 이근(耳根)이 만약 성진(聲塵)을 대하면 곧 이식을 낸다. 이식이 날 때 단지 능히 소리를 듣지만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3은 비식(鼻識)이니 이르자면 비근(鼻根)이 만약 향진(香塵)을 대하면 곧 비식을 낸다. 단지 능히 향기를 냄새 맡지만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4는 설식(舌識)이니 이르자면 설근(舌根)이 만약 미진(味塵)을 대하면 곧 설식을 낸다. 설식이 날 때 단지 능히 맛을 보지만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5는 신식(身識)이니 이르자면 신근(身根)이 만약 촉진(觸塵)을 대하면 곧 신식을 일으킨다. 단지 능히 각촉(覺觸)하지만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6은 의식(意識)이니 이르자면 의근(意根)이 만약 법진(法塵)을 대하면 곧 의식을 낸다. 의식이 날 때 곧 능히 5진(塵)의 경(境)에 선악과 호추(好醜)를 분별한다.
●毬子; 곧 구(毬; 공)니 자(子)는 후철. 최초에 털로 얽어 매어 만들었으며 후에 가죽으로 이를 만들었는데 속을 털로 채우거나 혹은 공기로 채웠음.
此六識 敎家立爲正本 山河大地 日月星辰 因其所以生 來爲先鋒 去爲*殿後 古人道 三界唯心 萬法唯識 若證佛地 以八識 轉爲*四智 敎家謂之*改名不改體 *根塵識是三 前塵元不會分別 *勝義根能發生識 識能顯色 分別卽是第六意識 第七識*末那識 能去執持世間一切影事 令人煩惱 不得自由自在 皆是第七識 到第八識 亦謂之*阿賴耶識 亦謂之含藏識 含藏一切善惡種子 這僧知敎意 故將來問趙州道 初生孩子 還具六識也無 初生孩兒 雖具六識 眼能見耳能聞 然未曾分別六塵 好惡長短 是非得失 他恁麽時總不知 學道之人要復如嬰孩 榮辱功名 逆情順境 都動他不得 眼見色與盲等 耳聞聲與聾等 如癡似兀 其心不動 如須彌山 這箇是衲僧家眞實得力處 古人道 衲被蒙頭萬事休 此時山僧都不會 若能如此 方有少分相應 雖然如此 爭奈一點也瞞他不得 山依舊是山 水依舊是水 無造作 無緣慮 如日月運於太虛未嘗暫止 亦不道我有許多名相 如天普蓋 似地普擎 爲無心故 所以長養萬物 亦不道我有許多功行 天地爲無心故 所以長久 若有心則有限齊 得道之人亦復如是 於無功用中施功用 一切違情順境 皆以慈心攝受 到這裏 *古人尙自呵責道 了了了時無可了 玄玄玄處直須呵 *又道 事事通兮物物明 達者聞之暗裏驚 *又云 入聖超凡不作聲 臥龍長怖碧潭淸 人生若得長如此 大地那能留一名 然雖恁麽 更須跳出窠窟始得 豈不見 敎中道 第八不動地菩薩 以無功用智 於一微塵中 轉大法輪 於一切時中 行住坐臥 不拘得失 任運流入*薩婆若海 衲僧家 到這裏 亦不可執著 但隨時自在 遇茶喫茶遇飯喫飯 這箇向上事著箇定字也不得 著箇不定字也不得 石室善道和尙示衆云 汝不見小兒出胎時 何曾道我會看敎 當恁麽時 亦不知有佛性義 無佛性義 及至長大 便學種種知解出來 便道我能我解 不知是*客塵煩惱 十六觀行中 *嬰兒行爲最 *哆哆啝啝時 喩學道之人離分別取捨心 故讚歎嬰兒 可況喩取之 若謂嬰兒是道 今時人錯會 南泉云 我*十八上 解作活計 趙州道 我十八上解破家散宅 又道 我在南方二十年 *除粥飯二時是雜用心處 曹山問僧 菩薩定中 聞*香象渡河 歷歷地 出什麽經 僧云 *涅槃經 山云 定前聞定後聞 僧云 和尙流也 山云 灘下接取 又*楞嚴經云 *湛入合湛入識邊際 又*楞伽經云 相生執礙 想生妄想 *流注生則逐妄流轉 若到無功用地 猶在流注相中 須是出得第三流注生相 方始快活自在 所以潙山問仰山云 寂子如何 仰山云 和尙問他見解 問他行解 若問他行解 某甲不知 若是見解 如一甁水注一甁水 若得如此 皆可以爲一方之師 趙州云 急水上打毬子 早是轉轆轆地 更向急水上打時 眨眼便過 譬如*楞嚴經云 如急流水 望爲恬靜 *古人云 譬如駛流水 水流無定止 各各不相知 諸法亦如是 趙州答處 意渾類此 其僧又問投子 急水上打毬子 意旨如何 子云 念念不停流 自然與他問處恰好 古人行履綿密 答得只似一箇 更不消計較 爾纔問他 早知爾落處了也 孩子六識 雖然無功用 爭奈念念不停 如密水流 投子恁麽答 可謂深辨來風 雪竇頌云
●殿後; 殿 行軍走在最後 廣雅 軍在前曰啓 後曰殿 殿後 ▲碧巖錄第八十則種電鈔 凡軍法 前陣曰先鋒 後陣曰殿後
●四智; 祖庭事苑七 四智 前眼等五識是成所作智 第六意識是妙觀察智 第七末那是平等性智 第八阿賴耶識是大圓鏡智 在衆生時 智劣識强 但名爲識 當佛地時 智强識劣 但名爲智 六七因中轉 五八果上轉 所謂轉名而不轉其體也
●改名不改體; 識改智不改識體也 [碧巖錄第八〇則種電鈔]
●根塵識; 又作根境識 卽有發識取境之作用者 稱爲根 所緣者 稱爲塵 能緣者 稱爲識 五根五塵五識等 稱爲前十五界 六根六塵六識等 則稱十八界 例如眼識以眼根爲所依 色塵爲其所緣 又如意識以意根爲所依 法塵則爲其所緣
●勝義根; 對於扶塵根而有勝義根 乃眼耳鼻舌身五根之實體也 依之而有發識取境之作用 爲四大種所成 淸淨如珠寶云 [俱舍論一]
●末那識; 唯識論所說八識中第七識 以由第八識爲所依 以第八識之見分爲所緣而生之識也 末那識譯爲意 意有思量之義 此識常緣第八識之見分思量 我爲法 故名末那 我法二執之根本也 然則第六識名爲意識 有何分別 彼爲依此末那卽意而生之識 故曰意識 卽依主釋也 此末那卽第七識 故云末那識(卽意識) 是持業釋也 ▲唯識論四 是識聖敎別名末那 恒審思量勝餘識故 此名何異第六意識 此持業釋 如藏識名 識卽意故 彼依主釋如眼識等 識異意故 然諸聖敎恐此濫彼 故於第七但立意名
●阿賴耶識; 八識(眼 耳 鼻 舌 身 意 末那 阿賴耶識)之一 九識(八識及阿摩羅識)之一 又作阿梨耶識 略稱賴耶 梨耶 舊譯作無沒識 新譯作藏識 或作第八識 本識 無沒識 意謂執持諸法而不迷失心性 以其爲諸法之根本 故亦稱本識 此識爲宇宙萬有之本 含藏萬有 使之存而不失 故稱藏識 又因其能含藏生長萬有之種子 故亦稱種子識 [入楞伽經二 同七 法華經玄義五下 大乘義章三末 華嚴孔目章一 唯識了義燈四本]
●古人; 指同安常察禪師 見傳燈錄二十九同安察禪師十玄談
●又道; 禪門諸祖師偈頌上之上 紫塞野人雪子吟云 事事通兮物物明 達者須知暗裏驚
●又云; 禪門諸祖師偈頌上之下 龍牙和尙偈頌云 得聖超凡不作聲 臥龍長怖碧潭淸 人生若得長如此 大地那能留一名
●薩婆若; 祖庭事苑七 薩婆若 此云一切智
●客塵; 形容煩惱者 煩惱非心性固有之物 爲迷理而起者 故名之爲客 爲汚心性者 故名之爲塵 ▲最勝王經一 煩惱隨惑 皆是客塵 法性是主 無來無去 ▲圓覺經 靜慧發生 身心客塵從此永滅
●嬰兒行; 涅槃經所說五行之一 有自利利他之二釋 就自利釋之 則菩薩之大行 總離分別 如彼嬰兒 故名嬰兒行 就利他釋之 則人天聲聞緣覺之諸乘 猶如嬰兒 菩薩爲化彼 以大悲心示現此等小善 故名嬰兒行 [大乘義章十二]
●哆哆啝啝; 意爲口中話多而心內幷不理解
●十八上; 十八歲也 上 置數詞後表年齡
●除粥飯二時; 除 只 但 五燈會元四趙州從諗 老僧行脚時 除二時粥飯是雜用心處 除外更無別用心處 若不如是大遠在
●香象渡河; 香象渡河 徹底截流 譬喩聽聞敎法 所證甚深 諸經論每以兔馬香象三獸之渡河 譬喩聽聞敎法所證深淺之別 謂兔渡河則浮 馬渡則及半 香象之渡河則徹底截流 ◆香象; 於鬢角分泌有香氣液體之大象也 卽指交配期之大象 按大毘婆沙論三十等 此時期之象 其力特强 性甚狂暴 難以制伏 合十凡象之力僅可抵一香象之力 ▲注維摩詰經一 香象菩薩 什曰 靑香象也 身出香風 菩薩身香風亦如此也
●涅槃經; 涅槃經中無渡河二字 故非涅槃經文明矣 或謂三獸渡河 象乃澈底截流云云 雖然涅槃經中無三獸渡河之文 ◆涅槃經 大般涅槃經 凡四十卷十三品 北涼曇無讖譯 又作大涅槃經 大經 北涼玄始十年(421) 依河西王沮渠蒙遜之請 於姑臧譯出 又本經由曇無讖譯出後 傳於南方宋地 慧嚴慧觀謝靈運等人 對照法顯所譯之六卷泥洹經 增加品數 重修而成二十五品三十六卷 古來稱之爲南本涅槃經 對此 曇無讖譯本則稱爲北本涅槃經 其異譯本有三 一西晉白法祖譯之佛般泥洹經二卷 二東晉譯(譯者不詳)之般泥洹經二卷 三姚秦佛陀耶舍 竺佛念共譯之長阿含遊行經三卷
●楞嚴經云; 楞嚴經十云 湛入合湛歸識邊際
●湛入合湛; 首楞嚴經義疏釋要鈔一 湛入合湛者 上湛是識 下湛是眞 謂以定伏於湛識 合歸眞如寂湛之理也 斯乃眞如是識邊際也
●楞伽經云; 詳見楞伽阿跋多羅寶經註解一
●流注; 謂有爲法之刹那刹那前滅後生 相續不斷 如水之流注
●楞嚴經云; 楞嚴經十云 如急流水 望如恬靜 流急不見 非是無流
●古人云; 六十華嚴五云 譬如駛水流 流流無絕已 二俱不相知 諸法亦如是
이 6식(識)을 교가(敎家)에선 세워 정본(正本)으로 삼나니 산하대지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것(6식)으로 인해 소이로 생(生)하는지라 올 적엔 선봉(先鋒)이 되고 갈 적엔 전후(*殿後)가 된다. 고인이 말하되 삼계가 유심(唯心)이며 만법이 유식(唯識)이라 했다. 만약 불지(佛地)를 증득한다면 8식(識)을 굴려(轉) 4지(*四智)가 되나니 교가(敎家)에선 이를 일러 개명이며 불개체(*改名不改體)라 한다. 근진식(*根塵識) 이 셋에 앞의 진(塵)은 원래 분별할 줄 알지 못하고 승의근(*勝義根)이 능히 식(識)을 발생하며 식이 능히 색(色)을 나타낸다. 분별은 곧 이 제6의식(第六意識)이며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이 능히 가서 세간의 일체의 영사(影事)를 집지(執持)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번뇌하여 자유자재를 얻지 못하게 하나니 모두 이 제7식이다. 제8식에 이르면 또한 이를 일러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하며 또한 이를 일러 함장식(含藏識)이라 하나니 일체의 선악종자(善惡種子)를 함장했다. 이 중이 교의(敎意)를 아는지라 고로 가져와서 조주에게 물어 말하되 처음 출생(初生)한 해자(孩子; 아기)가 도리어 6식(*六識)을 갖추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하니 처음 출생한 해아(孩兒; 아기)는 비록 6식을 갖추어 눈이 능히 보고 귀가 능히 듣지만 그러나 일찍이 6진(塵)의 호오장단(好惡長短)과 시비득실(是非得失)을 분별하지 하지 못한다. 그(아기)가 이러할 때(처음 출생했을 때)는 다 알지 못하는지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영해(嬰孩; 어린 아기)와 같이 회복(復)되기를 요함은 영욕공명(榮辱功名)과 역정순경(逆情順境)이 모두 그(아기)를 움직임을 얻지 못하여서이다. 눈이 색을 보더라도 맹인과 같으며(等) 귀가 소리를 듣더라도 귀머거리와 같아서 여치사올(如癡似兀; 兀은 無知貌)하므로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이 수미산과 같나니 이것(這箇)이 납승가(衲僧家)의 진실한 득력처(得力處)이다. 고인(石頭希遷)이 말하되(草庵歌에 나옴) 납피(衲被; 누더기 이불)를 머리에 덮어쓰고 만사를 쉬었나니 이때에 산승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니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비로소 소분(少分; 조금) 상응함이 있으리라.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癡兀) 한 점도 그(癡兀人)를 속임을 얻지 못함을 어찌하랴. 산은 의구히 이 산이며 물은 의구히 이 물인지라 조작이 없고 연려(緣慮)도 없음이 마치 해와 달이 태허(太虛; 광대한 허공)에 운행하면서 일찍이 잠시라도 그치지 아니하되 또한 나(허공)에게 허다한 명상(名相)이 있다고 말하지 않음과 같다. 하늘의 널리 덮음과 같고 땅의 널리 받듦(擎)과 같아서 무심하기 때문인 연고로 소이로 만물을 장양(長養)하여도 또한 나에게 허다한 공행(功行)이 있다고 말하지 않나니 천지가 무심하기 때문의 연고로 소이로 장구(長久)하다. 만약 유심(有心)하다면 곧 한제(限齊)가 있나니 득도(得道)한 사람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공용(功用)이 없는 중에서 공용을 베푸는지라 일체의 위정순경(違情順境)에 다 자심(慈心)으로써 섭수(攝受)한다. 이 속에 이르러선 고인(*古人)도 오히려 스스로 가책(呵責)하여 말하되 또렷또렷 또렷할 때 가히 또렷함이 없나니 가물가물 가물거리는 곳에도 바로 꾸짖음을 써라(須) 했으며 또 말하되(*又道) 사사(事事)마다 통하고 물물(物物)마다 밝으므로 달자(達者)는 이를 듣고 암리(暗裏)에 놀란다 하며 또 이르되(*又云) 입성초범(入聖超凡)하되 소리를 짓지 않나니/ 와룡(臥龍)은 늘 벽담(碧潭)의 맑음을 두려워한다/ 인생에 만약 늘 이와 같음을 얻는다면/ 대지(大地)에 어찌 능히 일명(一名)을 머물러 두리오 하였다. 비록 그러하여 이러하긴(恁麽) 하지만 다시 모름지기 과굴(窠窟)을 도출(跳出)해야 비로소 옳다. 어찌 보지 못하느냐, 교중(敎中; 화엄경 十地品)에 말하되 제팔부동지보살(第八不動地菩薩)이 무공용지(無功用智)로써 일미진중(一微塵中)에서 대법륜을 굴리며 일체시중(一切時中)의 행주좌와(行住坐臥)에도 득실에 구애되지 않고 움직이는 대로(任運) 살바야해(*薩婆若海)에 흘러들어간다 하였다. 납승가(衲僧家)가 이 속에 이르러선 또한 가히 집착하지 않고 단지 때를 따라 자재하여서 우다끽다(遇茶喫茶)하고 우반끽반(遇飯喫飯)하나니 이(這箇) 향상사(向上事)엔 이(箇) 정자(定字)를 붙임도 얻지 못하고 이(箇) 부정자(不定字)를 붙임도 얻지 못한다. 석실선도(石室善道) 화상이 시중하여 이르되 너희가 보지 못하느냐, 소아(小兒)가 태에서 나왔을 때 어찌 일찍이 말하되 내가 교(敎)를 볼 줄 안다고 하리오 이런 때를 당하여선 또한 불성의 뜻이 있다거나 불성의 뜻이 없다거나 함을 알지 못하다가 장대(長大)함에 이르러서야(及至) 곧 갖가지 지해(知解)를 배워 출래(出來)하여서 곧 말하되 내가 능(能)하고 내가 해(解)한다 하나니 이 객진번뇌(*客塵煩惱)인 줄을 알지 못한다. 16관행(觀行) 중에 영아행(*嬰兒行)을 으뜸으로 삼나니 치치화화(*哆哆啝啝)할 때를 학도지인(學道之人)의 분별취사심(分別取捨心)을 여읨에 비유하는지라 고로 영아를 찬탄하여 가히 황유(況喩)하여 그것을 취하지만 만약 영아가 이 도라고 이른다면 금시인의 착회(錯會; 잘못 아는 것)다. 남천이 이르되 내가 십팔상(*十八上)에 활계(活計)를 지을 줄 알았다 했고 조주는 말하되 내가 십팔상(十八上)에 파가산택(破家散宅)할 줄 알았다 했으며 또 말하되 내가 남방에 20년 동안 있으면서 다만(除) 죽반이시(*除粥飯二時)가 이 잡용심처(雜用心處)였다 하였다. 조산(曹山; 本寂)이 중에게 묻되 보살이 정중(定中)에 향상이 도하(*香象渡河)함을 들음이 역력지(歷歷地)였다 하니 어느 경에 나오느냐. 중이 이르되 열반경(*涅槃經)입니다. 조산이 이르되 정전(定前)에 들었느냐 정후(定後)에 들었느냐. 중이 이르되 화상이 흐르십니다(和尙流也). 조산이 이르되 여울 아래(灘下)에서 접취(接取)하라 하였다. 또 릉엄경에 이르되(*楞嚴經云) 담이 담에 들어가 합쳐(*湛入合湛) 식변제에 들어간다(入識邊際) 하며 또 릉가경에 이르되(*楞伽經云) 상생(相生)은 집애(執礙)며 상생(想生)은 망상(妄想)이며 유주생(*流注生)은 곧 축망(逐妄)하여 유전(流轉)하나니 이에(若) 무공용지(無功用地)에 이르더라도 오히려 유주상(流注相) 가운데 있는지라 모름지기 이는 제삼(第三)인 유주생상(流注生相)을 벗어남을 얻어야 바야흐로(方始) 쾌활자재(快活自在)하다 하였다. 소이로 위산이 앙산에게 물어 이르되 적자(寂子; 慧寂이니 子는 남자의 通稱)는 어떻다 하느냐. 앙상이 이르되 화상이 그것(一心性)의 견해를 물으십니까, 그것의 행해(行解)를 물으십니까. 만약 그것의 행해를 물으신다면 모갑이 알지 못하며 만약 이 견해일진대 한 병의 물로 한 병의 물에 붓는(注) 것과 같습니다 하였으니 만약 이와 같음을 얻는다면 다 가이(可以) 일방(一方)의 스승이 될 만하다 하리라. 조주가 이르되 급수(急水) 위에서 공(毬子)을 친다 하니 벌써 이 전녹록지(轉轆轆地)다. 다시 급수 위를 향해 칠(打) 때엔 눈 깜박하면 곧 지나가나니 비여(譬如; 비유로 예를 듦) 릉엄경에 이르되(*楞嚴經云) 마치 급류수가 염정(恬靜)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하였다. 고인이 이르되(*古人云) 비유컨대 빠른(駛) 유수(流水)가/ 물이 흘러 정지(定止)함이 없으므로/ 각각 서로 알지 못함과 같이/ 제법도 또한 이와 같다 하니 조주가 답한 곳의 뜻이 온통(渾) 이와 유사하다. 그 중이 또 투자에게 묻되 급수의 위에서 공을 친다 함은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투자가 이르되 염념(念念)이 정류(停流)하지 않음이다 하니 자연히 그의 문처(問處)와 더불어 흡호(恰好; 꼭 알맞음)다. 고인의 행리(行履)가 면밀(綿密)하여 답득(答得)함이 다만 1개와 흡사한지라 다시 계교(計較)를 소비하지 않나니 그(爾)가 겨우 그(他; 조주와 투자)에게 물으면 벌써 그의 낙처를 알아버린다. 해자(孩子)의 6식(識)이 비록 그러히 공용(功用)이 없지만 염념(念念)이 정지하지 않아 빽빽한 물(密水)의 흐름과 같음을 어찌하리오. 투자가 이러히 답하니 가히 내풍(來風)을 깊이 분변했다고 이를 만하다. 설두가 송해 이르되
●殿後; 전(殿)은 행군(行軍)하여 가면서 최후에 있음. 광아(廣雅) 군이 앞에 있음을 가로되 계(啓)며 뒤를 가로되 전(殿)이니 전후(殿後)다. ▲벽암록 제80칙 종전초. 무릇 군법에 전진(前陣)을 가로되 선봉이며 후진(後陣)을 가로되 전후(殿後)다.
●四智; 조정사원7. 앞의 안등오식(眼等五識;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은 이 성소작지(成所作智)며 제6 의식은 이 묘관찰지(妙觀察智)며 제7 말나(末那)는 이 평등성지(平等性智)며 제8 아뢰야식은 이 대원경지임(大圓鏡智). 중생에게 있을 때는 지(智)가 열등하고 식(識)이 강력하므로 단지 이름하여 식이지만 불지(佛地)에 당했을 때는 지가 강력하고 식이 열등하므로 단지 이름하여 지(智)임. 6, 7(제6 의식과 제7 말나식)은 인중(因中)에 전(轉)하고 5, 8(眼 등 5식과 제8 아뢰야식)은 과상(果上)에 전하나니 이른 바 명(名)은 전(轉)하지만 그 체(體)는 전하지 않음.
●改名不改體; 식(識)을 지(智)로 개(改)하고 식체(識體)를 개(改)하지 않음 [벽암록 제80칙 종전초].
●根塵識; 또 근경식(根境識)으로 지음. 곧 식을 내어 경계를 취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일컬어 근(根)이라 하고 소연(所緣)하는 것을 일컬어 진(塵)이라 하고 능연(能緣)하는 것을 일컬어 식(識)이라 함. 5근ㆍ5진ㆍ5식 등은 일컬어 전15계(前十五界)라 하고 6근ㆍ6진ㆍ6식 등은 곧 일컬어 18계라 함. 예컨대(如) 안식은 안근으로써 소의(所依)를 삼고 색진은 그의 소연(所緣)이 됨과 같음. 또 의식은 의근으로써 소의를 삼고 법진은 곧 그의 소연이 됨과 같음.
●勝義根; 부진근(扶塵根)에 대해 승의근이 있으니 곧 안ㆍ이ㆍ비ㆍ설ㆍ신 5근의 실체임. 이에 의해 발식(發識)하여 취경(取境)하는 작용이 있음. 4대종(大種)으로 이루어진 바가 되며 청정하기가 보주와 같음 [구사론1].
●末那識; 유식론에서 설하는 바 8식 중의 제7식임. 제8식이 의지하는 바가 됨으로 말미암아 제8식의 견분(見分)을 소연(所緣)으로 생기(生起)하는 식임. 말나식은 의(意)로 번역하며 의는 사량의 뜻이 있음. 이 식은 늘 제8식의 견분(見分)을 반연(攀緣)하여 사량하면서 내가 법이 된다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말나임. 아법(我法) 2집(執)의 근본임. 그러한 즉 제6식을 이름하여 의식(意識)이니 어떤 분별이 있는가. 그것은 이 말나에 의해 즉의(卽意; 意에 가까이 붙음)하여 나는 식인지라 고로 가로되 의식이니 곧 의주석(依主釋)임. 이 말나는 곧 제7식인지라 고로 이르되 말나식(末那識; 곧 意識)이니 이는 지업석(持業釋)임. ▲유식론4. 이 식은 성교(聖敎)에서 별명이 말나(末那)니 항상 살피면서 사량함이 다른 식보다 수승한 연고이다. 이 이름은 어떻게 제6 의식과 다른가 하면 이것은 지업석(持業釋)이니 식의 이름을 감춘 것과 같아서 식이 곧 의(意)인 연고이다. 그것을 의주석(依主釋)하면 안식(眼識) 등과 같음이니 식(識)은 의(意)와 다른 연고이다. 그러나 여러 성교(聖敎)에서 이것이 그것과 혼람(混濫)할까 염려한지라 고로 제7에는 단지 의(意)의 이름만 세웠다.
●阿賴耶識; 8식(八識;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ㆍ말나ㆍ아뢰야식)의 하나. 9식(九識; 8식 및 아마라식)의 하나. 또 아리야식(阿梨耶識; 梵 ālaya)으로 지으며 약칭이 뢰야(賴耶)ㆍ리야(梨耶). 구역에 무몰식(無沒識)으로 지었고 신역에 장식(藏識)으로 지었음. 혹은 제8식ㆍ본식ㆍ무몰식으로 지음. 뜻으로 이르자면 제법을 집지(執持)하여 심성(心性)을 미실(迷失)하지 않음임. 그것이 제법의 근본이 되므로 고로 또 명칭이 본식(本識)이며 이 식이 우주 만유의 근본이 되어 만유를 함장(含藏)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존재해 잃지 않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장식(藏識)임. 또 그것이 능히 만유를 함장하고 생장하는 종자임으로 인해 고로 또 명칭이 종자식(種子識)임 [입릉가경2, 동7. 법화경현의5하. 대승의장3말. 화엄공목장1. 유식요의등4본].
●古人; 동안상찰선사(同安常察禪師)를 가리킴. 전등록29 동안찰선사 십현담(十玄談)을 보라.
●又道; 선문제조사게송상지상 자라야인설자음(紫塞野人雪子吟)에 이르되 사사(事事)마다 통하고 물물(物物)마다 밝으므로 달자는 모름지기 암리에 놀랄 줄 안다(達者須知暗裏驚)
●又云; 선문제조사게송상지하 용아화상(龍牙和尙)의 게송에 이르되 득성초범(得聖超凡)하되 소리를 짓지 않나니/ 와룡(臥龍)은 늘 벽담(碧潭)의 맑음을 두려워한다/ 인생에 만약 늘 이와 같음을 얻는다면/ 대지(大地)에 어찌 능히 일명(一名)을 머물러 두리오.
●薩婆若; 조정사원7 살바야(薩婆若) 여기에선 이르되 일체지(一切智)다.
●客塵; 번뇌를 형용한 것. 번뇌는 심성(心性)의 고유(固有)한 물건이 아니며 진리를 미혹해 일으키는 것이 되는지라 고로 이를 이름해 객이라 하며 심성을 더럽히는 것이 되므로 고로 이를 이름해 진이라 함. ▲최승왕경1. 번뇌가 미혹을 따르니 다 이는 객진(客塵)이다. 법성은 이 주인이며 옴도 없고 감도 없다. ▲원각경. 고요한 지혜가 발생하니 몸과 마음의 객진(客塵)이 이로부터 영원히 없어진다.
●嬰兒行; 열반경에서 설한 바 5행(行)의 하나.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2석(釋)이 있음. 자리로 나아가 이를 해석하면 곧 보살의 대행(大行)은 모두 분별을 여읨이 저 영아와 같은지라 고로 이름이 영아행임. 이타로 나아가 이를 해석하면 곧 인ㆍ천ㆍ성문ㆍ연각의 제승(諸乘)이 마치 영아와 같으며 보살이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 대비심으로 이런 등의 소선(小善)을 시현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영아행임 [대승의장12].
●哆哆啝啝; 뜻은 입속에 말이 많으나 심내(心內)에 모두 이해하지 못함이 됨.
●十八上; 18세임. 상(上)은 수사(數詞) 뒤에 두어서 연령을 표시함.
●除粥飯二時; 제(除)는 지(只), 단(但). 오등회원4 조주종심. 노승이 행각할 때 다만(除) 두 때의 죽반(粥飯)이 이 잡용심처(雜用心處)며 제외(除外)엔 다시 다른 용심처(用心處)가 없었다. 만약 이와 같이 않다면 이는 너무 멀다(在는 조사)(老僧行脚時 除二時粥飯是雜用心處 除外更無別用心處 若不如是大遠在)
●香象渡河; 향상(香象)이 도하(渡河)하면 철저히 절류(截流)하나니 교법을 청문(聽聞)하면서 소증(所證)이 심심(甚深)함에 비유함. 여러 경론에 매번 토마향상(兔馬香象) 3수(獸)의 도하(渡河)로써 교법을 청문(聽聞)하매 소증(所證)의 심천(深淺)이 다름에 비유함. 이르자면 토끼의 도하는 곧 뜨고(浮) 말의 도하는 곧 반(半)에 미치며 향상의 도하는 곧 철저히 절류(截流)함. ◆香象; 살쩍의 뿔에서 향기 있는 액체를 분비하는 큰 코끼리임. 곧 교배기의 큰 코끼리를 가리킴. 대비바사론30 등을 안험컨대 이 시기의 코끼리는 그 힘이 특히 강하고 성질이 매우 광포(狂暴)하여 제복(制伏)하기 어려우므로 열 마리의 범상한 코끼리의 힘을 합쳐야 겨우 가히 한 향상의 힘에 저항한다 함. ▲주유마힐경1. 향상보살(香象菩薩) 라집이 가로되 푸른 향상(靑香象)이다. 몸에서 향풍을 낸다. 보살신(菩薩身)의 향풍도 또한 이와 같다.
●涅槃經; 열반경 중에 도하(渡河) 2자가 없음. 고로 열반경의 글이 아님이 명확함. 혹은 이르되 삼수가 도하(三獸渡河)하면 코끼리는 철저히 절류(截流)하여 운운하는데 비록 그러하나 열반경 중에 삼수도하의 글이 없음. ◆涅槃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니 무릇 40권 13품(品)임.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했음. 또 대열반경ㆍ대경(大經)으로 지음. 북량 현시 10년(421) 하서왕(河西王) 저거몽손(沮渠蒙遜)의 청에 의거해 고장(姑臧)에서 역출(譯出)했음. 또 본경(本經)은 담무참으로부터 역출 후에 남방의 송지(宋地)에 전해져 혜엄(慧嚴)ㆍ혜관(慧觀)ㆍ사영운(謝靈運) 등의 사람들이 법현(法顯)이 번역한 바의 6권 니원경(泥洹經)과 대조하여 품수(品數)를 증가하여 중수(重修)해 25품 36권을 이루었는데 고래(古來)로 이를 일컬어 남본열반경(南本涅槃經)이라 함. 이에 대해 담무참의 역본(譯本)은 곧 일컬어 북본열반경(北本涅槃經)이라 함. 그 이역본(異譯本)에 셋이 있음. 1. 서진(西晉) 백법조(白法祖)가 번역한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 2권. 2. 동진역(東晉譯; 譯者不詳)의 반니원경(般泥洹經) 2권. 3. 요진(姚秦) 불타야사(佛陀耶舍)ㆍ축불념(竺佛念) 공역(共譯)의 장아함유행경(長阿含遊行經) 3권.
●楞嚴經云; 릉엄경10에 이르되 담(湛)이 담(湛)에 들어가 합쳐 식변제로 돌아간다(湛入合湛歸識邊際).
●湛入合湛; 수릉엄경의초석요초(首楞嚴經義疏釋要鈔) 1. 담(湛)이 담(湛)에 들어가 합친다는 것은 상담(上湛)은 이 식(識)이며 하담(下湛)은 이 진(眞)이다. 이르자면 정(定)으로써 담식(湛識)을 굴복(伏)시켜 진여의 적담(寂湛)의 이치로 합귀(合歸)함이니 이는 곧 진여가 이 식변제(識邊際)이다.
●楞伽經云; 상세한 것은 릉가아발다라보경주해1을 보라.
●流注; 이르자면 유위법이 찰나찰나에 전멸후생(前滅後生; 앞에 멸하고 뒤에 남)하면서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음이 물의 유주(流注)와 같음.
●楞嚴經云; 릉엄경10에 이르되 예컨대(如) 급류수(急流水)를 바라보매 염정(恬靜)한 것 같아 흐름이 급해도 보이지 않지만 이 흐름이 없는 게 아니다.
●古人云; 육십화엄5에 이르되 비유컨대 빠르게 물이 흐르면서/ 흐름마다 단절되어 그치지 않되/ 둘 다 서로 알지 못함과 같이/ 제법도 또한 이와 같다(譬如駛水流 流流無絕已 二俱不相知 諸法亦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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